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해녀의 이해 (1주차~14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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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제주해녀의 이해 (1주차~14주차)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제주해녀의 이해

1주차 제주해녀의 이미지
2주차 제주해녀의 실제 : 해녀가 되는 과정
3주차 제주해녀의 역사(1):용어의 문제와 조선시대
4주차 제주해녀의 역사(2) : 일제 식민자본주의
5주차 물질작업(1) : 몸과 기술
6주차 물질작업(2) : 해녀복과 물질도구
7주차 해녀공동체(1) : 불턱
8주차 해녀공동체(2) : 잠수회와 어촌계
9주차 해녀공동체(3) : 잠수굿
10주차 바깥물질(1) : 육지물질
11주차 바깥물질(2) : 일본물질
12주차 일본의 아마(1) : 제주해녀와의 공통점
13주차 일본의 아마(2) : 제주해녀와의 차이점
14주차 나잠어업과 에코페미니즘

본문내용

제주해녀의 이해
1주차 제주해녀의 이미지
1. 해녀의 무호흡 잠수능력에 대한 이미지
1)물질과 욕심
물질은 삶과 죽음이 찰나에 갈라지는 일이므로, 물밑에서는 절대 욕심을 부리지 말아야 한다. 해녀가 욕심을 부려 물질을 하다가 죽을 뻔한 이야기는 현기영(1989)의 소설 <바람타는 섬>에 잘 그려져 있다.
2)물질 작업의 결과
해녀의 몸은 반복적인 물질 작업의 결과로 언제 물위로 떠올라야 살 수 있는지 스스로 알고 있다. 해녀들은 평균적으로 약 1분간 무호흡 잠수를 하여 해산물을 채취한다.
3)물질 선수가 아니다.
앞서 학습준비에서 읽은 중앙일보 기사에 실린 서귀동 어촌계장 오순자의 이야기처럼 해녀는 단순하게 깊은 물 속에서 숨을 안 쉬고 오래 버티는 기량을 키우는 선수가 아니다.
제주해녀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민속학자 김영돈의 <한국의 해녀> 인용문을 보면, 일반사람들 뿐만 아니라 해녀연구자 중에서도 해녀의 무호흡 잠수능력을 생업기술로 보지 않고 단순한 기량으로만 이미지화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 강인한 여성의 이미지
1)해녀의 생업과 삶
해녀의 무호흡 잠수능력에 대한 이미지가 해녀의 기량에 대한 생각이라면, 해녀으 ltod업과 삶 전체에 대한 생각은 <강인한 여성>의 이미지라 하겠다.
제주해녀에 대한 1960 - 1970 년대의 글
제주해녀가 물질과 밭일을 열심히 하면서 부지런히 살고 있음. → 제주해녀를 <탐라 제주의 뜻>, <근로의 여신>, <자립정신의 표상>으로 그리고 있음.
제주해녀가 근로의 여신이나 자립정신의 표상으로까지 <승화>될 수 있었던 것은 1960년대 이후의 사회적 상황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1960, 1970년대는 경제개발5개년 계획과 새마을운동이 전개되었던 시기로, 전 국민이 경제발전을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고 부지런히 일하도록 강요된 시기였다.
2) 잠수시범대회 예찬
강대원의 <해녀연구>에서는 1966년에 열린 <잠수시범대회>가 일반사람들이 제주해녀를 <산업의 역군>으로 바라본 하나의 계기라고 설명하였다.
3) 196070년대 제주해녀의 모습
해녀에 대한 강인한 여성의 이미지는 주로 해녀에 대한 연구서와 조사보고서에 나타난다. 연구조사 보고서들은 1960년대와 1970년대 해녀의 물질과 삶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1960년대와 1970년대에 가장 활발하게 물질을 했던 해녀가 제주해녀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4) 해녀의 신화화
1997년 현재 60세 이상의 나이든 세대는 일찍이 50년대부터 물질을 시작하여 6070년대에 가장 활발하게 물질을 했었고 현재는 조금씩만 물질을 하는 고령의 사람들이다.
이들은 자신이 고생하여 얻은 경제적 안정 때문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이들은 주변 분위기가 누구나 시간 나면 물질을 하던 시기에 물질을 시작한 세대이다.
제주해녀에 대한 여러 글에서 칭송한 제주해녀의 이미지인 <부지런하고 강인한 여성>처럼 <나는 고생 끝에 보람을 찾은 생활력이 강한 경제적 가장이다>라는 생각을 나이든 세대 해녀들은 스스로 생각하고 있다.
결국 고생과 보람 속에 살아온 나이든 이 세대들이 사회적으로 제주해녀를 신화화하고 이미지화하는 대상인 셈이다.
3. 해녀에 대한 상품화된 이미지와 성적 이미지
1) 해녀복
해녀의 무호흡 잠수능력에 대한 이미지가 해녀의 기량에 대한 생각이고, <강인한 여성>이라는 해녀의 이미지가 해녀의 생업과 삶 전체에 대한 생각이라면, 해녀에 대한 상품화된 이미지와 성적 이미지는 해녀복을 입은 모습에 대한 상상이라 하겠다.
1970년대 고무잠수복을 입기 이전의 제주해녀복
여성의 내의 중에 가장 안쪽에 있는 하의(下衣)를 가리키는 <소중이>에 어깨 끈을 단<물소중이>를 입고 물질을 함
일본 이시카와현 와지마시 헤구라지마의 <아마>들은 아예 웃옷을 입지 않고 젖가슴을 드러낸 채 물질을 하였다.
2) 미스해녀
1966년 제주도에서 열린 <잠수시범대회>에 대한 이야기를 더 읽어보자.
강대원의 <해녀연구>
여기에서 여러 가지 경기종목과 상품도 풍성했지만 그중에서도 선발은 그야말로 보는 이나 출전선수들 간에도 코 허리가 시큰하도록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
2001년 7월 나는 일본 지바현 보소반도의 시라하마 해녀 축제에서 미스해녀 선발대회를 보았다. 일본해녀라서 그랬는지, 나는 감격하지 않았다.
왜 <미스해녀>가 필요할까.
3) 관광
제주도의 <해녀촌> 혹은 <해녀식당>에 세워진 해녀의 석상과 일본 지바현 보소반도의 시라하마 관광협회의 포스터 사진을 보자.
한경면 판포리 해녀상(해녀촌)
해녀상의 해녀는 1930년대부터 1970년대 사이에 입었던 어깨말이(조끼허리)를 댄 물옷을 입고 있다. 그러나 당시에 실제 제주해녀들이 입었던 물옷의 어깨말이는 사진에서 본 것처럼 가는 것은 아니었다. 해녀상의 해녀는 한쪽 팔을 들어 하늘을 향해 얼굴을 들고 잇다. 바다에서 나와 소금기에 젖은 얼굴로 태양을 바라볼 여성은 아마 없을 것이다.
해녀상이 취하고 있는 자세는 흔히 전문적인 광고모델이나 사진모델이 사진을 직을 때 취하는 자세이다. 이들이 입고 있는 물옷은 수영복에 가깝고, 모두 젊은 여성들이 모델이 되고 있다.
시라하마 관광협회 포스터
시라하마 관광협회 포스터에 나와 있는 일본 해녀의 모습에는 물에 젖은 물옷 위로 젖가슴이 드러나고 있다.
사진의 모델이 된 실제 해녀는 이 포스터가 널리 유포되는 것을 원하지 않고 있다고 관광협회 관계자가 이야기해 주었다.
학습정리
해녀 이미지의 종류
이미지의 대상
이미지의 내용
무호흡 잠수능력에 대한 이미지
해녀의 기량
1) 가장 오랫동안 무호흡 잠수를 한다.
2) 해녀는 특이한 체질을 가지고 태어났다.
강인한 여성
해녀의 생업과 삶
고생 끝에 보람을 찾은 생활력이 강한 경제적 가장
상품화된 이미지와 성적 이미지
해녀복을 입거나 입지 않은 모습
1) 속옷만 입거나 옷을 거의 입지 않은 채 물질을 한다.
2) 몸매가 아름다운 모델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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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3.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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