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옷의 역사 개화기
1) 개화기 (18976~1910년)
2) 남자복식
3) 여자의 복식
2. 옷의 역사 일제시대
1) 일제강점기 (1910~1945년)
(1) 남성
(2) 여성
(3) 국민복
(4) 몸뻬
3. 옷의 역사 해방 이후
1) 해방 이후 (1945~1960년)
(1) 마카오, 슈사인보이
(2) 양복점
(3) 어린이들과 청년들의 옷차림
(4) 여자
4. 옷의 역사 박정희정권 시대
1) 박정희 정권시대 (1960~ 1980년)
(1) 미니스커트
(2) 핫팬츠
(3) 청바지
(4) 판탈롱(나팔바지)
5. 옷의 역사 영 패션 시대
1) 영 패션시대 (1980~1990년)
(1) 유니섹스
(2) 교복자율화
(3) 스포츠웨어의 확산
(4) 외제 브랜드의 급증
(5) 배꼽티
6. 옷의 역사 탈 유행 시대
1) 탈 유행시대 (1990~현재)
참고문헌
1) 개화기 (18976~1910년)
2) 남자복식
3) 여자의 복식
2. 옷의 역사 일제시대
1) 일제강점기 (1910~1945년)
(1) 남성
(2) 여성
(3) 국민복
(4) 몸뻬
3. 옷의 역사 해방 이후
1) 해방 이후 (1945~1960년)
(1) 마카오, 슈사인보이
(2) 양복점
(3) 어린이들과 청년들의 옷차림
(4) 여자
4. 옷의 역사 박정희정권 시대
1) 박정희 정권시대 (1960~ 1980년)
(1) 미니스커트
(2) 핫팬츠
(3) 청바지
(4) 판탈롱(나팔바지)
5. 옷의 역사 영 패션 시대
1) 영 패션시대 (1980~1990년)
(1) 유니섹스
(2) 교복자율화
(3) 스포츠웨어의 확산
(4) 외제 브랜드의 급증
(5) 배꼽티
6. 옷의 역사 탈 유행 시대
1) 탈 유행시대 (1990~현재)
참고문헌
본문내용
기업이 숙녀 기성복 산업에 참여함으로 써 기성복 산업이 정착단계에 들어섰으며, 제품의 고급화가 이루어졌다. 중반 이후 의류산업은 수출산업으로 급성장하면서 기술과 설비를 현대화, 자동화 하였고, 소득 증대에 따른 소비자들의 의식변화와 소비 성향의 고급화로 기성복 착용률은 차츰 높아지게 되었다.
- 남녀 신생활복 : 당시 새 정부는 새로운 정권 건설을 위해서는 우선 국민 생활 개혁이 필요하다는 점을 주목하였다. 그리하여 55년 7월 8일 남녀 모두 의무적으로 신생활 복을 입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켜 양장을 일상화시키기에 이르렀다. 이는 활동을 간편하게 하고 손질하는 시간을 절약하여 경제적인 이점을 살리기 위한 것이었다. 1961년에 제정된 \'표준 간소복\'을 보면 남자의 근무복은 노타이의 스포츠 칼라에 뒤트임을 넣어 구겨지지 않도록 한 것이고, 여자의 근무복은 기능적이고 명랑한 느낌의 투피스로서 80도의 플레어스커트, 4개의 단추에 아웃포켓이 달린 상의를 기본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재건복은 \'국민복과는 단추 갯수만 다르고 미군 스포츠 칼라가 달린 데에 불룩한 덧주머니가 주렁주렁 붙은 모습\'으로 일본 국민복과 미국 전투복을 혼합한 형태에 불과하다는 비난을 받았고, 결국 신생활복 착용은 오래 가지 못해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1) 미니스커트
미니가 처음 국내에 소개된 것은 1967년 박윤정의 발표회였으나 실제 센세이션을 일으킨 것은 미국에서 귀국하던 윤복희가 입고 들어온 미니스커트였다. \'아이들이나 입을 옷\'이라 하여 충격과 웃음거리가 되었던 이 의복은 그에 아랑곳없이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유행하면서 길이가 점점 짧아졌고, 결국 요주의 풍속사범 단속대상이 되었다. 73년 3월에는 무릎 위 17cm이상 올라가는 미니를 과다노출로 규정, 경범죄처벌법에 포함시켰다. 69년 8월에 무릎 위 30cm의 초미니를 입고 거리를 걷던 여성이 25일간의 구류처분을 받았고 70년에는 미니스커트 차림의 여성들이 즉결심판에 회부되었는데 이것으로 당시의 처벌기준과 강도를 짐작할 수 있다.
(2) 핫팬츠
71년 봄에는 핫팬츠가 젊은 여성층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이 역시 과다노출로 많은 비판을 받았으나 속옷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미니스커트에 퍼부어진 것과 같은 비난만은 면할 수 있었다. 특히 술집이나 다방 아가씨 사이에서 크게 유행하여 \'핫팬츠 다방\'이라는 간판까지 등장한 적이 있으나 미니스커트와는 달리 상륙한지 1년도 못되어 인기를 잃고 사라지게 되었다.
(3) 청바지
70년대에 그룹 <비틀즈>가 전 세계적으로 유행시킨 긴 머리, 통기타 등의 대중문화가 국내에 들어오면서 이들이 즐겨 입던 블루진은 젊음의 상징으로 인식되었고, 심지어는 어린이와 중년층까지 착용하게 되어 블루진의 전성기라 일컬어졌다. 반면 몸에 꼭 끼는 청바지를 입은 남성들, 이와 함께 바짓단이 너덜너덜한 청바지를 입거나 새 바지의 염색을 빼고 돌로 문질러 일부러 흠집을 내고, 넓은 바지가랑이로 땅을 쓸고 다니는 듯한 젊은이들의 모습을 보고 \'불쾌감이 느껴지며 입는 사람의 마음가짐을 의심하게 된다\'는 기성세대의 한탄도 심심치 않게 나타났다.
(4) 판탈롱(나팔바지)
판탈롱은 당시 캠퍼스웨어나 타운웨어로써 입혀진 것으로 바지 아랫 가랑이에서 부리까지의 폭이 넓어지는 일명 나팔바지 스타일의 의복이었다. 판탈롱은 70년대 중반 이후 더욱 길고 넓어졌으며 청바지와 남성 양복바지에까지 이들의 \'나팔\'형태가 응용되었는데, 치렁치렁한 바짓단이 거리를 청소하고 다닌다는 조롱을 들었지만 70년대 중반기 유행을 주도하는 스타일이 되었다.
5. 옷의 역사 영 패션 시대
1) 영 패션시대 (1980~1990년)
- 1980년대: 경제성장을 비롯하여 사회가 전반적으로 급변하는 시기였다. 특히 1988년 올림픽 개최 이후의 국민소득 향상은 소비문화를 정착시키고 생활수준을 향상시켰으며, 사회전반에서 현대화의 경향이 뚜렷해졌다. 이러한 사회분위기 속에서 외국브랜드의 도입, 1980년 컬러TV의 방영과 1984년 패션 전무지 월간‘멋’의 창간, 교복자율화에 따른 캐주얼 브랜드의 급증, 1986년 아시안 게임과 1988년 올림픽 개최로 인한 스포츠 붐, ‘서울 국제기성복 박람회’ 개최 등은 패션문화를 더욱 활성화시켰다. 이에 따라 개성적이고 여유와 풍요로움을 추구하며 자유로운 스타일을 갈망하는 의복의 고급화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다.
(1) 유니섹스
이 시기 가장 큰 변화는 유니섹스(unisex)의 모드의 대두였다. 전문직 여성들이 생활 전선인 직장을 가짐에 딸라 남녀 평등화와 함께 커리어 우먼(career woman)들은 편한 활동복을 요구하였다. 이렇게 남녀 평등주의를 주창하면서 그 실현 방법의 하나로 남성 전용이었던 바지를 여성 정장복으로 삼았다. 특히 바지 착용은 여성 활동을 증가시키고 남녀평등 사상을 더욱 가속화했다. 생활수준이 향상됨으로 인해 라이프스타일이 다양해지고, 이에 맞춰 본격적인 캐주얼 시대가 왔다. 교복 자율화는 1980년 초 부분적으로 시행하다가 1983년부터 전면 실시되었다. 교복 자율화 이후 간편한 청바지에 점퍼티셔츠차림이 유행하였다. 특히 중 고등학생의 교복 자율화와 함께 해외여행 자율화는 의생활에 급격한 변화를 초래하였다. 1980년 컬러 TV방영은 패션계 변화를 더욱 활성화시켰다.
(2) 교복자율화
중고등학교의 교복착용은 80년대 초반까지 지속되었는데 1982년 1월 4일 문교부에서 교복은 83년 신입생부터, 두발은 82년 새 학기부터 자율화하도록 하였다. 이는 교복이 학생의 개성을 신장시키는 데 방해가 되는 일제 강점기의 잔재 중 하나이며, 우리의 생활문화가 차츰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는데 이미 아세아 지역에서도 교복을 착용하는 나라는 별로 없다는 인식 변화에서 고려된 것이었다.
사복이라 해도 헤어스타일과 복장에 대한 규제는 여전히 존재했는데, 여학생은 파마나 염색을 해서는 안되고 남학생에게는 옆머리가 귀를 덮거나 뒷머리가 깃에 닿는 장발이 금지되었다. 또한 자녀들의 욕구가 다양해지면서 그들이 원하는 사복을 구입하는데 드는 비용에 대한 학부모들의 반발도 종종 나타나게 되었다. 그러던 중 문교부에서 1990년 8월에 \'교
- 남녀 신생활복 : 당시 새 정부는 새로운 정권 건설을 위해서는 우선 국민 생활 개혁이 필요하다는 점을 주목하였다. 그리하여 55년 7월 8일 남녀 모두 의무적으로 신생활 복을 입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켜 양장을 일상화시키기에 이르렀다. 이는 활동을 간편하게 하고 손질하는 시간을 절약하여 경제적인 이점을 살리기 위한 것이었다. 1961년에 제정된 \'표준 간소복\'을 보면 남자의 근무복은 노타이의 스포츠 칼라에 뒤트임을 넣어 구겨지지 않도록 한 것이고, 여자의 근무복은 기능적이고 명랑한 느낌의 투피스로서 80도의 플레어스커트, 4개의 단추에 아웃포켓이 달린 상의를 기본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재건복은 \'국민복과는 단추 갯수만 다르고 미군 스포츠 칼라가 달린 데에 불룩한 덧주머니가 주렁주렁 붙은 모습\'으로 일본 국민복과 미국 전투복을 혼합한 형태에 불과하다는 비난을 받았고, 결국 신생활복 착용은 오래 가지 못해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1) 미니스커트
미니가 처음 국내에 소개된 것은 1967년 박윤정의 발표회였으나 실제 센세이션을 일으킨 것은 미국에서 귀국하던 윤복희가 입고 들어온 미니스커트였다. \'아이들이나 입을 옷\'이라 하여 충격과 웃음거리가 되었던 이 의복은 그에 아랑곳없이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유행하면서 길이가 점점 짧아졌고, 결국 요주의 풍속사범 단속대상이 되었다. 73년 3월에는 무릎 위 17cm이상 올라가는 미니를 과다노출로 규정, 경범죄처벌법에 포함시켰다. 69년 8월에 무릎 위 30cm의 초미니를 입고 거리를 걷던 여성이 25일간의 구류처분을 받았고 70년에는 미니스커트 차림의 여성들이 즉결심판에 회부되었는데 이것으로 당시의 처벌기준과 강도를 짐작할 수 있다.
(2) 핫팬츠
71년 봄에는 핫팬츠가 젊은 여성층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이 역시 과다노출로 많은 비판을 받았으나 속옷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미니스커트에 퍼부어진 것과 같은 비난만은 면할 수 있었다. 특히 술집이나 다방 아가씨 사이에서 크게 유행하여 \'핫팬츠 다방\'이라는 간판까지 등장한 적이 있으나 미니스커트와는 달리 상륙한지 1년도 못되어 인기를 잃고 사라지게 되었다.
(3) 청바지
70년대에 그룹 <비틀즈>가 전 세계적으로 유행시킨 긴 머리, 통기타 등의 대중문화가 국내에 들어오면서 이들이 즐겨 입던 블루진은 젊음의 상징으로 인식되었고, 심지어는 어린이와 중년층까지 착용하게 되어 블루진의 전성기라 일컬어졌다. 반면 몸에 꼭 끼는 청바지를 입은 남성들, 이와 함께 바짓단이 너덜너덜한 청바지를 입거나 새 바지의 염색을 빼고 돌로 문질러 일부러 흠집을 내고, 넓은 바지가랑이로 땅을 쓸고 다니는 듯한 젊은이들의 모습을 보고 \'불쾌감이 느껴지며 입는 사람의 마음가짐을 의심하게 된다\'는 기성세대의 한탄도 심심치 않게 나타났다.
(4) 판탈롱(나팔바지)
판탈롱은 당시 캠퍼스웨어나 타운웨어로써 입혀진 것으로 바지 아랫 가랑이에서 부리까지의 폭이 넓어지는 일명 나팔바지 스타일의 의복이었다. 판탈롱은 70년대 중반 이후 더욱 길고 넓어졌으며 청바지와 남성 양복바지에까지 이들의 \'나팔\'형태가 응용되었는데, 치렁치렁한 바짓단이 거리를 청소하고 다닌다는 조롱을 들었지만 70년대 중반기 유행을 주도하는 스타일이 되었다.
5. 옷의 역사 영 패션 시대
1) 영 패션시대 (1980~1990년)
- 1980년대: 경제성장을 비롯하여 사회가 전반적으로 급변하는 시기였다. 특히 1988년 올림픽 개최 이후의 국민소득 향상은 소비문화를 정착시키고 생활수준을 향상시켰으며, 사회전반에서 현대화의 경향이 뚜렷해졌다. 이러한 사회분위기 속에서 외국브랜드의 도입, 1980년 컬러TV의 방영과 1984년 패션 전무지 월간‘멋’의 창간, 교복자율화에 따른 캐주얼 브랜드의 급증, 1986년 아시안 게임과 1988년 올림픽 개최로 인한 스포츠 붐, ‘서울 국제기성복 박람회’ 개최 등은 패션문화를 더욱 활성화시켰다. 이에 따라 개성적이고 여유와 풍요로움을 추구하며 자유로운 스타일을 갈망하는 의복의 고급화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다.
(1) 유니섹스
이 시기 가장 큰 변화는 유니섹스(unisex)의 모드의 대두였다. 전문직 여성들이 생활 전선인 직장을 가짐에 딸라 남녀 평등화와 함께 커리어 우먼(career woman)들은 편한 활동복을 요구하였다. 이렇게 남녀 평등주의를 주창하면서 그 실현 방법의 하나로 남성 전용이었던 바지를 여성 정장복으로 삼았다. 특히 바지 착용은 여성 활동을 증가시키고 남녀평등 사상을 더욱 가속화했다. 생활수준이 향상됨으로 인해 라이프스타일이 다양해지고, 이에 맞춰 본격적인 캐주얼 시대가 왔다. 교복 자율화는 1980년 초 부분적으로 시행하다가 1983년부터 전면 실시되었다. 교복 자율화 이후 간편한 청바지에 점퍼티셔츠차림이 유행하였다. 특히 중 고등학생의 교복 자율화와 함께 해외여행 자율화는 의생활에 급격한 변화를 초래하였다. 1980년 컬러 TV방영은 패션계 변화를 더욱 활성화시켰다.
(2) 교복자율화
중고등학교의 교복착용은 80년대 초반까지 지속되었는데 1982년 1월 4일 문교부에서 교복은 83년 신입생부터, 두발은 82년 새 학기부터 자율화하도록 하였다. 이는 교복이 학생의 개성을 신장시키는 데 방해가 되는 일제 강점기의 잔재 중 하나이며, 우리의 생활문화가 차츰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는데 이미 아세아 지역에서도 교복을 착용하는 나라는 별로 없다는 인식 변화에서 고려된 것이었다.
사복이라 해도 헤어스타일과 복장에 대한 규제는 여전히 존재했는데, 여학생은 파마나 염색을 해서는 안되고 남학생에게는 옆머리가 귀를 덮거나 뒷머리가 깃에 닿는 장발이 금지되었다. 또한 자녀들의 욕구가 다양해지면서 그들이 원하는 사복을 구입하는데 드는 비용에 대한 학부모들의 반발도 종종 나타나게 되었다. 그러던 중 문교부에서 1990년 8월에 \'교
소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