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깨닫고 그들의 발전노선을 변경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엔트로피 사회의 가치라는 것은 기계의 역할을 축소시킨 좀더 과거에 가까운 것이다. 엔트로피 사회는 그전처럼 전체에 무심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인간의 문명에만 관심을 가져서는 안 된다. 인류가 초래하는 자연계의 모든 현상까지 포함하고 해결하려는 것이 엔트로피 사회이다.
이제 우리 사회는 어떠한 길로 나아가야 하는가? 이미 나아가 버릴 대로 나아간 이 사회에서 속도를 늦춘다는 것은 도태됨은 아닐까? 도교의 사상처럼 무위(無爲)만 하고서는 이 사회에 적응할 수 없다. 요즘 동서양의 조화라는 말이 부쩍 많이 쓰이는 것은 서양이 부분 분석적 사고의 한계에 부딪치자 전체적으로 조화하며 살려는 동양의 사고를 받아들였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이렇게 책을 읽고 난 뒤에도 아리송하다. 과연 나는 이 책의 저자가 의도한 제 3의 독자가 될 수 있을까? 나 또한 물질추구의 즐거움을 누리고 사는 현대인이기에 한편으로서는 엔트로피의 이러한 문제점들을 부정하고 싶다.
새로운 세계관의 확립이냐, 아니면 도태되는 역행의 길이냐? 이 부분은 많은 생각을 필요로 할 것 같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엔트로피는 증가하고 있겠지만.
엔트로피 사회의 가치라는 것은 기계의 역할을 축소시킨 좀더 과거에 가까운 것이다. 엔트로피 사회는 그전처럼 전체에 무심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인간의 문명에만 관심을 가져서는 안 된다. 인류가 초래하는 자연계의 모든 현상까지 포함하고 해결하려는 것이 엔트로피 사회이다.
이제 우리 사회는 어떠한 길로 나아가야 하는가? 이미 나아가 버릴 대로 나아간 이 사회에서 속도를 늦춘다는 것은 도태됨은 아닐까? 도교의 사상처럼 무위(無爲)만 하고서는 이 사회에 적응할 수 없다. 요즘 동서양의 조화라는 말이 부쩍 많이 쓰이는 것은 서양이 부분 분석적 사고의 한계에 부딪치자 전체적으로 조화하며 살려는 동양의 사고를 받아들였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이렇게 책을 읽고 난 뒤에도 아리송하다. 과연 나는 이 책의 저자가 의도한 제 3의 독자가 될 수 있을까? 나 또한 물질추구의 즐거움을 누리고 사는 현대인이기에 한편으로서는 엔트로피의 이러한 문제점들을 부정하고 싶다.
새로운 세계관의 확립이냐, 아니면 도태되는 역행의 길이냐? 이 부분은 많은 생각을 필요로 할 것 같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엔트로피는 증가하고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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