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서론
⦿ 글의 구성과 탐구 범주
⦿ 본론
1. 동양의 개화기 이전 철학사
1) 중국의 개화기 이전 철학관의 발전 양상
2) 한국의 개화기 이전 철학관의 발전 양상
3) 일본의 개화기 이전 철학관의 발전 양상
2. 개화기 시대의 주요 철학(한, 중, 일)
- 패러다임의 전환의 기로에 선 동양 삼국
1) 중국의 개화기 시대의 철학적 패러다임의 변화
2) 한국의 개화기 시대의 철학적 패러다임의 변화
3) 일본의 개화기 시대의 철학적 패러다임의 변화
⦿ 결론
⦿ 느낀점
⦿ 참고 문헌
⦿ 글의 구성과 탐구 범주
⦿ 본론
1. 동양의 개화기 이전 철학사
1) 중국의 개화기 이전 철학관의 발전 양상
2) 한국의 개화기 이전 철학관의 발전 양상
3) 일본의 개화기 이전 철학관의 발전 양상
2. 개화기 시대의 주요 철학(한, 중, 일)
- 패러다임의 전환의 기로에 선 동양 삼국
1) 중국의 개화기 시대의 철학적 패러다임의 변화
2) 한국의 개화기 시대의 철학적 패러다임의 변화
3) 일본의 개화기 시대의 철학적 패러다임의 변화
⦿ 결론
⦿ 느낀점
⦿ 참고 문헌
본문내용
이후 역사의 필연성과 우연성을 살펴보고자 한다.(삼국의 변동전 역사와 변동후 역사를 비교, 분석 함으로써, 더욱더 흐름에 집중할수 있다.)
따라서 삼국의 개화기 이전 철학과 역사를 중국, 한국, 일본 순으로 살펴보고(순서를 정한것은 역사, 철학적으로 그 의미가 있다.) 개화기 이전 삼국의 철학관이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보고자 한다.
17세기 이전의 철학은 사실상 중국의 철학사상이라 봐도 무방할 만큼 중국의 영향은 크다. 이데 고대 중국 철학의 양대 산맥인 유가와 도가를 중점으로 삼국의 철학, 역사의 흐름을 되집어 본다. 이러한 17세기 이전의 역사는 중국 철학에 기초하기 때문에 자연히 중화사상에 기초한다. 하지만 삼국의 고유 문화에 따른 약간의 차이를 소개하는 것이 앞으로의 진행에 큰 역할을 할수 있기 때문에 그 차이를 소개하는데 까지 범위를 잡았다.
17세기 이후의 철학의 패러다임 변화는 이러한 중국중심의 패러다임의 변화가 주요 내용이 된다. 개화기 시대가 도래하고 동양삼국이 급격히 변화하기 시작한다. 17세기초에서 20세기 초에 이르기 까지 한, 중, 일은 자국들의 패러다임의 전환을 요구 받는다. 서구 문명이 동양 삼국에 준 영향을 중국, 일본, 한국 순으로 분석코자 한다.(중국중심의 패러다임의 변화와 각국 고유의 반응을 위주로)
서양 철학의 영향이 급격히 미친 시점은 사실 19세기말 20세기 초라 할수 있다. 실제로, 17세기에 들어온 서구의 문명(철학)이라 하면 서학, 혹은 산학이라는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즉, 종교나 군사 과학 기술등의 실용적인 부분에 부수적인 것으로 인식되었다. 그러한 점은 당시 중국과 일본정부였던 청조, 막번체제의 서학 도입방법에서 찾아볼수 있다. 중체서용론과 동도서기론이 대표적인 예로서, 본격적인 도입은 중국의 경우 청일전쟁(1895)패배이후 유신변법운동(변법자강운동), 일본의 경우 메이지 유신(명치유신)(1868)이후라 할수 있다.
하지만, 본격적인 역사의 변화가 있기 전에는 항상 그 저변에 준비가 바탕이 되어야 하는 법이다. 19세기의 사건이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었다고 보는것이 오히려 우연성을 더 강조하는 측면으로 보인다. 물론 그 사건이 결정적인 이유는 될수 있다. 하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아니다. 무엇인가가 바뀌기 위해선 끊임없는 상호 작용을 통한 영향이 중요하다. 그리고 변화에는 반드시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이 시간적 요소를 탐구하는 것이 이번 연구의 또 다른 열매라고도 할수 있다.(17세기초)
본론
1. 동양의 개화기 이전 철학사
서양의 영향이 있기전 동양의 철학은 비슷한 길을 걸어 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황화문명에 시작된 중국의 철학이 동양 삼국의 철학을 대변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한국과 일본이 중국의 철학을 마냥 그대로 수용한 것만은 아니다. 한국, 일본 역시 독자적인 철학을 만들어 냈었다.
1) 중국의 개화기 이전 철학관의 발전 양상
중국의 철학의 시발점을 찾기 위해서 중국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하면 중국이라는 지도(대륙)를 살펴보면서 서두를 꺼내봐야 한다는 것이다.
논어에서 공자는 “지자(知者)는 물을 좋아하고, 인자(仁者)는 산을 좋아한다. 지자는 동하고 인자는 고요하다.” 논어 6장 옹야(雍也)편 23, 중국철학사-馮友蘭 발췌
라고 말했다. 여기서 드러나는 것은 중국이 하나의 대륙적 국가라는 것이다. 고대 중국인에게 그들의 나라가 곧 세계였다. 공자시대 이후 중국의 그 어떤 사상가도 대해를 나가본 경험을 가진이가 없었다. 공자는 바다에 대한 언급에서(단한차례 있었다) 자신의 도가 행해지지 않으면 바다로 떠나간다고 하였다. 중국철학사-馮友蘭 P.37발췌
즉 대륙이라는 조건에서 그 철학이 탄생했다.(이는 지리적 특성이 영향을 준 점으로 필연성에 기초한다고 볼수 있다.) 대륙 국가라는 특성상 중국은 농업을 그들의 생업으로 삼았다. 여기서 토지가 부의 기본이 된다는 점을 읽을수 있다. 즉, 중국의 경제적, 철학적 배경은 토지의 이용과 분배를 중점으로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풍작 혹은 흉작은 중국인들의 행운과 불행을 의미하였고, 중국인의 우주관, 인생관이 농민의 우주관, 인생관이라 할수 있다. 이러한 관점이 중국 철학, 문화의 형식으로 드러난다.
중국의 큰 철학의 두갈래라 불리는 유가와 도가. 이 두가는 대륙 국가였던 중국에서 나온 필연적 산물이었다.
노자가 주창한 도가는 농민 생활의 한 일면을 잘 드러냈다고 볼수 있다. 농민들은 항상 자연과 접촉하고 자연을 찬양하고 사랑하였다. 이 찬양과 사랑을 도가는 중요시 하였다. 자연에 속하는것이 인간행복의 원천이며, 인간에 속하는 것은 인간적 고뇌의 근원이라고 하였다. 자연적인것과 인위적인것의 엄격한 구별이다.
유가 사상은 도가의 관점과는 다르게 사회제도의 합리적 정당화를 꾀하였다. 가족 제도는 농업을 기본으로한 중국사회의 기본 제도이자 사회적 체계였다. 토지는 이동 불가능 하다. 즉 농토를 중심으로 가족이 모여 살아야하는 것이다. 이를 효과적으로 이론화 할수 있는것이 가족제도이다. 이는 중국어의 가장 오래된 사전 이아(爾雅)에서 각종 가족 관게를 나타내는 용어가 1000여개가 넘는 것을 통해 알수 있다. 조상 숭배제도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조상 숭배제도와 같은 상징적 제도는 대규모 조직을 이끌어 낼수 있다. 정리하면 유가 사상의 대부분은 사회 제도의 정당화, 이론화에 근거를 두고 있다. 특히 농업이라는 경제적 조건과 가족 제도에서 유교는 자연스럽게 중국인의 정통적 철학으로 자리 잡았다.
중국의 철학관 발전 양상을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기원전 10세기에서 기원전 3세기사이의 제자 백가로 볼수 있다. 사기의 저자 사마천의 아버지인 사마담의 분류에 따르면 제자백가를 6개 학파로 구분하고 있다. 음양가, 유가, 묵가, 명가, 법가, 도가가 그것이다. -이들의 철학관을 자세히 소개하기엔 글의 범주가 연구범위를 넘어 서기 때문에 자세한 소개는 하지 않는다.-
제자 백가 시대동안 수많은 철학이 생겨나고 사라지고, 혹은 흡수되고 사장되기도 햇다(백가쟁명). 특히 유가 묵가 법가 도가는 시대의 통치이념으로서 사용되기도 했고, 서로 부
따라서 삼국의 개화기 이전 철학과 역사를 중국, 한국, 일본 순으로 살펴보고(순서를 정한것은 역사, 철학적으로 그 의미가 있다.) 개화기 이전 삼국의 철학관이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보고자 한다.
17세기 이전의 철학은 사실상 중국의 철학사상이라 봐도 무방할 만큼 중국의 영향은 크다. 이데 고대 중국 철학의 양대 산맥인 유가와 도가를 중점으로 삼국의 철학, 역사의 흐름을 되집어 본다. 이러한 17세기 이전의 역사는 중국 철학에 기초하기 때문에 자연히 중화사상에 기초한다. 하지만 삼국의 고유 문화에 따른 약간의 차이를 소개하는 것이 앞으로의 진행에 큰 역할을 할수 있기 때문에 그 차이를 소개하는데 까지 범위를 잡았다.
17세기 이후의 철학의 패러다임 변화는 이러한 중국중심의 패러다임의 변화가 주요 내용이 된다. 개화기 시대가 도래하고 동양삼국이 급격히 변화하기 시작한다. 17세기초에서 20세기 초에 이르기 까지 한, 중, 일은 자국들의 패러다임의 전환을 요구 받는다. 서구 문명이 동양 삼국에 준 영향을 중국, 일본, 한국 순으로 분석코자 한다.(중국중심의 패러다임의 변화와 각국 고유의 반응을 위주로)
서양 철학의 영향이 급격히 미친 시점은 사실 19세기말 20세기 초라 할수 있다. 실제로, 17세기에 들어온 서구의 문명(철학)이라 하면 서학, 혹은 산학이라는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즉, 종교나 군사 과학 기술등의 실용적인 부분에 부수적인 것으로 인식되었다. 그러한 점은 당시 중국과 일본정부였던 청조, 막번체제의 서학 도입방법에서 찾아볼수 있다. 중체서용론과 동도서기론이 대표적인 예로서, 본격적인 도입은 중국의 경우 청일전쟁(1895)패배이후 유신변법운동(변법자강운동), 일본의 경우 메이지 유신(명치유신)(1868)이후라 할수 있다.
하지만, 본격적인 역사의 변화가 있기 전에는 항상 그 저변에 준비가 바탕이 되어야 하는 법이다. 19세기의 사건이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었다고 보는것이 오히려 우연성을 더 강조하는 측면으로 보인다. 물론 그 사건이 결정적인 이유는 될수 있다. 하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아니다. 무엇인가가 바뀌기 위해선 끊임없는 상호 작용을 통한 영향이 중요하다. 그리고 변화에는 반드시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이 시간적 요소를 탐구하는 것이 이번 연구의 또 다른 열매라고도 할수 있다.(17세기초)
본론
1. 동양의 개화기 이전 철학사
서양의 영향이 있기전 동양의 철학은 비슷한 길을 걸어 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황화문명에 시작된 중국의 철학이 동양 삼국의 철학을 대변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한국과 일본이 중국의 철학을 마냥 그대로 수용한 것만은 아니다. 한국, 일본 역시 독자적인 철학을 만들어 냈었다.
1) 중국의 개화기 이전 철학관의 발전 양상
중국의 철학의 시발점을 찾기 위해서 중국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하면 중국이라는 지도(대륙)를 살펴보면서 서두를 꺼내봐야 한다는 것이다.
논어에서 공자는 “지자(知者)는 물을 좋아하고, 인자(仁者)는 산을 좋아한다. 지자는 동하고 인자는 고요하다.” 논어 6장 옹야(雍也)편 23, 중국철학사-馮友蘭 발췌
라고 말했다. 여기서 드러나는 것은 중국이 하나의 대륙적 국가라는 것이다. 고대 중국인에게 그들의 나라가 곧 세계였다. 공자시대 이후 중국의 그 어떤 사상가도 대해를 나가본 경험을 가진이가 없었다. 공자는 바다에 대한 언급에서(단한차례 있었다) 자신의 도가 행해지지 않으면 바다로 떠나간다고 하였다. 중국철학사-馮友蘭 P.37발췌
즉 대륙이라는 조건에서 그 철학이 탄생했다.(이는 지리적 특성이 영향을 준 점으로 필연성에 기초한다고 볼수 있다.) 대륙 국가라는 특성상 중국은 농업을 그들의 생업으로 삼았다. 여기서 토지가 부의 기본이 된다는 점을 읽을수 있다. 즉, 중국의 경제적, 철학적 배경은 토지의 이용과 분배를 중점으로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풍작 혹은 흉작은 중국인들의 행운과 불행을 의미하였고, 중국인의 우주관, 인생관이 농민의 우주관, 인생관이라 할수 있다. 이러한 관점이 중국 철학, 문화의 형식으로 드러난다.
중국의 큰 철학의 두갈래라 불리는 유가와 도가. 이 두가는 대륙 국가였던 중국에서 나온 필연적 산물이었다.
노자가 주창한 도가는 농민 생활의 한 일면을 잘 드러냈다고 볼수 있다. 농민들은 항상 자연과 접촉하고 자연을 찬양하고 사랑하였다. 이 찬양과 사랑을 도가는 중요시 하였다. 자연에 속하는것이 인간행복의 원천이며, 인간에 속하는 것은 인간적 고뇌의 근원이라고 하였다. 자연적인것과 인위적인것의 엄격한 구별이다.
유가 사상은 도가의 관점과는 다르게 사회제도의 합리적 정당화를 꾀하였다. 가족 제도는 농업을 기본으로한 중국사회의 기본 제도이자 사회적 체계였다. 토지는 이동 불가능 하다. 즉 농토를 중심으로 가족이 모여 살아야하는 것이다. 이를 효과적으로 이론화 할수 있는것이 가족제도이다. 이는 중국어의 가장 오래된 사전 이아(爾雅)에서 각종 가족 관게를 나타내는 용어가 1000여개가 넘는 것을 통해 알수 있다. 조상 숭배제도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조상 숭배제도와 같은 상징적 제도는 대규모 조직을 이끌어 낼수 있다. 정리하면 유가 사상의 대부분은 사회 제도의 정당화, 이론화에 근거를 두고 있다. 특히 농업이라는 경제적 조건과 가족 제도에서 유교는 자연스럽게 중국인의 정통적 철학으로 자리 잡았다.
중국의 철학관 발전 양상을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기원전 10세기에서 기원전 3세기사이의 제자 백가로 볼수 있다. 사기의 저자 사마천의 아버지인 사마담의 분류에 따르면 제자백가를 6개 학파로 구분하고 있다. 음양가, 유가, 묵가, 명가, 법가, 도가가 그것이다. -이들의 철학관을 자세히 소개하기엔 글의 범주가 연구범위를 넘어 서기 때문에 자세한 소개는 하지 않는다.-
제자 백가 시대동안 수많은 철학이 생겨나고 사라지고, 혹은 흡수되고 사장되기도 햇다(백가쟁명). 특히 유가 묵가 법가 도가는 시대의 통치이념으로서 사용되기도 했고, 서로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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