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음악의 스토리텔링
2. 음악산업의 특성
가. 경험재
나. 비반복 소비재
다. 사치재, 감성적 소비재
3. 음악산업의 콘텐츠
가. 스타시스템
나.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의 메타 내러티브
다. 지역적 내러티브
4. 우리들의 이야기
2. 음악산업의 특성
가. 경험재
나. 비반복 소비재
다. 사치재, 감성적 소비재
3. 음악산업의 콘텐츠
가. 스타시스템
나.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의 메타 내러티브
다. 지역적 내러티브
4. 우리들의 이야기
본문내용
되어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외시킨다. 보통사람들의 이야기는 목소리를 높이지 못한다.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의 메타 내러티브
흔히들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라고 한다. 흔히들 말하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아는 것은 아닌 것이 포스트 모더니즘이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포스트 모더니즘 사회에 살면서 우리가 흔히 듣게 되는 말이 ‘거대 담론의 죽음’이다. J. F. 리오타르는 “포스트모던을 극단으로 단순화한다면 메타 내러티브에 대한 불신”이라고 말했다. 메타 내러티브(meta-narrative)란, 단순히 어떤 특정 종족의 이야기, 어떤 한시적인 이야기가 아닌 태초에서 종말로 진행되는 세계에 대한 보편적인 이야기라는 의미이다. 김용주, 『복음과 상황』224호, 기독교 세계관에 대한 소고② - 변화와 반론1
이러한 메타 내러티브는 보편성이라는 허황된 주장 아래 자신의 구성적 특성에는 눈을 감는다. 그리고 불가피하게 통일성, 동질성 등에 특권을 주면서 차이, 이질성, 타자성, 개방성 등을 은폐한다. 메타 내러티브는 지배 내러티브다. 도덕적 보편성에 대한 주장이 체계에 근거하든 메타 내러티브에 근거하든 간에 결국 도덕적 보편성은 권력과 권위가 있는 기득권층의 이익을 정당화해준다. 왈쉬, 미들톤, 『포스트 모던 시대의 기독교 세계관』
메타 내러티브에 대한 반발은 문화가 다수자들에 의해 전횡되는 것에 대한 반대로 이어진다. 특권적인 이야기는 존재할 수 없으며, 그 대신 지역적이고 다원적이며 소수자들의 이야기가 고무된다. 이는 대중에 의해 상업화된 문화에 반대한다. 소수자들의 이야기는 바로 ‘우리’의 이야기다. 우리의 이야기는 우리가 사는 맥락 속에서만 이뤄질 수 있다. 다른 누가 우리의 이야기를 해줄 순 없다. 그들이 우리의 이야기를 알 수도 없다. 우리의 이야기는 우리 스스로만 할 수있다. 우리가 우리의 이야기를 노래하는 곳이 언더그라운드, 인디씬 등으로 불리워지는 그 곳이다.
지금의 인디씬은 또 다른 메타 내러티브의 형태를 띠고 있는 측면이 있다. 아직 이들의 이야기엔 ‘젊음’의 짙은 색채가 너무 강하고, 도시 서울의 쾌쾌함이 너무 강하다. 인디씬을 이야기하면 홍대클럽이 자연스레 떠오르는 건 당연하다. 인디씬이 현실속 개별자들,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담아내기 위해선 지금의 홍대클럽이라는 정체성을 벗어나야 한다. 그곳은 우리 삶이 이뤄지는 공간과는 너무 괴리되어 있다. 그곳은 메타 내러티브가 이뤄지는 공간의 한복판이다. 그곳에서 지역적·다원적 내러티브가 이뤄지는 것은 한계가 있다. 인디씬은 좀 더 우리 삶의 맥락으로 들어와야 한다.
음악의 지역적 내러티브
문래동은 원래 철재상가단지였다. 88올림픽을 앞두고 건축, 제조업분야의 철재수요 급증으로 호시절을 겪었으나, 90년대 들어 쇠락하기 시작했고 90년대 중반 정부가 시흥단지로의 이주를 추진하면서 일부 업자들은 문래동을 떠났다. 그러던 중 2000년대 들어서 임대료가 싸고 넓은 작업실을 구하던 젊은 예술가들이 하나둘 문래동으로 흘러들면서 하나의 블락을 형성했고 지금 그곳은 ‘문래창작촌’으로 불리고 있다. 문래창작촌에선 작년 12월 기준으로 64개의 작업실, 150명이 넘는 예술가들이 활동하고 있다. 예술가들이 활동하는 장르도 회화, 조각부터 실내국악, 현대무용, 연극, 밴드, 게임음악 등 다양하다. 대부분 홍대나 대학로 등지의 작업실을 갖고 있다가 이주한 경우가 많다.
<문래동 풍경>
인디씬은 홍대가 아니라 문래동에서 노래해야 한다. 문래동에 작업실을 얻어야 한다는 게 아니라 문래동과 같은 삶의 맥락으로 들어와야 한다는 말이다. 지금의 대중문화에선 오버만 대형화되어있는게 아니다. 언더도 그 나름대로 집중화 대형화 되어있기는 마찬가지다. 인디도 홍대가 아니면 안된다. 홍대는 서울에밖에 없지만 문래동은 어디에나 있다. 구미, 전주, 삼척 어디에나 지역적 내러티브가 살아있다.
지역적 내러티브로써의 음악산업
파레토 법칙이 있다. 80:20 법칙이라고도 불리는데 상위 20%가 전체 80%의 매출을 올린다는 것. 웹 2.0시대에 접어들면서 롱테일 법칙이란 말이 생겼다. 최근의 인터넷 등의 기술의 발달로 재고나 물류에 드는 비용이 종래보다 훨씬 저렴해졌다. 특히 일반적인 소매점에 비해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온라인 비즈니스의 경우 베스트셀러와 함께 그동안 간과되어 온 비인기 상품에 대한 소비자의 진입장벽을 낮출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개별적으로는 비인기 상품도 전체적으로 모이면 틈새시장을 만들 수 있다. 실제로 아마존과 같은 인터넷 기반 기업에서는 이렇게 활성화된 틈새시장이 매출의 20∼30%에 육박하여 전체 이익면에서도 많은 부분에 기여하게 된 사례가 있는데 그리 많이 팔리지 않는 서적들이나 일부만이 좋아하는 종류의 음반이라도 효과적인 판매와 물류를 통해 많은 이윤을 창출할 수 있었다. 이러한 현상에서 전통적인 파레토 법칙에 반대되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게 되었으며 이를 롱테일 현상이라고 한다. 위키백과사전 http://ko.wikipedia.org/wiki/%EB%A1%B1%ED%85%8C%EC%9D%BC
세계화시대, 신자유주의 시대에 우리는 큰 것이 곧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누군가는 블루오션을 이야기했고 누군가는 롱테일을 이야기했다. 정보화 시대 인터넷의 발달은 세계적인 슈퍼스타를 만들어냈지만 동시에 친숙한 UCC스타도 만들어냈다.
놀이하는 인간 ‘호모 루덴스’는 ‘참여’가 본성이다. 최근 스토리텔링에 대한 관심도 스토리텔링의 현장성과 그것이 촉발시키는 참여에의 욕구때문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지역적 내러티브는 호모 루덴스의 참여가 필수적이다. 지역적 내러티브는 참여가 필요조건이면서 동시에 충분조건이다. 매번 아이돌 열풍이 휩쓸고 간 다음 나오는 말들은 음악의 상업화니, 대중음악의 천박함이니 하는 재미없는 말들 뿐이다. 이야기와 감성에 대한 인간의 욕구는 어떻게든 해소되어야 한다. 우리의 감성과 내러티브가 담긴 음악이 없다면 누군가의 감성과 누군가의 이야기가 담긴 음악이 소비될 수 밖에 없다. 일상을 노래하는 음악들이 풍성하게 채위지지 않는다면 우린 언제까지고 ‘그들’의 음악을 들을 수 밖엔 없는 노릇이다.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의 메타 내러티브
흔히들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라고 한다. 흔히들 말하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아는 것은 아닌 것이 포스트 모더니즘이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포스트 모더니즘 사회에 살면서 우리가 흔히 듣게 되는 말이 ‘거대 담론의 죽음’이다. J. F. 리오타르는 “포스트모던을 극단으로 단순화한다면 메타 내러티브에 대한 불신”이라고 말했다. 메타 내러티브(meta-narrative)란, 단순히 어떤 특정 종족의 이야기, 어떤 한시적인 이야기가 아닌 태초에서 종말로 진행되는 세계에 대한 보편적인 이야기라는 의미이다. 김용주, 『복음과 상황』224호, 기독교 세계관에 대한 소고② - 변화와 반론1
이러한 메타 내러티브는 보편성이라는 허황된 주장 아래 자신의 구성적 특성에는 눈을 감는다. 그리고 불가피하게 통일성, 동질성 등에 특권을 주면서 차이, 이질성, 타자성, 개방성 등을 은폐한다. 메타 내러티브는 지배 내러티브다. 도덕적 보편성에 대한 주장이 체계에 근거하든 메타 내러티브에 근거하든 간에 결국 도덕적 보편성은 권력과 권위가 있는 기득권층의 이익을 정당화해준다. 왈쉬, 미들톤, 『포스트 모던 시대의 기독교 세계관』
메타 내러티브에 대한 반발은 문화가 다수자들에 의해 전횡되는 것에 대한 반대로 이어진다. 특권적인 이야기는 존재할 수 없으며, 그 대신 지역적이고 다원적이며 소수자들의 이야기가 고무된다. 이는 대중에 의해 상업화된 문화에 반대한다. 소수자들의 이야기는 바로 ‘우리’의 이야기다. 우리의 이야기는 우리가 사는 맥락 속에서만 이뤄질 수 있다. 다른 누가 우리의 이야기를 해줄 순 없다. 그들이 우리의 이야기를 알 수도 없다. 우리의 이야기는 우리 스스로만 할 수있다. 우리가 우리의 이야기를 노래하는 곳이 언더그라운드, 인디씬 등으로 불리워지는 그 곳이다.
지금의 인디씬은 또 다른 메타 내러티브의 형태를 띠고 있는 측면이 있다. 아직 이들의 이야기엔 ‘젊음’의 짙은 색채가 너무 강하고, 도시 서울의 쾌쾌함이 너무 강하다. 인디씬을 이야기하면 홍대클럽이 자연스레 떠오르는 건 당연하다. 인디씬이 현실속 개별자들,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담아내기 위해선 지금의 홍대클럽이라는 정체성을 벗어나야 한다. 그곳은 우리 삶이 이뤄지는 공간과는 너무 괴리되어 있다. 그곳은 메타 내러티브가 이뤄지는 공간의 한복판이다. 그곳에서 지역적·다원적 내러티브가 이뤄지는 것은 한계가 있다. 인디씬은 좀 더 우리 삶의 맥락으로 들어와야 한다.
음악의 지역적 내러티브
문래동은 원래 철재상가단지였다. 88올림픽을 앞두고 건축, 제조업분야의 철재수요 급증으로 호시절을 겪었으나, 90년대 들어 쇠락하기 시작했고 90년대 중반 정부가 시흥단지로의 이주를 추진하면서 일부 업자들은 문래동을 떠났다. 그러던 중 2000년대 들어서 임대료가 싸고 넓은 작업실을 구하던 젊은 예술가들이 하나둘 문래동으로 흘러들면서 하나의 블락을 형성했고 지금 그곳은 ‘문래창작촌’으로 불리고 있다. 문래창작촌에선 작년 12월 기준으로 64개의 작업실, 150명이 넘는 예술가들이 활동하고 있다. 예술가들이 활동하는 장르도 회화, 조각부터 실내국악, 현대무용, 연극, 밴드, 게임음악 등 다양하다. 대부분 홍대나 대학로 등지의 작업실을 갖고 있다가 이주한 경우가 많다.
<문래동 풍경>
인디씬은 홍대가 아니라 문래동에서 노래해야 한다. 문래동에 작업실을 얻어야 한다는 게 아니라 문래동과 같은 삶의 맥락으로 들어와야 한다는 말이다. 지금의 대중문화에선 오버만 대형화되어있는게 아니다. 언더도 그 나름대로 집중화 대형화 되어있기는 마찬가지다. 인디도 홍대가 아니면 안된다. 홍대는 서울에밖에 없지만 문래동은 어디에나 있다. 구미, 전주, 삼척 어디에나 지역적 내러티브가 살아있다.
지역적 내러티브로써의 음악산업
파레토 법칙이 있다. 80:20 법칙이라고도 불리는데 상위 20%가 전체 80%의 매출을 올린다는 것. 웹 2.0시대에 접어들면서 롱테일 법칙이란 말이 생겼다. 최근의 인터넷 등의 기술의 발달로 재고나 물류에 드는 비용이 종래보다 훨씬 저렴해졌다. 특히 일반적인 소매점에 비해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온라인 비즈니스의 경우 베스트셀러와 함께 그동안 간과되어 온 비인기 상품에 대한 소비자의 진입장벽을 낮출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개별적으로는 비인기 상품도 전체적으로 모이면 틈새시장을 만들 수 있다. 실제로 아마존과 같은 인터넷 기반 기업에서는 이렇게 활성화된 틈새시장이 매출의 20∼30%에 육박하여 전체 이익면에서도 많은 부분에 기여하게 된 사례가 있는데 그리 많이 팔리지 않는 서적들이나 일부만이 좋아하는 종류의 음반이라도 효과적인 판매와 물류를 통해 많은 이윤을 창출할 수 있었다. 이러한 현상에서 전통적인 파레토 법칙에 반대되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게 되었으며 이를 롱테일 현상이라고 한다. 위키백과사전 http://ko.wikipedia.org/wiki/%EB%A1%B1%ED%85%8C%EC%9D%BC
세계화시대, 신자유주의 시대에 우리는 큰 것이 곧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누군가는 블루오션을 이야기했고 누군가는 롱테일을 이야기했다. 정보화 시대 인터넷의 발달은 세계적인 슈퍼스타를 만들어냈지만 동시에 친숙한 UCC스타도 만들어냈다.
놀이하는 인간 ‘호모 루덴스’는 ‘참여’가 본성이다. 최근 스토리텔링에 대한 관심도 스토리텔링의 현장성과 그것이 촉발시키는 참여에의 욕구때문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지역적 내러티브는 호모 루덴스의 참여가 필수적이다. 지역적 내러티브는 참여가 필요조건이면서 동시에 충분조건이다. 매번 아이돌 열풍이 휩쓸고 간 다음 나오는 말들은 음악의 상업화니, 대중음악의 천박함이니 하는 재미없는 말들 뿐이다. 이야기와 감성에 대한 인간의 욕구는 어떻게든 해소되어야 한다. 우리의 감성과 내러티브가 담긴 음악이 없다면 누군가의 감성과 누군가의 이야기가 담긴 음악이 소비될 수 밖에 없다. 일상을 노래하는 음악들이 풍성하게 채위지지 않는다면 우린 언제까지고 ‘그들’의 음악을 들을 수 밖엔 없는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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