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개요
Ⅱ. 단전주선의 성격
Ⅲ. 단선주선의 불교화
Ⅳ. 단전주선의 유래
Ⅴ. 단전주선과 정신수양
참고문헌
Ⅱ. 단전주선의 성격
Ⅲ. 단선주선의 불교화
Ⅳ. 단전주선의 유래
Ⅴ. 단전주선과 정신수양
참고문헌
본문내용
氣論的 수련체계를 제시함으로써 心身일치속에서의 心수련이라는 새로운 차원을 열게되므로 仙佛과 나아가 儒의 만남을 이루는 토대가 형성된다고 본다. 따라서 원불교의 좌선은 단순히 불교의 禪的脈絡에서가 아닌 유불선 삼교의 통종교적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하며, 단전주선법이 갖는 의의도 단전주법이 갖는 기론적 성격과 교리가 갖는 불법주체의 종합적 성격위에서 파악되어야 한다고 본다.
따라서 원불교 단전주선법은 일반적인 단전주선법과 대동소이하나 그 성격을 특징적으로 정리해서 파악 해본다면 대개 다음과 같은 점들을 살펴볼 수 있다. 첫째, 단전주선법은 단전에 마음을 맞춤만이 아닌 단전호흡적 선법으로 大體(相)로 隨息禪法에 類似한다. 물론 구경에는 都放下 한다. 둘째, 심신과 호흡을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하는 無緊張의 선법을 강조한다. 셋째, 入息을 出息보다 조금 길고 강하게 하며 출식은 조금 짧고 약하게 한다. 이는 安般守意經과는 正反對의 입장이다. 넷째, 입식에 有念하는 선법이다. 입식에 유념하느냐 출식에 유념하느냐는 입장에 따라 다르다. 達摩多羅禪經은 入息, 修行道地經은 出入息, 坐禪三昧經은 出入一時의 차이가 있다. 그러나 순서는 입식을 먼저 하는 것이 순리적임을 大毘姿沙論은 설하고 있다. 다섯째, 고른호흡(均息) 즉 靜呼吸, 弱呼吸, 深呼吸에 의한 선법이다. 따라서 단전에 힘을 주는 행위는 坐禪中에는 禁物이다.
Ⅲ. 단선주선의 불교화
ⓐ 그러므로 各各 그 主張과 方便을 따라 혹은 鼻端(코끝)에, 혹은 眉間(두 눈썹사이)에, 혹은 頂上(이마 우)에, 혹은 臍間(배꼽)에, 혹은 氣息(氣息에 住하는 법은 調息과 數息의 두 가지가 있으니 調息은 下에 설한 바와 같고 數息은 들고 나는 숨을 하나로 붙어 열까지 또 하나로 붙어 열가를 세여 숨을 세는 데에 마음을 住하고 앉았음을 이름임)에, 혹은 佛想(마음 가운데 부처님의 端嚴妙相을 一心으로 觀하고 앉았음을 이름함)에, 혹은 月輪(마음 가운데 두렷한 달을 觀하고 앉았음을 이름임)에, 혹은 阿字(阿字에 諸法皆空의 의미를 붙여 直經八寸의 月輪 중에 八葉의 蓮華를 그리고 그 위에 阿字를 置하고 一心으로 觀하고 앉았음을 이름임)에, 혹은 不淨(自身이나 他身이 원래에 不淨함을 觀하고 앉았음을 이름임)에, 혹은 話頭(趙州의 狗者無佛性과 萬法歸一 등의 古祖의 公案을 觀하고 앉았음을 이름임)에, 혹은 照(寂寂惺惺한 眞如體를 貫하고 앉았음을 이름임)에, 혹은 丹田(臍下의 복부를 이름임)에, 혹은 制心(一切法이 다 마음의 分別을 따라 있다 하여 마음이 生한직 곧 제거하고 생한직 또 제거하여 마음에 一法도 취하지 아니하고 앉았음을 이름임)에, 혹은 水想(마음 가운데 맑고 푸른물을 一心으로 觀하고 앉았음을 이름임) 등 이외에도
그 住하는 법이 실로 無量하나, 마음을 頭部나 外境에 住한직 思念이 動하고 氣運이 올나 安靜이 잘 되지 아니하고 마음을 丹田에 住한직 思念이 잘 動하지 아니하고 氣運도 잘 나리게 되여 安靜을 쉽게 얻나니라.
ⓑ 그러므로 白隱禪師(臨濟宗 中興祖로 四十餘人의 法嗣와 다량의 著書가 有함)의 遠羅天釜에 曰,
나의 氣海丹田은 趙州無字며 本來面目이며 唯心의 淨土며 自身의 彌陀며 本分의 家鄕이라(趙州無字라 함은 趙州의 無字話頭法과 丹田住法이 둘이 아니라는 말이오 本來面目이라는 말은 마음을 丹田에 住하여 心行處가 滅한직 이 자리가 곧 우리의 本來面目 자리라는 말이오 唯心의 淨土라는 말은 마음을 丹田에 住하여 邪心雜念이 없은직 이 자리가 곧 極樂淨土라는 말이오 自身彌陀라는 말은 마음을 丹田에 住하여 煩惱妄想이 다한직 이 몸이 곧 阿彌陀佛이라는 말이오 本來의 家鄕이라는 말은 마음을 丹田에 住하여 思量分別이 끊어진직 이 자리가 곧 우리의 生來故鄕이라는 말임)
하여 丹田住를 찬양하였고, 또 夜船閑話에 曰,
正身端坐하여 타오르는 心火를 거두어 丹田에 住한직 답답하든 가슴이 서늘하여지고 일점의 計交思量이 無하게 되리니 이것이 眞觀이오 淸淨觀이라 하였으며, 또 坐禪用心記(本書는 瑩山紹瑾師의 著로서 曺洞宗 聖典에 編入되여 있음)와 飜譯名義集에 曰,
만일 精神이 散亂한직 마음을 丹田에 住하라
하였고 또 道元禪師下 卍庵法語에 曰,
端正히 앉어 숨을 고르는 것이(調息) 坐禪의 要術이니 調息의 방법은 몸을 坐定한 후에 心氣를 氣海丹田에 養함이라 이같이 오래 계속한직 元氣가 자연 充實하여 아랫배가 표주막이나 공(球)과 같이 둥그러지나니라.
하였으며, 이외에 禪門口訣과 永平廣錄 등에도 丹田住를 많이 역설하였나니, 이로써 볼지라도 이 丹田住가 坐禪上 가장 긴요한 法임을 가히 알지니라.
또한 이 丹田住는 坐禪에만 긴요할 뿐 아니라 衛生上으로도 극히 요긴한 법이니 마음을 丹田에 住하고 玉池(혓바닥 밑)에서 나는 물을 많이 생켜나린직 水火가 잘 調和되여 몸에 병고가 감소되고 얼굴이 윤활해지며 元氣가 충실해지고 心丹이 되여 능히 壽命을 安保하나니,
ⓒ 그러므로 저 夜船閑話에 曰,
心地가 아랫배에 다북차 있은직 血液循環이 잘 되고 모든 機官의 기능이 왕성해지며 頭腦가 명석하고 精神이 상쾌하여 邪氣가 감히 침입치 못하는 健康體가 된다.
하였고, 또 修習止觀坐禪法要에 曰,
마음을 丹田에 住하여 흩어지지 않도록 잘 수호한직 百病이 물러난다.
하였으며, 또 摩訶止觀에 曰,
丹田은 이 氣運바다로서 萬病을 다 녹여삼킨다.
하였고, 또 저 卍庵法語에 曰,
精氣가 항상 丹田에 다북차 있은직 無爲堅固하여 不老長命한다.
하였으며, 이외에 圭峰修證義와 印度古典 중에도 또한 이상과 같은 말을 역설 하였나니,
此 丹田住는 禪定上으로나 衛生上으로나 실로 一擧兩得하는 法이니라.
看話禪(話頭를 들고 坐禪함을 이름임)을 주장하는 측에서 혹 이 丹田住法을 들으면 곧 無記의 死禪에 빠진다하여 비난을 하기 쉬우리라. 그러나 간화선은 사람을 따라 임시의 방편은 될지언정 일반적으로 시키기는 어려운 일이니, 만일 話頭만 오래 계속하면 氣運이 올라 病을 얻기가 쉽고 또한 화두에 근본적으로 疑心이 걸리지 않는 자는 禪에 취미를 잘 얻지 못하나니라.
ⓓ 그러므로 西天의 二十八祖師와 東土의 六大祖師와 靑原 南嶽의 諸禪師들도 다 話頭를 말슴치 아니하였나니, 만일 精神이 昏昏해지는 거동이 있은직 곧 눈을 뜨고 精神을 차려 자리를
따라서 원불교 단전주선법은 일반적인 단전주선법과 대동소이하나 그 성격을 특징적으로 정리해서 파악 해본다면 대개 다음과 같은 점들을 살펴볼 수 있다. 첫째, 단전주선법은 단전에 마음을 맞춤만이 아닌 단전호흡적 선법으로 大體(相)로 隨息禪法에 類似한다. 물론 구경에는 都放下 한다. 둘째, 심신과 호흡을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하는 無緊張의 선법을 강조한다. 셋째, 入息을 出息보다 조금 길고 강하게 하며 출식은 조금 짧고 약하게 한다. 이는 安般守意經과는 正反對의 입장이다. 넷째, 입식에 有念하는 선법이다. 입식에 유념하느냐 출식에 유념하느냐는 입장에 따라 다르다. 達摩多羅禪經은 入息, 修行道地經은 出入息, 坐禪三昧經은 出入一時의 차이가 있다. 그러나 순서는 입식을 먼저 하는 것이 순리적임을 大毘姿沙論은 설하고 있다. 다섯째, 고른호흡(均息) 즉 靜呼吸, 弱呼吸, 深呼吸에 의한 선법이다. 따라서 단전에 힘을 주는 행위는 坐禪中에는 禁物이다.
Ⅲ. 단선주선의 불교화
ⓐ 그러므로 各各 그 主張과 方便을 따라 혹은 鼻端(코끝)에, 혹은 眉間(두 눈썹사이)에, 혹은 頂上(이마 우)에, 혹은 臍間(배꼽)에, 혹은 氣息(氣息에 住하는 법은 調息과 數息의 두 가지가 있으니 調息은 下에 설한 바와 같고 數息은 들고 나는 숨을 하나로 붙어 열까지 또 하나로 붙어 열가를 세여 숨을 세는 데에 마음을 住하고 앉았음을 이름임)에, 혹은 佛想(마음 가운데 부처님의 端嚴妙相을 一心으로 觀하고 앉았음을 이름함)에, 혹은 月輪(마음 가운데 두렷한 달을 觀하고 앉았음을 이름임)에, 혹은 阿字(阿字에 諸法皆空의 의미를 붙여 直經八寸의 月輪 중에 八葉의 蓮華를 그리고 그 위에 阿字를 置하고 一心으로 觀하고 앉았음을 이름임)에, 혹은 不淨(自身이나 他身이 원래에 不淨함을 觀하고 앉았음을 이름임)에, 혹은 話頭(趙州의 狗者無佛性과 萬法歸一 등의 古祖의 公案을 觀하고 앉았음을 이름임)에, 혹은 照(寂寂惺惺한 眞如體를 貫하고 앉았음을 이름임)에, 혹은 丹田(臍下의 복부를 이름임)에, 혹은 制心(一切法이 다 마음의 分別을 따라 있다 하여 마음이 生한직 곧 제거하고 생한직 또 제거하여 마음에 一法도 취하지 아니하고 앉았음을 이름임)에, 혹은 水想(마음 가운데 맑고 푸른물을 一心으로 觀하고 앉았음을 이름임) 등 이외에도
그 住하는 법이 실로 無量하나, 마음을 頭部나 外境에 住한직 思念이 動하고 氣運이 올나 安靜이 잘 되지 아니하고 마음을 丹田에 住한직 思念이 잘 動하지 아니하고 氣運도 잘 나리게 되여 安靜을 쉽게 얻나니라.
ⓑ 그러므로 白隱禪師(臨濟宗 中興祖로 四十餘人의 法嗣와 다량의 著書가 有함)의 遠羅天釜에 曰,
나의 氣海丹田은 趙州無字며 本來面目이며 唯心의 淨土며 自身의 彌陀며 本分의 家鄕이라(趙州無字라 함은 趙州의 無字話頭法과 丹田住法이 둘이 아니라는 말이오 本來面目이라는 말은 마음을 丹田에 住하여 心行處가 滅한직 이 자리가 곧 우리의 本來面目 자리라는 말이오 唯心의 淨土라는 말은 마음을 丹田에 住하여 邪心雜念이 없은직 이 자리가 곧 極樂淨土라는 말이오 自身彌陀라는 말은 마음을 丹田에 住하여 煩惱妄想이 다한직 이 몸이 곧 阿彌陀佛이라는 말이오 本來의 家鄕이라는 말은 마음을 丹田에 住하여 思量分別이 끊어진직 이 자리가 곧 우리의 生來故鄕이라는 말임)
하여 丹田住를 찬양하였고, 또 夜船閑話에 曰,
正身端坐하여 타오르는 心火를 거두어 丹田에 住한직 답답하든 가슴이 서늘하여지고 일점의 計交思量이 無하게 되리니 이것이 眞觀이오 淸淨觀이라 하였으며, 또 坐禪用心記(本書는 瑩山紹瑾師의 著로서 曺洞宗 聖典에 編入되여 있음)와 飜譯名義集에 曰,
만일 精神이 散亂한직 마음을 丹田에 住하라
하였고 또 道元禪師下 卍庵法語에 曰,
端正히 앉어 숨을 고르는 것이(調息) 坐禪의 要術이니 調息의 방법은 몸을 坐定한 후에 心氣를 氣海丹田에 養함이라 이같이 오래 계속한직 元氣가 자연 充實하여 아랫배가 표주막이나 공(球)과 같이 둥그러지나니라.
하였으며, 이외에 禪門口訣과 永平廣錄 등에도 丹田住를 많이 역설하였나니, 이로써 볼지라도 이 丹田住가 坐禪上 가장 긴요한 法임을 가히 알지니라.
또한 이 丹田住는 坐禪에만 긴요할 뿐 아니라 衛生上으로도 극히 요긴한 법이니 마음을 丹田에 住하고 玉池(혓바닥 밑)에서 나는 물을 많이 생켜나린직 水火가 잘 調和되여 몸에 병고가 감소되고 얼굴이 윤활해지며 元氣가 충실해지고 心丹이 되여 능히 壽命을 安保하나니,
ⓒ 그러므로 저 夜船閑話에 曰,
心地가 아랫배에 다북차 있은직 血液循環이 잘 되고 모든 機官의 기능이 왕성해지며 頭腦가 명석하고 精神이 상쾌하여 邪氣가 감히 침입치 못하는 健康體가 된다.
하였고, 또 修習止觀坐禪法要에 曰,
마음을 丹田에 住하여 흩어지지 않도록 잘 수호한직 百病이 물러난다.
하였으며, 또 摩訶止觀에 曰,
丹田은 이 氣運바다로서 萬病을 다 녹여삼킨다.
하였고, 또 저 卍庵法語에 曰,
精氣가 항상 丹田에 다북차 있은직 無爲堅固하여 不老長命한다.
하였으며, 이외에 圭峰修證義와 印度古典 중에도 또한 이상과 같은 말을 역설 하였나니,
此 丹田住는 禪定上으로나 衛生上으로나 실로 一擧兩得하는 法이니라.
看話禪(話頭를 들고 坐禪함을 이름임)을 주장하는 측에서 혹 이 丹田住法을 들으면 곧 無記의 死禪에 빠진다하여 비난을 하기 쉬우리라. 그러나 간화선은 사람을 따라 임시의 방편은 될지언정 일반적으로 시키기는 어려운 일이니, 만일 話頭만 오래 계속하면 氣運이 올라 病을 얻기가 쉽고 또한 화두에 근본적으로 疑心이 걸리지 않는 자는 禪에 취미를 잘 얻지 못하나니라.
ⓓ 그러므로 西天의 二十八祖師와 東土의 六大祖師와 靑原 南嶽의 諸禪師들도 다 話頭를 말슴치 아니하였나니, 만일 精神이 昏昏해지는 거동이 있은직 곧 눈을 뜨고 精神을 차려 자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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