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서원(퇴계이황 선생의 가르침이 남아 있는 곳) 답사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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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도산서원(퇴계이황 선생의 가르침이 남아 있는 곳) 답사 보고서 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목차
1. 답사를 떠나기 전에
1) 도산서원
2) 퇴계 이황

2. 도산서원에 가다
1) 시사단(試士壇)
2) 열정(冽井)
3) 몽천(蒙泉)
4) 도산서당(陶山書堂)
5) 정우당(淨友壇)
6) 절우사(節友社)
7) 매화원(梅花園)
8) 농운정사(濃雲精舍)
9) 광명실(光明室)
10) 전교당(典敎堂)
11) 상덕사(尙德祠)
12) 전사청(典祀廳)
13) 장판각(藏板閣)
14) 고직사(庫直舍)
15) 옥진각(玉振閣)
16) 역락서재(亦樂書齋)

3. 답사를 마치며

본문내용

다고 한다.이 물을 마시면 바로 지혜로워질 것 같았다.
4) 도산서당(陶山書堂)
유정문으로 도산서당이 보인다.
퇴계 선생께서 4년에 걸쳐 지으신 건물로 몸소 거처하시면서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이라고 한다.거처하시던 방은 '완락재(玩樂齋)'라 하였고,마루는 '암서헌(巖栖軒)'이라 하였다고 한다.
선생은 엎드림으로 즐김이 만져지는 집이라고 ‘완락재’, 바위에 깃들여서 조그마한 효험이라도 붙잡으리라 다짐하면서 ‘암서현’이라 이름하였다고 한다. 나도 앉아보았다. 그분의 가르침이 들리는 듯 했다.
5) 정우당(淨友壇)
뜰에는 정우당(淨友壇)이 있다.
퇴계 선생은 꽃 중에 군자라는 연꽃을 심어 정우당이라 하였다.연꽃은 진흙탕에 살면서도 몸을 더럽히지 아니하고,속은 비고 줄기는 곧아 남을 의지하지 않으며,향기는 멀수록 맑다.그 연꽃을 못봐서 아쉬웠다.
6) 절우사(節友社)
동쪽 건너편에는 절우사(節友社)가 있다.
선생께서 매화, 대나무, 국화, 소나무 등을 몸소 심어 가꾸시던 화단이라고 한다.
7) 매화원(梅花園)
도산서당 서쪽문으로 나가면 길 가에 매화원이 보인다.
매화를 사랑했던 퇴계 선생, 매화의 청진고절(淸眞苦節)때문이 아닐까? 그 순수함과 꿋꿋함 을 못봐서 또 한번 아쉬웠다.
8) 농운정사(濃雲精舍)
매화원을 지나면 농운정사(濃雲精舍)가 있다.
제자들이 공부하던 기숙사다. 선생께서 제자들에게 공부에 열중하기를 권장하는 뜻에서 한자(漢字)의 \'工\'자 모양으로 짓도록 하였다고 한다 .공부하던 동편 마루를 \'시습재(時習齋)\'라 하였고, 휴식하던 서편 마루를 \'관란헌(觀瀾軒)\'이라 하였다.
시습, 때 맞춰 익히라는, 관란, 날마다 끊임없이 반복하라는 퇴계 선생의 깊은 뜻이 담겨져있다고 한다.
9) 광명실(光明室)
위로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광명실이 있다.
책을 보관하는 서고(書庫)로서 현판은 퇴계 선생의 친필이라고 한다.동,서 두 곳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습해(濕害)를 방지하기 위하여 누각식으로 지었다고 한다.광명(光明)은 "많은 책이 서광(瑞光)을 비추어 준다"는 뜻이라고 한다.가운데 진도문, 곧 도로 들어가는 문 이문을 통과하면 도에 이를 것만 같다.
진도문을 나서면 먼 길이 펼쳐질 것만 같다.
문을 들어가서 좌우에는 도산서원의 유생들이 거처하면서 공부하던 건물로 동재(東齋)인 박약재(博約齋)와 서재(西齋)인 홍의재(弘毅齋)가 서로 마주보고 있다.
 
박약재와 홍의재는 ‘박약문례’의 준말로 널리 글을 배우고 예로 단속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사이에 전교당이 있다.
10) 전교당(典敎堂)
이 건물은 퇴계 이황을 추모하는 도산서원의 강당에 해당된다.전교당은 조선 선조7년(157년)에 건립되었다고 한다.건물의 구조는 매우 간소하며 대청(大廳)과 거실(居室)인 온돌방으로 구성되었다.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집인데, 강당인 대청과 거실인 온돌방(한존재,閑存齋)로 구성되었다.대청의 전면은 개방되어 있으나 측면과 배면에는 각 칸마다 쌍여닫이문을 두었다.쪽마루는 건물 뒷면의 대청 뒷부분과 온돌방의 오른편에만 설치하였다.대청의 윗부분은 연등천장으로 되어 있다.선조가 이름을 내린 현판(懸板)의 글씨는 명필인 석봉 한호가 쓴 글씨라고 한다.유생들의 책장 넘기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11) 상덕사(尙德祠)
뒤편에 있는 삼문을 지나면 상덕사가 있다고 했는데 가보지는 못했다.
12) 전사청(典祀廳)
상덕사의 부속건물로 전사청이 있는데 전사청은 상덕사에서 향사를 지낼 때 제수(祭需)를 마련하여 두는 곳으로 제수청(祭需廳)과 주고(酒庫)가 있다.
13) 장판각(藏板閣)
장판각도 있다. 장판각은 서원에서 찍어낸 책의 목판본을 보관하는 장소라고 한다.선조어필(宣祖御筆),퇴계선생문집(退溪先生文集),유묵(遺墨),언행록(言行錄),병서(屛書),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등의 목판 2,790장을 보관해 오다가 보존과 학술연구를 위해 한국국학진학원으로 이관하였다고 한다.텅 비어있었지만 학문들이 살아 숨 쉬고 있을 것이다.
14) 고직사(庫直舍)
또 서원을 관리하는 수호인(守護人)들의 살림집으로 상,하에 고직사(庫直舍)가 있다.
15) 옥진각(玉振閣)
서쪽 광명실 계단으로 내려오면 옥진각이 있다.
옥진각은 유물전시관으로 덕을 널리 전파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16) 역락서재(亦樂書齋)
마지막으로 역락서재를 보았다. 
퇴계 선생께서 도산서당에서 학문을 강론할 때 정사성을 비롯한 제자들이 힘을 모아 세웠다고 한다.역락서재는 논어에서 인용한 것으로 먼 곳에서 글벗이 찾아오는 것을 즐겁게 여긴다는 뜻으로 현판의 글씨는 퇴계 선생의 친필이라고 한다.
3. 답사를 마치며
이번 답사를 통해 자연과 의사소통도 해보고 또 한국고전문학사에 대해서도 조금이나마 더 알아가서 좋았다. 무엇보다 도산서원에 가서 직접 보고 배울 수 있는 기쁨이 컸고 나의 설렘과는 반대로 모든 것이 낮기만 한 그 곳에서 퇴계의 몸가짐과 마음가짐을 조금 더 알아가서 좋았다. 글을 가르치는 선생은 만나기 쉬우나 사람됨을 가르치는 스승은 만나기 어렵다고 했는데 퇴계는 바로 그런 선생이셨을 것이다. 낮지만 더 큰 배움터, 그 곳에서 흘러가는 것들 속에 흘러감만은 변하지 않음을 알았다. 퇴계 선생은 제자들에게 배운 것을 날마다, 때마다 끊임없이 반복하고 또 반복하라고 가르치셨는데 나는 그렇게 하고 있는가? 그분은 또 “알면서 실천하지 않으면 참된 앎이 아니다.” 라고 하셨는데 아는 만큼도 행하지 못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한국정신문화의 성지 - 도산서원이 그리고 담은 퇴계의 모든 것, 그것들은 내가 한번 가서 보고 다 깨달아 알기 어렵고 사진으로 다 담아내기 다소 민망한(?) 것 들이었다. 날씨도 춥고 시간도, 마음도 다 급해서 이번 답사는 ‘수박 겉 핥기’가 되었지만 다음엔 다른 계절에 와서 좀 더 여유로운 마음과 좀 더 넓어진 시각으로 도산서원의 속살을 보고야 말겠다. 몸은 지쳤지만 이 답사에 성실하게 임한것 같아서 마음은 가볍고 뿌듯하다.
참고문헌
이우성 저, 도산서원, 한길사 2001
김석 저, 도산서원 가는길, 선 2003
윤천근 저, 퇴계선생과 도산서원, 지식산업사 1999
정만조, 정순우 외 저, 도산서원과 지식의 탄생, 글항아리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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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3.09.27
  • 저작시기20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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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8826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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