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중세사-번암 채제공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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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중세사-번암 채제공 분석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 론
Ⅱ. 본 론
ⅰ. 번암(樊巖) 채제공(蔡濟恭)의 출생과 정계 입문
ⅱ. 채제공의 관직 역임과 정치적 업적
ⅲ. 채제공, 정조 개혁의 선봉장이자 버팀목
ⅳ. 조선 경제에 새 바람을 일으킨 채제공
Ⅲ. 결 론
-채제공을 통해 본 오늘날의 인재상

본문내용

나설 수 있음을 생각하여 시장 경제에 참여시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에 대해 훗날 정약용은 채제공의 업적을 논하면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모든 백성이 처음에는 (금난전권을 혁파한) 법령이 불편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법을 시행한 지 1년이 지나면서부터 물품과 재화가 모여 하루가 다르게 일상 생활품이 넉넉해지자 그들은 크게 기뻐했다. 비록 예전에 원망하고 저주하던 자들조차 채공이 훌륭함을 칭찬했다.” 한정주, 『조선을 구한 13인의 경제학자들』, 다산초당, 2007, pp.84-85.
이처럼 그는 남인의 전형적인 중농학파적 입장과 달리, 사상과 이념보다는 행정과 정책의 입장에서 실용적인 경제 개혁을 다루었다고 볼 수 있다. 즉, ‘시장주의’와 함께 특정 상인에 의한 상업 및 시장 장악을 반대하는 ‘반독점론’을 토대로 왕권 강화와 민생 안정을 위해 평생을 바쳤던 것이다.
Ⅲ. 결 론
-채제공을 통해 본 오늘날의 인재상
요즘 같이 내외적으로 나라가 혼란한 시기에 역사 속에서 훌륭한 재상을 더욱 찾게 된다. 대표적으로 채제공은 정조가 보기에도 개혁 사상과 임금에 대한 충직함을 두루 갖춘 인물이었다. 특정 당파에 휘둘려서 사익을 추구하지 않고, 어떤 불의나 부정직함에도 절대 굽힐 줄 몰랐다. 특히 홍국영의 세도에 억울하게 당한 곧은 사람은 모두 신원하여 명예를 회복케 했던 것도 채제공의 노력에서 왔다. 또 유능한 인재들을 강력히 추천·발탁하여 제대로 된 행정과 통치를 할 수 있도록 임금을 설득하는 경륜을 지닌 사람도 그였다. 이는 그가 독상을 했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 한다. 게다가 단순한 신하가 아니라 정조가 채제공과의 관계를 “나와 이 대신 사이에는 다른 사람은 알지 못하지만 홀로 아는 깊은 일치함이 있었다”며 한탄하기도 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같은 신뢰를 바탕으로 정조대에 문치주의가 최고의 전성기를 맞으며, 새로운 활자가 만들어지고 문물제도 정비가 완료되는 등 문화정치가 완성될 수 있었다.
현대인들은 자기의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이익을 위해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가면서, 점차 각자가 지녀야 할 인간적 덕목을 망각하고 있다. 자기만의 확고한 신념을 바탕으로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물질만능주의와 이기주의 속에 서로 단절되어 가고 있다. 우리 시대는 다양한 전문 지식을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변화주도적 역량, 올바른 가치관 및 도덕성, 자기 경영능력을 갖춘 자를 요구한다. 그러므로 채제공이 보여준 충심, 탕평책에서 보여준 포용력, 실용적인 것은 받아들이려는 열린 통찰력과 자기 경영능력의 일환으로서 뛰어난 문장실력까지 우리가 본받아야 할 덕목이라 할 수 있겠다.
<참고문헌>
한영우, 『63인의 역사학자가 쓴 한국사 인물 열전』, 돌베개, 2003.
박윤규, 『우리 역사를 움직인 20인의 재상』, 미래M&B, 1999.
이한우, 『정조 조선의 혼이 지다』, 해냄, 2007.
신연우·신영란, 『제왕들의 책사: 조선시대 편』, 생각하는 백성, 2001.
한정주, 『조선을 구한 13인의 경제학자들』, 다산초당, 2007.
  • 가격6,000
  • 페이지수7페이지
  • 등록일2013.06.11
  • 저작시기2010.05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85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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