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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개요

Ⅱ. 친일문학의 역사

Ⅲ. 친일문학의 연속성과 비연속성

Ⅳ. 친일문학의 인식
1. 친일문학에 대한 개념을 묻는 질문
2. 친일문인에 대한 인지도를 묻는 질문
3. 구체적인 친일문학작품에 대한 인지도
4. 친일문학을 창작한 주된 이유에 대한 생각
5. 본인의 친일문인이었다는 가정 질문

Ⅴ. 친일문학과 친일문인(친일작가)
1. 이광수
2. 주요한
3. 최남선

Ⅵ. 친일문학과 친일시

참고문헌

본문내용

어넣는다. 그들은 전근대적인 모랄을 근대적인 개념과 충돌시켜 지양하는 것이 아니라 애써 숨기며, 하여 자신의 개념적 통일성 혹은 총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친숙한 경험이나 자연스러운 감정을 적대시한다. 그들의 의식 내부에서는 이처럼 전근대와 근대, 생산과 소비, 감정과 의식, 감각적 경험내용과 추상적 사유, 개별성과 보편성, 현상과 가상, 눈앞의 현실과 다가올 미래 사이의 분열이 자주, 그리고 심각하게 나타날 뿐만 아니라 이 분열된 양자는 변증법적 통일과정을 거쳐 고차의 단계로 지양되는 대신에 주기적으로 반복되어 나타난다. 한마디로 한국근대문학은, 대부분의 저개발국가나 식민지 국가의 문학 전반이 그러하듯, 편협해 보이는 민족적 전통과 과감하게 그 전통을 뿌리치고 나온 새로운 양식의 뿌리없는 코스모폴리탄 의식 사이에서 심각한 갈등을 경험할 뿐만 아니라 그 갈등을 코스모폴리탄 의식을 선택하는 것으로 해결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친일문학론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먼 길을 돈 셈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앞서 이야기했듯 친일문학론이 이러한 한국근대문학의 장의 구조와 동질적이기 때문이다. 즉 친일문학론의 보다 궁극적인 동인은 한 개인의 훼절이 아니라 이러한 한국근대문학이 행한 자기운동의 필연적인 과정인 것이다. 이제 최재서를 통해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Ⅳ. 친일문학의 인식
1. 친일문학에 대한 개념을 묻는 질문
‘일제 강점기의 이른바 ‘친일문학(親日文學)’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라는 친일문학의 개념을 묻는 질문에서는 ‘사람’, ‘내용’, ‘언어’를 기준으로 한 선다형 문항으로 구성하였다.
조사결과 인물과 내용을 기준으로 한 ‘친일파가 창작한 문학작품 중에서 친일의 내용을 담은 문학작품’을 친일문학으로 이해하고 있는 비율이 39.66%로 가장 높았으며, 다음은 ‘내용을 기준으로 한 ‘누가 창작했든 친일의 내용을 담은 문학작품이다.’라는 응답이 뒤를 따랐다.
세부적으로 보면 중고생들의 경우는 ‘인물’보다는 ‘내용’을 기준으로 친일문학을 인지하고 비율이 약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구체적인 친일문인을 잘 알고 있지 못하고 있는 데서 기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2. 친일문인에 대한 인지도를 묻는 질문
‘본인이 알고 있는 친일문인을 적어주십시오.’라는 친일문인에 대한 인지도를 묻는 개방형 질문 결과 대상인원의 53명 대부분이 친일문인을 구체적으로 알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광수를 답한 6명이 모두 현직 국어교사임을 고려할 때 친일문인을 구체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없다고 결론을 내려도 무방할 듯 하다. 이러한 결과는 구체적인 친일문학작품은 몰라도 ‘유명한 문인들의 상당수가 친일문인’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을 것이라는 연구자의 가설과도 차이가 있는 것으로 친일파의 문제가 사회적으로 민감한 사안임을 대변해 주고 있다.
3. 구체적인 친일문학작품에 대한 인지도
친일문인에 대한 낮은 인지도는 자연스럽게 구체적인 친일문학 텍스트의 인지도에도 영향을 끼친다. 구체적인 친일문학 텍스트를 적어달라는 개방형 질문에서 대상 인원의 53명 전원이 구체적인 친일문학작품을 적지 못하였다. 이러한 결과는 사전에 예견된 것이었으며 본 연구의 문제의식과도 맥을 같이한다. 유명한 문인들이 친일 행위를 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국어교사들도 구체적인 친일문학작품을 접할 기회는 거의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4. 친일문학을 창작한 주된 이유에 대한 생각
‘친일문학을 창작한 주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서는 ‘개인의 부(富)와 명예를 위해서라는 응답이 압도적으로 많았으며 흔히 친일파의 변명으로 치부되는 ’일제의 탄압에 의해 어쩔 수 없어서라는 응답은 가장 저조하였다. 또 대학생이나 교사집단에서는 ‘일본제국주의의 사상과 이념에 동조해서’라는 응답도 높은 비율을 차지하였다. 전반적으로 친일문학을 창작하는 이유는 사회적인 요인보다는 작가 개인의 도덕적인 신념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인지하는 경향임을 알 수 있다.
5. 본인의 친일문인이었다는 가정 질문
‘본인이 일제 강점기의 문인이라면 어떻게 했을까요?’라는 질문에 대한 응답은 ‘순수문학 작품만 창작한다.’라는 응답이 가장 높게 나왔으나 특정 경향을 나타내지는 않았다. 대부분의 선택지가 20% 안팎의 비율로 골고루 선택되었다. ‘작품을 쓰지 않는다.’는 응답은 대학생과 교사집단에서 비교적 높게 나왔으며 중고생 집단에서는 ‘일제에 적극적으로 저항하는 작품을 창작한다.’라는 반응이 가장 높게 나오기도 했지만, ‘일본의 강압에 어쩔 수 없이 친일문학 작품을 창작했을 것이다’라는 소극적인 응답도 적지 않았다.
Ⅴ. 친일문학과 친일문인(친일작가)
1. 이광수
널리 알려진 대로 이광수는 육당 최남선과 함께 한국 근대문학의 초창기 때부터 등장활약한 선구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동경 유학 중 31운동의 기폭제를 만든 <28독립선언문>을 기초한 사람이다. 이러한 이광수가 친일 쪽으로 그 행동양태를 옮기기 시작한 것은 ‘동우회사건’을 겪고 나서부터다.
이광수가 최남선과 함께 징병학병 권유에 앞장 선 일은 널리 알려진 대로다. 한때 그는 일본 본토에까지 가서 그곳의 우리 유학생들에게 성전완수(聖戰完遂)를 위해 용약 출정하라고 강연했다. 또한 그는 논설들을 통해서도 이런 류의 발언을 거듭했다. 일제가 징병제를 공포하자, 그는 천황폐하의 완전한 적자(赤子)가 되기 위해서 징병제를 감읍(感泣)하며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는 글을 썼다. 뿐만 아니라 일본어를 일제가 국어로 강요한 일에 대해서도 이광수는 “우리들의 천황이 사용하시는 말을 우리 국어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여기서 그가 태평양전쟁 발발을 기념해서 쓴 <宣戰大詔>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美國과 英國을 쳐라’
하옵신 大詔를 나리시다
十二월 八일 해뜰 때
빛나는 昭和十六年
하와이 眞珠灣에
적막을 때리는 皇軍의 척 벽력
웨스트 버지지니어와 오클라호마
太平洋 美艦隊 부서지다.
이어서 치는 南洋의 海空陸
프린스업웨일즈 英艦隊 旗艦
앵글의 죄악과 運命을 안고
구안탄 바다 깊이 스러져 버리다.
아시아의 聖域 은 원래
天孫 民族이 번영할 基業
앵글의 발에 더렵
  • 가격6,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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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3.07.29
  • 저작시기2021.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8667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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