목차
Ⅰ. 이끄는 말
Ⅱ. 본론
1. 스코틀란드 개혁교회의 예배 모범
2. 장로교 예배와 성찬
Ⅲ. 맺는 말
참고문헌
Ⅱ. 본론
1. 스코틀란드 개혁교회의 예배 모범
2. 장로교 예배와 성찬
Ⅲ. 맺는 말
참고문헌
본문내용
종교 개혁가들은 하나같이 그 당시에 발간하였던 예배 예식서 또는 기도 예식서등은 반드시 초대 교회의 전통에 따라 제정되어야 할 것을 언급하였다. 개혁가들은 항상 초대 교회의 기독교 전통을 중시하여 교회 개혁의 표준으로 삼고 그들의 전통을 유지 보존하려고 힘썼다.
그 결과로 그들은 주일 예배가 반드시 성찬식과 연계되어야 한다고 믿었고 예배의 범위와 내용이 이것에 의하여 결정되어야 할 것으로 보았다. 그것이야말로 기독교의 핵심이요 보편적인 가르침이요 복음이라고 하였다. 성찬 테이불은 크리스챤들의 기도와 헌신의 장소이며 강단은 예언(말씀선포를 가리켜 당시에는 예언이라는 말을 썼다)하는 처소이다. 따라서 성찬 테이블과 강단의 그 구분을 반드시 지키라고 하였다.. ibid, p. 39.
칼빈이 제네바에서 사용했던 예배순서는 다음과 같다: 예배부름, 죄의 고백과 용서를 위한 기도, 시편 찬송, 성령의 조명을 위한 기도, 성경읽기(신약과 구약에서 한 장씩), 설교, (성례), 헌금, 긴 기도와 주기도문 암송, 사도신경(목사 혼자 했음, 그러나 성찬예식이 있는 주일이면 성도들과 다같이 하였다), 시편 찬송, 축복선언.
스코틀란드에 돌아와 종교개혁을 성사시킨 낙스는 1564년에 이른바 예배지침서를 만들었다. 이것을 우리는 낙스 예식서(Book of Common Order, or Knox\' Liturgy)라고도 부른다. 적어도 예배와 교회정치 및 신학적 입장은 통일된 모습을 간직하였던 스코틀란드교회는 1648년에 총회에서 웨스트민스터 종교회의에서 작성된 신앙고백서와 예배지침서를 승인함으로서 새로운 전기를 맏이하게 되었다. 청교도들의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는 17세기 에배지침서에서 확증된 예배순서는 이러하였다: 예배부름, 은혜와 조명을 위한 기도, 성경읽기(신약과 구약에서 한 장씩, 시편찬송, 죄 회개와 중보기도, 설교, 감사와 간구의 기도, 긴 기도와 주기도문, 시편 찬송, 축복 선언.
이와 같은 순서가 지금까지 장로교의 전통적인 예배순서로 자리잡았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우리가 중요시 여길 것은 예배의 중요한 네가지 요소는 변함없지만 예배 순서는 시간이 자나면서 약간의 변형되었다는 점이다. 예배부름이나 회개기도와 중보기도, 그리고 찬송과 성경읽기와 설교등이 항상 포함되어 있었던 것에 비하여 주기도문이나 사도신경고백은 성례식과 관련하여 사용하였다. 그리고 헌금시간이 따로 명시되지 않았다는 것도 특이한 것이었다. 물론 칼빈은 가난한 자들을 위한 구제헌금을 순서에다 삽입하는 것을 용납하기는 했지만 1549년 이후의 자신의 예배에는 포함시키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성도들이 헌금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예배당에 들어오면서 헌금함에 헌금하게 하였다. 이것은 지금까지 개혁교회에서 행하고 있는 실천이다. 또 하나 눈 여겨 볼 것은 예배 기도가 둘로 나누어졌다는 것이다. 오늘날 일반적으로 알져진 목회기도는 한국식처럼 장로나 평신도를 대표하여 누군가가 한 것이 아니라 목사가 하도록 했다. 그리고 회개와 사죄를 위한 기도와 성령의 조명을 위한 기도 및 중보기도를 나누어서 두 번 대표기도 시간을 가졌다는 점이다. 이 부분을 오늘날은 스코틀란드 장로교회에서는 하나로 묶어 목사가 그야말로 목회기도를 한다. 예배순서와 관련하여 잉글란드에 최초로 장로교회를 세운 토마스 카트라이트가 예배의 세부사항을 결정하는 네가지 성경적 기준을 제시한 것을 소개하는 것이 우리에게 매우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The Works of John Whitgift, Coolidge, p.5.
첫째, 하나님의 교회에 거치는 것이 되어서는 아니된다(고전 10:32).
둘째, 질서정연하게 시행되어야 한다(고전 14:40)
셋째, 교훈하고 훈육적이어야 한다(고전 14:26)
넷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야 한다(고전 14:6-7)
이것은 예배순서와 관련하여 어떤 사항은 개 교회가 알아서 처리해야 할 것이 있음을 시사한다. 왜냐하면 그러한 것은 본질적으로 세대, 장소, 회중, 그리고 다른 조건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번에 결정해서 영원한 표본으로 세울 수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개혁신학은 예배모범과 맞물리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성경의 권위를 내세운 청교도들과 언약도들의 가르침은 오늘날 우리들이 취해야 할 초석이라고 볼 수 있다. ‘그들은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선지자들과 사도들을 통해 주신 글에 담긴 하나님 말씀이 절대적으로 완전하고 이것이 종교와 예배, 그리고 섬김이라는 문제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유일한 정경이요 규범이라고 믿고 주장한다. 따라서 기록한 말씀이 정당하다고 인정하지 않는 것은 무엇이든지 합법적이지 않다’.. William Bradshow의 1605년도 논문임, quoted from Leland Ryken, Worldly Saints, 생명의 말씀사, 1995, p. 237.
이 교훈은 오늘날에도 매우 적법적인 것이라고 믿는다.
의식이 극성을 부릴수록 진리는 줄어든다. 예배의 단순화는 장로교 예배나 청교도들의 예배의 특성이었다. 그들은 사제복장을 거부하였는데 그 이유는 종교자유의 침해와 로마 카토릭을 연상시킬 우려가 있으며 그리스도를 본받는 겸손을 멀리하고 오히려 화려함과 겉치레를 조장할 수 있으며 또한 평신도와 성직자간의 위화감을 조장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교회 건물조차도 단순하게 만들었다. 각종 형상과 조각상을 교회에서 치워버렸으며 사제와 회중을 갈라 놓는 예배실도 없애버렸다. 이들 교회당의 특색은 예배당 한 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강단과 강단에 올라가기 위해 만들어진 나선형 계단과 강단위에 펼쳐져 있는 큰 성경, 그리고 강단아래에 위치한 성찬 테이블이 있을 뿐이었다. 강단이 제일 높은 위치를 차지한 이유는 교회에서 성경이 최고의 권위를 갖는다는 사상 때문이었다.
이들은 구약적 성전 개념을 없애버리고 교회를 예배당이라는 모이는 집의 개념을 도입하였다. 그리하여 예배를 하늘의 아버지와의 영적 가족들의 만남이라고 해서 예배의 가족성을 크게 부각시켰다. 여기에 주일의 축제적인 의미가 나타나 있는 것이다. 청교도들이나 언약도들은 가토릭이나 성
그 결과로 그들은 주일 예배가 반드시 성찬식과 연계되어야 한다고 믿었고 예배의 범위와 내용이 이것에 의하여 결정되어야 할 것으로 보았다. 그것이야말로 기독교의 핵심이요 보편적인 가르침이요 복음이라고 하였다. 성찬 테이불은 크리스챤들의 기도와 헌신의 장소이며 강단은 예언(말씀선포를 가리켜 당시에는 예언이라는 말을 썼다)하는 처소이다. 따라서 성찬 테이블과 강단의 그 구분을 반드시 지키라고 하였다.. ibid, p. 39.
칼빈이 제네바에서 사용했던 예배순서는 다음과 같다: 예배부름, 죄의 고백과 용서를 위한 기도, 시편 찬송, 성령의 조명을 위한 기도, 성경읽기(신약과 구약에서 한 장씩), 설교, (성례), 헌금, 긴 기도와 주기도문 암송, 사도신경(목사 혼자 했음, 그러나 성찬예식이 있는 주일이면 성도들과 다같이 하였다), 시편 찬송, 축복선언.
스코틀란드에 돌아와 종교개혁을 성사시킨 낙스는 1564년에 이른바 예배지침서를 만들었다. 이것을 우리는 낙스 예식서(Book of Common Order, or Knox\' Liturgy)라고도 부른다. 적어도 예배와 교회정치 및 신학적 입장은 통일된 모습을 간직하였던 스코틀란드교회는 1648년에 총회에서 웨스트민스터 종교회의에서 작성된 신앙고백서와 예배지침서를 승인함으로서 새로운 전기를 맏이하게 되었다. 청교도들의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는 17세기 에배지침서에서 확증된 예배순서는 이러하였다: 예배부름, 은혜와 조명을 위한 기도, 성경읽기(신약과 구약에서 한 장씩, 시편찬송, 죄 회개와 중보기도, 설교, 감사와 간구의 기도, 긴 기도와 주기도문, 시편 찬송, 축복 선언.
이와 같은 순서가 지금까지 장로교의 전통적인 예배순서로 자리잡았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우리가 중요시 여길 것은 예배의 중요한 네가지 요소는 변함없지만 예배 순서는 시간이 자나면서 약간의 변형되었다는 점이다. 예배부름이나 회개기도와 중보기도, 그리고 찬송과 성경읽기와 설교등이 항상 포함되어 있었던 것에 비하여 주기도문이나 사도신경고백은 성례식과 관련하여 사용하였다. 그리고 헌금시간이 따로 명시되지 않았다는 것도 특이한 것이었다. 물론 칼빈은 가난한 자들을 위한 구제헌금을 순서에다 삽입하는 것을 용납하기는 했지만 1549년 이후의 자신의 예배에는 포함시키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성도들이 헌금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예배당에 들어오면서 헌금함에 헌금하게 하였다. 이것은 지금까지 개혁교회에서 행하고 있는 실천이다. 또 하나 눈 여겨 볼 것은 예배 기도가 둘로 나누어졌다는 것이다. 오늘날 일반적으로 알져진 목회기도는 한국식처럼 장로나 평신도를 대표하여 누군가가 한 것이 아니라 목사가 하도록 했다. 그리고 회개와 사죄를 위한 기도와 성령의 조명을 위한 기도 및 중보기도를 나누어서 두 번 대표기도 시간을 가졌다는 점이다. 이 부분을 오늘날은 스코틀란드 장로교회에서는 하나로 묶어 목사가 그야말로 목회기도를 한다. 예배순서와 관련하여 잉글란드에 최초로 장로교회를 세운 토마스 카트라이트가 예배의 세부사항을 결정하는 네가지 성경적 기준을 제시한 것을 소개하는 것이 우리에게 매우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The Works of John Whitgift, Coolidge, p.5.
첫째, 하나님의 교회에 거치는 것이 되어서는 아니된다(고전 10:32).
둘째, 질서정연하게 시행되어야 한다(고전 14:40)
셋째, 교훈하고 훈육적이어야 한다(고전 14:26)
넷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야 한다(고전 14:6-7)
이것은 예배순서와 관련하여 어떤 사항은 개 교회가 알아서 처리해야 할 것이 있음을 시사한다. 왜냐하면 그러한 것은 본질적으로 세대, 장소, 회중, 그리고 다른 조건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번에 결정해서 영원한 표본으로 세울 수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개혁신학은 예배모범과 맞물리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성경의 권위를 내세운 청교도들과 언약도들의 가르침은 오늘날 우리들이 취해야 할 초석이라고 볼 수 있다. ‘그들은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선지자들과 사도들을 통해 주신 글에 담긴 하나님 말씀이 절대적으로 완전하고 이것이 종교와 예배, 그리고 섬김이라는 문제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유일한 정경이요 규범이라고 믿고 주장한다. 따라서 기록한 말씀이 정당하다고 인정하지 않는 것은 무엇이든지 합법적이지 않다’.. William Bradshow의 1605년도 논문임, quoted from Leland Ryken, Worldly Saints, 생명의 말씀사, 1995, p. 237.
이 교훈은 오늘날에도 매우 적법적인 것이라고 믿는다.
의식이 극성을 부릴수록 진리는 줄어든다. 예배의 단순화는 장로교 예배나 청교도들의 예배의 특성이었다. 그들은 사제복장을 거부하였는데 그 이유는 종교자유의 침해와 로마 카토릭을 연상시킬 우려가 있으며 그리스도를 본받는 겸손을 멀리하고 오히려 화려함과 겉치레를 조장할 수 있으며 또한 평신도와 성직자간의 위화감을 조장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교회 건물조차도 단순하게 만들었다. 각종 형상과 조각상을 교회에서 치워버렸으며 사제와 회중을 갈라 놓는 예배실도 없애버렸다. 이들 교회당의 특색은 예배당 한 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강단과 강단에 올라가기 위해 만들어진 나선형 계단과 강단위에 펼쳐져 있는 큰 성경, 그리고 강단아래에 위치한 성찬 테이블이 있을 뿐이었다. 강단이 제일 높은 위치를 차지한 이유는 교회에서 성경이 최고의 권위를 갖는다는 사상 때문이었다.
이들은 구약적 성전 개념을 없애버리고 교회를 예배당이라는 모이는 집의 개념을 도입하였다. 그리하여 예배를 하늘의 아버지와의 영적 가족들의 만남이라고 해서 예배의 가족성을 크게 부각시켰다. 여기에 주일의 축제적인 의미가 나타나 있는 것이다. 청교도들이나 언약도들은 가토릭이나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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