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사상적 배경
2) 세계에서의 인간의 위치
3) 인간의 본성
4) 인간과 사회
5) 현대적 의의
2) 세계에서의 인간의 위치
3) 인간의 본성
4) 인간과 사회
5) 현대적 의의
본문내용
거는 인간을 이처럼 현존재라고 바꿔 부름으로써, 그 명칭을 통해서도 인간이 존재와 근원적으로 관계 맺고 있다는 점을 부각시키려 한다. 즉 인간은 언제나 존재와의 연관 속에서만 인간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이데거가 인간을 현존재라고 할 때 노리는 또 하나의 의도는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다”라는 종래의 대표적인 인간규정에 반대하려는 데 있다. 이러한 인간정의는 이성을 종적 본질로 생각하게 만듦으로써 인간의 본질을 인간 각각의 각자성에서 찾을 수 없게 만든다. 인간의 본질을 다른 것에 의거하지 않고 인간의 존재자체에서 찾아야 할 것인데, 그것을 동물이라는 생물성의 차원에서 찾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런 고전적인 정의는 인간의 본질을 인간이 아닌 인간 밖의 어떤 관점에서 찾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중세나 근대에 인간을 신이나 절대정신과 같은 것에 의해 고찰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하이데거에 의하면, 현존재인 인간은 다른 존재자와는 전혀 다른 특이한 존재자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다른 존재자와는 달리 스스로 존재하면서 자기의 존재를 항상 문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날 때부터 특정한 본질이 미리 정해져 있는 존재자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스스로의 존재를 문제 삼을 수 있고 자기의 존재방식에 관심을 가지는 존재자이다. 인간이 자신의 존재를 문제 삼는다는 것은 자신의 현재의 존재방식에 의문을 품고 새로운 존재방식을 모색한다는 뜻이다. 즉 현존재는 존재하면서도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가를 스스로 결정해 가는 존재자이다. 하이데거는 이렇게 자기의 존재를 스스로 문제 삼고 거기에 관심을 쏟는 인간현존재를 실존이라고 한다. 이윤일, 『현대의 철학자들』, p. 161.
한편 현존재는 대단히 중요한 특이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현존재가 자신의 존재와 다른 존재자들의 고유한 존재를 불명료하게나마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존재이해는 오직 현존재만이 지니고 있는 특징이다. 현존재의 존재양식 중 하나가 존재이해라는 말이다. 그리고 하이데거는 현존재의 존재이해라는 존재양식을 분석함으로써 존재일반의 의미를 해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점에서 현존재는 과연 말 그대로 존재가 드러나는 장소인 것이다.
3) 인간의 본성
이처럼 인간은 존재를 이해하는 탁월한 존재자이다. “존재란 무엇인가?”라고 묻는 자(현존재)의 존재를 문제 삼으로써 존재일반을 해명하려는 것은, 하나의 존재자의 존재로부터 존재일반의 존재를 해명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하이데거는 현존재의 실존적 분석이 일반적 존재론을 세우기 위한 기초가 된다는 점에서 기초존재론의 역할을 수행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존재와 시간』의 내용 전체가 기초존재론이라고 할 수 있다.
하이데거는 전통에 도전하는 철학자이며 우리로 하여금 전통을 철저히 사유하도록 촉구함으로써 전통을 극복하려는 것이다.
다음의 인용문은 여기서 문제시되는 상황을 우리에게 직접 알려주고 있다.
존재에 관한 물음이 명백하게 제기되고 이 물음 자체가 아주 투명하게 수행되어야 한다면, 그러한 물음의 논의는 지금까지 설명한 바에 따라 존재를 주시하며 의미를 이해하고 개념적으로 파악하는 방법을 해명하도록 요구하며, 범례적인 존재자를 올바르게 선택할 가능성을 준비하게끔 요구하는 동시에 그러한 범례적인 존재자에게로 접근할 수 있는 참다운 양식을 제시하도록 요구한다. 무엇을 주시함, 무엇에 관하여 이해하고 파악함, 선택함, 무엇에 접근함 등은 물음을 제기하는 구성적 태도이며, 따라서 그 어떤 특정한 존재자, 즉 물음을 제기하는 우리들 자신이기도한 그 존재자의 존재방식들이다. 그러므로 존재물음의 해명은 물음을 제기하는 자인 그 존재자를 투명하게 드러냄을 의미한다. 그때마다 우리 자신이기도 한 그 존재자, 그리고 다른 그 무엇보다도 물음을 제기할 존재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그 존재를 우리는 개념적인 용어로 터있음이라고 표현한다. 존재의 의미에 대해 분명하고 투명하게 물음을 제기하는 것은 존재자를(터있음을) 그의 존재(있음)라는 관점에서 우선 적절하게 해명해야 함을 요구한다.
위에서 인용한 텍스트에서 우리는 ‘왜 존재물음의 논의가 물음을 제기하는 자의 분석에서, 다시 말해 터있음의 분석에서 출발해야 하는지’를 경험하게 된다. 만일 우리가 물음을 제기하는 자의존재가 어떠한 방식으로 있는지를 사전에 미리 알고 있지 못하다면 우리는 그러한 물음을 사태에 맞게 전개할 수 없을 것이다. 터있음의 분석론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인간한적 탐구나 심리학적 탐구 혹은 사회학적 탐구가 아니라 오로지 존재에 관한 물음을 제기할 수 있는 자가 어떠한 본질로 존재하는지를 알도록 촉구하는 그 요구인 것이다. 그러한 본질은 이미 특정한 존재이해에 의하여 특정 지어진 본질이다. 그러한 물음의 논구는, 다른 존재자(눈 앞의 존재자, 손 안의 존재자)와는 구별되는 존재자(터있음)의 특정한 존재양식을 밝히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존재물음을 논의하면서 이중적인 과제란 과연 어떤 것인가? 첫째는 터있음을 철저히 분석하는 일이며, 둘째는 존재론의 역사를 해체하는 일이다.
첫째 문재는 바로 우리 자신ㄴ이 터있음으로 실존함을 가리킨다. 우리의 존재 속에는 우리 자신이 언제나 특정한 존재이해 안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 속해 이있다. 그러므로 터있음에 대해서 어떠어떠하다고 진술하는 일이 겉으로는 쉬워보일지 모르겠으나,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우리는 언제나 어떤 식으로든지 우리의 ‘세계’로서 관계를 맺어가는, 우리자신이 아닌 저 다른 존재자로부터 우리 자신을 이해하고자 시도한다. 터있지 않은 존재자(사물적 존재자)는, 그것이 이해의 모델로서 우리에게 비추어짐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우리 자신을 그 모형에 따라 파악할 수 없게 한다. 인간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보다는 오히려 자기가 교섭하는 사물에 대해서 보다 더 잘 알고 있다.
우리는 터있음 자체를 일상성에서, 다시 말해 우선적으로 그리고 대개 존재하는 바 그대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바로 여기에는 우리가 어떤 관념적인 구상에서가 아니라 보통 습관적으로 살아가는 인간의 존재방식으로부터 인간을 파악해야 한다는 형이상학적인 요구가 숨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요구는 관계
그런데 하이데거에 의하면, 현존재인 인간은 다른 존재자와는 전혀 다른 특이한 존재자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다른 존재자와는 달리 스스로 존재하면서 자기의 존재를 항상 문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날 때부터 특정한 본질이 미리 정해져 있는 존재자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스스로의 존재를 문제 삼을 수 있고 자기의 존재방식에 관심을 가지는 존재자이다. 인간이 자신의 존재를 문제 삼는다는 것은 자신의 현재의 존재방식에 의문을 품고 새로운 존재방식을 모색한다는 뜻이다. 즉 현존재는 존재하면서도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가를 스스로 결정해 가는 존재자이다. 하이데거는 이렇게 자기의 존재를 스스로 문제 삼고 거기에 관심을 쏟는 인간현존재를 실존이라고 한다. 이윤일, 『현대의 철학자들』, p. 161.
한편 현존재는 대단히 중요한 특이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현존재가 자신의 존재와 다른 존재자들의 고유한 존재를 불명료하게나마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존재이해는 오직 현존재만이 지니고 있는 특징이다. 현존재의 존재양식 중 하나가 존재이해라는 말이다. 그리고 하이데거는 현존재의 존재이해라는 존재양식을 분석함으로써 존재일반의 의미를 해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점에서 현존재는 과연 말 그대로 존재가 드러나는 장소인 것이다.
3) 인간의 본성
이처럼 인간은 존재를 이해하는 탁월한 존재자이다. “존재란 무엇인가?”라고 묻는 자(현존재)의 존재를 문제 삼으로써 존재일반을 해명하려는 것은, 하나의 존재자의 존재로부터 존재일반의 존재를 해명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하이데거는 현존재의 실존적 분석이 일반적 존재론을 세우기 위한 기초가 된다는 점에서 기초존재론의 역할을 수행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존재와 시간』의 내용 전체가 기초존재론이라고 할 수 있다.
하이데거는 전통에 도전하는 철학자이며 우리로 하여금 전통을 철저히 사유하도록 촉구함으로써 전통을 극복하려는 것이다.
다음의 인용문은 여기서 문제시되는 상황을 우리에게 직접 알려주고 있다.
존재에 관한 물음이 명백하게 제기되고 이 물음 자체가 아주 투명하게 수행되어야 한다면, 그러한 물음의 논의는 지금까지 설명한 바에 따라 존재를 주시하며 의미를 이해하고 개념적으로 파악하는 방법을 해명하도록 요구하며, 범례적인 존재자를 올바르게 선택할 가능성을 준비하게끔 요구하는 동시에 그러한 범례적인 존재자에게로 접근할 수 있는 참다운 양식을 제시하도록 요구한다. 무엇을 주시함, 무엇에 관하여 이해하고 파악함, 선택함, 무엇에 접근함 등은 물음을 제기하는 구성적 태도이며, 따라서 그 어떤 특정한 존재자, 즉 물음을 제기하는 우리들 자신이기도한 그 존재자의 존재방식들이다. 그러므로 존재물음의 해명은 물음을 제기하는 자인 그 존재자를 투명하게 드러냄을 의미한다. 그때마다 우리 자신이기도 한 그 존재자, 그리고 다른 그 무엇보다도 물음을 제기할 존재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그 존재를 우리는 개념적인 용어로 터있음이라고 표현한다. 존재의 의미에 대해 분명하고 투명하게 물음을 제기하는 것은 존재자를(터있음을) 그의 존재(있음)라는 관점에서 우선 적절하게 해명해야 함을 요구한다.
위에서 인용한 텍스트에서 우리는 ‘왜 존재물음의 논의가 물음을 제기하는 자의 분석에서, 다시 말해 터있음의 분석에서 출발해야 하는지’를 경험하게 된다. 만일 우리가 물음을 제기하는 자의존재가 어떠한 방식으로 있는지를 사전에 미리 알고 있지 못하다면 우리는 그러한 물음을 사태에 맞게 전개할 수 없을 것이다. 터있음의 분석론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인간한적 탐구나 심리학적 탐구 혹은 사회학적 탐구가 아니라 오로지 존재에 관한 물음을 제기할 수 있는 자가 어떠한 본질로 존재하는지를 알도록 촉구하는 그 요구인 것이다. 그러한 본질은 이미 특정한 존재이해에 의하여 특정 지어진 본질이다. 그러한 물음의 논구는, 다른 존재자(눈 앞의 존재자, 손 안의 존재자)와는 구별되는 존재자(터있음)의 특정한 존재양식을 밝히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존재물음을 논의하면서 이중적인 과제란 과연 어떤 것인가? 첫째는 터있음을 철저히 분석하는 일이며, 둘째는 존재론의 역사를 해체하는 일이다.
첫째 문재는 바로 우리 자신ㄴ이 터있음으로 실존함을 가리킨다. 우리의 존재 속에는 우리 자신이 언제나 특정한 존재이해 안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 속해 이있다. 그러므로 터있음에 대해서 어떠어떠하다고 진술하는 일이 겉으로는 쉬워보일지 모르겠으나,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우리는 언제나 어떤 식으로든지 우리의 ‘세계’로서 관계를 맺어가는, 우리자신이 아닌 저 다른 존재자로부터 우리 자신을 이해하고자 시도한다. 터있지 않은 존재자(사물적 존재자)는, 그것이 이해의 모델로서 우리에게 비추어짐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우리 자신을 그 모형에 따라 파악할 수 없게 한다. 인간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보다는 오히려 자기가 교섭하는 사물에 대해서 보다 더 잘 알고 있다.
우리는 터있음 자체를 일상성에서, 다시 말해 우선적으로 그리고 대개 존재하는 바 그대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바로 여기에는 우리가 어떤 관념적인 구상에서가 아니라 보통 습관적으로 살아가는 인간의 존재방식으로부터 인간을 파악해야 한다는 형이상학적인 요구가 숨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요구는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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