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목차
1) 해석자를 인도하는 구체적인 원리
(1) 좋은 도구의 능숙한 사용
(2) 문맥 안에서 성경이 말하는 것
(3) 문법의 마력
(4) 어휘 연구 - 엘 도라도
(5) 문자적 의미와 비유적 의미의 구분
(6) 점진적 계시: 하나님의 단계적인 드러내심
(7) 성경으로 성경 해석하기
(8) 성경의 관습
2) 후기
참고문헌
1) 해석자를 인도하는 구체적인 원리
(1) 좋은 도구의 능숙한 사용
(2) 문맥 안에서 성경이 말하는 것
(3) 문법의 마력
(4) 어휘 연구 - 엘 도라도
(5) 문자적 의미와 비유적 의미의 구분
(6) 점진적 계시: 하나님의 단계적인 드러내심
(7) 성경으로 성경 해석하기
(8) 성경의 관습
2) 후기
참고문헌
본문내용
진지하다는 것을 확신해야 한다. 그러고자 한다면 좋은 도구를 사용해야 한다. 이런 관점으로 훈련된 사람은 하나님 말씀을 해석하는 건전한 원리들을 사용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2) 문맥 안에서 성경이 말하는 것
설교자가 성경 본문이 말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바가 본문이 실제로 말하고 있는 것과 매우 다를 수 있다. 어떤 이는 요나가 큰 물고기의 뱃속에서 일단 죽었어야 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여기서 주장되는 불가피성은 요나서가 명확히 말하고 있는 것에 근거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요나에 대한 자신의 추측과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 속에 있으리라.”는 마태복음 12장 40절의 예수님 말씀에 근거한 것이다. 예수님은 실제 죽으셨다. 그러므로 요나도 죽어야 했다는 논리이다. 그럴 때만이 요나의 경험이 예수님의 ‘모형’이자 완전한 유추가 될 수 있다고 이 이론은 주장한다.
그러나 두 문맥 어디서도 이런 필연성이 뒷받침되지 않는다. 요나서 2장 어디에도 선지자가 죽었다는 말이 없다. 문맥은 그가 분명 비탄에 잠겨 있긴 했지만 죽지 않고 살아 있음을 나타내는 표현들로 가득하다. 마태복음 12장 39절의 “선지자 요나의 표적”이란 말은 어떻게 요나가 표적이 되었는가(12:40)에 대한 유추를 준비시켜준다. 40절의 요점은 삼일 낮밤이라는 시간적인 요소를 두드러지게 만드는 것이다. 이 기간은 요나의 잠수함 같은 여행에도 명시돼 있다(욘 1:17). 예수님은 요나가 물고기 안에 있었다고 말씀하셨지만 그의 죽음을 말씀하시지는 않는다. 그것은 요나가 의식을 갖고 있었음을 보여 주는 요나서 2장의 문맥과도 일치한다. 요나의 죽음을 이 유추의 필수 요소로 주장하지 않는 것이 낫다. 해석자가 주장할 수 있는 유추는 똑같은 시간의 측면이다. 그런 뒤 “삼일 낮밤”이 당시 문화 속에서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발견할 필요가 있다.
강해 설교자는 본문의 문맥이 명확히 말하고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한 모든 실마리를 관찰해야 한다. 그는 형사 콜롬보가 사건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뒤지는 것처럼 성경 본문 안에서 증거를 찾아야 한다. 자신의 상상에서 시작된 결론 속으로 뛰어드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다뤄진 실마리에서 설교자는 요점을 발견할 것이다.
하나님의 종이 문맥에서 찾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많은 것이다! 아니, 모든 것이다! ‘그리고’, ‘그러므로’, ‘왜냐하면’과 같은 접속사를 보는가? 이 단어들은 무엇을 나타내는가? 단어의 시제가 뜻하는 것은 무엇인가?
문맥에서 어떤 일정한 유형이나 연속성을 찾아낼 수 있는가? 예를 들면 에베소서 5장 19~21절에 등장하는 5개의 분사들은 “술 취하지 말고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엡 5:18)는 바울의 명령 뒤에 나오고 있다. 이 일련의 분사들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이며 본문의 많은 요소들에 기초해 문맥의 흐름에 가장 일치하는 견해는 무엇인가? 이 분사들이 18절의 명령과 어떻게 가장 잘 연관이 되는가?
어떤 요점을 강조하기 위해 특정 단어가 반복되고 있는가? 설교자는 두 아들의 비유 끝에(마 21:32) 나오는 구절에서 “믿는다.”는 말을 세 번 발견할 것이다. 여기에 중요한 의미가 있는가? 이것이 비유와는 어떤 관련이 있는가?
설교자는 모든 것을 보는 ‘눈’이 되고 모든 것을 듣는 순종하는 ‘귀’가 되는 일에 인도자가 될 수 있다. 그는 문맥에서 대조되는 것, 예를 들면 술 취하지 말라는 말과 성령의 충만을 얻으라는 말 같이 서로 대조를 이루는 것을 고찰한다. 이와 같은 유형에 들어맞는 다른 대조 구문이 있는가를 찾는다. 이런 대조가 다른 구절 혹은 다른 단락 혹은 서신 전체와 어떤 관계가 있는가를 알기 위해 연구한다.
설교자는 형용사에 대한 집요한 검토 역시 피해서는 안 된다. 그 구절이 ‘성령’을 가리키는가 아니면 단순한 ‘영’을 말하는가? 어떤 어구가 하나님의 성령을 가리키는지와 그에 대한 문맥적 증거를 규정하는 것에서 설교자는 유익을 얻을 수 있다. 그는 근접 문맥, 서신 전체(에베소서)의 문맥, 동일 저자가 쓴 책 전체(바울 서신)의 문맥, 신약 전체 혹은 성경 전체의 문맥을 조사함으로써 하나님의 성령을 가리키는 여러 방식들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모든 문장 요소를 샅샅이 조사하는 동시에 설교자는 문맥의 세부사항을 지배하는 전체 요점을 찾는 것을 놓쳐서는 안 된다. 예를 들면 성령의 충만(엡 5:18)은 신자의 영적 부유함(1~3장)에서 생겨나는 신자의 행위(4~6장)라는 더 큰 주제 속에 포함된다. 문맥에서 “행하다”는 단어가 반복(4:1, 17, 5:1, 8, 15)되는 점이 이를 나타낸다. 성령 충만을 받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마땅한 행위의 일부이다. 그리스도인은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연합하는 가운데(엡 4:1~16), 거룩함으로(17~32절), 사랑으로(5:1~6), 빛 가운데(7~17절) 그리고 성령 안에서(5:18~6:20) 행해야 한다. 바울의 다른 서신들이나 신약 전체, 혹은 성경 전체를 찾아보면, 하나님의 영이 이런 연합과 거룩함 등의 삶을 촉진한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에베소서의 문맥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면, 설교자는 다른 것도 발견한다. 성령 안에서 행하는 것은 성령 충만한 삶(5:18)이고, 그것은 교회와 가정과 직장생활로 흘러 들어간다(5:19~6:9). 그것은 또한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하는 영적 싸움(6:10~17)이며, 기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과 성도들의 교제(18~20절)이기도 하다.
문맥의 이런 요소들은 더 광대한 보화를 얼핏 들여다 본 것에 불과하다. 동기부여가 된 말씀의 종은 문맥을 계속해서 살피려고 할 것이다. 이런 근면이 그가 성경의 금덩어이를 발견하고 심지어는 광맥을 캐내도록 도울 것이다. 그는 종종 발견의 기쁨에 소리 지를 것이다. 설교자 자신만의 “유레카!”를 가질 것이다. 그는 “알았다! 이것을 알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라!”하고 외칠 것이다.
(3) 문법의 마력
성경 강해자는 본문에서 하나님이 의도하신 의미를 파악하는 것을 돕는 데 문법의 진실한 친구가 된다는 사실을 발견할 것이다. 문법 그 자체를 목적으로 생각하여 열중하느라
(2) 문맥 안에서 성경이 말하는 것
설교자가 성경 본문이 말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바가 본문이 실제로 말하고 있는 것과 매우 다를 수 있다. 어떤 이는 요나가 큰 물고기의 뱃속에서 일단 죽었어야 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여기서 주장되는 불가피성은 요나서가 명확히 말하고 있는 것에 근거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요나에 대한 자신의 추측과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 속에 있으리라.”는 마태복음 12장 40절의 예수님 말씀에 근거한 것이다. 예수님은 실제 죽으셨다. 그러므로 요나도 죽어야 했다는 논리이다. 그럴 때만이 요나의 경험이 예수님의 ‘모형’이자 완전한 유추가 될 수 있다고 이 이론은 주장한다.
그러나 두 문맥 어디서도 이런 필연성이 뒷받침되지 않는다. 요나서 2장 어디에도 선지자가 죽었다는 말이 없다. 문맥은 그가 분명 비탄에 잠겨 있긴 했지만 죽지 않고 살아 있음을 나타내는 표현들로 가득하다. 마태복음 12장 39절의 “선지자 요나의 표적”이란 말은 어떻게 요나가 표적이 되었는가(12:40)에 대한 유추를 준비시켜준다. 40절의 요점은 삼일 낮밤이라는 시간적인 요소를 두드러지게 만드는 것이다. 이 기간은 요나의 잠수함 같은 여행에도 명시돼 있다(욘 1:17). 예수님은 요나가 물고기 안에 있었다고 말씀하셨지만 그의 죽음을 말씀하시지는 않는다. 그것은 요나가 의식을 갖고 있었음을 보여 주는 요나서 2장의 문맥과도 일치한다. 요나의 죽음을 이 유추의 필수 요소로 주장하지 않는 것이 낫다. 해석자가 주장할 수 있는 유추는 똑같은 시간의 측면이다. 그런 뒤 “삼일 낮밤”이 당시 문화 속에서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발견할 필요가 있다.
강해 설교자는 본문의 문맥이 명확히 말하고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한 모든 실마리를 관찰해야 한다. 그는 형사 콜롬보가 사건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뒤지는 것처럼 성경 본문 안에서 증거를 찾아야 한다. 자신의 상상에서 시작된 결론 속으로 뛰어드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다뤄진 실마리에서 설교자는 요점을 발견할 것이다.
하나님의 종이 문맥에서 찾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많은 것이다! 아니, 모든 것이다! ‘그리고’, ‘그러므로’, ‘왜냐하면’과 같은 접속사를 보는가? 이 단어들은 무엇을 나타내는가? 단어의 시제가 뜻하는 것은 무엇인가?
문맥에서 어떤 일정한 유형이나 연속성을 찾아낼 수 있는가? 예를 들면 에베소서 5장 19~21절에 등장하는 5개의 분사들은 “술 취하지 말고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엡 5:18)는 바울의 명령 뒤에 나오고 있다. 이 일련의 분사들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이며 본문의 많은 요소들에 기초해 문맥의 흐름에 가장 일치하는 견해는 무엇인가? 이 분사들이 18절의 명령과 어떻게 가장 잘 연관이 되는가?
어떤 요점을 강조하기 위해 특정 단어가 반복되고 있는가? 설교자는 두 아들의 비유 끝에(마 21:32) 나오는 구절에서 “믿는다.”는 말을 세 번 발견할 것이다. 여기에 중요한 의미가 있는가? 이것이 비유와는 어떤 관련이 있는가?
설교자는 모든 것을 보는 ‘눈’이 되고 모든 것을 듣는 순종하는 ‘귀’가 되는 일에 인도자가 될 수 있다. 그는 문맥에서 대조되는 것, 예를 들면 술 취하지 말라는 말과 성령의 충만을 얻으라는 말 같이 서로 대조를 이루는 것을 고찰한다. 이와 같은 유형에 들어맞는 다른 대조 구문이 있는가를 찾는다. 이런 대조가 다른 구절 혹은 다른 단락 혹은 서신 전체와 어떤 관계가 있는가를 알기 위해 연구한다.
설교자는 형용사에 대한 집요한 검토 역시 피해서는 안 된다. 그 구절이 ‘성령’을 가리키는가 아니면 단순한 ‘영’을 말하는가? 어떤 어구가 하나님의 성령을 가리키는지와 그에 대한 문맥적 증거를 규정하는 것에서 설교자는 유익을 얻을 수 있다. 그는 근접 문맥, 서신 전체(에베소서)의 문맥, 동일 저자가 쓴 책 전체(바울 서신)의 문맥, 신약 전체 혹은 성경 전체의 문맥을 조사함으로써 하나님의 성령을 가리키는 여러 방식들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모든 문장 요소를 샅샅이 조사하는 동시에 설교자는 문맥의 세부사항을 지배하는 전체 요점을 찾는 것을 놓쳐서는 안 된다. 예를 들면 성령의 충만(엡 5:18)은 신자의 영적 부유함(1~3장)에서 생겨나는 신자의 행위(4~6장)라는 더 큰 주제 속에 포함된다. 문맥에서 “행하다”는 단어가 반복(4:1, 17, 5:1, 8, 15)되는 점이 이를 나타낸다. 성령 충만을 받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마땅한 행위의 일부이다. 그리스도인은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연합하는 가운데(엡 4:1~16), 거룩함으로(17~32절), 사랑으로(5:1~6), 빛 가운데(7~17절) 그리고 성령 안에서(5:18~6:20) 행해야 한다. 바울의 다른 서신들이나 신약 전체, 혹은 성경 전체를 찾아보면, 하나님의 영이 이런 연합과 거룩함 등의 삶을 촉진한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에베소서의 문맥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면, 설교자는 다른 것도 발견한다. 성령 안에서 행하는 것은 성령 충만한 삶(5:18)이고, 그것은 교회와 가정과 직장생활로 흘러 들어간다(5:19~6:9). 그것은 또한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하는 영적 싸움(6:10~17)이며, 기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과 성도들의 교제(18~20절)이기도 하다.
문맥의 이런 요소들은 더 광대한 보화를 얼핏 들여다 본 것에 불과하다. 동기부여가 된 말씀의 종은 문맥을 계속해서 살피려고 할 것이다. 이런 근면이 그가 성경의 금덩어이를 발견하고 심지어는 광맥을 캐내도록 도울 것이다. 그는 종종 발견의 기쁨에 소리 지를 것이다. 설교자 자신만의 “유레카!”를 가질 것이다. 그는 “알았다! 이것을 알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라!”하고 외칠 것이다.
(3) 문법의 마력
성경 강해자는 본문에서 하나님이 의도하신 의미를 파악하는 것을 돕는 데 문법의 진실한 친구가 된다는 사실을 발견할 것이다. 문법 그 자체를 목적으로 생각하여 열중하느라
키워드
추천자료
[설교론-어떻게 성경적으로 설교할 것인가]1부 강해 설교의 우월성 - 1. 강해 설교의 재발견(...
[설교론-어떻게 성경적으로 설교할 것인가]1부 강해 설교의 우월성 - 2. 성경의 무오성과 강...
[설교론-어떻게 성경적으로 설교할 것인가]1부 강해 설교의 우월성 - 3. 강해 설교의 역사(제...
[설교론-어떻게 성경적으로 설교할 것인가]2부 강해 설교자의 준비 - 4. 기도의 우선순위와 ...
[설교론-어떻게 성경적으로 설교할 것인가]2부 강해 설교자의 준비 - 6. 성령과 강해 설교(존...
[설교론-어떻게 성경적으로 설교할 것인가]3부 성경 본문 연구와 원리화 - 10. 강해 설교를 ...
[설교론-어떻게 성경적으로 설교할 것인가]4부 강해 설교 작성 - 12. 중심 주제, 개요, 제목(...
[설교론-어떻게 성경적으로 설교할 것인가]4부 강해 설교 작성 - 13. 서론, 예화, 결론(리처...
[설교론-어떻게 성경적으로 설교할 것인가]4부 강해 설교 작성 - 14. 주제적, 신학적, 역사적...
[설교론-어떻게 성경적으로 설교할 것인가]4부 강해 설교 작성 - 15. 구약 이야기를 강해 설...
소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