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사] 술의 역사 - 술의 기원, 누룩의 역사, 우리나라 술의 역사, 주막, 금주령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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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일상생활사] 술의 역사 - 술의 기원, 누룩의 역사, 우리나라 술의 역사, 주막, 금주령의 역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술의 기원

2. 누룩의 역사
 (1) 누룩이란?
 (2) 누룩 만드는 법

3. 우리나라 술의 역사
 (1) 막걸리
 (2) 청주
 (3) 맥주
 (4) 소주

4. 주막

5. 금주령의 역사
 (1) 금주령의 의미와 목적
 (2) 금주령의 사진과 내용

본문내용

들어 독일의 '맥주 순수령'에 의해서 맥주는 보리, 물, 호프만을 사용하여 양조해야 된다고 규정시켜, 고품질의 맥주가 생산되고 독일 맥주의 전성기를 맞는다. 또 16세기 후반부터 미국에서도 이민한 사람들에 의해 호프 재배와 맥주 양조가 성행하게 되고, 18세기 들어 영국의 산업혁명에 의해서 맥주 생산도 획기적으로 발전하고 맥주 양조가 근대화되기 시작했다.
19세기 들어 루이 파스퇴르에 의해 맥주의 양조와 발효현상이 해명되고 카알 폰 린데에 의한 제빙기, 냉동기의 발명으로 인한 인공 냉각법과 한센에 의한 효모 순수배양이 개발되고 난 후부터 하면 발효에 의한 안정되고 품질이 좋은 맥주의 대량 샹산이 가능하게 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 일제시대의 맥주 광고 사진 ◀
맥주는 자양품으로 둔갑해 광고됐다. 또는 술이 아닌 청량음료라고 못 박아지기도 했다. 서양 미녀와 일본 여성의 이미지가 대조적이다.
(4) 소주
소주란?
소주는 청주를 증류하여 만드는 것으로 청주를 증류하면 소주가 되고 희석하면 탁주가 된다. 소주는 기원전 3천년경 서아시아의 수메르에서 처음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는 고려 말에 들어왔다.
당시 소주는 순수한 곡식으로 만들어 맛이 특이하고 독한데다 뒤끝이 깨끗해 인기가 높았지만 값이 비싸 귀족들의 술이었고 서민에겐 약으로 통했다. 그러다 조선 말 소주가 다량으로 생산되면서 막걸리를 대신해 서민에게 보편화되었지만 결정적으로 박정희 정권 시절, 노동자들이 회포를 풀 수 있게 소주값을 올리지 못하게 하여 소주는 서민의 술, 값싼 술로 자리를 잡았다.
지금의 25도짜리 희석식 소주는 60년대 식량난이 닥치자 쌀을 원료로 하는 술의 제조를 금지하여 탄생된 것.
4. 주막
'술 막'또는'숫 막'이라고도 불렀던 주막은 물론 술을 파는 곳이었으나 대개는 술과 함께 밥도 팔고 때로는 잠도 재워주는 곳이었다. 서울이나 평양 등의 큰 도시의 주막에서는 술만 팔았지만 시골에서는 식당과 숙박업을 겸하고 있었다. 여행객들에게 식사와 숙소를 제공해 주는 곳으로는 주막 외에도 역과 원이 있었지만 주로 공무로 여행하는 사람들이나 관리들이 이용했고, 일반인들이 주로 이용했던 것은 역시 주막이었다. 이에 주막은 교통의 요지에 많았다.
- 김홍도의 풍첩화 속에 실린 <주막> -
- “조선일보”에 우리나라 마지막 주막집(1930대)
이곳은 경북 예천군 풍양면 삼강리에 자리잡은 ‘삼강주막’이다. 낙동강·내성천·금천의 3개 강물이 합치는 곳이라 해서 삼강주막으로 불리게 되었다. 주막이 생긴 것은 1900년대 초반. 그저 학자들이 “낙동강 700리 길을 통틀어 아직까지 남아 있는 유일한 조선시대 전통 주막”이라며 그렇게 추정할 뿐이다.
5. 금주령의 역사
(1) 금주령의 의미와 목적
의미-금주령(禁酒令)은 국가나 종교 단체에서 술을 마시지 못하도록 내리는 명령이다. 대 개 법규나 규칙의 형태로 공식 문서가 남는 때가 많다.
금주령을 내리는 까닭에는 주로 경제적 요인과 종교적 요인이 있다. 한국에서 조선 시대에 여러 차례 금주령이 내려졌는데, 이는 모두 경제적 요인이었다. 조선에서는 쌀로 술을 빚었기 때문에 쌀의 소비를 줄여 식량 사정을 악화되지 않게 하려고 금주 령을 내리게 된다. 반면에 미국에서 20세기 전반에 내린 금주령은 종교적인 요인이 강하였다
목적-금주령은 흉년에 곡식을 아끼기 위한 것 술을 빚으면 "열 사람이 먹을 곡식을 한 사 람이 마셔 없애기" 때문이었다. 특히 소주 는 곡물이 많이 소비되어 청주를 빚은 경 우보다도 엄형에 처해지기도 하였다.
술이 윤리와 사회기강을 무너뜨리기 때문 술은 신명을 받들고 손님을 접대하고 봉양하는데 쓰이는 면이 있는 반면에 과하면 다툼을 일으키고 윗사람을 능멸하게 되 고 남녀유별을 무너뜨리는 부정적인 면이 있었기에 금했던 것이다.
(2) 금주령의 사진과 내용
-신윤복의 ‘주사거배’-
♣이규보의 시 - <농사꾼에게 청주와 이밥을 못 먹게 한단 말을 듣고>
장안에 호화롭게 잘사는 집엔
보배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도다
구술같이 흰 입쌀밥을
말이나 개가 먹기도 하고
기름같이 맛있는 청주를 아이종들도 마음대로 마시누나
이것이야 모두 다 농사꾼이 이룩한 것
그들이야 본디 무엇이 있었으랴
농민의 피땀을 빨아 모아선
제 팔자 좋아 부자가 되었다 하네.
힘들여 농사지어 군자를 봉양하지
그들을 일컬어 농부라 하네.
........
노동할때 아니라면
어느누가 이들에게 좋은 음식 먹여줄까.
목적은 힘을 취하기 위해서지
이들의 입을 아껴서가 아니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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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4.05.20
  • 저작시기2014.5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918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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