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U 사이버 한국사 중간자료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32
  • 33
  • 34
  • 35
  • 36
  • 37
  • 38
  • 39
  • 40
  • 41
  • 42
  • 43
  • 44
  • 45
  • 46
  • 47
  • 48
  • 49
  • 50
  • 51
  • 52
  • 53
  • 54
  • 55
  • 56
  • 57
  • 58
  • 59
  • 60
  • 61
  • 62
  • 63
  • 64
  • 65
  • 66
  • 67
  • 68
  • 69
  • 70
  • 71
  • 72
  • 73
  • 74
  • 75
  • 76
  • 77
  • 78
  • 79
  • 80
  • 81
  • 82
  • 83
  • 84
  • 85
  • 86
  • 87
  • 88
  • 89
  • 90
  • 91
  • 92
  • 93
  • 94
  • 95
  • 96
  • 97
  • 98
  • 99
  • 100
  • 101
  • 102
  • 103
  • 104
  • 105
  • 106
  • 107
  • 108
  • 109
  • 110
  • 111
  • 112
  • 113
  • 114
  • 115
  • 116
  • 117
  • 118
  • 119
  • 120
  • 121
  • 122
  • 123
  • 124
  • 125
  • 126
  • 127
  • 128
  • 129
  • 130
  • 131
  • 132
  • 133
  • 134
  • 135
  • 136
  • 137
  • 138
  • 139
  • 140
  • 141
  • 142
  • 143
  • 144
  • 145
  • 146
  • 147
  • 148
  • 149
  • 150
  • 151
  • 152
  • 153
  • 154
  • 155
  • 156
  • 157
  • 158
  • 159
  • 160
  • 161
  • 162
해당 자료는 10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10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개글

CJU 사이버 한국사 중간자료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6관등제와 복색이 마련
TIP 백제의 16관등
*백제의16관등은 다음과 같으며 16관등의 복색은 신분(관등)에 따라 자복 비복 청의 등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자복: 1좌평(6명), 2달솔, 3은솔 4덕솔 5한솔 6내솔
-비복: 7장덕 8시덕 9고덕 10계덕 11대덕
-창의: 12문독 13무독 14좌군 15진무 16극우
*왕족인 부여씨와 왕비족인 진씨 해씨가 중앙 과위관직 및 22담로의 자방장관을 독점
*관등명에 고유명칭이 보이지 않고 중국식 명칭이 대다수
중앙부서
*백제의 관부는 상당히 분화되어 6좌평 이외에 22관부가 있음
6좌평의 임무
내신좌평(수상)- 선납(왕명출납)
내두좌평(재정)-고장
내법좌평(의식)-의례
위사좌평(친위)-숙위
조정좌평(법무)-형옥
병관좌평(국방)-병마
*사비천도 이후에는 6좌평이외에 22관부는 내관(12부) 외관(10부)로 구분
-내관 : 전내부 곡부 육부 내름부 외름부 마부 도부 공덕부 약부 목부 법부 후궁부
→왕실과 궁내에 속하는 관부
-외관 : 사군부 사도부 사공부 사구부 점구부 외사부 객부 주부 일관부 도시부
→ 일반정무를 맡아보던 기관
지방관제
*수도를 상전중하의 5부로 구분하고 지방은 동서남북중의 5방으로 나누는 5부5방제도가 성립
*부에는 달솔이 방에는 방령이 장관으로 임명되어 다스림
*각방 밑에는 10여개의 군을 두어 군장이 다스렸고 군 밑에는 5~6개의 성을 두어 도사가 다스리게 함
*특수행정구역
-전국요지에 22담로를 두어 왕족을 파견하여 다스리게 함
-담로제는 6세기 무령왕 (웅진시대) 때에 실시된 것으로 보고 있음
군사조직
*중앙의 각부에 500여명의 군대를 배치
*지방에는 5방의 장관 방령과 군장이 지휘
신라
중앙관제
*수상은 상대등으로 화백회의에서 3년마다 선출
- 진덕여와 dEo 집사부가 설치되면서 시중이 수상 역할
*중앙의 관계가 17등급으로 분화되어 발전
-언제 이렇게 체계화 하였는지는 분명치 않으나, 법흥왕 때에 율령이 반포될 때 정비된 것으로 보임
-신라의 관등은 골품제도라는 엄격한 신분제도 위에서 성립
-관등에 라 옷의 색깔을 달리하였는데, 이것은 왕경인의 관등급제
*진골출신인 대등으로 구성되는 화백회의가 있음
*신라의 갈문왕
-고구려의 고추가와 비슷한 것
-관직은 아니고 왕의 동생 왕비의 부 여왕의 부 등에게 주어지던 존칭
중앙부서
*신라의 관부는 국가 발전과정에서 필요에 라 기구가 설치됨
-법흥왕 : 상대등과 병부를 설치 행정은 상다등, 군사는 병부령의 총괄
-진흥왕 : 품주를 설치 국가 기무를 총괄
-진평왕 : 위화부(인사) 조부(재정) 영객부(외교) 승부(교통) 예부(의례와 교육)를 설치
-진덕여왕 : 집사부(국가기무) 창부(재정) 이방부(형법)를 설치
지방관제
*수도에는 6촌의 전통에 따라 6부로 나눔
*지방에는 5주로 구획하고 그 장관은 군주라 함
-그아래에 군(태수)과 현(현령)을 둠
*특수행정구역
-2소경에 중원경(충주)과 동원경(강릉)을 설치하고 장관으로 사신(사대등)을 파견
-소경은 수도의 편재성을 보완하고 정치, 문화적 중심지의 역할
군사조직
*중앙에는 다당과 직업군인인 서당을 두어 군사력을 강화
-수도 방위를 위해 시위부와 사자대를 둠
*지방에는 6정을 각주에 1정씩 배치하고 (한산주는 2정배치), 군주가 지휘
<삼국의 경제와 사회>
토지제도
*삼국시대에는 왕권의 확립과 체제가 정비됨에 따라 차츰 중앙집권적으로 변모
-나라안의 토지는 모두 국왕의 것이라는 왕토사상을 낳게 함
-왕토라는 원칙 아래서 국가가 백성들의 노동력을 직접지배
-삼국은 이념상으로는 국유제를 원칙으로 하였으나 귀족들은 사적으로 토지와 노비를 소유
*귀족들과 전공이 있는 자에게는 식읍, 녹읍, 등 많은 토지가 노비와 함께 주어짐
*왕실과 귀족의 토지소유 관계 및 경영형태의 구체적 양상은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사전을 토대로 하여 귀족들의 대토지 소유 현상이 더욱 확대
*농민들은 각기 소유하고 있는 소규모의 토지를 경작하였고, 그것마저없는 사람은 품팔이 농민으로 전락
*몰락한 농민들은 구제하기 위한 방안
-춘궁기에 곡식을 대여했다가 가을에 거두어들이는 진대법 시행
TIP 녹읍 진대법 식읍
녹읍: 국가에서 관료, 귀족에게 관직의 복무에 대한 댓가로 지급한 토지인데, 그토지에 대한 수조권과 그 지역 백성들의 노동력을 징발할수 있는 권리를 준 것이다. 삼국시대부터 고려 초기까리 존속하였다.
진대법 : 홍수나 가뭄등으로 흉년이 들어 백성들의 생활이 어려워지면 국가에서 춘궁기에 곡식을 대여해 주었다가 가을 수확기에 갚게 하는 제도로서 고구려의 고국천왕때 재상 을파소에 의해 처음 실시 되었다. 이제도는 고려시대에 이어져 내려와 초기부터 상평창 의창 및 은면지제 재면지제 환과고독진대지제 수한역려진대지제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행하여졌으며 조선시대에는 상평, 환곡의 제도로 정비 발전하였다.
식읍 : 국가에서 공신이나 왕족에게 준 토지와 가호를 조세를 수취하고 노동력을 징발할 수 있는 권리를 준 것이다 식읍은 당대에 한하여 지급되었으며, 증여나 상속은 불가피하였다. 삼국시대부터 조선 초기까지 존속하다가 조선 세조때 완전히 폐지되었다.
수취체제
*대체로 재산의 정도에 따라 호를 나누어 조세와 역(노동력), 해당지역의 특산물을 거두어들임
*고구려(경무법)
-조는 호마다 3등급으로 나누어 상호는 1석, 다음은 7말,하호는 5말을 수취
-세는 사람마다 인두세로 포 5필, 곡식 5섬을 거둠
*백제(두락제)
-조는 쌀로 바치고, 세는 쌀,베,명주등을 바쳤는데, 풍흉에 따라 차등을 두어 받음
*신라(결부법)
-중국의 조 용 조를 모방하여 실시
TIP 삼국의 토지측량단위
고구려는 밭이랑을 기준으로 하는 경무법 백제는 파종량을 기준으로 하는 두락제 신라는 수확량을 기준으로 하는 결부법을 시용하였다. 신라의 결부법은 고려와 조선에 계승되었다.
삼국의 경제생활
1.귀족의 경제생활
-본래 스스로 소유하던 토지와 노비 외에도 국가에서 준 녹읍, 식읍, 노비를 가지고 있음
-전쟁에 참여하면서 토지와 노비등을 더 많이 가질수 있었도, 이를 통하여 곡물이나 베 등 필요한 물품을 얻음.
-비옥한 토지와 일반농민들은 갖기 어려운 철제농기구와 소도 많이 소유하였기

키워드

  • 가격4,500
  • 페이지수162페이지
  • 등록일2014.01.10
  • 저작시기2013.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901758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