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靑山別曲의 상징성과 현실인식
2. 청산과 현실집착
3. ‘새’의 시대상황
4. 절대고독과 비극적 상황
5. ‘술’과 현실인식
6. 나오는 글
2. 청산과 현실집착
3. ‘새’의 시대상황
4. 절대고독과 비극적 상황
5. ‘술’과 현실인식
6. 나오는 글
본문내용
리로, 원시적인 삶에 대한 일종의 회귀의지로 청산을 잠시나마 그리워할망정 청산에 들어가서 살려고 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새’에 비유된 무리들은 파국적이면서도 불행한 현실을 더욱 분란스럽게 하는 상황을 이용하고 갖가지 술수로 권력에 빌붙으면서 자신에게 이롭게만 행동한다. 따라서 속수무책인 화자는 새들의 이런 행위에 비분강개 하는 것이다.
이상과 같이 볼 때 <청산별곡> 1연과 2, 3연은 대체로 동질적인 의미 단락으로 묶을 수 있다. 1연에서 화자는 현실이 고통스럽지만 세속에서 삶을 영위하겠다는 강한 현실집착 의지를 드러내고, 2연과 3연에서는 그러한 현실 내부에서 나라를 위하여 국궁진력하기는커녕 정황을 더욱 어지럽히며 부정적인 행위를 일삼는 무리를 질타하과 있는 것이다. 이런 표현에 의하여 화자의 고독한 심정과 그가 처한 상황의 비극성은 그 무게에 있어서 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4연과 5연에서는 이 점이 더욱 직접적으로, 그리고 동시에 강한 어조로 표출되고 있다.
4. 절대고독과 비극적 상황
<청산별곡>에서 화자는 청산을 고통스러운 외적 여건에만 머물게 하지 않고, 심리적으로도 고독한 공간으로 여기고 있다.
이링공 뎌링공하야 나즈란 디내와손뎌
오리도 가리도 업슨 바므란 또 엇디 호리라
화자는 물질적으로 곤핍한 현실 생활뿐 아니라 정신적 고독에 더욱 못 견디어 몸부림 치고 있다. 밤의 시간뿐 아니라, 낮의 시간도 고독한 시간이다. 고독한 시간 속에서 몸부림치는 모습을 ‘이링공 뎌링공’으로 나타낸 것으로 보아서나, ‘밤은 또 어찌 하리까’라 하여 ‘또’를 삽입시킨 것으로 보아서 화자에게 밤의 시간도 낮처럼 고독한 순간들임이 분명하다. 낮과 밤 모두 화자에게서는 지내기 어려운 시간이라는 진술이 된다. 이것은 <청산별곡>의 화자가 ‘청산’을 생활하기에 부정적인 터전으로 생각하고 있음을 말해 줌과 동시에 ‘청산’의 생활 그 자체에도 호감을 갖고 있지 않았음을 나타내 주는 것이다. 청산을 진정 이상향으로 느끼고 있다면 ‘어찌 하리까’라는 어구를 통하여 청산에서의 고독한 생활을 걱정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런 것으로 미루어 화자는 고독한 가운데 어떤 철리를 탐구하는 그런 은둔자이거나 청산에서의 고독을 수양의 도구로 삼을 줄 아는 지식인이 아니라, 삶의 고통에 시달리고 부대끼면서 다른 곳에서는 삶의 방도를 찾을 수 없어 방황하는 고려시대의 민중을 대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어듸라 더디던 돌코 누리라 마치던 돌코
이상과 같이 볼 때 <청산별곡> 1연과 2, 3연은 대체로 동질적인 의미 단락으로 묶을 수 있다. 1연에서 화자는 현실이 고통스럽지만 세속에서 삶을 영위하겠다는 강한 현실집착 의지를 드러내고, 2연과 3연에서는 그러한 현실 내부에서 나라를 위하여 국궁진력하기는커녕 정황을 더욱 어지럽히며 부정적인 행위를 일삼는 무리를 질타하과 있는 것이다. 이런 표현에 의하여 화자의 고독한 심정과 그가 처한 상황의 비극성은 그 무게에 있어서 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4연과 5연에서는 이 점이 더욱 직접적으로, 그리고 동시에 강한 어조로 표출되고 있다.
4. 절대고독과 비극적 상황
<청산별곡>에서 화자는 청산을 고통스러운 외적 여건에만 머물게 하지 않고, 심리적으로도 고독한 공간으로 여기고 있다.
이링공 뎌링공하야 나즈란 디내와손뎌
오리도 가리도 업슨 바므란 또 엇디 호리라
화자는 물질적으로 곤핍한 현실 생활뿐 아니라 정신적 고독에 더욱 못 견디어 몸부림 치고 있다. 밤의 시간뿐 아니라, 낮의 시간도 고독한 시간이다. 고독한 시간 속에서 몸부림치는 모습을 ‘이링공 뎌링공’으로 나타낸 것으로 보아서나, ‘밤은 또 어찌 하리까’라 하여 ‘또’를 삽입시킨 것으로 보아서 화자에게 밤의 시간도 낮처럼 고독한 순간들임이 분명하다. 낮과 밤 모두 화자에게서는 지내기 어려운 시간이라는 진술이 된다. 이것은 <청산별곡>의 화자가 ‘청산’을 생활하기에 부정적인 터전으로 생각하고 있음을 말해 줌과 동시에 ‘청산’의 생활 그 자체에도 호감을 갖고 있지 않았음을 나타내 주는 것이다. 청산을 진정 이상향으로 느끼고 있다면 ‘어찌 하리까’라는 어구를 통하여 청산에서의 고독한 생활을 걱정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런 것으로 미루어 화자는 고독한 가운데 어떤 철리를 탐구하는 그런 은둔자이거나 청산에서의 고독을 수양의 도구로 삼을 줄 아는 지식인이 아니라, 삶의 고통에 시달리고 부대끼면서 다른 곳에서는 삶의 방도를 찾을 수 없어 방황하는 고려시대의 민중을 대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어듸라 더디던 돌코 누리라 마치던 돌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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