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무교란
한국의 종교문화와 무교
1)한국인의 놀이: 신들림과 신명의 한판
2) 유교와 무교
3)불교와 무교
4)도교와 무교
5)신종교와 무교
6)기독교와 무교
7)김일성 숭배와 무교
무교에 대한 비판
2)무교의 원초성
3)무교와 여성
4)무교의 문제점과 한계
신에게 끌려 다니는 무당
유교란
유교와 한국 문화
1)한국 역사 속의 유교
2)유교와 한국 사회-한국에 끼친 영향을 중심으로
유교와 그 실존적 의미
1)유교는 종교인가 아닌가
2)유교와 여성
3)유교의 현주소
한국의 종교문화와 무교
1)한국인의 놀이: 신들림과 신명의 한판
2) 유교와 무교
3)불교와 무교
4)도교와 무교
5)신종교와 무교
6)기독교와 무교
7)김일성 숭배와 무교
무교에 대한 비판
2)무교의 원초성
3)무교와 여성
4)무교의 문제점과 한계
신에게 끌려 다니는 무당
유교란
유교와 한국 문화
1)한국 역사 속의 유교
2)유교와 한국 사회-한국에 끼친 영향을 중심으로
유교와 그 실존적 의미
1)유교는 종교인가 아닌가
2)유교와 여성
3)유교의 현주소
본문내용
형을 찾아가보면 중국의 역사책은 [삼국지], [위지 동인전]에 인용되어 있는 고구려의 동맹, 부여의 영고와 같은 제천의례에서 찾을수 있다. 이 제천의례는 쉽게 말해는 굿판 그 자체이다. 그 때부터 우리 민족의 노는 열정이 타민족의과 다르게 눈에 띄었다. 우리 놀이문화에서의 신바람의 근원은 무교를 떠나서는 설명이 잘 안 될 성싶다. 신바람 신명은 바로 신이 내렸을 때 신이 들렸을 때 생기는 망아경적인 현상이다. 신이 나기 위해서는 신이 내려야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굿을 하는 무당에게 신이 지피면 무당이 망아경 속에서 신명나게 한판 놀듯이 우리는 놀 때나 일할 때 바로 이 모습을 반복하는 것이다.
2) 유교와 무교
유교가 5000년 이상 기본 통치이념으로 굳건하게 자리잡고 있었던 조선조 동안 무교는 항상 금압의 대상이었다.
대체로 조선조의 종교신행의 모습은 남성 위주의 유교와 여성 위주의 불교와 무교가 나름대로 공존했던 것으로 나타난다. 유교와 무교가 서로 대립적인 상황에 있었다기보다는 양과 음이 서로 보완하듯이 하나의 구조 안에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무교에서는 상대적으로 볼 때 남성이 우월한 유교와는 달리여성이 항상 중심적인 위치에 처한다. 제사의 대상이 주로 부계의 남자들에게만 국한되어 있다. 주로 나이든 조상만을 모신다. 반대로 무교에서는 유교의 제사에 해당되지 않는 사람들 억울에게 죽을음 당하거나 슬픔이 있는 사연이 있는 영혼들을 쓰다듬어준다. 이로서 유교와 무교의 서로 상반되면서도 서로가 없는 부분들을 채워주고 있다. 조선시대의 사람들은 유교가 강조하는 여러가지 질서에 사람들은 억압되며 살아간다. 하지만 축제와 굿판을 벌림으로써 유교가 가지고 있는 강압적인 것들을 그 상황만큼은 달리하며 나와 남을 가르고 내것 네것, 남녀노소 등 인간사회를 기본적으로 갈라 왔던 모든 구분이 없어진다. 이렇든 유교와 무교는 서로를 다른방면으로 보지만 각각의 종교가 못채워주는 우리의 삶을 서로 보완하면서 채워준다.
3)불교와 무교
불교와 무교는 같이 박해받는 입장에서 상호 동반관계에 있었다. 불교가 박해받자 불교에서는 신도들을 산골 절에까지 오게 하기 위해 무교의 많은 요소들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 대표적인 것이 삼신, 즉 불교 계통의 독성, 도교나 무교 계통의 산신과 칠성신을 모시는 삼성각 혹은 삼신각의 경우이다.
무교의 내세관이나 죽은 영혼에게 가하는 심판의 기준등에서 유교적 요소도 발견되지만 기본적으로는 불교적인 것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불교에서 무교 계통의 산신이나 칠성신을 받아들였듯이 무교에서도 불교 계통의 신령을 받아들였다. 그 가운데에서도 삼불석이 전형적인 예이다. 그외에 많은 무당들이 불상이나 보살상을 모시고 무업을 하고 있다. 불교는 원래 개방된 종교이고 부처님은 우리에게 가장 자애로운 이미지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무당들도 무신도로 가득한 자신들의 제단에 불상을 모시는 데에 하등 모순이나 어색함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이렇듯 무교에는 불교의 많은 요소들이 아무런 거부감 없이 수용되어 왔다. 이것은 불교가 중국에 전래되면서 중국 고요유의 종교인 유교, 도교와 만나서 상호 교섭하는 과정에서 생겼던 경우와 비슷하다.
4)도교와 무교
중국에 있던 종교 가운데 대종교들은 대부분 우리나라에 수입되어 불교나 유교의 경우처럼 번성을 구가했던 것이 통례인데 유일한 예외는 도교이다. 도교와 무교의 관계를 볼 때 중국과 한국은 완전히 상반된 대조를 이룬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중국의 경우는 무교가 도교에 흡수되어 맥을 못 추었던 반면 한국의 경우는 워낙 무교의 전통이 강했기 때문에 도교가 고구려 말에 수입되어 고려조에 왕실을 중심으로 신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불교나 유교처럼 가시적인 뿌리는 내리지 못했다.
그러나 도교가 한국 종교에 두드러진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지언정 무교를 포함한 민간종교의 소소한 영역에서는 적지 않은 흔적을 남겼다. 그 중 눈에 띄는것은 도교 계통의 신령이 한국 무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관운장은 관제나 관성제군으로 불리는데 조선시대 선조때 관우를 한국 조정에서 모시는 신으로 공식 제정하였다. 그 이후 관우는 한국 무교에 스며들기 시작하였다. 그 외에 칠성신 같은 신령도 도교에서 왔는데 북두칠성이 그 신체라고 간주되는 칠성신은 인가늬 수명을 관장한다고 믿어져 왔다. 또 도교의 영향은 무당들의 부적 처방에서도 보인다.
5)신종교와 무교
학자들은 대채로 우리나라에 350개 안팎의 신흥종교 교단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학자들은 이것을 또 10여개 분파로 나누어 정리하는데 그 가운데 항상 무교가 포함된다. 기본이념 형성에 있어서 무교의 기본 가치관을 흡수한 사람은 소운, 소태산과 더불어 한국 신종교의 삼대 산맥을 이루고 있는 강증산이다. 이들의 종교사상에 여러 전통 종교사상이 두루 영향을 끼쳤지만 아무래도 수운에게서는 유교의 영향이 많이 보이고 소태산에게서는 불교의 틀이 강하게 보이는 반면 강증산은 가장 토속적인 종교 사상가로 무교의 요소가 그의 가르침 저변에 깔려 있다.
6)기독교와 무교
한국에 기독교가 들어와 전도되는 과정에서 샤머니즘이라는 \'우상숭배교를 만나 한반도에서 역사상 거의 최초로 우상숭배를 부리 뽑겠다는 기세등등한 자신감을 가지고 일전에 임했는데 결과는 반대로 나왔다는 것이다. 즉 기독교 전도를 위해 무교의 끈질긴 생명력과 타협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무교의 여러 요소를 받아들여 한국 기독교는 껍데기만 기독교이고 속알맹이는 완전 무교가 되었다.
학자들은 학국 교회가 무교화된 측면 가운데 가장 큰 것을 현세 기복적 신앙으로 꼽고있다. 또 어떤 학자들은 부흥회에서의 눈을 거의 감은 채로 같은 찬송가를 몇 번이고 반복하면서 몸을 좌우 혹은 앞뒤로 계속 흔들고 긴 찬송가 찬양이 끝나면 큰소리로 저마다 이른바 통성기도를 한다 이른바 방언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모습에서 무교의 영향을 찾으려고 한다. 마치 굿판과 같다는 것이다. 또 한 무교의 영향이 명확이 드러나는 것은 많은 수는 아니지만 몇몇 목사에게서 발견되는 질병관이다. 어떤 교회에서는 병의 발병이 아예 귀신탓이라고 못박아 이야기한다. 그래서 그 교회의 예배
2) 유교와 무교
유교가 5000년 이상 기본 통치이념으로 굳건하게 자리잡고 있었던 조선조 동안 무교는 항상 금압의 대상이었다.
대체로 조선조의 종교신행의 모습은 남성 위주의 유교와 여성 위주의 불교와 무교가 나름대로 공존했던 것으로 나타난다. 유교와 무교가 서로 대립적인 상황에 있었다기보다는 양과 음이 서로 보완하듯이 하나의 구조 안에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무교에서는 상대적으로 볼 때 남성이 우월한 유교와는 달리여성이 항상 중심적인 위치에 처한다. 제사의 대상이 주로 부계의 남자들에게만 국한되어 있다. 주로 나이든 조상만을 모신다. 반대로 무교에서는 유교의 제사에 해당되지 않는 사람들 억울에게 죽을음 당하거나 슬픔이 있는 사연이 있는 영혼들을 쓰다듬어준다. 이로서 유교와 무교의 서로 상반되면서도 서로가 없는 부분들을 채워주고 있다. 조선시대의 사람들은 유교가 강조하는 여러가지 질서에 사람들은 억압되며 살아간다. 하지만 축제와 굿판을 벌림으로써 유교가 가지고 있는 강압적인 것들을 그 상황만큼은 달리하며 나와 남을 가르고 내것 네것, 남녀노소 등 인간사회를 기본적으로 갈라 왔던 모든 구분이 없어진다. 이렇든 유교와 무교는 서로를 다른방면으로 보지만 각각의 종교가 못채워주는 우리의 삶을 서로 보완하면서 채워준다.
3)불교와 무교
불교와 무교는 같이 박해받는 입장에서 상호 동반관계에 있었다. 불교가 박해받자 불교에서는 신도들을 산골 절에까지 오게 하기 위해 무교의 많은 요소들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 대표적인 것이 삼신, 즉 불교 계통의 독성, 도교나 무교 계통의 산신과 칠성신을 모시는 삼성각 혹은 삼신각의 경우이다.
무교의 내세관이나 죽은 영혼에게 가하는 심판의 기준등에서 유교적 요소도 발견되지만 기본적으로는 불교적인 것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불교에서 무교 계통의 산신이나 칠성신을 받아들였듯이 무교에서도 불교 계통의 신령을 받아들였다. 그 가운데에서도 삼불석이 전형적인 예이다. 그외에 많은 무당들이 불상이나 보살상을 모시고 무업을 하고 있다. 불교는 원래 개방된 종교이고 부처님은 우리에게 가장 자애로운 이미지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무당들도 무신도로 가득한 자신들의 제단에 불상을 모시는 데에 하등 모순이나 어색함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이렇듯 무교에는 불교의 많은 요소들이 아무런 거부감 없이 수용되어 왔다. 이것은 불교가 중국에 전래되면서 중국 고요유의 종교인 유교, 도교와 만나서 상호 교섭하는 과정에서 생겼던 경우와 비슷하다.
4)도교와 무교
중국에 있던 종교 가운데 대종교들은 대부분 우리나라에 수입되어 불교나 유교의 경우처럼 번성을 구가했던 것이 통례인데 유일한 예외는 도교이다. 도교와 무교의 관계를 볼 때 중국과 한국은 완전히 상반된 대조를 이룬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중국의 경우는 무교가 도교에 흡수되어 맥을 못 추었던 반면 한국의 경우는 워낙 무교의 전통이 강했기 때문에 도교가 고구려 말에 수입되어 고려조에 왕실을 중심으로 신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불교나 유교처럼 가시적인 뿌리는 내리지 못했다.
그러나 도교가 한국 종교에 두드러진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지언정 무교를 포함한 민간종교의 소소한 영역에서는 적지 않은 흔적을 남겼다. 그 중 눈에 띄는것은 도교 계통의 신령이 한국 무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관운장은 관제나 관성제군으로 불리는데 조선시대 선조때 관우를 한국 조정에서 모시는 신으로 공식 제정하였다. 그 이후 관우는 한국 무교에 스며들기 시작하였다. 그 외에 칠성신 같은 신령도 도교에서 왔는데 북두칠성이 그 신체라고 간주되는 칠성신은 인가늬 수명을 관장한다고 믿어져 왔다. 또 도교의 영향은 무당들의 부적 처방에서도 보인다.
5)신종교와 무교
학자들은 대채로 우리나라에 350개 안팎의 신흥종교 교단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학자들은 이것을 또 10여개 분파로 나누어 정리하는데 그 가운데 항상 무교가 포함된다. 기본이념 형성에 있어서 무교의 기본 가치관을 흡수한 사람은 소운, 소태산과 더불어 한국 신종교의 삼대 산맥을 이루고 있는 강증산이다. 이들의 종교사상에 여러 전통 종교사상이 두루 영향을 끼쳤지만 아무래도 수운에게서는 유교의 영향이 많이 보이고 소태산에게서는 불교의 틀이 강하게 보이는 반면 강증산은 가장 토속적인 종교 사상가로 무교의 요소가 그의 가르침 저변에 깔려 있다.
6)기독교와 무교
한국에 기독교가 들어와 전도되는 과정에서 샤머니즘이라는 \'우상숭배교를 만나 한반도에서 역사상 거의 최초로 우상숭배를 부리 뽑겠다는 기세등등한 자신감을 가지고 일전에 임했는데 결과는 반대로 나왔다는 것이다. 즉 기독교 전도를 위해 무교의 끈질긴 생명력과 타협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무교의 여러 요소를 받아들여 한국 기독교는 껍데기만 기독교이고 속알맹이는 완전 무교가 되었다.
학자들은 학국 교회가 무교화된 측면 가운데 가장 큰 것을 현세 기복적 신앙으로 꼽고있다. 또 어떤 학자들은 부흥회에서의 눈을 거의 감은 채로 같은 찬송가를 몇 번이고 반복하면서 몸을 좌우 혹은 앞뒤로 계속 흔들고 긴 찬송가 찬양이 끝나면 큰소리로 저마다 이른바 통성기도를 한다 이른바 방언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모습에서 무교의 영향을 찾으려고 한다. 마치 굿판과 같다는 것이다. 또 한 무교의 영향이 명확이 드러나는 것은 많은 수는 아니지만 몇몇 목사에게서 발견되는 질병관이다. 어떤 교회에서는 병의 발병이 아예 귀신탓이라고 못박아 이야기한다. 그래서 그 교회의 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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