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개요
Ⅱ. 소설가 이호철과 이데올로기
Ⅲ. 소설가 이호철과 인민군
Ⅳ. 소설가 이호철과 판문점
Ⅴ. 소설가 이호철과 간첩
참고문헌
Ⅱ. 소설가 이호철과 이데올로기
Ⅲ. 소설가 이호철과 인민군
Ⅳ. 소설가 이호철과 판문점
Ⅴ. 소설가 이호철과 간첩
참고문헌
본문내용
소설가 이호철과 이데올로기, 소설가 이호철과 인민군, 소설가 이호철과 판문점, 소설가 이호철과 간첩 분석
Ⅰ. 개요
Ⅱ. 소설가 이호철과 이데올로기
Ⅲ. 소설가 이호철과 인민군
Ⅳ. 소설가 이호철과 판문점
Ⅴ. 소설가 이호철과 간첩
참고문헌
Ⅰ. 개요
이호철 그는 이야기꾼이다. 소설가 이전에 이야기꾼이다. 물론 어설픈 이야기꾼이 아니라 아주 대단한 이야기꾼이다. 이야기꾼으로서의 입심에다가 섬세한 묘사나 힘찬 서사력까지 보태져서 이호철식 서술방식이라고 해야 할 소설기법을 만들어낸 걸출한 이야기꾼이다. 여기서 말하는 이야기라는 것은 무엇인가? 사랑방에서 할아버지가 들려주시던 민담이나 심록뎐(심청전)을 읽어 주던 강담사(講談士)를 떠올려 볼 수 있으리라. 그의 후배 이문구 역시 탁월한 이야기꾼이거니와 벽초 홍명희 선생의 「임꺽정」에서 볼 수 있는 근대소설의 이야기적 흐름의 한 줄기에서 그의 이야기들은 문학사의 너른 바다를 항해하고 있는 것. 이야기가 그를 소설가로 만들었는지, 체험과 감정이 그를 소설가로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가 서술이나 서사보다 전통적인 이야기에 가까운 기법으로 소설을 써 왔다는 점이다. 물론 그렇다고 일반적인 소설기법을 소홀히 했다는 뜻은 아니다. 그의 생애를 관류하는 전반적인 기저에는 이야기가 앙버티고 서 있는데 작가는 언제나 서사와 서술을 이야기로 거르고 적절하게 교차하고 섞어서 소설의 생애를 살았다는 뜻이다. 김윤식 교수께서 소설이 이야기와는 다른 이성주의의 산물이며 이호철 역시 소설이라는 장르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진단한 바 있다. 그러나 원체험이 이야기가 되고 이야기가 소설이 되는 과정에서의 비중이 이야기에 기울어 있다고 해도 좋을 것 같다. 여기서 우리는 그가 인민군 소년병 출신 소설가가 아니었다면 상당히 다른 형식으로 작품을 썼으리라는 추정을 제출해 보기로 하자.
그런데 그의 이야기는 체험과 분단이라는 축을 왼편에 놓고 세태와 풍경이라는 또 다른 축을 오른편에 두고 있다. 이를 줄이면 분단체험과 세태풍경일 텐데, 그 기저의 공통분모는 세상의 모든 작가들이 그렇듯 인간과 자연이라는 우주적 생명으로 나가고 있음에 각별한 시선을 놓아야 할 것 같다. 소탈한 시선으로 인간과 사회를 바라보고 서술하는 친화력은 이호철의 장기(長技)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손으로 쓰면서 동시에 입으로 말하는 묘한 기법을 구사했고 오늘날까지 그 기법은 이어지고 있다. 다시 한번 강조하건대 \'실향민의식과 소시민의식과 분단의식을 내면으로 담고 사회적으로 확대시켜 나가는\' 그의 소설적 기법은 이야기였다. 짧지 않은 그의 소설세계는 이야기꾼으로서의 입담과 소설가로서의 형상성 위에 유별난 체험의 힘들이 보태져 일가(一家)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분단문학에서 차지하는 그의 소설사적 비중이 크기는 하지만 분단의 현실을 드러내는 방법에 있어서 인물이나 세태풍속의 기법을 택했다는 바로 거기에 작가 이호철의 본질이 놓여 있는 것이 아닌가. 『소시민』이나 『서울은 만원이다』와 같은 장편에서도 서사구조의 힘이 작품을 끌어가는 것이 아니라 가잔한 삶의 모습을 이야기로 편안하게 들려주면서 작품을 끌어가는 점이야말로 이호철의 진면목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그 밖에 남한 사회라는 타향 아닌 타향에서 느끼는 추위가 때때로 불안과 고독을 동반하고 있음은 그의 작품과 50년을 넘어서 그의 작품 세계가 증거하고 있는 바와 같다.
문학사적으로도 그는 이른바 전후작가 중에서는 특이한 위치에 놓인다. 전후에 문단활동을 시작한 그는, 북한 체제 5 년간의 경험이라는 귀중한 체험을 실어서 인간사의 내면을 다룬 「탈향」으로 작가로서의 첫발을 내디뎠지만 그는 「소시민」으로 상징되는 남한 사회상을 냉소적으로 그린 세태풍경 계열의 작품을 많이 썼다. 이 중 초기소설에서 많이 나타나는 것은 체험의 소설화였다. 그런데 그의 체험은 개인사적 체험인 동시에 민족사적 체험이기 때문에 의미를 내포하면서 문학사적 지위로 상승할 수 있었다. 어느 자리에서 김치수가 이호철 소설의 본질을 \'인간의 본성에 대한 신뢰\' 즉, 화해와 사랑을 깊이 깔고 있다고 논평한 바가 있는데 이것은 그가 섭(攝)으로 지고 태어난 본성이기도 하겠고 고난의 어린 소년병이 겪었을 체험의 실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돌이켜 보면 우리 민족의 근대사는 피와 땀과 눈물이 얼룩진 고난의 역사였다. 일제강점기를 지나서도 민족사의 고난은 오히려 가중이 되어 마침내 남북전쟁으로 비화했고 그 역사의 모서리에서 감수성을 훈련한 작가는 당연히 자신의 체험을 이야기로 꾸며야 했을 것이며 거기에서 닦은 사회상을 세태풍경으로 담아내는 다음 단계로 나가야 했던 것이다.
Ⅱ. 소설가 이호철과 이데올로기
이호철의 소설에 나타는 분단 상황과 소외는 전란 상황 속에서의 소외로 특징져질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전란 상황이란 한국전쟁과 전쟁을 통해 나타난 이데올로기적인 갈등의 제 양상을 말한다. 이와 같은 상황을 작중인물(주체)이 어떻게 대응하고 수용하는가에 대한 문제이다.
이에 대한 첫 번째 특징으로 전쟁과 이데올로기에 대한 무연성(無聯性)을 들 수 있다. 그럼 〈빈골짜기〉(원제: 〈백지풍경〉)를 통해 그 양상을 살펴보겠다.
인걸이는 열세 살이었다. 요즈음 어쩐지 동네 안의 매사가 뒤숭숭하고 서글펐다. 국군이 올라왔다. 해방이 됐다. 집을 다시 찾았다. 빼앗겼던 땅을 되찾았다. 야아, 야아, 이렇게 움씰움씰 즐거운 것도 같았으나, 어느 귀퉁이 허전한 구석을 어쩔 수 없었다.
국군이 북상해 올라오고 나서 요즈음 동내 안은 돌개바람이 아는 듯이 매일 매일 노상 법석스럽지만, 어느 구석에는 싸늘한 기운이 휘돈다. 사실로 내평집 과수원 움 속에는 사람들이 갇혀 있다. 사람들이. 그 사람들이 우리를 내
Ⅰ. 개요
Ⅱ. 소설가 이호철과 이데올로기
Ⅲ. 소설가 이호철과 인민군
Ⅳ. 소설가 이호철과 판문점
Ⅴ. 소설가 이호철과 간첩
참고문헌
Ⅰ. 개요
이호철 그는 이야기꾼이다. 소설가 이전에 이야기꾼이다. 물론 어설픈 이야기꾼이 아니라 아주 대단한 이야기꾼이다. 이야기꾼으로서의 입심에다가 섬세한 묘사나 힘찬 서사력까지 보태져서 이호철식 서술방식이라고 해야 할 소설기법을 만들어낸 걸출한 이야기꾼이다. 여기서 말하는 이야기라는 것은 무엇인가? 사랑방에서 할아버지가 들려주시던 민담이나 심록뎐(심청전)을 읽어 주던 강담사(講談士)를 떠올려 볼 수 있으리라. 그의 후배 이문구 역시 탁월한 이야기꾼이거니와 벽초 홍명희 선생의 「임꺽정」에서 볼 수 있는 근대소설의 이야기적 흐름의 한 줄기에서 그의 이야기들은 문학사의 너른 바다를 항해하고 있는 것. 이야기가 그를 소설가로 만들었는지, 체험과 감정이 그를 소설가로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가 서술이나 서사보다 전통적인 이야기에 가까운 기법으로 소설을 써 왔다는 점이다. 물론 그렇다고 일반적인 소설기법을 소홀히 했다는 뜻은 아니다. 그의 생애를 관류하는 전반적인 기저에는 이야기가 앙버티고 서 있는데 작가는 언제나 서사와 서술을 이야기로 거르고 적절하게 교차하고 섞어서 소설의 생애를 살았다는 뜻이다. 김윤식 교수께서 소설이 이야기와는 다른 이성주의의 산물이며 이호철 역시 소설이라는 장르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진단한 바 있다. 그러나 원체험이 이야기가 되고 이야기가 소설이 되는 과정에서의 비중이 이야기에 기울어 있다고 해도 좋을 것 같다. 여기서 우리는 그가 인민군 소년병 출신 소설가가 아니었다면 상당히 다른 형식으로 작품을 썼으리라는 추정을 제출해 보기로 하자.
그런데 그의 이야기는 체험과 분단이라는 축을 왼편에 놓고 세태와 풍경이라는 또 다른 축을 오른편에 두고 있다. 이를 줄이면 분단체험과 세태풍경일 텐데, 그 기저의 공통분모는 세상의 모든 작가들이 그렇듯 인간과 자연이라는 우주적 생명으로 나가고 있음에 각별한 시선을 놓아야 할 것 같다. 소탈한 시선으로 인간과 사회를 바라보고 서술하는 친화력은 이호철의 장기(長技)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손으로 쓰면서 동시에 입으로 말하는 묘한 기법을 구사했고 오늘날까지 그 기법은 이어지고 있다. 다시 한번 강조하건대 \'실향민의식과 소시민의식과 분단의식을 내면으로 담고 사회적으로 확대시켜 나가는\' 그의 소설적 기법은 이야기였다. 짧지 않은 그의 소설세계는 이야기꾼으로서의 입담과 소설가로서의 형상성 위에 유별난 체험의 힘들이 보태져 일가(一家)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분단문학에서 차지하는 그의 소설사적 비중이 크기는 하지만 분단의 현실을 드러내는 방법에 있어서 인물이나 세태풍속의 기법을 택했다는 바로 거기에 작가 이호철의 본질이 놓여 있는 것이 아닌가. 『소시민』이나 『서울은 만원이다』와 같은 장편에서도 서사구조의 힘이 작품을 끌어가는 것이 아니라 가잔한 삶의 모습을 이야기로 편안하게 들려주면서 작품을 끌어가는 점이야말로 이호철의 진면목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그 밖에 남한 사회라는 타향 아닌 타향에서 느끼는 추위가 때때로 불안과 고독을 동반하고 있음은 그의 작품과 50년을 넘어서 그의 작품 세계가 증거하고 있는 바와 같다.
문학사적으로도 그는 이른바 전후작가 중에서는 특이한 위치에 놓인다. 전후에 문단활동을 시작한 그는, 북한 체제 5 년간의 경험이라는 귀중한 체험을 실어서 인간사의 내면을 다룬 「탈향」으로 작가로서의 첫발을 내디뎠지만 그는 「소시민」으로 상징되는 남한 사회상을 냉소적으로 그린 세태풍경 계열의 작품을 많이 썼다. 이 중 초기소설에서 많이 나타나는 것은 체험의 소설화였다. 그런데 그의 체험은 개인사적 체험인 동시에 민족사적 체험이기 때문에 의미를 내포하면서 문학사적 지위로 상승할 수 있었다. 어느 자리에서 김치수가 이호철 소설의 본질을 \'인간의 본성에 대한 신뢰\' 즉, 화해와 사랑을 깊이 깔고 있다고 논평한 바가 있는데 이것은 그가 섭(攝)으로 지고 태어난 본성이기도 하겠고 고난의 어린 소년병이 겪었을 체험의 실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돌이켜 보면 우리 민족의 근대사는 피와 땀과 눈물이 얼룩진 고난의 역사였다. 일제강점기를 지나서도 민족사의 고난은 오히려 가중이 되어 마침내 남북전쟁으로 비화했고 그 역사의 모서리에서 감수성을 훈련한 작가는 당연히 자신의 체험을 이야기로 꾸며야 했을 것이며 거기에서 닦은 사회상을 세태풍경으로 담아내는 다음 단계로 나가야 했던 것이다.
Ⅱ. 소설가 이호철과 이데올로기
이호철의 소설에 나타는 분단 상황과 소외는 전란 상황 속에서의 소외로 특징져질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전란 상황이란 한국전쟁과 전쟁을 통해 나타난 이데올로기적인 갈등의 제 양상을 말한다. 이와 같은 상황을 작중인물(주체)이 어떻게 대응하고 수용하는가에 대한 문제이다.
이에 대한 첫 번째 특징으로 전쟁과 이데올로기에 대한 무연성(無聯性)을 들 수 있다. 그럼 〈빈골짜기〉(원제: 〈백지풍경〉)를 통해 그 양상을 살펴보겠다.
인걸이는 열세 살이었다. 요즈음 어쩐지 동네 안의 매사가 뒤숭숭하고 서글펐다. 국군이 올라왔다. 해방이 됐다. 집을 다시 찾았다. 빼앗겼던 땅을 되찾았다. 야아, 야아, 이렇게 움씰움씰 즐거운 것도 같았으나, 어느 귀퉁이 허전한 구석을 어쩔 수 없었다.
국군이 북상해 올라오고 나서 요즈음 동내 안은 돌개바람이 아는 듯이 매일 매일 노상 법석스럽지만, 어느 구석에는 싸늘한 기운이 휘돈다. 사실로 내평집 과수원 움 속에는 사람들이 갇혀 있다. 사람들이. 그 사람들이 우리를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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