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귄터그라스 인물 소개
1) 생애
2) 주요 작품
3) 작가 성향
Ⅱ. 작품 ‘광야’
1) 줄거리
2) 비판 이유
3) 주요 인물
Ⅲ. 귄터그라스 문학 논쟁
1) 전개 과정
※ 김수정 교수님과 귄터 크라스와의 인터뷰 中
2) 논쟁의 이유
3) 논쟁 구도
Ⅳ. 귄터크라스 문학 논쟁 후 평가
1) 정치적 측면
2) 미학적 측면
3) 노벨 문학상 수상 후
Ⅴ. 발표자의 생각
1) 생애
2) 주요 작품
3) 작가 성향
Ⅱ. 작품 ‘광야’
1) 줄거리
2) 비판 이유
3) 주요 인물
Ⅲ. 귄터그라스 문학 논쟁
1) 전개 과정
※ 김수정 교수님과 귄터 크라스와의 인터뷰 中
2) 논쟁의 이유
3) 논쟁 구도
Ⅳ. 귄터크라스 문학 논쟁 후 평가
1) 정치적 측면
2) 미학적 측면
3) 노벨 문학상 수상 후
Ⅴ. 발표자의 생각
본문내용
커다란 관심
: 작품의 미학적 평가에 있어서는 부정적인 견해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구서독의 언론들보다는 호의적인 반응을 보인다.
- 또한 소설에 대한 질적인 평가가 아니라 작가의 통일관을 문제삼아 그것을 논쟁거리로 삼는 독일 문학비평계에 대해서도 신랄한 비판.
▶ 귄터 그라스 자신의 반응
: “성공적인 독일통일이라는 역사적인 신화가 나의 소설에서는 의문시되고 있다. 그래서 이 신화에 가담했던 - 적지 않은 - 사람들이 분통을 터뜨리며 증오에 찬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 “49년 동아 독재체제에 살 수 밖에 없었던 1600만 명의 사람들을 경솔하게 서방세계에 연결시켜 그들의 삶을, 그들의 산업처럼 쓰레기더미에 불과한 것이었다고 선언할 수는 없다. 이 사람들의 손상된 삶에 대한 존중심을 가져야만 한다. 이러한 당사자의 입장에서 나는 이 소설을 썼다. 작가란 어떤 주제를 선택하든 승자의 자리가 아니라 당사자의, 패자의 입장에 서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 김수정 교수님과 귄터 크라스와의 인터뷰 中
- 2005년 2월 중순 귄터 그라스 하우스
김 : 소설 ‘광야’가 발표되었을 때 부정적인 비평들이 대부분이었지요. 이러한 부정적인 반응들이 있을 거라고 예상하셨습니까?
귄 : 비평이 전반적으로 부정적이었다는 것은 틀린 말입니다. 구서독 지역에서의 비평은 부정적이었습니다. 그 반면 구동독 지역에서의 반응은 매우 긍정적이었습니다. 하지만 구서독의 언론은 통일문제에 있어서도 자신들이 압도적인 것처럼 보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 소설이 전반적으로 거부되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것은 틀린 말입니다. 그것이 틀렸다는 것은 나중에 확인이 되었지요. 문학논쟁은 이전에도 있었습니다. 통일 직후 문예란의 편집자들인 프랑크푸프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의 프랑크 쉬르마허의 디 차이트의 울리히 그라이너는 동독문학을 총결산하는 기사를 실었습니다. 특히 동독 문학의 대표자격인 크리스타 볼프에 대해서 말입니다. 그 기사들에서는 동독문학을 평가절하하려는 그들의 의도를 읽을 수 있습니다. 동시에 서독에서 정치에 깊이 관여했던 사람들에 대한 평가절하도 시도되었습니다. 이것이 그 기사들의 전반적인 태도였습니다. 볼프가 많은 동독작가들의 대표격으로 공격당했을 때, 동료작가 발터 옌스와 철학자인 위르겐 하버마스, 그리고 저 세 사람이 유독 반대의 목소리를 내었습니다. 오늘날에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이제 소설 ‘광야’에 대해 말하지요. 서족 언론의 혹평 때문에 놀라지는 않았습니다. 놀라웠던 것은 몇몇 기사에 명백히 나타난 증오였습니다. 가장 뻔뻔스러웠던 것은 대표적 비평가인 라이히-라니츠키가 데어 슈피겔의 표지에서 저의 책을 찢는 사진이었지요. 이것은 또한 많은 외국 작가들의 비판을 불러왔습니다. 작품을 파괴하는 행위가 문학 전체에 대한 모욕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소설 자체에 대한 논쟁은 없었습니다. 전반적으로 오류가 저질러졌습니다. 예를 들어 작중 인물인 폰티나 호프탈러의 목소리를 작가의 목소리와 동일시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문학수업 시간에 이미 다루었던 문제들입니다. 비평가들은 혹평의 근거로 이러한 바보 같은 이유들을 들었습니다.
③ 논쟁의 종식 - 비판에 대한 반성의 물결
: ARD 방송의 “작가의 초상 - 귄터 그라스” 방영 이후 9월에 들어와 매스컴은 다른 양상을 보임
ⅰ. 신문사 : 찬판의 비평 대신 그들이 해온 비평과 여파에 대한 자성의 글로 새로운 칼럼 게시
- GieBener Allgemeine 신문 : “그라스의 배는 전복됐는가? 그렇다, 좋다. 그러나 모두가 탄 배가 전복됐다.” - 비평에 관한 총체적 반성
- Saarbrucker Zeitung : “귄커 그라스 때문에 무슨 일이 발생했는가?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단 말인가” - 한탄
ⅱ. 비평가들 : 지나친 비평의 열기를 비난하기 시작
ⅲ. 매스컴의 보도경쟁 : 8월 26/27일을 분기점으로 현저하게 수그러듦
- 이후 9월 1일 19편의 기사가 신문에 실렸을 뿐 9월 한 달간 전국 평균 1편의 기사만이 게재됨
- 오직 9월 13일 그라스가 함부르크에서 가진 낭독회에 대한 기사만이 6편 게재
- 이로서 광야 열병은 막을 내리게 됨.
∵ 이는 지금까지 이 작품에 대해 할 수 있는 말은 거의 다 했고, 참여할 수 있는 비평가들도 거의 다 동원된 상태였으며, 독자도 식상할 시기에 이르렀기 때문.
2) 논쟁의 이유
①작품 내적 측면
ⅰ. 작가 ‘귄터 그라스’의 독특한 동독관
: 동독 과거의 일률적인 청산의 반대 입장 - 크리스타 볼프 옹호
- 서독이 동독을 흡수통일했다는 승자의 시각에서 동독의 모든 것을 무시하고 파괴하는 것이야말로 동서독의 화합을 방해하고 통일독일의 발전을 저해하는 무지한 짓이라고 주장
- “승자의 자리에 앉고 싶지 않다”는 그라스의 생각, 다시 말하면 승자에 의해 잘못 쓰여진 역사를 수정하는 것이 작가의 역할이라고 하는 그의 신념이 구서독 보수평단의 많은 비평가들에게 강한 거부감과 혹평의 원인이 됨.
ⅱ. 역사성 그리고 그라스의 비판적인 통일관
: 성공적으로 표현하였던 독일 통일에 대한 비판은 많은 이들(특히 독일 보수문단)의 비평을 쏟아내게 함.
- 정치 일선에 참여한 참여작가
- 1989/1990년 전환기 때에 독일 통일의 과정에 대해 진심으로 우려하고 반대했음.
- 동서독의 즉각적인 통일만이 최선의 대안으로 대다수 사람들이 주장했던 당시 그라스는 흡수통일을 반대하고 연방제를 통한 점진적 통일방안 주장.
- 1871년 프러이센의 독일제국 선포와 1989년 독일 통일의 대비는 역사적으로 결국 힘(전쟁의 폭력)의 승리와 실패가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를 말하려는 것이다.
- “뻔뻔스런 독일 우월주의로 나아가지 않도록 경고함
- 동독 사람에 대한 도덕적 보상의 의도로 작품을 쓴 것 같다라는 평가가 많음.
: 성공적으로 표현하였던 독일 통일에 대한 비판은 많은 이들의 비평을 쏟아내게 함.
ⅲ. 문학성 및 그라스의 언어적 능력
* 대부분의 독자들이 느끼는 부정적인 요인
- 플롯이 없어 읽기에 지루하다. 7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양.
- 독창적인 면모가 없는 두 인물의 억지스러움
- 식자적인 강의를
: 작품의 미학적 평가에 있어서는 부정적인 견해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구서독의 언론들보다는 호의적인 반응을 보인다.
- 또한 소설에 대한 질적인 평가가 아니라 작가의 통일관을 문제삼아 그것을 논쟁거리로 삼는 독일 문학비평계에 대해서도 신랄한 비판.
▶ 귄터 그라스 자신의 반응
: “성공적인 독일통일이라는 역사적인 신화가 나의 소설에서는 의문시되고 있다. 그래서 이 신화에 가담했던 - 적지 않은 - 사람들이 분통을 터뜨리며 증오에 찬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 “49년 동아 독재체제에 살 수 밖에 없었던 1600만 명의 사람들을 경솔하게 서방세계에 연결시켜 그들의 삶을, 그들의 산업처럼 쓰레기더미에 불과한 것이었다고 선언할 수는 없다. 이 사람들의 손상된 삶에 대한 존중심을 가져야만 한다. 이러한 당사자의 입장에서 나는 이 소설을 썼다. 작가란 어떤 주제를 선택하든 승자의 자리가 아니라 당사자의, 패자의 입장에 서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 김수정 교수님과 귄터 크라스와의 인터뷰 中
- 2005년 2월 중순 귄터 그라스 하우스
김 : 소설 ‘광야’가 발표되었을 때 부정적인 비평들이 대부분이었지요. 이러한 부정적인 반응들이 있을 거라고 예상하셨습니까?
귄 : 비평이 전반적으로 부정적이었다는 것은 틀린 말입니다. 구서독 지역에서의 비평은 부정적이었습니다. 그 반면 구동독 지역에서의 반응은 매우 긍정적이었습니다. 하지만 구서독의 언론은 통일문제에 있어서도 자신들이 압도적인 것처럼 보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 소설이 전반적으로 거부되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것은 틀린 말입니다. 그것이 틀렸다는 것은 나중에 확인이 되었지요. 문학논쟁은 이전에도 있었습니다. 통일 직후 문예란의 편집자들인 프랑크푸프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의 프랑크 쉬르마허의 디 차이트의 울리히 그라이너는 동독문학을 총결산하는 기사를 실었습니다. 특히 동독 문학의 대표자격인 크리스타 볼프에 대해서 말입니다. 그 기사들에서는 동독문학을 평가절하하려는 그들의 의도를 읽을 수 있습니다. 동시에 서독에서 정치에 깊이 관여했던 사람들에 대한 평가절하도 시도되었습니다. 이것이 그 기사들의 전반적인 태도였습니다. 볼프가 많은 동독작가들의 대표격으로 공격당했을 때, 동료작가 발터 옌스와 철학자인 위르겐 하버마스, 그리고 저 세 사람이 유독 반대의 목소리를 내었습니다. 오늘날에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이제 소설 ‘광야’에 대해 말하지요. 서족 언론의 혹평 때문에 놀라지는 않았습니다. 놀라웠던 것은 몇몇 기사에 명백히 나타난 증오였습니다. 가장 뻔뻔스러웠던 것은 대표적 비평가인 라이히-라니츠키가 데어 슈피겔의 표지에서 저의 책을 찢는 사진이었지요. 이것은 또한 많은 외국 작가들의 비판을 불러왔습니다. 작품을 파괴하는 행위가 문학 전체에 대한 모욕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소설 자체에 대한 논쟁은 없었습니다. 전반적으로 오류가 저질러졌습니다. 예를 들어 작중 인물인 폰티나 호프탈러의 목소리를 작가의 목소리와 동일시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문학수업 시간에 이미 다루었던 문제들입니다. 비평가들은 혹평의 근거로 이러한 바보 같은 이유들을 들었습니다.
③ 논쟁의 종식 - 비판에 대한 반성의 물결
: ARD 방송의 “작가의 초상 - 귄터 그라스” 방영 이후 9월에 들어와 매스컴은 다른 양상을 보임
ⅰ. 신문사 : 찬판의 비평 대신 그들이 해온 비평과 여파에 대한 자성의 글로 새로운 칼럼 게시
- GieBener Allgemeine 신문 : “그라스의 배는 전복됐는가? 그렇다, 좋다. 그러나 모두가 탄 배가 전복됐다.” - 비평에 관한 총체적 반성
- Saarbrucker Zeitung : “귄커 그라스 때문에 무슨 일이 발생했는가?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단 말인가” - 한탄
ⅱ. 비평가들 : 지나친 비평의 열기를 비난하기 시작
ⅲ. 매스컴의 보도경쟁 : 8월 26/27일을 분기점으로 현저하게 수그러듦
- 이후 9월 1일 19편의 기사가 신문에 실렸을 뿐 9월 한 달간 전국 평균 1편의 기사만이 게재됨
- 오직 9월 13일 그라스가 함부르크에서 가진 낭독회에 대한 기사만이 6편 게재
- 이로서 광야 열병은 막을 내리게 됨.
∵ 이는 지금까지 이 작품에 대해 할 수 있는 말은 거의 다 했고, 참여할 수 있는 비평가들도 거의 다 동원된 상태였으며, 독자도 식상할 시기에 이르렀기 때문.
2) 논쟁의 이유
①작품 내적 측면
ⅰ. 작가 ‘귄터 그라스’의 독특한 동독관
: 동독 과거의 일률적인 청산의 반대 입장 - 크리스타 볼프 옹호
- 서독이 동독을 흡수통일했다는 승자의 시각에서 동독의 모든 것을 무시하고 파괴하는 것이야말로 동서독의 화합을 방해하고 통일독일의 발전을 저해하는 무지한 짓이라고 주장
- “승자의 자리에 앉고 싶지 않다”는 그라스의 생각, 다시 말하면 승자에 의해 잘못 쓰여진 역사를 수정하는 것이 작가의 역할이라고 하는 그의 신념이 구서독 보수평단의 많은 비평가들에게 강한 거부감과 혹평의 원인이 됨.
ⅱ. 역사성 그리고 그라스의 비판적인 통일관
: 성공적으로 표현하였던 독일 통일에 대한 비판은 많은 이들(특히 독일 보수문단)의 비평을 쏟아내게 함.
- 정치 일선에 참여한 참여작가
- 1989/1990년 전환기 때에 독일 통일의 과정에 대해 진심으로 우려하고 반대했음.
- 동서독의 즉각적인 통일만이 최선의 대안으로 대다수 사람들이 주장했던 당시 그라스는 흡수통일을 반대하고 연방제를 통한 점진적 통일방안 주장.
- 1871년 프러이센의 독일제국 선포와 1989년 독일 통일의 대비는 역사적으로 결국 힘(전쟁의 폭력)의 승리와 실패가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를 말하려는 것이다.
- “뻔뻔스런 독일 우월주의로 나아가지 않도록 경고함
- 동독 사람에 대한 도덕적 보상의 의도로 작품을 쓴 것 같다라는 평가가 많음.
: 성공적으로 표현하였던 독일 통일에 대한 비판은 많은 이들의 비평을 쏟아내게 함.
ⅲ. 문학성 및 그라스의 언어적 능력
* 대부분의 독자들이 느끼는 부정적인 요인
- 플롯이 없어 읽기에 지루하다. 7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양.
- 독창적인 면모가 없는 두 인물의 억지스러움
- 식자적인 강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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