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악곡의 구성
제1곡 : Kyrie (3부로 나눠진다)
제2곡 : Gloria(영광송) 6부로 나눠진다.
제3곡 : Credo (사도신경) 3부로 나눠진다.
제4곡 : Sauctus(거룩) 전주곡을 사이에 둔 2부로 나눠진다.
제5곡 : Agnus Dei (하느님의 어린양) 3부로 나눠진다.
베토벤 / 장엄미사(Missa Solemnis) D-dur Op.123
베토벤의 오라토리오의 장엄미사 감상문
제1곡 : Kyrie (3부로 나눠진다)
제2곡 : Gloria(영광송) 6부로 나눠진다.
제3곡 : Credo (사도신경) 3부로 나눠진다.
제4곡 : Sauctus(거룩) 전주곡을 사이에 둔 2부로 나눠진다.
제5곡 : Agnus Dei (하느님의 어린양) 3부로 나눠진다.
베토벤 / 장엄미사(Missa Solemnis) D-dur Op.123
베토벤의 오라토리오의 장엄미사 감상문
본문내용
전쟁, 러시아 원정 등으로 이어진 이른바 ‘나폴레옹 전쟁’은 유럽을 공포와 혼란 속으로 몰아넣었고, 권력욕이 빚은 이 전쟁의 참상을 수 년간 지켜본 베토벤은 평화를 기원하고 호소하려는 열망을 갈수록 억제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장엄미사〉의 ‘하느님의 어린 양’ 부분을 작곡할 때, 악보에 ‘안과 밖의 평화를 위한 기도’라는 메모를 끄적여 놓았다. ‘안의 평화’란 마음의 평화일수도 있고 가정의 혹은 나라 안의 평화라는 의미일 수도 있다. ‘밖의 평화’란 물론 국가 간의 분쟁이 없는 상태를 뜻할 것이다. 어쩌면 이 메모는 믿는 이들과 믿지 않는 이들 모두의 평화를 뜻하는지도 모른다.
‘하느님의 어린 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Agnus Dei… miserere nobis.’ 〈장엄미사〉에서 베이스 솔로와 합창단이 이 부분을 노래하기 시작하면 우리는 깨끗하고 넓은 성전 안의 미사전례보다는 아프가니스탄 어디쯤 폭격으로 폐허가 된 땅에서 굶주리고 부상당한 사람들이 탈진한 표정으로 걸어 다가오는 모습을 눈앞에 보게 된다. ‘미제레레 노비스’. 제발 저희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라는 이 기도가 유독 〈장엄미사〉에서 칼날처럼 가슴에 꽂히는 이유는, 누구보다도 독재권력과 권위주의와 전쟁을 혐오했던 베토벤이 바로 나폴레옹 전쟁이라는 현실의 사건에 몸서리를 치며 이를 작곡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세속적인 미사곡’이라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사실은 어느 종교음악보다 깊은 영성을 담고 있다. 아마도 그것은 현실의 고통을 외면하고 천국만을 노래하는 영성이 아닌, 시대와 이웃의 아픔을 몸으로 나누는 영성일 것이다.
쉴러의 〈환희의 송가〉에 곡을 붙인 베토벤의 교향곡 9번 〈합창〉도 이 〈장엄미사〉와 같은 해인 1824년에 초연되었다. 이 두 대작이 인류의 화해와 평화를 희구하는 베토벤의 열망을 동시에 담아내고 있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베토벤 자신이 불우한 환경과 독선적인 성격으로 평생 주변 사람들과 불화했기 때문에 평화에 대한 열망이 더욱 간절했던 것일까? 〈장엄미사〉의 마지막 노래는 ‘평화를 주소서Dona pacem’라는 말로 끝을 맺는다. 원래 기도문대로 ‘저희에게 평화를 주소서Dona nobis pacem’라고 노래하지만, 마지막에 가서는 ‘우리’에 포함되지 않는 교회 밖의 신자 아닌 사람들에게도 평화를 주십사 하는 뜻에서 베토벤이 일부러 ‘우리에게nobis’라는 말을 빼놓았다고도 한다.
‘하느님의 어린 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Agnus Dei… miserere nobis.’ 〈장엄미사〉에서 베이스 솔로와 합창단이 이 부분을 노래하기 시작하면 우리는 깨끗하고 넓은 성전 안의 미사전례보다는 아프가니스탄 어디쯤 폭격으로 폐허가 된 땅에서 굶주리고 부상당한 사람들이 탈진한 표정으로 걸어 다가오는 모습을 눈앞에 보게 된다. ‘미제레레 노비스’. 제발 저희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라는 이 기도가 유독 〈장엄미사〉에서 칼날처럼 가슴에 꽂히는 이유는, 누구보다도 독재권력과 권위주의와 전쟁을 혐오했던 베토벤이 바로 나폴레옹 전쟁이라는 현실의 사건에 몸서리를 치며 이를 작곡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세속적인 미사곡’이라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사실은 어느 종교음악보다 깊은 영성을 담고 있다. 아마도 그것은 현실의 고통을 외면하고 천국만을 노래하는 영성이 아닌, 시대와 이웃의 아픔을 몸으로 나누는 영성일 것이다.
쉴러의 〈환희의 송가〉에 곡을 붙인 베토벤의 교향곡 9번 〈합창〉도 이 〈장엄미사〉와 같은 해인 1824년에 초연되었다. 이 두 대작이 인류의 화해와 평화를 희구하는 베토벤의 열망을 동시에 담아내고 있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베토벤 자신이 불우한 환경과 독선적인 성격으로 평생 주변 사람들과 불화했기 때문에 평화에 대한 열망이 더욱 간절했던 것일까? 〈장엄미사〉의 마지막 노래는 ‘평화를 주소서Dona pacem’라는 말로 끝을 맺는다. 원래 기도문대로 ‘저희에게 평화를 주소서Dona nobis pacem’라고 노래하지만, 마지막에 가서는 ‘우리’에 포함되지 않는 교회 밖의 신자 아닌 사람들에게도 평화를 주십사 하는 뜻에서 베토벤이 일부러 ‘우리에게nobis’라는 말을 빼놓았다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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