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의 굶주림의 고통에 대한 이해와 반성 [사리화 작품내용][기민시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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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민중의 굶주림의 고통에 대한 이해와 반성 [사리화 작품내용][기민시 소개]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머리말

2. 굶주림의 고통

3. 작품에서 살펴본 굶주림 작품 내용, 작가 설명

4. 맺음말

본문내용

보면
“근래에 간신이 날뛰어 나라의 정권을 농락하며 질서와 규율을 파괴하고 공사의 토지와 백 성들을 모두 빼앗고 있다. 백성들은 먹을 것이 없고 국고는 말랐는데, 권력을 잡은 자들만 이 부유하고 창고가 넘치니 매우 가슴 아프다.”
이런 대목이 있는데, 이 대목은 고려 말 부흥했던 권문세족의 횡포에 대한 이야기 이다. 모순되게도 사리화의 저자인 이제현의 아버지인 이진은 신흥관료세력의 선두주자이다. 그리고 이제현은 충선왕부터 공민왕까지 모시면서 백성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지배계층으로 존재하였다. 여기서 느낄 수 있는 것은 횡포와 수탈로 민중을 괴롭게 하는 지배층 중에서도 민중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그들의 배고픔을 이해하는 몇몇이 있었다는 점이다. 이제현의 사리화가 갖는 의미는 민중의 테두리에 포함되지 않는 자가 민중의 굶주림을 진심으로 이해했다는 데에서 큰 의미가 있다. 이제현은 자신의 글로 더 많은 집단이 민중의 고통을 직시할 수 있기를 바랐다고 추측된다.
●기민시
-작품 내용
인생이 만약 초목이라면
물과 흙으로도 살아가련만
허이 구부려 땅을 먹으니
이것이 바로 콩과 조로구나
콩과 조는 주옥보다 더 귀하니
그것인들 어찌 넉넉히 먹었으라
(중략)
고을 원님 어진 정사 베풀어
없는 백성 구한다며 쌀 준다기에
가다가다 고을 문에 이르러 보니
옹기종기 입만 들고 죽솥으로 모여든다
개 돼지도 버리고 거들떠 안 볼 텐데
굶주린 사람 입에 엿보다도 달구나
어진 정사 한다는 말 당치도 않고
주린 백성 구한다니 당치도 않네
관가의 상자 속은 약한 놈이 엿보거니
그 어찌 우리가 굶주리지 않을소나
관가 마굿간의 마소들도 살찌는데
이건 바로 우리 살이로다
(중략)
상농군도 이제는 거지가 되어
집집마다 문 두드리며 구걸을 하네
가난한 집 구걸가면 더욱 슬프고
부잣집에 구걸가면 더욱 피하네
날짐승 아니니 벌레 쪼아 못 먹고
물고기 아니니 헤엄칠 수 없네
얼글은 부어올라 누렇게 뜨고
머리는 흩어져 어지러이 날리누나
벼슬아치 집안에는 술과 고기 풍성하고
거문고, 피리 소리 예쁜 계집 맞이하네
희희낙락 즐거운 태평세월 모습이다
대감님네 그 모습은 우람하고 풍성하다
과장되었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심각하고 애처로운 민중의 모습을 직설적으로 묘사하였다. ‘인생이 만약 초목이라면 물과 흙으로도 살아가련만 허이 구부려 땅을 먹으니 이것이 바로 콩과 조로구나. 콩과 조는 주옥보다 더 귀하니 그것인들 어찌 넉넉히 먹었으라.’ 라는 표현이 가장 굶주림을 극단적으로 표현한 부분이다. 쌀도 아닌 콩과 조마저도 구하기가 어려워 차라리 나무였다면 흙만으로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표현은 민중의 굶주림이 극에 치달았음을 알 수 있게 한다. 반면에 ‘벼슬아치 집안에는 술과 고기 풍성하고 거문고, 피리 소리 예쁜 계집 맞이하네. 희희낙락 즐거운 태평세월 모습이다. 대감님 네 그 모습은 우람하고 풍성하다’ 라는 표현을 통해 민중의 삶과 대비되는 집권층의 모습도 나타내었다. 민중은 당장에 먹을 것이 없어 구걸을 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권력층에서는 술과 고기 뿐 아니라 유흥까지 즐길 여유가 있었음을 말하고 있고, 이는 집권층에서 민중의 삶을 돌아볼 능력이 없었음을 비판하는 것이다.
-작가 설명
다산 정약용은 조선의 문인으로 가난한 민중은 아니었지만 글에서 느껴지는 민중을 이해하는 정도는 민중 스스로의 글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자세하고 섬세하다. 굶주림이 주는 고통의 정도와 지배층의 수탈과 횡포로 더 메말라가는 민중의 모습을 잘 나타내었다. 글 자체에서 보이는 고통의 강도만으로도 민중을 이해할 수 있겠지만 이러한 글이 지배층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우리에게는 더 귀감이 된다. 정약용은 남인 집안에서 태어나 벼슬자리에 몸담다 경상도 장기로 귀양을 가게 된 뒤부터 학문을 게을리 하지 않아 많은 저서를 남겼다. 특히 목민심서(牧民心書)의 경우 사회개혁방안을 제시한 대표적인 저서이다. 정약용은 ‘목(牧)은 민(民)을 위한 것이지 민(民)이 목(牧)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주장을 할 정도로 민중의 슬픔과 고통에 대해 깊이 공감하고 있었고 이를 위해 관리들과 사회의 계몽을 위해 힘썼지만 정치적 후원자인 정조가 죽게 되면서 사회변혁운동으로 확장되지 못하였다. 작품 속 처절한 굶주림을 이해하는데 그치지 않고 해결책을 제시하려 노력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 누항사
-작품 설명
旱旣太甚(한기태심)야 時節(시절)이 다 느즌 졔, 西疇(서주) 놉흔 논애 가뭄이 이미 크게 잠 녈비예 道上(도상) 無源水(무원수)를 반만 혀 두고, 쇼
  • 가격1,200
  • 페이지수9페이지
  • 등록일2013.05.01
  • 저작시기20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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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84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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