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선주목사에 대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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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길선주목사에 대한 연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날개와 같은 구름이 내거냐”
“저 산 봉우리 맨 위의 접시 같은 구름이 내거야”
한 아이가 말했다.
“그럼 그 아래 주먹같은 구름이 내거야”
또 한 아이의 말이었다.
아이들은 저마다 이렇게 자기가 좋아하는 모양의 구름을 가리키면서 서로 자기 구름이 멋있다고 우겨대었다. 이윽고 이 구름은 서풍에 의해 그 형태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이것을 보자 선주의 눈에서는 눈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왜 그래?” 두 아이가 일제히 물었다.
“우리 구름들이 다 없어지니 저절로 눈물이 나”
“임마, 그럼 구름이 늘 그 모양대로 있는 줄 아니? 병신같이....”
한 아이가 선주의 머리를 쥐어박으면서 말했다.
“그건 나도 알고 있어.”
“그런데 뭣 때문에 우는거야?”
“우리도 나중에는 저 구름처럼 없어지고 말게 아니야?”
선주는 이렇게 다감하고 조숙했다.
선주는 당시의 풍속에 따라 열 한 살 때 안주 성내의 같은 무관인 신선갈(申先達)이 외동딸 선행(善行)양과 결혼하였다.
하루는 서당에서 오전 공부를 마치고 점심 먹으러 집에 돌아온 선주는 곧장 부엌에 들어가 솥에서 밥을 퍼담는 아내에게 손을 내밀며
“나 누룽지 좀 줘.하고 졸라대었다.
이것은 이미 상투를 틀어 올린 지체 높은 가문의 서방님으로서 체통이 서지 않는 일이었다. 아내는 한동안 잠자코 있었으나 하도 성가시게 졸라대는 바람에 그만 화가 치밀어 “점잖치 못하게 이게 무슨 짓이에요?” 하고 부지깽이를 집어들고 덤벼들었다. 선주는 얼른 몸을 피해 부엌 뒷문으로 도망치다가 뒷뜰에서 어머니와 맞닥뜨렸다. 어머니는 혹시 어린 남편이 돌뿌리에 걸려 넘어지지나 않을까 싶어 걱정하면서 뒤좇아 나온 며느리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냐?”
그러자 선주가 아내 대신 얼른 둘러댔다.
“글세 내가 방안의 아버님 수저를 가져 오겠다는데 제가 가져온다고 이 야단이지 뭐예요”
당시에 지체 높은 집안에서는 수저를 아름답게 수를 놓은 수저집에 넣어 안방에 따로 보관하는 것이 상례였다. 어린 선주가 임기응변으로 잘 둘러대었기에 망정이지, 사실이 그대로 알려졌다면 며느리는 큰 변을 당하게 되었을 것이다.
어느 여름날이었다. 선주는 이웃에 사는 아이들과 어울려 연을 날리다가 (평안도에서는 여름에도 연을 날린다.) 그만 발을 헛디딘 바람에 두엄발치에 빠져 온몸이 거름 투성이가 되었다. 선주는 얼른 집에 뛰어가 자기 방문을 두드리면서 아내를 불러내었다. 아내가 문을 열고 내다보니 꼬마 신랑이 온몸이 거름을 뒤집어쓰고 히죽히죽 웃으면서 있었다. 그녀는 어이가 없었다. 얼른 옷장에서 새옷을 한벌 꺼내 가지고 신랑을 뒷뜰에 우물가로 데리고 갔다. 신랑을 홀랑 벗기고 나서 몸을 깨끗이 씻고 이제 치부만 남았다. 아내가 한참 망설이다가 손으로 치부에 물을 끼얹자 신랑은 눈을 살짝 흘기면서 말하는 것이었다.
“뭐 거긴 관둬!”
이때 먼 발치에서 이 광경을 바라보던 시어머니가 다가와서 물었다.
“볼상 사납게 거기서 뭣들을 하고 있는 거냐?”
며느리가 얼른 대답했다.
“네, 서방님이 연을 날리다가 소똥에 넘어지는 바람에 그만....”
시어머니는 빙그레 웃으면서 얼른 지나갔다.
그해 8월 추석이었다. 선주는 아내 등에 업혀 뒷동산에 올라가 달 구경을 하고 있었다. 아내가 사람들이 많이 오가고 있는 것을 내려다보자 어린 신랑은 아내의 두 귀를 잡아당기면서 말했다. “뭘 그렇게 내려다보는 거야”
아내의 대답은 이랬다.
“흥, 등에 업힌 서방님의 강짜가 너무 심하네요”
(농부의 아내를 만들지 말지니)
(해마다 고생이 이와 같도다)
(옥 같은 소니에 신고가 그치지 않고)
(꽃다운 마음속에서 팔자를 한탄하네)
(청루에 있는 것은 뉘집 딸인고)
(밤마다 끄리는 옷이 닳는 소리뿐일세)
이것은 선주가 12세 글방 백일장(白日場)에서 장원한 시이다. 제목은 十指不動衣ㅅ (열 손가락을 까딱도 하지 않는데 옷상자에 옷이 가득 찼네) 그는 시문에 상당한 재질이 있었다.
그는 17세때 안주에서 우위도식하던 불량배 윤학영(尹學榮) 3형제로부터 억울하게 무수히 구타를 창하였다. 그의 부친은 아들의 원수를 갚기 위해 식구를 거느리고 평양에 이주까지 했으나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은 선주 자신은 인생의 고뇌를 더욱 뼈저리게 느꼈다. 그리하여 그는 허망한 현세에서 불변의 영계(靈界)를 동정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인간은 현실에서 벗어날 수 없었으며, 또 현실을 부인할 수는 없었다. 부친은 이미 늙어 그가 집안 살림을 보살펴야 할 처지였다. 그는 평양의 거상 이재경(李在璟) 씨의 상점에서 1년 동안 상술을 익히고 18세 때 따로 상점을 경영하였다. 그는 성격이 맞지 않는 점포를 꾸려가는 동안에 이해와 타산에 매인 생활에 대해 환멸을 느꼈고 늘 자기 자신을 자책하며 살았다. 평양 북마을의 면장으로 있으면서 첩을 두고 두 집 살림을 하던 형은 물건을 닥치는 대로 가져다 쓰고 원금도 갚지 않았다. 게다가 그는 장사에 으레 따르게 마련인 에누리를 할 줄 몰라 매상은 올렸지만 이문을 내지 못해 결국 장사에 실패하고 말았다. 이래저래 그는 세태에 대한 실망과 혐오만 더하여 염세에 빠진 데다가 깡패들에게 두둘겨 맞은 어혈(瘀血)로 허약한 몸에 중병까지 겹치게 되었다. 다행히 부인의 극진한 간호와 부모의 정성어린 보살핌으로 병세가 차츰 호전되었으나, 그는 세상이 싫어 살맛이 나지 않았다.
그는 막연하나마 수도에 뜻을 두고 관성제군(關聖帝君-關羽를 높이는 관성교)의 보고문(譜告文) 몇 가지를 읽기 시작했다. 그가 정성껏 이 보고문을 외운 어느 날 밤 꿈에 관공(關公)과 한 중이 나타나 서로 희롱하는 것을 보고 “중이 어찌 관공과 희롱할 수 있단 말인가”하고 말했더니 옆에서 어떤 사람이 “그에게 보정 대사(保精大師)를 몰라보나? 을밀대(乙蜜臺-평양 명승지 금수산에 세워진 정자)로 가보게” 하는 것이었다.
하도 신기한 꿈이라 길선주는 이튿날 을밀대에 올라가서 주위의 절경에 도취되었으나 피로가 겹쳐 어느새 사르르 졸음이 와 돌을 베고 한참 자고 깨어났다. 그때 두 사나이가 다가와 그를 한 사람이 “보아하니 이 젊은이는 세상을 비관하고 도를 숭상할 생각이 간절하군”하고 한 마디 던지는 것이었다.
길선주는 첫눈에 자기 마음을 환히 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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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3.12.29
  • 저작시기2007.5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90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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