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과학혁명의 구조》와 쿤의 혁명
2. 작품 내용분석 및 요약
3. 쿤의 패러다임 이론
4. 쿤의 연구와 패러다임의 변화
1) 과학자의 활동과 과학 자체에 대하여
2) 과학과 형이상학과의 관계에 대하여
3) 과학이 누진적인 발전인가에 대하여
5. 쿤의 이론이 학계 전 분야에 미친 충격과 영향
6. 쿤의 이론에 대한 비판적 접근
7. 맺음말
2. 작품 내용분석 및 요약
3. 쿤의 패러다임 이론
4. 쿤의 연구와 패러다임의 변화
1) 과학자의 활동과 과학 자체에 대하여
2) 과학과 형이상학과의 관계에 대하여
3) 과학이 누진적인 발전인가에 대하여
5. 쿤의 이론이 학계 전 분야에 미친 충격과 영향
6. 쿤의 이론에 대한 비판적 접근
7. 맺음말
본문내용
과 유사한 방식에 의해 변천하는 것이며, 통상적으로 과학의 특성이라고 간주되었던 객관적, 논리적, 경험적, 가치중립적 성격들이 타분야에 견주어 볼 때 그 정도가 더한 것은 사실이나 본질적으로는 크게 다를 바 없다는 진리를 실증적으로 보여 준 점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6. 쿤의 이론에 대한 비판적 접근
토마스 쿤이 60년대에 발표한, 문제의 저작이 나온지도 벌써 반세기가 다 되어간다. 번역자가 소개했듯이 패러다임의 의미는 정확히 규정되지도 않았고 설명과정이 분명하지도 않은 문제제기의 성격이 강한 저작이라고 해야 타당할 듯 하다. 그럼에도 이 책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과학의 발전이 점진적인 역사적 과정에 의해서가 아니라 혁명적인 즉 세계관의 변화를 수반하는 변동 내지 전환에 의해서 이룩되었다는 설명은 그 자체가 혁신적이다. 그렇다면 쿤의 지적은 전적으로 모두 타당한 것일까. 과연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나 아인쉬타인의 상대성이론 등 인류의 기념비적 발견이 과학의 위기와 그에 따른 혁명적 전환을 통해서 도출된 성과들이라고 판명할 수 있는 근거가 어디에 있는가.
코페르니쿠스, 뉴턴, 다윈, 아인쉬타인 등 과학자들의 성과물들은 단지 그 시대에 첨예하게 문제시되었고 경쟁적인 관계속에서 보다 뛰어난 문제 해결자들에 의해서 해소된 결과물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 그러한 증거는 그 시대 저작들을 통해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는 사항이다. 발전의 기저는 어느 뛰어난 천재들에 의한 혁명적 사고전환 때문이라기 보다는 그 시대적 상황의 여건에 달려있다고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 시대의 교육환경이나 동기부여, 자유로운 연구환경 등이 더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러한 사실은 현재 미국과 기타 국가들을 비교해보면 여실히 드러난다. 또한 20세기 이전과 20세기의 발전 속도와 그 수량을 비교해보아도 금방 알 수 있다. 쿤의 발상은 다분히 소수의 천재에 의존하려는 귀족주의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가 20세기와 21세기에 이룩하고 있는 발전들이 과연 소수의 천재들 몫일까. 오히려 이름없는 수많은 공학도들, 모험적인 벤처 도전자들 등의 몫은 아닐까. 쿤의 패러다임 제시는 그 의미하는 바가 의미심장하고 가히 혁명적인 사고였을지라도 다수의 시대적 기여자들을 놓치고 있는 듯도 하다.
7. 맺음말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란 바로 이러한 경우를 두고 한 말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 책이 나오기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과 이 책이 나온 이후로도 전세계 대부분의 사람들은, 과학은 분명 진보하고 있으며 그것도 과거의 업적을 기초로 점점 체계화해가고 있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 역시 이 책을 읽기 전 그러한 생각을 소유한 사람중의 하나였고, 분명 그러한 믿음은 영원할 것이리라 생각했던 적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 책을 읽기 전까지의 편견이었다.
토머스 쿤은 인류의 이러한 소박한 믿음에 큰 파문을 일으킨 장본인이 되고 말았다. 천동설에 맞서 지동설을 주장한 코페르니쿠스나 갈릴레오갈릴레이의 운명처럼 말이다. 그는 주장하길 과학의 진보는 절대적이라 할 수 없으며, 기존의 패러다임은 언제든지 새로운 패러다임에 의해 대체될 수 있다고 한다. 물론 그것은 일종의 과학적 혁명에 의해 수반되며, 이로인해 기존의 정상과학은 허물어지고 새로운 패러다임이 정상과학으로 대체된다는 논리이다. 과학적 진보마저도 확실한 것이 아니란 의미일까? 절대적인 진리의 영역을 추구해왔던 철학이 한계에 부딪히고, 상대적 진리론이 부상했던 것처럼 과학도 동일한 운명을 맞이할 것인가? 우리가 이제까지 옳다고 생각해왔던 기존의 진리 아니 상식들에 대해 심각히 회의해보는 데카르트적 방법론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게 되었다. 사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나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원리는 기존의 고전역학체계를 완전히 허물어 버리고 그와는 다른 체계위에 정립된 바 있다. 물론 근 일세기 가까이만 해도 그 어느 누구도 뉴튼의 고전역학체계에 대해 아무런 회의도 가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옳다고 확신하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나 하이젠베르크의 이론 역시 언젠가는 새로운 것으로 대체될 운명이란 것인가? 물론 토머스 쿤은 이에 대해 전혀 이의를 달지 않을 것이다.
도대체 진리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어쩌면 인간이란 어디에도 없는 진리를 향해, 허공 속을 휘저어야만 하는 존재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새로운 경험과 깨달음에도 불구하고, 점점 작아만 보이는 우리네 인간의 모습이 더욱 초라하게 느껴지기만 한다.
6. 쿤의 이론에 대한 비판적 접근
토마스 쿤이 60년대에 발표한, 문제의 저작이 나온지도 벌써 반세기가 다 되어간다. 번역자가 소개했듯이 패러다임의 의미는 정확히 규정되지도 않았고 설명과정이 분명하지도 않은 문제제기의 성격이 강한 저작이라고 해야 타당할 듯 하다. 그럼에도 이 책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과학의 발전이 점진적인 역사적 과정에 의해서가 아니라 혁명적인 즉 세계관의 변화를 수반하는 변동 내지 전환에 의해서 이룩되었다는 설명은 그 자체가 혁신적이다. 그렇다면 쿤의 지적은 전적으로 모두 타당한 것일까. 과연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나 아인쉬타인의 상대성이론 등 인류의 기념비적 발견이 과학의 위기와 그에 따른 혁명적 전환을 통해서 도출된 성과들이라고 판명할 수 있는 근거가 어디에 있는가.
코페르니쿠스, 뉴턴, 다윈, 아인쉬타인 등 과학자들의 성과물들은 단지 그 시대에 첨예하게 문제시되었고 경쟁적인 관계속에서 보다 뛰어난 문제 해결자들에 의해서 해소된 결과물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 그러한 증거는 그 시대 저작들을 통해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는 사항이다. 발전의 기저는 어느 뛰어난 천재들에 의한 혁명적 사고전환 때문이라기 보다는 그 시대적 상황의 여건에 달려있다고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 시대의 교육환경이나 동기부여, 자유로운 연구환경 등이 더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러한 사실은 현재 미국과 기타 국가들을 비교해보면 여실히 드러난다. 또한 20세기 이전과 20세기의 발전 속도와 그 수량을 비교해보아도 금방 알 수 있다. 쿤의 발상은 다분히 소수의 천재에 의존하려는 귀족주의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가 20세기와 21세기에 이룩하고 있는 발전들이 과연 소수의 천재들 몫일까. 오히려 이름없는 수많은 공학도들, 모험적인 벤처 도전자들 등의 몫은 아닐까. 쿤의 패러다임 제시는 그 의미하는 바가 의미심장하고 가히 혁명적인 사고였을지라도 다수의 시대적 기여자들을 놓치고 있는 듯도 하다.
7. 맺음말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란 바로 이러한 경우를 두고 한 말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 책이 나오기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과 이 책이 나온 이후로도 전세계 대부분의 사람들은, 과학은 분명 진보하고 있으며 그것도 과거의 업적을 기초로 점점 체계화해가고 있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 역시 이 책을 읽기 전 그러한 생각을 소유한 사람중의 하나였고, 분명 그러한 믿음은 영원할 것이리라 생각했던 적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 책을 읽기 전까지의 편견이었다.
토머스 쿤은 인류의 이러한 소박한 믿음에 큰 파문을 일으킨 장본인이 되고 말았다. 천동설에 맞서 지동설을 주장한 코페르니쿠스나 갈릴레오갈릴레이의 운명처럼 말이다. 그는 주장하길 과학의 진보는 절대적이라 할 수 없으며, 기존의 패러다임은 언제든지 새로운 패러다임에 의해 대체될 수 있다고 한다. 물론 그것은 일종의 과학적 혁명에 의해 수반되며, 이로인해 기존의 정상과학은 허물어지고 새로운 패러다임이 정상과학으로 대체된다는 논리이다. 과학적 진보마저도 확실한 것이 아니란 의미일까? 절대적인 진리의 영역을 추구해왔던 철학이 한계에 부딪히고, 상대적 진리론이 부상했던 것처럼 과학도 동일한 운명을 맞이할 것인가? 우리가 이제까지 옳다고 생각해왔던 기존의 진리 아니 상식들에 대해 심각히 회의해보는 데카르트적 방법론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게 되었다. 사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나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원리는 기존의 고전역학체계를 완전히 허물어 버리고 그와는 다른 체계위에 정립된 바 있다. 물론 근 일세기 가까이만 해도 그 어느 누구도 뉴튼의 고전역학체계에 대해 아무런 회의도 가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옳다고 확신하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나 하이젠베르크의 이론 역시 언젠가는 새로운 것으로 대체될 운명이란 것인가? 물론 토머스 쿤은 이에 대해 전혀 이의를 달지 않을 것이다.
도대체 진리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어쩌면 인간이란 어디에도 없는 진리를 향해, 허공 속을 휘저어야만 하는 존재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새로운 경험과 깨달음에도 불구하고, 점점 작아만 보이는 우리네 인간의 모습이 더욱 초라하게 느껴지기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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