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소설가 황석영
Ⅱ. 소설가 이태준
Ⅲ. 소설가 채만식
Ⅳ. 소설가 홍석중
Ⅴ. 소설가 김동리
Ⅵ. 소설가 박경리
Ⅶ. 소설가 박태원
참고문헌
Ⅱ. 소설가 이태준
Ⅲ. 소설가 채만식
Ⅳ. 소설가 홍석중
Ⅴ. 소설가 김동리
Ⅵ. 소설가 박경리
Ⅶ. 소설가 박태원
참고문헌
본문내용
1925년 <<시대일보>>에 <오몽녀>라는 작품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등단하였지만, 1933년 구인회를 결성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창작활동을 시작하였다. 그의 작품은 인물에 대한 내관적인 묘사와 치밀한 구성을 통해 한국 근대소설의 기법적인 발전을 이룬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달밤>, <가마귀>, <영월영감> 등의 작품은 허무와 서정의 세계 속에서도 시대정신에의 강렬한 호소를 드러내는 그의 대표작이다. 해방 이전의 작품은 대체로 시대 상황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경향을 띠기보다는 현실에 초연한 예술 지상적 색채를 농후하게 나타낸다. 인간 세정을 섬세하게 묘사하고 동정적 시선으로 대상과 사건을 바라보면서 단편소설의 서정성을 높여 예술적 완성도와 깊이를 세워 나갔던 것이다. 1943년 <왕자 호동>을 끝으로 절필하고 강원도 철원에 칩거하던 그는 해방 이후 조선문학가동맹의 핵심 성원으로 활동하면서 작품에도 사회주의적 색채를 담으려고 노력하였다. 이 시기에 발표된 <해방 전후>는 조선문학가동맹이 제정한 제1회 해방기념 조선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한국전쟁 중 종군기자로 전선에 참여하면서 쓴 <고향길>이나 <첫 전투> 등은 이데올로기를 여과 없이 드러냄으로써 일제하의 작품에 비해 예술적 완성도가 훨씬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 밖에 국어 문장 작법에도 관심을 기울여 <<문장강화>>라는 저서를 남겼다. 이태준은 작품 속에서 일제 시대의 상황을 현실 인식이 강한 날카로운 어른의 시각으로도 담아냈고, 꿈과 희망을 잃지 않고 노력하는 순수한 아이의 입장에서도 그려 냈다. 이런 작품들에서는 모두 자연과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고 어려운 환경에도 순수함, 내일에 대한 희망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태준의 작품에 대해 모든 사람을 위한 이야기라는 평가도 가능해진다. 이태준의 소년 소설로서는 <물고기 이약이>,<슬픈 명일 추석>, <몰라쟁이 엄마>, <슬퍼하는 나무> 등이 있다. 그의 소년소설 대부분이 잡지 <<어린이>>에 발표한 것이다.
Ⅲ. 소설가 채만식
1902년
전북 옥구군 임피면 읍내리에서 채규섭의 9남매 중 다섯째 아들로 태어남.
1907년
집에서 차린 서당에서 한문 공부를 함.
1910년
임피보통학교 입학.
1914년
4년제 임피보통학교 졸업.
1918년
중앙고등보통학교 입학.
1920년
중앙고등보통학교 3학년 재학중 익산군 함라면 함열리의 은씨 댁 규수 은선홍과 혼인.
1922년
4년제 중앙고등보통학교(당시 이름은 사립중앙학교) 졸업. 일본 와세다대학 부속 제일와세다고등학원 문과에 입학. 고등학원 축구선수로 활약.
1923년
여름방학에 귀향, 위 학원 중도 폐학. 뒷날 유고작으로 발표된 처녀작 중편 과도기 탈고 문학사상 1973년 8~9월호에 유고로 발표
1924년
제일와세다고등학원 제적 처분. 경기 강화의 사립학교 교원으로 취직. 단편 세 길로를 조선문단 3호에 이광수 추천으로 발표. 문단에 데뷔.
1925년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로 입사. 단편 불효자식이 조선문단에 다시 추천 게재됨.
1926년
동아일보 퇴사.
1930년
개벽사 입사.
1933년
개벽사를 그만두고 조선일보사에 입사.
1934년
풍자적 성향의 단편소설 레디메이드 인생(신동아), 희곡 인텔리와 빈대떡(신동아) 등을 발표하면서 확고한 문학적 기반을 다짐.
1936년
조선일보사를 그만두고 개성으로 이사.
1937년
<조선일보>에 대표작 탁류 연재.
1938년
<동아일보>에 치숙 발표.
1939년
채만식 단편집이 학예사에서, 장편집 탁류가 박문서관에서 간행.
1940년
개성에서 안양으로 이사. 태평천하가 삼인장편집에 묶여 명성사에서 간행됨. 중편소설 냉동어, 희곡 당랑의 전설을 발표.
1941년
광장리로 이사. 5월 탁류 재판 간행. 3판부터 조선총독부에 의해 발행금지처분을 받음. 장장집 금의 열정이 영창서관에서 간행됨.
1943년
중편집 배비장이 박문서관에서, 단편집 집이 조선출판사에서 간행됨.
1945년
부친이 별세하고 장남이 병사함. 5월 고향인 전북 임피로 내려가 살다가 8.15해방을 맞음. 해방 후에 서대문 충정로로 이사함.
1946년
중편집 허생전이 협동문고에서, 작품집 제향날이 박문출판사에서 간행. 맹순사 미스터 방 논 이야기 처자 등 발표. 고향 전북 임피로 다시 내려감.
1947년
모친 별세. 이리시로 이사. 장편집 아름다운 새벽이 박문출판사에서 간행.
1948년
민족의 죄인을 백민에 발표. 동지사에서 태평천하 간행. 작품집 잘난 사람들이 민중서관에서, 당랑의 전설이 을유문화사에서 간행됨.
1949년
장편집 탁류가 민중서관에서 간행.
1950년
6월 11일 폐결핵으로 이리시 마동에서 영면. 전라북도 옥구군 임피면 축산리 선영에 묻힘.
Ⅳ. 소설가 홍석중
본관은 풍산(豊山)이다. 1941년 9월 23일 서울에서 태어나 1948년 할아버지를 따라 월북하였다. 《임꺽정(林巨正)》의 작가 벽초 홍명희의 손자이며, 아버지는 국어학자 대산 홍기문이다.
1957년에서부터 1964년까지 조선인민군 해군에서 복무한 후, 1969년 김일성종합대학교 어문학부를 졸업하였다. 1970년 단편소설 《붉은 꽃송이》를 발표하였으며, 1979년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작가로 창작활동을 하기 시작하여 꾸준히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대표작으로 대하소설 《높새바람》(1993)을 비롯하여 다수의 작품이 있다.
2004년 소설 《황진이》(평양 문학예술출판사)로 제19회 만해문학상을 받았는데, 이는 남한 측(창작과비평사)이 제정한 문학상에 북한의 작가가 수상한 것은 분단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시상식은 금강산에서 치러졌다.
Ⅴ. 소설가 김동리
김동리 소설을 읽는 사람은 누구나 그의 작품의 많은 부분이 민속적이고 토착적인 소재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작품에 나타난 황토색 짙은 이러한 소재와 풍경이 지니고 있는 참된 뜻을 이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의 작품에 나타난 복잡한 상진 체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왜 그가 이러한 소재를 선택했어야만 했는가의 문제를 밝히는데서 출발해야만 하겠다.
조연현이 기회가 있을 때마다 ‘김동리 문학을 이해하는 데는 일제 말기의 현실적 절망감과 압박감을
Ⅲ. 소설가 채만식
1902년
전북 옥구군 임피면 읍내리에서 채규섭의 9남매 중 다섯째 아들로 태어남.
1907년
집에서 차린 서당에서 한문 공부를 함.
1910년
임피보통학교 입학.
1914년
4년제 임피보통학교 졸업.
1918년
중앙고등보통학교 입학.
1920년
중앙고등보통학교 3학년 재학중 익산군 함라면 함열리의 은씨 댁 규수 은선홍과 혼인.
1922년
4년제 중앙고등보통학교(당시 이름은 사립중앙학교) 졸업. 일본 와세다대학 부속 제일와세다고등학원 문과에 입학. 고등학원 축구선수로 활약.
1923년
여름방학에 귀향, 위 학원 중도 폐학. 뒷날 유고작으로 발표된 처녀작 중편 과도기 탈고 문학사상 1973년 8~9월호에 유고로 발표
1924년
제일와세다고등학원 제적 처분. 경기 강화의 사립학교 교원으로 취직. 단편 세 길로를 조선문단 3호에 이광수 추천으로 발표. 문단에 데뷔.
1925년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로 입사. 단편 불효자식이 조선문단에 다시 추천 게재됨.
1926년
동아일보 퇴사.
1930년
개벽사 입사.
1933년
개벽사를 그만두고 조선일보사에 입사.
1934년
풍자적 성향의 단편소설 레디메이드 인생(신동아), 희곡 인텔리와 빈대떡(신동아) 등을 발표하면서 확고한 문학적 기반을 다짐.
1936년
조선일보사를 그만두고 개성으로 이사.
1937년
<조선일보>에 대표작 탁류 연재.
1938년
<동아일보>에 치숙 발표.
1939년
채만식 단편집이 학예사에서, 장편집 탁류가 박문서관에서 간행.
1940년
개성에서 안양으로 이사. 태평천하가 삼인장편집에 묶여 명성사에서 간행됨. 중편소설 냉동어, 희곡 당랑의 전설을 발표.
1941년
광장리로 이사. 5월 탁류 재판 간행. 3판부터 조선총독부에 의해 발행금지처분을 받음. 장장집 금의 열정이 영창서관에서 간행됨.
1943년
중편집 배비장이 박문서관에서, 단편집 집이 조선출판사에서 간행됨.
1945년
부친이 별세하고 장남이 병사함. 5월 고향인 전북 임피로 내려가 살다가 8.15해방을 맞음. 해방 후에 서대문 충정로로 이사함.
1946년
중편집 허생전이 협동문고에서, 작품집 제향날이 박문출판사에서 간행. 맹순사 미스터 방 논 이야기 처자 등 발표. 고향 전북 임피로 다시 내려감.
1947년
모친 별세. 이리시로 이사. 장편집 아름다운 새벽이 박문출판사에서 간행.
1948년
민족의 죄인을 백민에 발표. 동지사에서 태평천하 간행. 작품집 잘난 사람들이 민중서관에서, 당랑의 전설이 을유문화사에서 간행됨.
1949년
장편집 탁류가 민중서관에서 간행.
1950년
6월 11일 폐결핵으로 이리시 마동에서 영면. 전라북도 옥구군 임피면 축산리 선영에 묻힘.
Ⅳ. 소설가 홍석중
본관은 풍산(豊山)이다. 1941년 9월 23일 서울에서 태어나 1948년 할아버지를 따라 월북하였다. 《임꺽정(林巨正)》의 작가 벽초 홍명희의 손자이며, 아버지는 국어학자 대산 홍기문이다.
1957년에서부터 1964년까지 조선인민군 해군에서 복무한 후, 1969년 김일성종합대학교 어문학부를 졸업하였다. 1970년 단편소설 《붉은 꽃송이》를 발표하였으며, 1979년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작가로 창작활동을 하기 시작하여 꾸준히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대표작으로 대하소설 《높새바람》(1993)을 비롯하여 다수의 작품이 있다.
2004년 소설 《황진이》(평양 문학예술출판사)로 제19회 만해문학상을 받았는데, 이는 남한 측(창작과비평사)이 제정한 문학상에 북한의 작가가 수상한 것은 분단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시상식은 금강산에서 치러졌다.
Ⅴ. 소설가 김동리
김동리 소설을 읽는 사람은 누구나 그의 작품의 많은 부분이 민속적이고 토착적인 소재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작품에 나타난 황토색 짙은 이러한 소재와 풍경이 지니고 있는 참된 뜻을 이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의 작품에 나타난 복잡한 상진 체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왜 그가 이러한 소재를 선택했어야만 했는가의 문제를 밝히는데서 출발해야만 하겠다.
조연현이 기회가 있을 때마다 ‘김동리 문학을 이해하는 데는 일제 말기의 현실적 절망감과 압박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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