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사] 차와 커피의 역사 - 차의 어원과 우리나라에 전래된 역사 및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차문화, 커피의 어원과 전래과정 및 시대에 따른 커피문화의 변화
본 자료는 3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해당 자료는 3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3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개글

[일상생활사] 차와 커피의 역사 - 차의 어원과 우리나라에 전래된 역사 및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차문화, 커피의 어원과 전래과정 및 시대에 따른 커피문화의 변화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차의 역사
1) 차의 어원
2) 차가 우리나라에 전래된 역사
3) 고려시대의 차 문화
4) 조선시대 차 문화가 쇠퇴한 이유

2. 커피의 역사
1) 커피의 어원
2) 커피의 전래과정
3) 우리나라에서 처음 커피를 마신사람
4) 식민지 시대 커피와 이효석
5) 식민지 시대 카페의 문화
6) 1950년대 다방의 문화
7) 1970년대 DJ 문화
8) 1980년대 티켓다방
9) 2005년 스타벅스와 된장녀 , 고추장 남자 논쟁
10) 스타벅스 커피 무엇이 문제인가

본문내용

차와 커피의 역사
목차
1. 차의 역사
1) 차의 어원
2) 차가 우리나라에 전래된 역사
3) 고려시대의 차 문화
4) 조선시대 차 문화가 쇠퇴한 이유
2. 커피의 역사
1) 커피의 어원
2) 커피의 전래과정
3) 우리나라에서 처음 커피를 마신사람
4) 식민지 시대 커피와 이효석
5) 식민지 시대 카페의 문화
6) 1950년대 다방의 문화
7) 1970년대 DJ 문화
8) 1980년대 티켓다방
9) 2005년 스타벅스와 된장녀 , 고추장 남자 논쟁
10) 스타벅스 커피 무엇이 문제인가
1. 차의 역사
1) 차의 어원
차는 중국의 광동어(廣東語) 로는 \'cha\', 복건어(福建語) 로는 \'tay(be)\' 입니다. 따라서 차가 어디에서 전래되었는가에 따라서 \'cha\' 나 \'tee\' 로 발음된다. 육로로 주로 전래된 아시아권에는 \'cha\' 가 많으며 해로로 복건성(福建省)하문(下問)을 통해 전래된 유럽 권에서는 \'tee\' 가 대부분이다. 포르투갈은 광동성(廣東省)의 마카오에서 홍차를 수입하였으므로 cha, 러시아는 육로로 전래되었으므로 chat 이다
2) 차가 우리나라에 전래된 역사
① 인도차 전래설
우리나라의 차에 대한 기록으로는 삼국사기보다 70여년 먼저 쓰여진 가락국기에 보면 인도 이유타국공주인 허황옥이 금관가야의 김수로왕의 비롤 시집오면서 차와 차씨를 가져왔다고 나와있다.
② 중국 차종 도입설(대렵 유입설)
삼국사기에 의하면 828년(신라 흥덕왕 3년)에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대렴이 당시 문종황제로부터 차를 대접받고 다시돌아오는 길에 차 종자를 가지고 와서 왕께 드렸더니 지리산에 심으라고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③ 자생설
우리나라에 차나무가 전래되었다고 전해해지는 시기 이전에도 차를 마셨다는 기록이 많다. 진흥왕(540-575)때 화랑들이 차를 마신 흔적이 있으며 선덕여왕(632-646)때도 차를 마신 기록이 있다. 또 경덕왕(742-764)과 충담사의 차에 얽힌 이야기 등으로 미루어 보아, 신라인들이 차를 매우 즐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 고려시대의 차 문화
불교문화와 더불어 차 문화의 전성기는 바로 고려시대라고 볼 수 있다. 차는 귀중한 예물이어서 왕이 신화와 백성들에게 흔히 하사했는데, 태조 왕건은 신라의 군민과 승려에게도 차를 하사하였다.
(1) 고려 사회의 차
① 임금의 하사품 : 고려전기에는 왕이 신하나 공로자, 노약자, 승려에게 차를 하사하였다. 특히, 고려초의 성종은 신하 최승로의 부의에 200각이 넘는 뇌원차를 하사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② 다방 : 조정이나 궁중의 여러 가지 행사에서 차를 준비하여 올리고 베푸는 등의 의례적인 찻일을 맡아하는 관청이었다.
③ 차군사 : 차군사는 다방에 소속되어 궁중밖에서 왕족에게 차를 올리거나 준비하는 일을 위해 다구와 짐을 나르는 군인을 말한다.
④ 사헌부의 다시 : 관리의 비행을 조사하고 풍기를 바로 잡으며 백성의 억울한 누명을 풀어주는 일을 맡은 사헌부에서는 날마다 한번씩 차를 마시는 시간을 가져 말의 책임을 다하고 공정한 판결을 기했다. 즉 차가 정신을 맑게하여 치우치지 않고 올바른 판단을 내리게 한다는 것에서 연유된 것으로 보인다.
⑤ 다원 : 다원이란 임금이나 관원 승려를 포함한 귀족이 먼길을 가다가 쉬는 집으로 일종의 국영여관이었다. 특히, 차를 마시기에 좋은 샘물이나 정자또는 차가 유명한 원을 다원이라 하였다. 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고려의 다원으로는 다방원(경북), 다견원(경남), 다정원(충남과 경북)등 이 있다.
(2) 조정과 왕실의 차
① 팔관회와 연등회 : 팔관회는 고려의 가장 큰 국가 행사였다. 음력 11월 15일에는 개성에서, 10월에는 서경(평양)에서 행해져 나라와 왕실의 태평을 빌었는데, 이때에 진차의식이 매우 중요하였다. 연등회는 성대한 불교행사로서 신라시대부터 있었던 것으로 부처님을 즐겁게 하여 국가와 왕실의 태평을 비는 행사였다. 매년 2월에 행해지다가 공민왕때와 조선시대에는 4월 8일에 행해졌다. 이때도 황에게 차를 올리고 신하들에게 차를 내혀 함께 차를 마시는 진차의식이 매우 중요하였다. 팔관회는 천령, 오악명산, 대천용신을 섬기는 중요한 국가 행사이다.
② 왕실의 다례 : 왕비나 왕태자의 책봉식, 왕자나 왕희의 책봉, 원자탄생 축하 왕태자의 생일축하의례식, 공주가 시집갈 때에도 진차의식으로 차를 베풀었다.
(3) 일반인의 차생활
① 문인들의 차생활 : 고려의 문인들은 무아의 경지에서 손수 차를 끓였고 나아가 차를 마시어 선을 수행하고 도에 이르렀다. 또 차는 삿됨이 없어 몸과 마음을 바르게 하고 수신하게 하여 진리를 추구하는 매개체 이기도 했다.
② 고려도경에서 본 행다 : 고려의 다사를 연구하는데 큰 참고가 되는 문헌으로 송나라 사신인 서긍인이 1123년에 고려를 다녀간 후 남김 문헌이다. 이 책의 내용으로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연꽃모양의 은뚜껑을 덮은 잔을 사용한 것과, 오악과 사신들에게 차를 다 돌린후 격식에 따라 동시에 차를 마셨으며 고려 사람들을 차를 끓여 내는데 자부심이 대단하였다.
③ 헌다 : 부처님께 헌다하였으며, 상례와 제례 때에도 헌다를 하였다.
④ 불교와 차 : 고려시대의 승려들은 차가 일상화 되어있었다. 식사후나 선 수행시 잠을
  • 가격2,300
  • 페이지수11페이지
  • 등록일2014.05.21
  • 저작시기2014.5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918613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