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시대의 불교철학 -의천과 지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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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려 시대의 불교철학 -의천과 지눌-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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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할 세 가지 근본 수행을 말하는 것으로 계학(學) · 정학(定學) · 혜학(慧學)을 일컫는다. 계는 악을 저지르지 않고 선을 닦는 계율(戒律), 정은 심신을 고요히 하고 정신통일을 하여 마음이 산란하지 않게 하는 선정(禪定), 혜는 번뇌를 파하고 진리를 증득(證得)하는 지혜를 가리킨다.
의 덕목들이다.
‘깨달음’은 구도자의 이상향이지만, 그 이상향을 성취한 이후에도 수행은 필요한 것이다. 깨달음을 얻은 것이 오만과 편견의 다른 영역일 수 없고, 현실을 외면한 채 안좌한 석불의 조상일 수도 없다. 깨달은 후의 수행은 정(定)과 혜(慧)의 두 문밖에 없다. 정과 혜가 없다면 그것은 광(狂)이요, 어리석음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지눌이 정과 혜를 말할 때 마음에 대하여 이 용어를 쓰고 있다는 것이다. 지눌에 따르면 정은 마음의 공적(空寂)한 본체를 가리키며, 혜란 마음의 영지(靈知)한 작용을 말한다. 마음의 본체와 작용이 분리할 수 없듯이 정과 혜도 항상 함께 작용한다. 정에만 치우치면 혼침(昏沈)에 떨어지기 쉽고, 혜에만 치우치면 산란해지기 쉽다.
또한 정과 혜를 이해하는데 있어 알아야 할 두 가지의 뜻이 있다. 하나는 자성정혜(自性定慧)요, 다른 하나는 수상정혜(隨相定慧)이다. 자성문(自性門)은 저절로 적지(寂知)하여 원래가 스스로 ‘함’이 없고, 하나도 대립을 지음이 없다. 한 생각도 정식(情識)에 따라 생김이 없기 때문에 망연(忘緣)의 힘을 빌 필요가 없다. 이것이 자성정혜이다. 그에 반해 수상문정혜라고 하는 것은 진리에 두루 통하여 산란함을 포섭하며, 공을 관조함으로써 혼침(昏沈)과 어지러움을 조화시켜 무위에 들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수행방법은 그 자신의 신념이었고, 후세에도 많은 구도자들의 귀감이 되었던 것이다.
< 토론 주제 >
1. 고려시대 몽골이 침입하자 부처의 힘으로 이를 물리치기 위해 팔만대장경을 만들었다.
고종 23년(1236)년부터 38년까지 15년간에 걸친 이 사업이 과연 옳은 행동일까?
2. 고려의 지눌 이후로 한국 불교 수행법의 주류로 이어져 온 돈오점수는 단박에 깨우친다 는 점에서는 돈오돈수와 같지만, 깨우치고 나서도 점진적으로 수행하여야 깨침의 경지를 유지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하여 돈오돈수는 깨치고 난 뒤에도 더 수행할 것이 남아 있다면 진정으로 깨우치지 못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돈오점수와 돈오돈수 중 어느 것이 옳은 것일까?
『참고 문헌』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한구사상연구소 , 『자료와 해설 한국의 철학사상』 , 예문서원 , 2001
*박종홍 지음, 『한국사상사』, 서문당, 1985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지음,『강좌 한국철학』, 예문서원, 1997
*김승동 著,『한국철학사상』, 제일문화사, 1978
*길희성 지음,『인도철학사』민음사, 1995
*칼루파하나 지음, 최유진 옮김,『불교철학』, 천지, 1992.
*조현규 지음,『한국의 윤리사상』, 중문, 2001
*한국철학사상연구회 , 『논쟁으로 보는 한국철학』, 예문서원 , 1995
*김교빈 지음, 『한국 철학 에세이』 동녘,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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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3.06.11
  • 저작시기2013.6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851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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