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위정척사운동
Ⅱ. 3.1운동
1. 민족대표
2. 시위자체의 조직화, 지속화 현상
1) 지식인, 학생
2) 농민
3) 노동자
4) 소부르주아
5) 양반유생
3. 운동이 심화되어 가면서 민중층이 중심
Ⅲ. 민족실력양성운동
1. 문맹 퇴치 운동
2. 조선 물산 장려회
3. 조선어 학회의 활동
Ⅳ. 5.18광주민주화운동(5.18광주민주항쟁)
1. 광주 민주화 운동의 정치 사회적 배경
2. 역사적 의미
Ⅴ. 농민운동
Ⅵ. 동학농민운동
Ⅶ. 주민운동
Ⅷ. 정당통일운동
Ⅸ. 노동통일운동
Ⅹ. 민족통일운동
참고문헌
Ⅱ. 3.1운동
1. 민족대표
2. 시위자체의 조직화, 지속화 현상
1) 지식인, 학생
2) 농민
3) 노동자
4) 소부르주아
5) 양반유생
3. 운동이 심화되어 가면서 민중층이 중심
Ⅲ. 민족실력양성운동
1. 문맹 퇴치 운동
2. 조선 물산 장려회
3. 조선어 학회의 활동
Ⅳ. 5.18광주민주화운동(5.18광주민주항쟁)
1. 광주 민주화 운동의 정치 사회적 배경
2. 역사적 의미
Ⅴ. 농민운동
Ⅵ. 동학농민운동
Ⅶ. 주민운동
Ⅷ. 정당통일운동
Ⅸ. 노동통일운동
Ⅹ. 민족통일운동
참고문헌
본문내용
적인 사업이 필요하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통일과정 뿐 아니라 통일 후에 우리 노동자들의 삶의 변화도 따져볼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현장의 통일일꾼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그리고 산별연맹 및 지역조직 등 초기업단위 노동조합에는 통일위원회가 구성되어 있는데, 기업단위 사업장에도 통일위원회가 구성되고 통일위원들이 생긴다면 노동운동의 통일사업은 더욱 빠른 속도로 대중화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조직구성과 인적자원을 토대로 다양한 통일 관련 사업을 일상적으로 추진해 나가야 한다. 군비축소와 사회안전망 확충, 국가보안법 철폐를 위한 서명, 집회참석, 불평등한 한미 행정협정 개정투쟁, 미군범죄 규탄투쟁, 미군기지 사용료 징수, 일본교과서 왜곡 저지 투쟁 등을 당면한 노동운동의 대중적 요구와 결합시켜 나가야할 것이다.
현재 통일운동 진영내부에서는 다양한 견해차로 인하여 공동의 행동통일을 모색하는데 많은 한계가 존재한다. 따라서 통일운동진영내의 다양한 차이를 극복하고 대동단결의 장을 마련하여 통일운동의 단일대오 형성과 대중화를 모색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단일대오의 형성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이념과 계층을 뛰어넘어 각 조직이 615 공동선언을 인정하고, 민족적 대의에 동참한다면 누구나 함께하는 낮은 차원의 통일운동(교류협력사업 등)부터 공동으로 추진하고, 이와 함께 조직의 입장차이로 함께할 수 없는 사항에 대해서는 합의 가능한 단체부터 수준 높은 통일운동(외세문제, 통일방안 등)을 전개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각종 시민단체의 통일운동에 대한 참여가 미진한 상태에서 이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명실상부한 범 사회단체의 단일한 목소리가 요구된다. 아울러, 정치권내의 개혁적 통일지향적 그룹에 대한 견인과 추동을 한편으로 진행하여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는 통일문제에 대한 미국의 간섭 배제를 촉구하여야 한다. 즉, 미국이 북한에 대해 보이고 있는 고립 압살 정책에 맞서 남북민중과 정권이 전 민족적 공조체제를 유지하여 강력히 대응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 현 정부에 대한 외세공조체제를 민족공조에 기초한 방향으로 수정할 것을 제기하여야 한다.
통일방안에 대한 실질적 논의가 필요하다. 지금까지 논의되었던 통일방안은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형식적이고 정치적인 수준에서 진행되어 왔다. 이것을 이제는 연합이냐 연방이냐 보다는 사실상의 통일을 가져올 수 있는 제도적 틀의 성립에 주력해야 하며, 남북정상회의, 각료회의, 의회회의 등을 정례화, 제도화 하는 방향으로 진전시켜 나아가야 할 것이다. 통일방안의 핵심은 1민족 1국가(연방)와 1민족 2국가(연합)의 차이에서 오는 것으로 이는 선언적으로 규정할 문제가 아니다.
이미 남북기본합의서 상 남북은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특수한 관계(대외관계에서는 서로 국가이나 남북간에는 국가가 아님)로 규정되어 있으므로 이 정신을 살리면 될 것이다. 국가기능의 핵심인 국방, 외교권이 각각 존재하므로 두 개 국가의 기능을 사실상 수행한다. 따라서 선언적으로 1개 국가를 지향(민족통일기구 구성 등)하더라도 사실 2개 국가를 인정할 수밖에 없으며, 실질적인 통일상태를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다.
노동운동 내 통일운동의 대중화를 적극 모색해야 한다. 우리사회의 주요한 계층인 노동자들이 통일운동에 참여하는 것은 노동운동의 사회적 책무와 시대적 요구로 볼 때 시급한 문제이다. 따라서 한국노총,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운동이 그동안 통일운동의 성과를 계승하면서 다음과 같은 영역에서 통일운동을 추진해 나가야 할 것이다.
* 외세의 민족문제 개입에 대한 단호한 대응--MD저지 및 반대 운동, 일본교과서 왜곡 바로잡기 등
* 통일방안에 대한 대중적 논의와 공론화
* 노동단체 간 자주교류의 확대와 활성화
* 통일운동단체 내부의 논의주도와 입장조율의 역할
* 기타 노동자들의 지향에 맞는 창의적인 통일운동의 내용과 방식 연구 등
끝으로, 지속적 교류협의기구의 구성이 필요하다. 지금까지와 같은 일회적, 부분적 교류협력을 극복하고 지속적이고 전면적인 교류를 위해서는 남북한 노동조직 간의 상시적 협의채널과 기구를 구성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및 북한 직총 간에 정례회의체인 ‘통노회’를 구성키로 하고, 공식 출범을 앞두고 있는 것은 통일운동 역사에 있어 매우 의미 있는 일로 기록될 것이다.
Ⅹ. 민족통일운동
김구의 민족운동은 그 일관성에 있어서, 다른 많은 독립투사에 비해 두드러진 점이 있었지만 특히 8.15후의 통일운동에 있어 그의 애국적 민족 운동은 찬연히 빛난다. 김구의 위대성은 그가 죽기 1,2년간의 바로 이 통일 운동기간에 발휘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6.25라는 동족상잔과 그 후 30년간 경제 불안, 정치불안, 민족 에너지의 낭비 등 그칠 줄 모르는 민족적 수난은 바로 이승만의 단정 노선이 빚은 예견된 비극이었다. 이승만이 과연 이러한 민족적 비극을 예상했는지 어떤지는 알 길 없으나 미국-이승만-한민당의 단정공작에 결연히 반대, 일신을 위해 바친 것은 김구로 하여금 청사에 빛나는 애국자로 추앙을 받게 했다. 분단된 지 34년이 되는 오늘날 남북간의 대결이 심각일로에 있는 상황 속에서 김구의 통일 노선이 새삼스럽게 재검토되고 있는 것을 결코 우연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김구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70평생을 망명생활에서 고생했으므로 나머지 여생을 어떻게 하면 안락하게 지낼 수 있는가를 잘 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 안락의 길을 택하지 않고 험난한 수난의 길을 택한다고 했다. 그의 말에 의하면 민족이 바야흐로 절벽으로 떨어지려고 하는 순간에 평생을 독립운동을 했다는 몸으로서 차마 그냥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갈라진 국토를 다시 통일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김구는 아직도 독립운동의 단계라고 보고 있었으나, 이승만은 해방의 단계요 따라서 대통령으로서 당연히 부귀영화로 여생을 보내야 한다고 믿고 있었다.
김구의 민족 사상은 이승만과는 달리 대조적으로 일관성과 순수성에 특징이 있다고 했다. 그가 반탁운동에 앞장서 오히려 민족과 국토분열에 결정적 계기를 마련했으나 같은 반탁운동이면서도 김구의 반탁과 이승만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그리고 산별연맹 및 지역조직 등 초기업단위 노동조합에는 통일위원회가 구성되어 있는데, 기업단위 사업장에도 통일위원회가 구성되고 통일위원들이 생긴다면 노동운동의 통일사업은 더욱 빠른 속도로 대중화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조직구성과 인적자원을 토대로 다양한 통일 관련 사업을 일상적으로 추진해 나가야 한다. 군비축소와 사회안전망 확충, 국가보안법 철폐를 위한 서명, 집회참석, 불평등한 한미 행정협정 개정투쟁, 미군범죄 규탄투쟁, 미군기지 사용료 징수, 일본교과서 왜곡 저지 투쟁 등을 당면한 노동운동의 대중적 요구와 결합시켜 나가야할 것이다.
현재 통일운동 진영내부에서는 다양한 견해차로 인하여 공동의 행동통일을 모색하는데 많은 한계가 존재한다. 따라서 통일운동진영내의 다양한 차이를 극복하고 대동단결의 장을 마련하여 통일운동의 단일대오 형성과 대중화를 모색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단일대오의 형성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이념과 계층을 뛰어넘어 각 조직이 615 공동선언을 인정하고, 민족적 대의에 동참한다면 누구나 함께하는 낮은 차원의 통일운동(교류협력사업 등)부터 공동으로 추진하고, 이와 함께 조직의 입장차이로 함께할 수 없는 사항에 대해서는 합의 가능한 단체부터 수준 높은 통일운동(외세문제, 통일방안 등)을 전개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각종 시민단체의 통일운동에 대한 참여가 미진한 상태에서 이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명실상부한 범 사회단체의 단일한 목소리가 요구된다. 아울러, 정치권내의 개혁적 통일지향적 그룹에 대한 견인과 추동을 한편으로 진행하여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는 통일문제에 대한 미국의 간섭 배제를 촉구하여야 한다. 즉, 미국이 북한에 대해 보이고 있는 고립 압살 정책에 맞서 남북민중과 정권이 전 민족적 공조체제를 유지하여 강력히 대응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 현 정부에 대한 외세공조체제를 민족공조에 기초한 방향으로 수정할 것을 제기하여야 한다.
통일방안에 대한 실질적 논의가 필요하다. 지금까지 논의되었던 통일방안은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형식적이고 정치적인 수준에서 진행되어 왔다. 이것을 이제는 연합이냐 연방이냐 보다는 사실상의 통일을 가져올 수 있는 제도적 틀의 성립에 주력해야 하며, 남북정상회의, 각료회의, 의회회의 등을 정례화, 제도화 하는 방향으로 진전시켜 나아가야 할 것이다. 통일방안의 핵심은 1민족 1국가(연방)와 1민족 2국가(연합)의 차이에서 오는 것으로 이는 선언적으로 규정할 문제가 아니다.
이미 남북기본합의서 상 남북은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특수한 관계(대외관계에서는 서로 국가이나 남북간에는 국가가 아님)로 규정되어 있으므로 이 정신을 살리면 될 것이다. 국가기능의 핵심인 국방, 외교권이 각각 존재하므로 두 개 국가의 기능을 사실상 수행한다. 따라서 선언적으로 1개 국가를 지향(민족통일기구 구성 등)하더라도 사실 2개 국가를 인정할 수밖에 없으며, 실질적인 통일상태를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다.
노동운동 내 통일운동의 대중화를 적극 모색해야 한다. 우리사회의 주요한 계층인 노동자들이 통일운동에 참여하는 것은 노동운동의 사회적 책무와 시대적 요구로 볼 때 시급한 문제이다. 따라서 한국노총,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운동이 그동안 통일운동의 성과를 계승하면서 다음과 같은 영역에서 통일운동을 추진해 나가야 할 것이다.
* 외세의 민족문제 개입에 대한 단호한 대응--MD저지 및 반대 운동, 일본교과서 왜곡 바로잡기 등
* 통일방안에 대한 대중적 논의와 공론화
* 노동단체 간 자주교류의 확대와 활성화
* 통일운동단체 내부의 논의주도와 입장조율의 역할
* 기타 노동자들의 지향에 맞는 창의적인 통일운동의 내용과 방식 연구 등
끝으로, 지속적 교류협의기구의 구성이 필요하다. 지금까지와 같은 일회적, 부분적 교류협력을 극복하고 지속적이고 전면적인 교류를 위해서는 남북한 노동조직 간의 상시적 협의채널과 기구를 구성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및 북한 직총 간에 정례회의체인 ‘통노회’를 구성키로 하고, 공식 출범을 앞두고 있는 것은 통일운동 역사에 있어 매우 의미 있는 일로 기록될 것이다.
Ⅹ. 민족통일운동
김구의 민족운동은 그 일관성에 있어서, 다른 많은 독립투사에 비해 두드러진 점이 있었지만 특히 8.15후의 통일운동에 있어 그의 애국적 민족 운동은 찬연히 빛난다. 김구의 위대성은 그가 죽기 1,2년간의 바로 이 통일 운동기간에 발휘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6.25라는 동족상잔과 그 후 30년간 경제 불안, 정치불안, 민족 에너지의 낭비 등 그칠 줄 모르는 민족적 수난은 바로 이승만의 단정 노선이 빚은 예견된 비극이었다. 이승만이 과연 이러한 민족적 비극을 예상했는지 어떤지는 알 길 없으나 미국-이승만-한민당의 단정공작에 결연히 반대, 일신을 위해 바친 것은 김구로 하여금 청사에 빛나는 애국자로 추앙을 받게 했다. 분단된 지 34년이 되는 오늘날 남북간의 대결이 심각일로에 있는 상황 속에서 김구의 통일 노선이 새삼스럽게 재검토되고 있는 것을 결코 우연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김구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70평생을 망명생활에서 고생했으므로 나머지 여생을 어떻게 하면 안락하게 지낼 수 있는가를 잘 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 안락의 길을 택하지 않고 험난한 수난의 길을 택한다고 했다. 그의 말에 의하면 민족이 바야흐로 절벽으로 떨어지려고 하는 순간에 평생을 독립운동을 했다는 몸으로서 차마 그냥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갈라진 국토를 다시 통일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김구는 아직도 독립운동의 단계라고 보고 있었으나, 이승만은 해방의 단계요 따라서 대통령으로서 당연히 부귀영화로 여생을 보내야 한다고 믿고 있었다.
김구의 민족 사상은 이승만과는 달리 대조적으로 일관성과 순수성에 특징이 있다고 했다. 그가 반탁운동에 앞장서 오히려 민족과 국토분열에 결정적 계기를 마련했으나 같은 반탁운동이면서도 김구의 반탁과 이승만
키워드
추천자료
A+ 제5공화국 ; 신군부의 폭압통치와 민주화 운동
박정희와 민주화 운동
한국의 민주화 운동에 관한 통시적 고찰
민족 해방 운동가, 몽양 여운형
박정희와 민주화 운동
사회·경제적 민족 운동
광주(광주광역시)의 명칭과 축제, 광주(광주광역시)의 대단지사건, 광주(광주광역시)의 민중...
5.18민주화 운동에 대한 단상
5.18과 민주화 운동
신군부 세력의 등장과 5·18민주화 운동
[사회과학] 5.18 민주화 운동
일제시대운동(일제강점기운동)과 독립운동기지건설, 6.10만세운동, 일제시대운동(일제강점기...
학생운동사 (대학설립 초기의 학생활동과 학생운동, 대학 자율화와 민주화 운동의 전개, 대학...
민족주의 운동의 분화;민족주의 좌파 vs 민족주의 우파
소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