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87년, 두 개의 시민
2. 노동자들의 파업과 민주주의 투쟁
1) ‘합의된 이행’ 이후 정치와 경제의 분리
2) 노동자들의 파업도 민주주의 투쟁
3. 문민정부, 김대중-노무현 시절
1) ‘문민화’ 라는 환상이 가린 현실
2) 지난 10년에 ‘민주주의’라는 이름을 붙일 수 없는 이유
4. 소결
2. 노동자들의 파업과 민주주의 투쟁
1) ‘합의된 이행’ 이후 정치와 경제의 분리
2) 노동자들의 파업도 민주주의 투쟁
3. 문민정부, 김대중-노무현 시절
1) ‘문민화’ 라는 환상이 가린 현실
2) 지난 10년에 ‘민주주의’라는 이름을 붙일 수 없는 이유
4. 소결
본문내용
이야기되고 있는 신자유주의의 시작이기도 했다. 문민정부는 IMF로 인해 외국계 자본에게 한국 시장을 전면 개방하기 전에도, 우루과이라운드, OECD가입을 통해 이미 자유롭게 세계를 돌아다니며 이윤이 생길 곳을 찾고 있던 외국계 투기자본에게 한국 시장을 서서히 개방하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한국자본의 생산력 열위로 인해 피해를 볼 한국의 다양한 시민 - 특히 노동자, 농민 - 을 보호하기 위한 방안은 별로 고민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2) 지난 10년에 ‘민주주의’라는 이름을 붙일 수 없는 이유
김대중 - 노무현 정부가 민주주의의 표상을 갖게 된 것은 이명박 정부와의 비교우위 때문이다. 분명 이명박 정권 시기에 공권력에 의한 시민 사회 운동에 대한 탄압이 이전 정권에 비해 훨씬 강력해졌지만, 이 때문에 이명박을 독재, 김대중-노무현을 민주주의라고 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독재는 흔히 ‘군부 지배’ ‘일당-일인의 전횡적 통치’ ‘억압적 통치’ 등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는 말이다. 일각에서 사용되는 ‘소통의 부재’ 라는 말도 시민 사회와 반대 당의 의견을 무시하고 행정부와 집권 여당이 정책을 일방적으로 강행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좀 더 꼼꼼히 들여다보면, 이는 시민 사회 내 다양한 요구를 정당이나 정책을 통해 대변하는 이익 매개 기능의 약화라고 해석할 수 있다. 쉽게 말하면, 대의제가 민의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광우병 쇠고기부터 시작하여, 공기업 민영화, 미디어법, 4대강 사업 등이 시민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채 통과되고 진행되었다.
그러나 국민의 정부(김대중), 참여정부(노무현)시기에 과연 시민 사회와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졌는지 묻는다면 그 대답은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인민주의적 통치에 기초한 정당제와 대의제의 약화는 두 정부 내내 지속된 현상이었고, 예전부터 누누이 지적되어온 사안이었다. 2007년에 이랜드 여성노동자들을 비롯한 수많은 비정규직의 대량해고를 야기했던 비정규직법은 노무현 정부 때 통과된 법안이었다.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에게 표를 던졌던 수많은 사람들까지 반대했던 이라크 파병을 강행한 것도 바로 그 자신이었다. 우리는 너무 쉽게 잊으며, 너무 쉽게 현재의 상황에 맞게 기억을 재구성해 버린다.
이 두 사람은 또한 신자유주의 정책을 한국 사회에 적극적으로 도입한 사람들이다. IMF 위기와 함께 대통령 임기를 시작한 김대중은, ‘구조조정 2년 유예’라는 공약을 당선 직후 뒤집으면서까지 IMF와의 재협상을 진행하고, 주식회사와 외환시장 개방, 노동유연화와 같은 조치를 취하면서 구제금융을 받는다. IMF 조기졸업을 위해 주식시장을 부양시키고, 신용카드를 남발하였으며, 부동산시장 활성화를 진행하여 많은 시민들의 삶이 파괴되어 사회문제화 되었다. 현재 커다란 사회적 문제인 비정규직은 이 때 부터 급증하기 시작했고, 아직 자리 잡지도 못한 복지제도가 공격 받으면서 빈곤층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의 수가 한국인구의 6분의 1에 육박하게 되었다. 비정규직이 늘어나고, 빈곤층이 늘어난다는 것은 한국 사회에 시민으로서의 정당한 권리를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김대중과 노무현이 임기 내내 보수언론에 의해 괴롭힘을 당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러한 비판 지점은 조중동이 김대중과 노무현을 생채기내기 위해 특별히 나쁘게 평가한 것이 아니다. 당장의 구조조정만은 막아내겠다고 했던 이, 비정규직의 눈물을 닦아주겠다던 이, 한국의 자랑스러운 민주화 역사의 산증인들. 이들이 대통령이 된다면 민주주의가 발전하고 경제적 불평등이 해소될 것이라고 생각하며 이들을 지지했던 사람들이 그 믿음이 배신당한 것에 대해 분노하며 인정했던, 사실이다.
김대중과 노무현 시기에 ‘민주주의’의 이름을 붙인다는 것, 이는 ‘대안’과 연관된 문제이기에 더욱 중요하다. 지금보다 약간 더 시민사회운동에 대한 탄압이 덜하였으나 신자유주의 정책은 관철되었던 시기, 지금보다 서울 시내 경찰의 무장은 덜했지만 평택에 미군 기지를 건설하기 위해서라면 군대까지도 투입했던 그 때로 돌아가기 위해 우리가 민주주의 투쟁을 진행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즉각적으로 대비되어 보이는 정치세력에 ‘민주주의’라는 이름을 바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바라는 민주주의 모습과 내용을 명확히 하면서, 그것을 대안으로, 또 그 대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한 싸움을 진행해야 한다.
4. 소결
변한 것도 있고 변하지 않은 것도 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바로 지금, 이 세계에 절망해, 어떻게든 세계를 바꾸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 서경식, 『디아스포라 기행』 중에서
2009년, 민주주의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무엇이 변했고 또 변하지 않았는지를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그 변화가 정말 우리가 생각하는 민주주의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변화인지를 아는 것도 중요하다. 우리가 ‘이 세계에 절망해 어떻게든 세계를 바꾸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의 존재를 인지한다면, 이 내용은 좀 더 분명해질 것이다.
여전히 인터넷 댓글에는 이명박을 희화화하는 댓글이 끊임없이 달리는데도, 최근 이명박 지지율이 50%에 육박하면서 많은 사람들은 당연한 이 사실, 즉 ‘반대’만으로 대안이 밝혀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제대로 확인한 것 같다. 이명박을 반대한다는 것을 명확히 하기 위해 민주주의의 반대어인 독재로 그를 수식하고, 노무현의 자살을 민주주의의 죽음으로, 노무현 정부 시기 전체를 민주주의의 시기로 아무리 의미부여를 한들 지지율 50%는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한국 사회에 여전히 변해야 할 것이 많다고 생각했던 이들은 모든 이들이 누려야 할 권리가 무엇인지 명확한 기준이 있었기 때문에 노무현 재임 당시 노무현을 비판할 수 있었던 것이고, 이명박 역시 마찬가지이다. 다시 묻자. 현재 한국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의 삶의 질을 누려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이러한 삶을 누릴 권리를 갖지 못해야 하는 이들이 있는가? 그이들이 왜 노동자여야 하는가? 그 사람들이 왜 빈민이어야 하는가? 내가 말했던 민주주의가 누군가를 배제하고 누군가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2) 지난 10년에 ‘민주주의’라는 이름을 붙일 수 없는 이유
김대중 - 노무현 정부가 민주주의의 표상을 갖게 된 것은 이명박 정부와의 비교우위 때문이다. 분명 이명박 정권 시기에 공권력에 의한 시민 사회 운동에 대한 탄압이 이전 정권에 비해 훨씬 강력해졌지만, 이 때문에 이명박을 독재, 김대중-노무현을 민주주의라고 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독재는 흔히 ‘군부 지배’ ‘일당-일인의 전횡적 통치’ ‘억압적 통치’ 등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는 말이다. 일각에서 사용되는 ‘소통의 부재’ 라는 말도 시민 사회와 반대 당의 의견을 무시하고 행정부와 집권 여당이 정책을 일방적으로 강행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좀 더 꼼꼼히 들여다보면, 이는 시민 사회 내 다양한 요구를 정당이나 정책을 통해 대변하는 이익 매개 기능의 약화라고 해석할 수 있다. 쉽게 말하면, 대의제가 민의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광우병 쇠고기부터 시작하여, 공기업 민영화, 미디어법, 4대강 사업 등이 시민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채 통과되고 진행되었다.
그러나 국민의 정부(김대중), 참여정부(노무현)시기에 과연 시민 사회와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졌는지 묻는다면 그 대답은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인민주의적 통치에 기초한 정당제와 대의제의 약화는 두 정부 내내 지속된 현상이었고, 예전부터 누누이 지적되어온 사안이었다. 2007년에 이랜드 여성노동자들을 비롯한 수많은 비정규직의 대량해고를 야기했던 비정규직법은 노무현 정부 때 통과된 법안이었다.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에게 표를 던졌던 수많은 사람들까지 반대했던 이라크 파병을 강행한 것도 바로 그 자신이었다. 우리는 너무 쉽게 잊으며, 너무 쉽게 현재의 상황에 맞게 기억을 재구성해 버린다.
이 두 사람은 또한 신자유주의 정책을 한국 사회에 적극적으로 도입한 사람들이다. IMF 위기와 함께 대통령 임기를 시작한 김대중은, ‘구조조정 2년 유예’라는 공약을 당선 직후 뒤집으면서까지 IMF와의 재협상을 진행하고, 주식회사와 외환시장 개방, 노동유연화와 같은 조치를 취하면서 구제금융을 받는다. IMF 조기졸업을 위해 주식시장을 부양시키고, 신용카드를 남발하였으며, 부동산시장 활성화를 진행하여 많은 시민들의 삶이 파괴되어 사회문제화 되었다. 현재 커다란 사회적 문제인 비정규직은 이 때 부터 급증하기 시작했고, 아직 자리 잡지도 못한 복지제도가 공격 받으면서 빈곤층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의 수가 한국인구의 6분의 1에 육박하게 되었다. 비정규직이 늘어나고, 빈곤층이 늘어난다는 것은 한국 사회에 시민으로서의 정당한 권리를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김대중과 노무현이 임기 내내 보수언론에 의해 괴롭힘을 당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러한 비판 지점은 조중동이 김대중과 노무현을 생채기내기 위해 특별히 나쁘게 평가한 것이 아니다. 당장의 구조조정만은 막아내겠다고 했던 이, 비정규직의 눈물을 닦아주겠다던 이, 한국의 자랑스러운 민주화 역사의 산증인들. 이들이 대통령이 된다면 민주주의가 발전하고 경제적 불평등이 해소될 것이라고 생각하며 이들을 지지했던 사람들이 그 믿음이 배신당한 것에 대해 분노하며 인정했던, 사실이다.
김대중과 노무현 시기에 ‘민주주의’의 이름을 붙인다는 것, 이는 ‘대안’과 연관된 문제이기에 더욱 중요하다. 지금보다 약간 더 시민사회운동에 대한 탄압이 덜하였으나 신자유주의 정책은 관철되었던 시기, 지금보다 서울 시내 경찰의 무장은 덜했지만 평택에 미군 기지를 건설하기 위해서라면 군대까지도 투입했던 그 때로 돌아가기 위해 우리가 민주주의 투쟁을 진행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즉각적으로 대비되어 보이는 정치세력에 ‘민주주의’라는 이름을 바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바라는 민주주의 모습과 내용을 명확히 하면서, 그것을 대안으로, 또 그 대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한 싸움을 진행해야 한다.
4. 소결
변한 것도 있고 변하지 않은 것도 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바로 지금, 이 세계에 절망해, 어떻게든 세계를 바꾸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 서경식, 『디아스포라 기행』 중에서
2009년, 민주주의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무엇이 변했고 또 변하지 않았는지를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그 변화가 정말 우리가 생각하는 민주주의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변화인지를 아는 것도 중요하다. 우리가 ‘이 세계에 절망해 어떻게든 세계를 바꾸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의 존재를 인지한다면, 이 내용은 좀 더 분명해질 것이다.
여전히 인터넷 댓글에는 이명박을 희화화하는 댓글이 끊임없이 달리는데도, 최근 이명박 지지율이 50%에 육박하면서 많은 사람들은 당연한 이 사실, 즉 ‘반대’만으로 대안이 밝혀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제대로 확인한 것 같다. 이명박을 반대한다는 것을 명확히 하기 위해 민주주의의 반대어인 독재로 그를 수식하고, 노무현의 자살을 민주주의의 죽음으로, 노무현 정부 시기 전체를 민주주의의 시기로 아무리 의미부여를 한들 지지율 50%는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한국 사회에 여전히 변해야 할 것이 많다고 생각했던 이들은 모든 이들이 누려야 할 권리가 무엇인지 명확한 기준이 있었기 때문에 노무현 재임 당시 노무현을 비판할 수 있었던 것이고, 이명박 역시 마찬가지이다. 다시 묻자. 현재 한국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의 삶의 질을 누려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이러한 삶을 누릴 권리를 갖지 못해야 하는 이들이 있는가? 그이들이 왜 노동자여야 하는가? 그 사람들이 왜 빈민이어야 하는가? 내가 말했던 민주주의가 누군가를 배제하고 누군가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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