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들이 일터에서 느꼈던 글(어려웠던 점이나 희노애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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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장애인들이 일터에서 느꼈던 글(어려웠던 점이나 희노애락)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간 영국에 어학연수를 떠났다. 영어를 배우는 과정은 상상을 초월하는 고생이었다. 단어 하나하나씩 발음기호를 보고 발음을 연구했다. 마지막엔 내 발음을 제3자가 확인해주는 과정을 거쳐 단어 하나하나를 배웠다.\"
 (※2년의 어학연수를 마치고 일본으로 돌아온 김씨는 2년제 대학을 나와 오지(王子)제지에서 4년간 근무했다. 그러나 남자친구와 이별한 뒤 우울증으로 직장을 그만두고 10개월간 은둔형 외톨이로 살았다. 재기를 다짐한 김씨는 4년간 모은 돈으로 3년여의 세계 여행을 떠났다.)
 - 어떻게 세계적인 금융회사에 들어갈 수 있었나.
 \"취업박람회에 가보니 한산한 부스가 있었다. 외국인 남성과 일본인 여성이 상담창구에 앉아 있었는데, 골드만삭스 인사담당 직원이었다. ▶귀가 안 들리는 데도 사람과 대화할 수 있는 능력 ▶4개 국어 구사 ▶3년간의 세계여행 이야기를 했다. 며칠 뒤 뜻밖에 합격 연락이 왔다. 처음엔 사무보조 일을 했고 입사 3년차에 주식·채권 매니지먼트 업무가 주어졌다. 2년 전 지금 직장으로 옮겼다.\"
 - 회사생활에 어려움도 많을 텐데.
 \"내 책상엔 전화가 없다. 쓸모 없으니 치워달라고 했다. 회의에는 쫓아가지 못한다. 그럴 땐 동료가 내 옆에서 메모를 해 도와준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깨달은 것은 장애인은 아무리 애써도 반드시 남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현실에 좌절도 하지만, 결국엔 장애를 인정해야 자신도 사회도 편해진다. 나도 할 수 있는 범위에서 그들에게 보답한다.\"
 - 인생의 목표는.
 \"새로운 목표에 끊임없이 도전하는 것, 웃음이 끊이지 않는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 것이다.\"
(※김씨는 인터넷 만남사이트에서 출판사 직원인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두 살 된 딸이 있다.)
2. 휠체어를 탄 제2의 아인슈타인 스티븐 호킹
스티븐 호킹하면 생각나는 것은 휠체어와 금속성 목소리다. \'빅뱅이론\'이니 \'아기우주\'니 하는 학문적 업적보다 고개조차 스스로 가눌 수 없는 그의 루게릭병을 먼저 떠올린다.
\" 루게릭병이 아니었더라도 지금 같은 물리학자가 되었을까?\" 라는 질문에 호킹은 \"병에 걸리지 않았다면 읽고 쓰는 일에 지금같이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 대신 강연하고 시험점수 매기느라 연구를 제대로 못했을 것이므로 결국 루게릭병이 나를 이론 물리학자로 만든 셈이다\" 라고 답한다.
휠체어에 앉은 호킹이 움직일 수 있는 것이라고는 왼손의 손가락 두 개와 얼굴 근육 일부분, 폐렴으로 기관지 제거수술을 받은 후 목소리마저 완전히 잃었다. 처음 목소리를 잃고 나서의 의사소통 방법은 비서가 옆에서 알파벳을 적은 카드를 들어 보이면 그 중 원하는 카드에 눈썹을 들어올리는 것이었다. 현재는 휠체어 앞에 달린 컴퓨터를 이용한다. 커서가 2,600단어 위를 빠르게 움직이다 원하는 단어 위에 갔을 때 스위치를 누른다. 이렇게 겨우 한 문장을 만들면 음성합성기가 미국식 엑센트로 소리를 만들어낸다. 1분에 10개 단어가 고작이다.
옥스퍼드를 3년만에 마치고 스무살에 케임브리지대학 박사과정에 갈 때만 해도 그는 건강한 청년이었다. 조정선수로도 활약했다. 그러나 케임브리지에 갔을 때 그는 별다른 이유 없이 자꾸 넘어졌다. 퐁토병을 연구하는 학자였던 아버지는 그를 전문의에게 데려갔고, 마침내 근육이 점점 수축되어 심장근육에까지 이르면 사망하는 루게릭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육체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잃고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그에게 어떤 희망이 있을까. 그는 놀랍게도 전보다 행복해졌다며, \"내가 사형선고를 받았고 지금은 집행유예 기간이라면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다. \"라고 말한다.
그의 몸이 악화되어 갈수록 밖에서 더 큰 명성을 얻었다. 아인슈타인이 일반 상대성이론에서 예견했던 우주 \'특이점\'의 존재를 스물세살 때 박사학위 논문에서 증명해냈다. 서른 두 살 때는 영국 학술원의 최연소 회원이 되면서 \'제2의 아인슈타인\'이라는 수식어까지 얻었다. 77년에는 케임브리지대학의 중력물리학 정교수로 임명됐다. 기관지 제거수술을 한지 3년후인 88년 \'시간의 역사\'를 펴내 세계적인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20개국에서 1천만권 이상 팔렸으며 미국 베스트셀러 차트에 55주 머물렀다고 한다. 또한 과학분야에서 수십 개의 상을 받았다. 루게릭병을 앓고 있으면 어떤 기분인가 하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스티븐 호킹을 별다른 기분을 느끼지 않는다고 대답한다. \"가능한 한 정상적으로 살려하고 내 상태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에는 신경 쓰지 않는다. 실제로는 못하는 일도 별로 없다.\"
그는 육체적으로는 최악의 상황이지만 유머감각과 여유를 잃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
3. 세계적인 시각장애인 피아니스트 니콜라스 콘스탄티니디스
파란 나일강의 색깔만 기억하는 시각장애인 피아니스트 콘스탄티니디스는 인간세계에서의 승리자로 전세계에 알려진 피아니스트이다. 1995년 폴란드에서 열린 국제청소년음악회에서 입상함으로써 세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그의 연주회는 매번 세계의 주목을 받아 미국교육방송, 영국 BBC, 스위스의 라디오 방송, 독일의 RIAS, 오스트리아의 비엔나 라디오 등에서 중계되었으며, 전세계의 청중들과 비평가들에게 환호를 받았다.
그의 양친은 그리스인이며 이집트 카이로에서 태어났다. 런던 왕립음악학교에서 리센티에트(유럽에서의 학사와 박사의 중간학위)를 받고 졸업한 뒤에 미국 보스턴 왈라스대학에서 장학금을 받았으며 여기서 음악학사를 받고, 클리블랜드 음대에서 음악석사 학위를 받았다.
바르샤바 콘서바토리의 최우수 디플로마를 받고 또한 쇼팽의 고향인 젤라로와 왈라에서 쇼팽곡으로 된 연주회를 개최하는 영광을 얻기도 한 그는 1969년 미국 최고의 젊은이로 뽑히기도 했다. 어떤 나이와 배경을 가진 청중들과도 쉽게 어우러지는 그에 대한 매력은 세대와 문화의 장벽을 허물었으며 모든 청중에게 환희를 주었다.
4개 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했던 그는 자신이 시각장애인이라는 사실을 단지 불편할 뿐이라고 말하곤 했다. 일반의 상식을 깨고 시각장애인으로서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된 그에게 장애는 단지 조건일 뿐인 것이다.
4. 의자 위의 지휘자 제프리 테이트
의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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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9페이지
  • 등록일2012.03.13
  • 저작시기2011.08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817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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