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사상의 이해] 장자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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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동양사상의 이해] 장자의 세계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시대적 배경과 생애
 2. 저서
 3. 사상
  (1) 소요유
  (2) 제물론
  (3) 개인주의, 상대주의, 자연주의
  (4) 장자 사상의 영향

Ⅲ.장자 사상의 의의와 한계점

Ⅳ. 결론

Ⅴ. 참고문헌

본문내용

, 그 자체로는 들리지 않지만 모든 소리들의 근원이 되는 바로 그것. 바람 혹은 기 그 자체, 바람이나 기의 근본인 도(道)와 도가 발휘하는 힘을 의미한다. 마치 모든 실체에 형태를 주지만 그 자체는 \'형태가 없는 형태\', 모든 존재를 있게 하지만 그 자체는 \'존재가 아닌 존재\'와 같이 여기서도 하늘의 소리란 모든 소리를 나게 하지만 그 자체로는 \'소리가 아닌 소리\'이다. 여기서 장자가 우리에게 전하려는 것이 무엇일까? 첫째, 우리는 모두 제 소리를 낸다고 생각하지만 우리의 소리는 결국 우리도 모르게 그런 소리를 낸다고 생각하지만 우리의 소리는 결국 우리도 모르게 그런 소리를 내게 하는 하늘의 힘, 도의 힘이 내는 퉁소 소리인 셈이다. \"바람이 멎으면 그 모든 구멍은 다시 조용해진다\"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온 우주에 편만한 소리는 모두 제각각의 소리이면서 그 바탕인 하늘의 소리, 도의 소리라는 뜻을 품고 있다. 둘째, 이 말을 뒤집어 보면, 하늘의 소리는 다른 소리를 떠나서는 존재하지 않고 오로지 다른 소리들 속에 있는 소리, 들리지 않는 소리라는 것이다. 좀 전문적인 용어로 하면 하늘의 소리는 초월(超越)하며 내재(內在)하는 무엇이요, 모든 것과 하나이면서 다른 것이요, 다르면서도 하나인 무엇이다. 우리는 이런 사람의 소리와 땅의 다양한 소리를 들을 때 그 속에서 하늘의 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늘의 소리는 우리 몸의 귀로 들을 수 없다. 그것은 남곽자기처럼 바로 \'나를 잃어버린 상태\'에서 새롭게 열리는 영적인 귀로만 들을 수 있으므로, 하늘의 퉁소소리를 들어 보라고 하는 것은 결국 이렇게 우리 자신을 잃어 보라고 권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이것과 저것 저것과 이것>
사물은 모두 ‘저것’ 아닌 것이 없고, 동시에 모두 ‘이것’ 아닌 것이 없다. 자기를 상대방이 보면 ‘저것’이 되는 줄을 모르고, 자기가 자기에 대한 것만 알 뿐이다. 그러기에 이르기를 ‘저것’은 ‘이것’에서 나오고, ‘이것’은 ‘저것’ 때문에 생긴다고 하였다. 이것이 바로 ‘이것’과 ‘저것’이 서로를 생겨나게 한다는 ‘방생(方生)’이라는 것이지.
삶이 있기에 죽음이 있고, 죽음이 있기에 삶이 있다. 됨이 있기에 안 됨이 있고, 안 됨이 있기에 됨이 있다. 옳음이 있기에 그름이 있고, 그름이 있기에 옳음이 있다. 그러므로 성인은 일방적 방법에 의지하지 않고, [전체를 동시에 볼 수 있는] 하늘의 빛에 비추어 보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있는 그대로를 그렇다 함(因是)’이다. 物无非彼 物无非是 自彼則不見 自是則知之 故曰彼出於是 是亦因彼 彼是方生之說也 雖然 方生方死 方死方生 方可方不可 因是因非 因非因是 是以聖人不由 而照之於天 亦因是也『莊子』「齊物論」
이렇게 시비를 따지는 병폐를 고치려면 \'밝음(明)\'이 있어야 한다고 했는데, 여기서는 그것을 구체적으로 말했다. 한마디로 하면, 이분법적 사고방식에서 나오는 일방적 편견을 버리라는 것이다. 사물을 한쪽에서만 보는 편견을 버리고 전체적으로 보면, 동일한 사물이 \'이것\'도 되면서 \'저것\'도 된다는 것을 안다. \'이것이냐 저것이냐\'가 아니라 \'이것도 저것도\' 본다는 말이다. 내가 지금 내 앞에 있는 책상을 보면 \'이것\'이지만, 저쪽에 앉은 사람이 보면 \'저것\'이다. 나에게 사물을 전체적으로 볼 수 있는 안목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나는 이 책상을 두고 \'이것만\'이라고 고집하고 그것을 절대화하지 않는다.
그뿐만 아니다. \'이것이라는 말은 \'저것\'이라는 말이 없을 때는 의미가 없다. \'이것이라는 말은 반드시 \'저것\'이라는 말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것\'이라는 말 속에는 \'저것\'이라는 말이 이미 내포되어 있다.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없고, \'저것\'이 없으면 \'이것\'도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것\'은 \'저것\'을 낳고 \'저것\'은 \'이것\'을 낳는 셈이다. 아버지만 아들을 낳는 것이 아니라 아들이 없이는 아버지도 있을 수 없으므로 아들도 결과인 동시에 원인이다. 이렇게 서로가 서로를 가능하게 하는 것을 \'방생(方生)\'이라고 했다. \'방(方)\'의 어원이 배들을 나란히 놓아둔다는 뜻이다. \'방생\'을 영어로 \'mutual production\' 혹은 \'interdependence\'라 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언뜻 보기에 대립하고 모순하는 것 같은 개념들, 예를 들면 앞서 언급한 죽음과 삶, 됨과 안 됨, 옳음과 그름이나, 『도덕경』 제2장에 열거한 선악(善惡), 미추(美醜), 고저(高低), 장단(長短) 같은 것들이, 결국 독립한 절대 개념이 아니라 빙글빙글 돌며 어울려 서로 의존하는 상관 개념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물을 이렇게 통째로 보는 것이 \'하늘의 빛에 비추어 보는 것\'이고, \'도의 지도리(\'Still Point\'-정점)\'에서 보는 것이라고 했다. 이것이 바로 \'실재를 있는 그대로 그렇게 함(因是)\'이요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밝음(明)\'이다. 모든 실재를 있는 그대로 보았기에 그것을 인위적으로 좌지우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무위자연(無爲自然)과 통하는 마음의 태도이다.
■<나비의 꿈>
어느 날 장주(莊周)가 나비가 된 꿈을 꾸었다. 훨훨 날아다니는 나비가 되어 유유자적 재미있게 지내면서도 자신이 장주임을 알지 못했다. 문득 깨어 보니 다시 장주가 되었다. 장주가 나비가 되는 꿈을 꾸었는지 나비가 장주가 되는 꿈을 꾸었는지 알 수가 없다. 장주와 나비 사이에 무슨 구별이 있기는 있을 것이다. 이런 것을 일러 ‘사물의 변화(物化)’라 한다. 昔者莊周爲胡蝶 然胡蝶也 自喩適志與 不知周也 俄然覺 則然周也 不知 周之夢爲胡蝶與 胡蝶之夢爲周與 周與胡蝶 則必有分矣 此之謂物化. 『莊子』「齊物論」
이 \'나비의 꿈\' 이야기는 『장자』에서 가장 잘 알려진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 때문에 옜날부터 장자를 \'몽접주인(夢主人)\'이라고 했다. 요즘 말로 하면 \'나비꿈 선생\'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가만히 따져 보면 이것은 한 가지 꿈 이야기가 아니라 두 가지 꿈 이야기인 셈이다. 장자가 나비되는 꿈과 나비가 장자 되는 꿈이 같이 거론되고 있는 것이다. \'나비의 꿈\'이라는 것은 이런 의미에서 \'나비로 된 꿈\'과 \'나비가 꾸는 꿈\'이 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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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3.01.28
  • 저작시기200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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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8295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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