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모세란 인물은?
2. 모세에 관한 역사적 견해
3. 모세의 활동 연대
4. 생애와 활동
마지막으로 인간모세란
느낀점
2. 모세에 관한 역사적 견해
3. 모세의 활동 연대
4. 생애와 활동
마지막으로 인간모세란
느낀점
본문내용
전승에 의하면, 분노가 자비를 능가하는 경우가 모세에게 단 1번 일어났다고 한다. 므리바(바란의 카데스 지역에 위치한 듯함)에서 모세는 불평하는 백성을 반역자라고 칭하고 분노를 삭이지 못한 채 바위를 2번 쳤다. 그러자 목이 마른 백성들에게 물이 솟아났다. 그는 그 전에도 진노를 터뜨린 적이 있었지만 그것은 야훼의 이름과 명예, 대의명분을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분쟁을 일삼는 백성에 대한 극심한 좌절 때문에 화를 냈다. 야훼가 모세의 가나안 진입을 허락하지 않은 까닭은 바로 이 과실 때문이라고 해석하는 전승이 있기는 하지만, 여기서 주목해야 할 사실은 모세가 계속되는 압력하에서도 인내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요르단 동편에서 에돔과 모압은 그곳을 지나게 해달라는 모세의 청을 거절했다. 에돔과 모압은 미디안의 속국으로서 그당시 새로 창설된 국가였다. 모세는 현명하게도 에돔과 모압의 동쪽으로 돌아갔고, 아모리 족의 왕 시혼과 바산의 왕 옥을 공략했다. 모세는 일부 지파들이 요르단 동편에 정착하는 것을 허락했다. 이에 대해 모압족과 미디안의 대군주는 반발했다. 그들은 히브리인들을 저주하기 위해 시리아의 점술가인 발람을 고용했다. 그러나 발람은 도리어 히브리인들을 축복했다. 일부 학자들의 해석에 의하면, 이것은 발람이 야훼 신앙으로 개종한 사람이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한다. 만일 그렇다면 발람은 나중에 옛 신앙으로 되돌아갔음이 분명하다. 성서의 전승에 따르면, 발람은 과거의 고용주들에게 히브인들을 종교적으로 유혹해 그 힘을 약화시키라고 권유했기 때문이다. 모세는 죽기 직전 미디안족에 대한 거룩한 전쟁을 성공으로 이끌어 그들의 적대감을 응징했다. 모세는 광야 편력에서 살아남은 사람들과 시나이 계약을 갱신했다. 이것이 모세가 마지막으로 행한 공적인 활동이다. 모세는 요르단 협곡의 진영에서 나와 피스가(비스가) 산꼭대기로 올라갔다. 그곳에서 그는 약속의 땅을 바라보았다. 히브리인들은 다시는 그를 보지 못했다. 그가 어떻게 죽었고 어디에 매장되었는지는 아직까지도 비밀에 싸여 있다. 전승에 따르면, 야훼는 모세를 벱브올 건너편 계곡에 묻었다고 하는데 그곳은 이스라엘 백성의 배교를 기념하는 성지이다.
마지막으로 인간모세란
시간이 흘러갈수록 모세의 모습은 더 분명해지겠지만 모세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는 문헌 자료에서 비롯된다. 성서에는 모세가 문자로 기록을 남겨 보관했다는 이야기가 5차례 나온다(출애 17 : 14, 24 : 4, 34 : 27~28, 민수 33 : 2, 신명 31 : 9, 31 : 24~26). 이 기록의 분량을 넉넉하게 잡는다 해도 그것은 5경 전체의 1/5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5경 전체를 모세가 저작했다는 설은 성립될 수 없다. 모세는 십계명을 정식화했고, 계약을 중재했으며, 계약 법조문들을 보완하고 해석하여 조문화하는 과정을 시작했다. 그가 일부의 기록을 보관했다는 데 대해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 기록들은 점점 더 방대해진 율법과 전승의 핵이 되었다. 그러므로 일반적인 의미에서 히브리 성서의 처음 5권은 모세의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모세가 없었다면 이스라엘도 없었을 것이고, 토라라는 이름의 모음집도 없었을 것이다.
모세는 재능이 뛰어나고 훌륭한 교육을 받은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의 진정한 위대성은 야훼를 인격적으로 경험하고 야훼와 인격적인 관계를 유지했다는 데 있을 것이다. 말을 더듬는 살인자였던 모세는 그에게 새로운 기회를 준 자비로운 야훼의 은총으로 인해 생명을 유지하고 자신의 운명을 개척할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모세는 이해력이 깊었고, 잘못을 용서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야훼가 자신을 얼마나 많이 용서했는가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는 참으로 겸손한 사람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의 재능과 능력이 야훼로부터 온 것임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모세는 독특한 상황에 처해 있었기 때문에 수많은 역할을 수행할 수밖에 없었다. 히브리인들을 구원하려는 하느님의 대행자로서 그는 그들의 예언자·지도자였고, 계약의 중재자로서 공동체의 창시자였다. 또한 계약의 해석자로서 조직가·법률가였고, 백성을 위한 중보기도자로서 그들의 사제였다. 모세는 재능과 은총의 특수한 결합체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를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의 후계자인 여호수아와 아론의 아들 엘르아잘이 그렇게 해보려고 했지만 그들은 모세에 미치지 못했다. 후대의 예언자들은 모세의 정신으로 예언한 위대한 인물들이었지만 그들은 모세만큼 많은 역할을 수행하도록 부름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전승이 전하는 바와 같이 그는 예언자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사람이었고, 역사가 밝히고 있는 바와 같이 그보다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한 인물은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느낀점
모세란 인물이 어떤 인물일까 많이 궁금했었습니다. 모세의 십계명을 시험기간에 외우면서도 어떤 인물일까,, 어떤 인물이 길래 이런 십계명을 썼을까 궁금했었습니다..
조사를 하여 읽어보고 모세란 인물에 대해 조금이나마 이해를 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성경개론이라는 과목을 처음 들으면서 제가 종교를 다른 종교를 가진 것도 아니고 무교이기 때문에 떨리기도 하고 평소 기독교에 관해서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수업시간에 보았던 영화나 그림이니 글에 대해서 많이 익숙지 않아서 걱정도 많이 했었던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모세라는 가수도 있고.. 주위에서 모세라는 이름을 익숙히 들어왔었는데 왜 그런지 조금은 알 것 같았습니다.
모세라는 인물은 모세는 재능이 뛰어나고 훌륭한 교육을 받은 인물이었습니다. 그리고 재능과 은총의 특수한 결합체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예언자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사람이었고, 역사가 밝히고 있는 바와 같이 그보다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한 인물은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위대한 인물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모세에 관해서 조사를 한건 비록 자료를 찾아서 읽어보기만 할 수 있었던 것이지만 성경책의 한 인물에 대해서 알 수 있다는 것이 뜻 깊고 이 자료를 찾아보면서 아브라함이나 요셉 그리고 사도바울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알 수 있어서 그것도 기쁘게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요르단 동편에서 에돔과 모압은 그곳을 지나게 해달라는 모세의 청을 거절했다. 에돔과 모압은 미디안의 속국으로서 그당시 새로 창설된 국가였다. 모세는 현명하게도 에돔과 모압의 동쪽으로 돌아갔고, 아모리 족의 왕 시혼과 바산의 왕 옥을 공략했다. 모세는 일부 지파들이 요르단 동편에 정착하는 것을 허락했다. 이에 대해 모압족과 미디안의 대군주는 반발했다. 그들은 히브리인들을 저주하기 위해 시리아의 점술가인 발람을 고용했다. 그러나 발람은 도리어 히브리인들을 축복했다. 일부 학자들의 해석에 의하면, 이것은 발람이 야훼 신앙으로 개종한 사람이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한다. 만일 그렇다면 발람은 나중에 옛 신앙으로 되돌아갔음이 분명하다. 성서의 전승에 따르면, 발람은 과거의 고용주들에게 히브인들을 종교적으로 유혹해 그 힘을 약화시키라고 권유했기 때문이다. 모세는 죽기 직전 미디안족에 대한 거룩한 전쟁을 성공으로 이끌어 그들의 적대감을 응징했다. 모세는 광야 편력에서 살아남은 사람들과 시나이 계약을 갱신했다. 이것이 모세가 마지막으로 행한 공적인 활동이다. 모세는 요르단 협곡의 진영에서 나와 피스가(비스가) 산꼭대기로 올라갔다. 그곳에서 그는 약속의 땅을 바라보았다. 히브리인들은 다시는 그를 보지 못했다. 그가 어떻게 죽었고 어디에 매장되었는지는 아직까지도 비밀에 싸여 있다. 전승에 따르면, 야훼는 모세를 벱브올 건너편 계곡에 묻었다고 하는데 그곳은 이스라엘 백성의 배교를 기념하는 성지이다.
마지막으로 인간모세란
시간이 흘러갈수록 모세의 모습은 더 분명해지겠지만 모세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는 문헌 자료에서 비롯된다. 성서에는 모세가 문자로 기록을 남겨 보관했다는 이야기가 5차례 나온다(출애 17 : 14, 24 : 4, 34 : 27~28, 민수 33 : 2, 신명 31 : 9, 31 : 24~26). 이 기록의 분량을 넉넉하게 잡는다 해도 그것은 5경 전체의 1/5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5경 전체를 모세가 저작했다는 설은 성립될 수 없다. 모세는 십계명을 정식화했고, 계약을 중재했으며, 계약 법조문들을 보완하고 해석하여 조문화하는 과정을 시작했다. 그가 일부의 기록을 보관했다는 데 대해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 기록들은 점점 더 방대해진 율법과 전승의 핵이 되었다. 그러므로 일반적인 의미에서 히브리 성서의 처음 5권은 모세의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모세가 없었다면 이스라엘도 없었을 것이고, 토라라는 이름의 모음집도 없었을 것이다.
모세는 재능이 뛰어나고 훌륭한 교육을 받은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의 진정한 위대성은 야훼를 인격적으로 경험하고 야훼와 인격적인 관계를 유지했다는 데 있을 것이다. 말을 더듬는 살인자였던 모세는 그에게 새로운 기회를 준 자비로운 야훼의 은총으로 인해 생명을 유지하고 자신의 운명을 개척할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모세는 이해력이 깊었고, 잘못을 용서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야훼가 자신을 얼마나 많이 용서했는가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는 참으로 겸손한 사람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의 재능과 능력이 야훼로부터 온 것임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모세는 독특한 상황에 처해 있었기 때문에 수많은 역할을 수행할 수밖에 없었다. 히브리인들을 구원하려는 하느님의 대행자로서 그는 그들의 예언자·지도자였고, 계약의 중재자로서 공동체의 창시자였다. 또한 계약의 해석자로서 조직가·법률가였고, 백성을 위한 중보기도자로서 그들의 사제였다. 모세는 재능과 은총의 특수한 결합체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를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의 후계자인 여호수아와 아론의 아들 엘르아잘이 그렇게 해보려고 했지만 그들은 모세에 미치지 못했다. 후대의 예언자들은 모세의 정신으로 예언한 위대한 인물들이었지만 그들은 모세만큼 많은 역할을 수행하도록 부름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전승이 전하는 바와 같이 그는 예언자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사람이었고, 역사가 밝히고 있는 바와 같이 그보다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한 인물은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느낀점
모세란 인물이 어떤 인물일까 많이 궁금했었습니다. 모세의 십계명을 시험기간에 외우면서도 어떤 인물일까,, 어떤 인물이 길래 이런 십계명을 썼을까 궁금했었습니다..
조사를 하여 읽어보고 모세란 인물에 대해 조금이나마 이해를 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성경개론이라는 과목을 처음 들으면서 제가 종교를 다른 종교를 가진 것도 아니고 무교이기 때문에 떨리기도 하고 평소 기독교에 관해서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수업시간에 보았던 영화나 그림이니 글에 대해서 많이 익숙지 않아서 걱정도 많이 했었던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모세라는 가수도 있고.. 주위에서 모세라는 이름을 익숙히 들어왔었는데 왜 그런지 조금은 알 것 같았습니다.
모세라는 인물은 모세는 재능이 뛰어나고 훌륭한 교육을 받은 인물이었습니다. 그리고 재능과 은총의 특수한 결합체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예언자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사람이었고, 역사가 밝히고 있는 바와 같이 그보다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한 인물은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위대한 인물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모세에 관해서 조사를 한건 비록 자료를 찾아서 읽어보기만 할 수 있었던 것이지만 성경책의 한 인물에 대해서 알 수 있다는 것이 뜻 깊고 이 자료를 찾아보면서 아브라함이나 요셉 그리고 사도바울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알 수 있어서 그것도 기쁘게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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