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요약] 여성의 근대 근대의 여성 (저자 김경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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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책 요약] 여성의 근대 근대의 여성 (저자 김경일)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근대의 옷을 입은 신여성의 출현 (14p)
2. 변화와 갈등의 물결을 타다 (34p)
3. 자기정체성에 눈뜨다 (66p)
4.성과 사랑의 자유를 부르짖다 (116p)
5. 단발에 스카프를 두르고 종로거리를 활보하다.(170p)
6. 소비와 유행의 선두에 서다(p214)
7. 학교에 가다
8. 학교제도를 비판하다(307)
9. 직업전선에 뛰어들다

본문내용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었으며, 이들 신여성에게 근대는 압도적으로 서구의 근대를 의미했다. 민족주의 계열의 신여성 일반에게서 두드러지는 현상이지만, 나혜석과 김명순, 윤심덕 세 여성은 제한적이나마 기독교의 영향 아래 자의 식을 형성하였다.
여성의 자의식에 기독교 체험이 미친 영향은 곧이어 서술할 서구문화와 문물에 대한 경도에서도 잘 드러난다. 자신의 이미지가 투영된 이 소설의 주인공 경희는 \"조선 사회의 여자보다 먼저 우주를 안 전 인류의 여성\"이면서, \"이철원 김부인의 딸보다 먼저 하나님의 딸\" 로 자신의 생명과 의식을 자각한다.
이와 같이 전형적인 오리엔탈리즘에서부터 동서양의 구분이 무의미하다거나 양자가 대등하다는 인식에 이르기까지 복합적인 의식 구조를 보이는 나혜석은, 자식의 고유한 전통에 대한 부정과 그로부터 상처받은 자존심을 서구에 대한 추구를 통해 보상받고자 하는 동기에서 서구라는 타자를 이상화하였다. 최린과의 스캔들로 남편과 이혼한 후 사회의 지탄을 받으면서 타자에 대한 이상화는 더욱 심화된다.
그렇다면 신여성들에게 일본은 어떻게 인식되었을까? 비단신여성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었지만, 식민지 피지배민에게 일본은 복합적인 이중 감정의 대상이었다. 독립을 위한 저항과 타도의 목표이기도 했고, 단시간에 근대 문명을 성취한 위압과 선망의 대상이기도 했으며, 서구의 근대 문화와 지식을 배울 수 있는 통로이기도 했다. 마지막의 경우에도 동기를 따져본다면 국권을 회복하고 자주적 근대 국가를 회복하고 자주적 근대 국가를 설립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했지만, 자녀를 일본으로 유학 보낸 지주와 지역 유지의 대부분은 자녀가 근대 교육을 받아 입신출세 하기를 기대하였다.
이미 언급했듯이 1920년대 전반 민주에서 거주할 당시 하얼빈에 사는 러시아인들의 생활에 대한 소감을 피력하면서 나혜석은, 해마다 \"몇 십명씩 관광단을 모집라여 일본의 후지산이나 닛코나 마쓰시마 같은데 구경시키는 것보다 가깝고도 서양 풍속을 볼 수 있는 상하이나 하얼빈 같은 가정 시찰\"을 시키는것이 조선의 \"근본적 생활 개천책을 실행\"하는 데 훨씬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여기에서 우리는 나혜석이 일본보다는 서구에서 배울 것이 더 많다고 판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다른 맥락에서 그녀는 일본인 부인에 대한 느낌을 피력하고 있다.
3) 민족주의와 페미니즘 앞에서 분열된 자아 (92p)
현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서구에 대한 동경, 그리고 서구와의 소외가 심화된 다른 한편에는 민족의식과 여성으로서의 자의식사이에서 분열된 신여성들의 의식이 있었다. 사실 이들 여성들에게 사진이 속한 낙후된 사회는 발전된 서구를 이상화하는 거울과 같았다 식민지 현실이 절망 적일수록 서구로 표상되는 타자에 대한 동경은 더욱 절박해졌으며, 타자를 이상화할수록 자신의 현실은 더욱 견디기 힘든 상황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암담하고 원시적이라 하더라도 현실을 완전히 부정할 수만은 없다는데 이들의 고민이 있었다. 부정하고 싶은 편실은 식민 지배에 의해 고통받고 억압받는 자기 자신의 일부였다.
민족의식과 여성으로서의 자기정체성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서 신여성들의 의식과 자아는 분열되었으며 자기모순은 심화되었다. 결국은 신여성들이 사회에서 축출당하는 파국이 초래되었다. 유럽의 주변부 약소 국가들이나 일본의 신여성과는 달리 조선의 신여성들은 민족과 여성, 혹은 민족주의와 페미니즘이 화해하거나 수용될 수 없는 상황에 처하였던 것이다.
서구를 동경하면서 현실에 뿌리내리지 못한 나혜석은 위기감을 느꼇던 것 같다. \"지금까지 조선 대중의 생활을 떠나 별천지에서 살았던 것으로부터 다시 조선인의 생활로 들어서\"기 위해서는 낙후된 \"농촌 생활의 정도로부터 살아볼 필요가 절실히 있었다\"고 술회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인간으로 자유스럽고,그리고 나의 마음껏 예술의 창작으로 정진\"하는 것이 유일한 희망이라고 했던 나혜석의 말이 이해된다. 그러나 모든 구속에서 자유를 꿈꾼 그녀였지만 식민지 현실을 완전히 외면할 수는 없었다. \"한 사람이 이만 큼 되기에는 조선의 은혜를 많이 입었다. 나는 반드시 보은할 사명이 있어야 할 것이다. 무엇을 하든지 조선을 위하여 보조치 못하고 어디로 간다는 것은 너무 이기적이 아닌가\"라는 언급을 하기도 한다. 불행가게도 나혜석이 지향했던 자유로운 인간정신, 자아에 대한 추구가 실현되기에는 식민지 현실에서 민족 문제의 중압이 너무나 컸다. 반면에 여성 문제는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었다.
4) 미완성의 과제, 여성의 근대 (109p)
식민지 시기의 근대성은 서구 문명과 일본 문화의 직접적인 영향, 일본을 통한 서구의 수용, 그리고 내재적 전통이 서로 얽혀 만들어졌다. 식민지 초기의 신여성들은 전통과 사회에 대한 관심에서 근대적인 것을 수용하였지만, 식민 지배가 심화됨에 따라 내부의 분화를 경험하면서 다양한 경로를 밟아갔다. 일부는 사회주의 이념에 근거하여 민족을 계급으로 대체하고 근대를 지양함으로써 여성 문제를 궁극적으로 해결하는 새로운 사회를 제시하기도 했다. 민족주의 이념에서 자라난 다른 일부는 민족을 제국으로 대체라면서 여성을 제국의 적극적 협력자로 동원하고자 하였다. 전형적인 자유주의의 범주로 분류될 수 있는 또 다른 부류는 민족이나 계급, 또는 제국과 같은 일체의 외적 구속에서 벗어난 자아의 완전한 자유와 남녀평등, 그리고 성의 해방을 지향하였다.
근대적인 것에서 자신의 의식을 형성하였고, 그것의 한가운데에서 화려하게 한때를 수놓았던 신여성들은 궁극적으로 근대에게서 외면당하였다. 그들은 근대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시골이나 절, 근대의 그늘인 정신 병원이나, 양로원의 변경을 맴돌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였다. 근대 여성에게 \'여성의 근대\'란 여전히 미완성의 과제임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던 것이다.
4.성과 사랑의 자유를 부르짖다 (116p)
1) \"연애\"의 탄생 (119p)
1920년대는 사회 각 부문에 걸쳐 커다란 변동들이 야기되었던 시기로 기록될 수 있다. 이 시기는 1876년 개항 이후 조선 사회가 밟아온 근대화의 지향과 추구라는 장기적이고 거시적인 프로젝트에서 근대성의 특성을 가장 명시적으로 드러낸 첫 번째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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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20페이지
  • 등록일2015.05.05
  • 저작시기20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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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966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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