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의 귀족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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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려의 귀족문화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고려 초기
2. 고려 중기 이후

본문내용

태에 이르게 한 기존 정치에 대한 비판적 분위기와 금나라에 대한 사대외교를 향한 비판여론 속에서 정지상(鄭知常), 승려 묘청(妙淸) 등의 서경 출신 세력들이 등장하였다. 이들은 고려가 천하의 중심으로, 천하에서 유일하게 신성한 곳이라는 고대적 천하관의 계승자들이었다. 그들은 대내적으로는 서경으로의 천도(遷都)와 내정의 개혁을 주장하였고, 대외적으로는 황제를 칭하고 연호를 제정할 것(稱帝建元)과 금국(金國)과 대결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들은 묘청 등의 미신적인 지리도참설(地理圖讖說)과 음양비술에 많이 의존하였는데, 묘청이 지덕(地德)이 쇠한 개경에서 지덕이 왕성한 서경으로 천도하면 국력이 왕성해져 금나라도 항복할 것이며 다른 나라들도 조공을 바치게 될 것이라 하자, 서경에 새로운 궁궐이 세워지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오히려 자연재해가 잇따르면서 서경 천도에 대한 회의론이 일어났으며, 그것을 만회하려는 묘청의 속임수가 탄로 나자 비판론이 크게 고조되었다. 문벌세력을 필두로 한 조정 신료들의 거센 비판에 몰린 묘청 등은 인종 12년(1135)에 서경에서 반란을 일으켰으나 1년 만에 평정되었다.
서경 반란의 평정을 맡았던 김부식(金富軾) 일파가 권력을 장악하자 문벌 중심의 체제는 더욱 경직되고 사대외교도 지속되었다. 김부식은 또한 국가의 공식적 역사서를 편찬하는 최고 책임자가 되어 《삼국사기(三國史記)》를 만들었다. 이에 앞서 고려 초에 만들어진 《구삼국사기(舊三國史記)》가 있었으나, 《삼국사기》는 유교이념과 유교사관에 치중하여 전통적인 토속문화를 부정적으로 보는 관점에서 앞 시대의 역사를 다시 편찬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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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5페이지
  • 등록일2012.03.13
  • 저작시기2010.06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807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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