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1960년대의 미술
Ⅱ. 1960년대의 한국화
Ⅲ. 1960년대의 역사
Ⅳ. 1960년대의 문학
Ⅴ. 1960년대의 시인
1. 김수영(1921~1968)
2. 신동엽(1930~1969)
3. 김춘수(1922~2004)
4. 서정주(1915~2000)
Ⅵ. 1960년대의 국립극장
참고문헌
Ⅱ. 1960년대의 한국화
Ⅲ. 1960년대의 역사
Ⅳ. 1960년대의 문학
Ⅴ. 1960년대의 시인
1. 김수영(1921~1968)
2. 신동엽(1930~1969)
3. 김춘수(1922~2004)
4. 서정주(1915~2000)
Ⅵ. 1960년대의 국립극장
참고문헌
본문내용
운동의 활성화를 도모해야 한다고 국립극장의 운동 방향을 제시한다. 이 글은 정부의 재정적 후원과 합리적인 운영을 촉구한 것인데, 이후 국립극장 개편안을 살펴보면 상당 부분 수용된 것으로 보인다.
62년 초반부터 국립극장은 建物 改修를 통한 국립극장 전용 공간 확보, 전속극단 발족, 기구 개편 등을 통해 의욕적인 출발을 하게 된다. 전속극단의 단장에 박진, 부단장에는 이해랑이 임명되었으며, 단원은 舊 신협과 민극의 순수 멤버들을 주축으로 하고, 영화계나 소극장운동에서 활약하던 사람들도 포함되었다. 또한 국립극장 운영위원회를 조직하여 유치진, 여석기 등이 위원으로 위촉되어, ‘국제수준운영’을 목표로 하는 운영지침을 발표한다.
純粹舞臺藝術의 保護 育成策으로 ①舞臺藝術 全般의 啓導事業 ②國民文化藝術의 센터 役割 ③觀客 動員의 實效 ④國立으로 劇團外古典舞踊團, 발레團, 오페라團을 創設한다. 그리고 附帶 事業으로는 ①綜合藝術誌의(季刊) 發刊 ②舞臺綜合藝術祭典의 計劃實行 등이고, 國立劇團의 質的向上과 任務를 賦與하여 ①公演의 定期化=中央六回, 地方 各一回 ②레파토리시스템(創作物 三, 古典 一, 譯 二의 比重) ③地方公演의 實施 ④國際活動의 勸 ⑤演劇計劃五個年發表案 (중략) 觀客을 確保하기 위하여 ①觀客의 希望에 의한 公演制를 硏究 ②全觀覽者 平均率의 三分의 一을 會員制 ③定期公演에서는 前回에 다음 上演 레파토리 選定에 대하여 意見을 묻는 用紙를 配布한다. 그리고 從來의 平面舞臺를 立體舞臺로 發展시키며 (후략)
‘무대예술의 질적 향상’, ‘연극의 생활화’, ‘민족연극의 확립’이라는 연극계의 과제를 모두 국립극장에 안겨준 셈이다. 그러나 이것은 재정확보 능력과 국가 기관으로서의 국립극장의 현실적 입지를 간과한 이상적인 방안이었다고 할 수 있다. 국립극장운영과 관련하여 국가는 그 외형적인 측면에서의 체제 갖추기에만 힘을 기울였을 뿐, 연극계의 발전을 위한 장기적인 투자는 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점진적인 예산 삭감 문제로 국립극장은 대관 위주 극장으로 변질되었으며, 다른 직업극단처럼 흥행 면에 긴박된 협소한 레파토리를 운영할 수밖에 없었다. 재정난을 자체의 공연 수입으로 메워야 하는 상황 속에서도 국가 기관으로서의 입장 때문에 문화정책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도 없었다는 점은 국립극장 운영의 방향을 혼란에 빠뜨리는 원인이 되었다. 당시 국가가 지향하는 예술의 방향과 대중들의 요구가 부합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국립극장의 고립을 불러왔던 것이다.
참고문헌
김동원, 1960년대의 역사학, 전남대학교인문학연구소, 1974
김준, 한국 현대소설에 나타난 작가사상 연구 Ⅱ : 1950-1960년대 소설을 중심으로, 서울여자대학교인문과학연구소, 1997
문종태, 공공극장의 운영체제 변화양상과 발전방안, 중앙대학교, 2008
오세권, 1960년대 한국화에 있어 실험적 오브제 표현에 대한 연구, 한국기초조형학회, 2006
이인범, 1960년대의 한국 추상미술과 국민국가 형성, 미술사학연구회, 2010
홍성식, 1960년대 한국문학 논쟁 연구, 명지대학교, 2000
62년 초반부터 국립극장은 建物 改修를 통한 국립극장 전용 공간 확보, 전속극단 발족, 기구 개편 등을 통해 의욕적인 출발을 하게 된다. 전속극단의 단장에 박진, 부단장에는 이해랑이 임명되었으며, 단원은 舊 신협과 민극의 순수 멤버들을 주축으로 하고, 영화계나 소극장운동에서 활약하던 사람들도 포함되었다. 또한 국립극장 운영위원회를 조직하여 유치진, 여석기 등이 위원으로 위촉되어, ‘국제수준운영’을 목표로 하는 운영지침을 발표한다.
純粹舞臺藝術의 保護 育成策으로 ①舞臺藝術 全般의 啓導事業 ②國民文化藝術의 센터 役割 ③觀客 動員의 實效 ④國立으로 劇團外古典舞踊團, 발레團, 오페라團을 創設한다. 그리고 附帶 事業으로는 ①綜合藝術誌의(季刊) 發刊 ②舞臺綜合藝術祭典의 計劃實行 등이고, 國立劇團의 質的向上과 任務를 賦與하여 ①公演의 定期化=中央六回, 地方 各一回 ②레파토리시스템(創作物 三, 古典 一, 譯 二의 比重) ③地方公演의 實施 ④國際活動의 勸 ⑤演劇計劃五個年發表案 (중략) 觀客을 確保하기 위하여 ①觀客의 希望에 의한 公演制를 硏究 ②全觀覽者 平均率의 三分의 一을 會員制 ③定期公演에서는 前回에 다음 上演 레파토리 選定에 대하여 意見을 묻는 用紙를 配布한다. 그리고 從來의 平面舞臺를 立體舞臺로 發展시키며 (후략)
‘무대예술의 질적 향상’, ‘연극의 생활화’, ‘민족연극의 확립’이라는 연극계의 과제를 모두 국립극장에 안겨준 셈이다. 그러나 이것은 재정확보 능력과 국가 기관으로서의 국립극장의 현실적 입지를 간과한 이상적인 방안이었다고 할 수 있다. 국립극장운영과 관련하여 국가는 그 외형적인 측면에서의 체제 갖추기에만 힘을 기울였을 뿐, 연극계의 발전을 위한 장기적인 투자는 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점진적인 예산 삭감 문제로 국립극장은 대관 위주 극장으로 변질되었으며, 다른 직업극단처럼 흥행 면에 긴박된 협소한 레파토리를 운영할 수밖에 없었다. 재정난을 자체의 공연 수입으로 메워야 하는 상황 속에서도 국가 기관으로서의 입장 때문에 문화정책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도 없었다는 점은 국립극장 운영의 방향을 혼란에 빠뜨리는 원인이 되었다. 당시 국가가 지향하는 예술의 방향과 대중들의 요구가 부합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국립극장의 고립을 불러왔던 것이다.
참고문헌
김동원, 1960년대의 역사학, 전남대학교인문학연구소, 1974
김준, 한국 현대소설에 나타난 작가사상 연구 Ⅱ : 1950-1960년대 소설을 중심으로, 서울여자대학교인문과학연구소, 1997
문종태, 공공극장의 운영체제 변화양상과 발전방안, 중앙대학교, 2008
오세권, 1960년대 한국화에 있어 실험적 오브제 표현에 대한 연구, 한국기초조형학회, 2006
이인범, 1960년대의 한국 추상미술과 국민국가 형성, 미술사학연구회, 2010
홍성식, 1960년대 한국문학 논쟁 연구, 명지대학교,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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