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제5장 관료제의 역사적 전개
제1절. 고대세계
(1) 구석기․신석기 시대
(2) 수메르 문명
(3) 고이집트 왕국
(4) 그리스의 도시국가
(5) 로마 공화정
제2절. 로마제국과 비잔틴시대
(1) 아우구스투스
(2) 비잔틴제국
제3절. 중세 및 절대왕정시대
(1) 프랑크왕국 ․ 메로빙왕조
(2) 중세의 봉건제
(3) 왕권의 강화
(4) 유럽의 절대왕정
제4절. 근대국가의 출현
제1절. 고대세계
(1) 구석기․신석기 시대
(2) 수메르 문명
(3) 고이집트 왕국
(4) 그리스의 도시국가
(5) 로마 공화정
제2절. 로마제국과 비잔틴시대
(1) 아우구스투스
(2) 비잔틴제국
제3절. 중세 및 절대왕정시대
(1) 프랑크왕국 ․ 메로빙왕조
(2) 중세의 봉건제
(3) 왕권의 강화
(4) 유럽의 절대왕정
제4절. 근대국가의 출현
본문내용
년 집정관을 선출하는 권한으로 인해서 사실상 권력의 원천이 되었다. 기원전 5세기 초반부터 로마는 도시국가의 범위를 넘어서 영토를 확장하고 이태리 반도 전역에 대한 지배력을 확립하는 과정에서 사회적경제적 구조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다른 하나는 환경적인 것으로서, 공화정 말기까지 로마인들에 의해 정복된 영토들이 대체로 도시국가에 기반을 둔 사회였기 때문에 기존의 체제를 그대로 유지한 것이다. 끝으로 로마가 사전에 제국주의적 패권국가가 될 것으로 예전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제국에 부합되는 행정체제를 미리 설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포에니전쟁이 야기한 경제적사회적 영향, 원로원에 의한 정치적 지배력의 증가, 그리고 제국으로의 전개 등에서 빚어진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로마를 괴롭혔고, 이것은 일련의 개혁을 요청하였다.
개혁프로그램은 실종되고, 헤게모니의 장악을 위한 지속적인 싸움이 벌어졌으며, 권력을 장악한 케사르가 군주정으로의 전환을 목전에 두고, 암살당함으로써 공화정으로서의 성격이 유지되는 듯 하였으나, 이후의 헤게모니 쟁탈전에서 승리한 옥타비아누스가 황제의 칭호를 거부하고, 제1시민을 자임했으나 기원전 27년 원로원이 그에게 아우구스투스란 칭호를 부여함으로써 로마는 사실상 제정 시대로 들어서게 되었다.
제2절. 로마제국과 비잔틴시대
(1) 아우구스투스
국가의 확장보다는 내실을 기하는데 힘썼다. 즉 사법권이 그의 감독권 하에 집중되었으나, 제국에 속한 속주의 자율권은 허용되었으며 이러한 변화는 공화정의 제도들이 유지되면서 새로운 현실에 적합하도록 점진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6개월마다 임명되는 원로원의 위원회로부터 주로 조언을 얻었으며, 로마시의 관리 및 재건에도 관심을 갖고 필요한 관직을 설치하였고, 국세조사를 행하였다. 아우구스투스에 의해 이루어진 재정에 관한 통제는 당시 4개의 분리된 금고(fund)가 있었다.
①Aerarium Saturni : 공화정시대의 단일 금고였으나, ‘Princeps\'와 원로원간의 속주의 분할 지배 이후 이 금고는 원로원에게 배타적으로 봉사하였다. ②Patrimonium Caesaris : 이 금고는 ‘Princeps\'의 사적 재정을 담당하며, 이집트의 수입도 포함된다. 로마와 속주의 관리들이 이 금고를 관장하였다. ③Aerarium Militare : 이 금고는 퇴역 병사들의 수당을 책임졌다. ④Fiscus : 이 금고는 국가의 수장으로서의 ‘Princeps\'에게 귀속된 금고이다. 군대의 유지 및 조달, 관리의 급여, 곡물 수송과 군용도로 그리고 우편 및 공공건물에 소요되는 비용에 충당하기 위해 마련된 금고이다. 주된 세원은 제국의 속주로부터 나왔다.
(2) 비잔틴제국
디오클레티아누스는 프링켑스를 폐지하고, 관리들이 황제 앞에서 무릎을 꿇는 새로운 궁중의식을 제도화하였다. 그리고 로마제국을 서방으로부터 동방국가로 전화하는 ‘빈잔틴화‘의 과정을 진전시켰다. 그는 콘스탄티누스 대제 및 그의 승계자들이 동방에 강력한 로마제국을 건설하는 기초를 마련하였다.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330년에 수도를 비잔티움으로
개혁프로그램은 실종되고, 헤게모니의 장악을 위한 지속적인 싸움이 벌어졌으며, 권력을 장악한 케사르가 군주정으로의 전환을 목전에 두고, 암살당함으로써 공화정으로서의 성격이 유지되는 듯 하였으나, 이후의 헤게모니 쟁탈전에서 승리한 옥타비아누스가 황제의 칭호를 거부하고, 제1시민을 자임했으나 기원전 27년 원로원이 그에게 아우구스투스란 칭호를 부여함으로써 로마는 사실상 제정 시대로 들어서게 되었다.
제2절. 로마제국과 비잔틴시대
(1) 아우구스투스
국가의 확장보다는 내실을 기하는데 힘썼다. 즉 사법권이 그의 감독권 하에 집중되었으나, 제국에 속한 속주의 자율권은 허용되었으며 이러한 변화는 공화정의 제도들이 유지되면서 새로운 현실에 적합하도록 점진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6개월마다 임명되는 원로원의 위원회로부터 주로 조언을 얻었으며, 로마시의 관리 및 재건에도 관심을 갖고 필요한 관직을 설치하였고, 국세조사를 행하였다. 아우구스투스에 의해 이루어진 재정에 관한 통제는 당시 4개의 분리된 금고(fund)가 있었다.
①Aerarium Saturni : 공화정시대의 단일 금고였으나, ‘Princeps\'와 원로원간의 속주의 분할 지배 이후 이 금고는 원로원에게 배타적으로 봉사하였다. ②Patrimonium Caesaris : 이 금고는 ‘Princeps\'의 사적 재정을 담당하며, 이집트의 수입도 포함된다. 로마와 속주의 관리들이 이 금고를 관장하였다. ③Aerarium Militare : 이 금고는 퇴역 병사들의 수당을 책임졌다. ④Fiscus : 이 금고는 국가의 수장으로서의 ‘Princeps\'에게 귀속된 금고이다. 군대의 유지 및 조달, 관리의 급여, 곡물 수송과 군용도로 그리고 우편 및 공공건물에 소요되는 비용에 충당하기 위해 마련된 금고이다. 주된 세원은 제국의 속주로부터 나왔다.
(2) 비잔틴제국
디오클레티아누스는 프링켑스를 폐지하고, 관리들이 황제 앞에서 무릎을 꿇는 새로운 궁중의식을 제도화하였다. 그리고 로마제국을 서방으로부터 동방국가로 전화하는 ‘빈잔틴화‘의 과정을 진전시켰다. 그는 콘스탄티누스 대제 및 그의 승계자들이 동방에 강력한 로마제국을 건설하는 기초를 마련하였다.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330년에 수도를 비잔티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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