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한사회 소도의 형성과 변천
본 자료는 3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해당 자료는 3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3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개글

삼한사회 소도의 형성과 변천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머리말
2. 관련 史料 검토
3. 소도의 성립
4. 제천의례로의 변천
5. 맺음말

본문내용

있는데, 소연맹국 내에서의 별읍은 국읍보다는 상대적으로 하위의 개념으로 이해된다. 그 까닭은 소연맹국의 국읍은 소연맹국이 점차 연맹왕국으로 발전해 가는 과정에서 그 중심의 역할을 수행하게 되고 그 안에서 행해졌던 신앙의례 역시 연맹왕국 단계의 제천의례의 중심으로 발전하는 반면, 별읍은 소연맹국이 연맹왕국으로 발전해 가는 단계에서 중심적 역할을 하지 못하고 그 속에 편제되어 가게 되었을 것이고 그 신앙체계 역시 국읍을 중심으로한 제천의례로 포함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천군은 국읍을 중심으로 한 제사의례를 담당했던 제사장이다. 삼한의 천군은 巫라기 보다는 제사장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金貞培 『蘇塗의 政治史的 意味』, 「歷史學報」69, 1976
삼한사회의 천군은 종교적인 역할만을 담당하였던 것은 아니다. 삼한의 제의가 농경과 관련하여 이루어진 점을 고려하여 볼 때 천군이 농경과 관련한 제사의식을 주관하였다는 것은 현실적인 정책에 관여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렇지만 소연맹국 에서는 주수와 천군으로 제정의 분리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정치적 지배자가 정치권력을 강화하면서 연맹왕국 체제를 수립시킬 때, 천군은 주도적인 역할을 하며 신앙의례를 제천의례로 발전시켰다. 문창로, 앞의책, 2000, p.179
그렇다면 별읍에서 귀신을 섬기는 소도신앙을 주관하였던 존재는 누구인지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별읍은 소연맹국체제 내에 포함되어 있었지만 정치적으로 어느 정도 독자적 성격을 갖고 있었던 것은 인정되며 신앙 면에서도 그러하였다. 이들은 국읍과 마찬가지로 그들의 조상을 섬겼을 것이다. 다시 말해 별읍에서 지배자의 위치에 있던 이들은 자신들의 조상에 대한 제사를 지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제사를 담당하는 제사장은 천군이 아닌 별읍의 지배자였을 것이며 별읍 사회는 소연맹국의 국읍과는 달리 제정일치의 모습을 띠고 있었을 것이다. 부락제는 巫的인 성격을 지닌 읍락거수에 의해 주관되었기 때문에 읍락에서 성장한 성읍국가는 그 지배자인 군장이 제의를 주관하는 제정일치사회로 여겨진다.
이처럼 보다 원시적인 읍락 사회에서는 제정일치의 모습이 보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사회에서 지배자들은 각각 그들의 기반이 되는 읍락에서 정치적인 권력의 행사와 함께 종교적으로도 그들의 권위를 행사하려 하였을 것이다. 이는 성읍국가 단계의 지배자들이 정치적인 권력외에 종교적으로도 자신들의 우월을 주장하기 위하여 조상신에 대한 제사를 주관한 것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다가 점차 소연맹국의 단계로 접어들게 되면서 보다 상위 개념의 신격이 필요하게 되었고 그리서 나타난 개념이 천신의 개념이다. 이러한 개념은 연맹왕국에 까지 연결되어 그것이 제천행사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5. 맺음말
소도에 관한 연구는 일찍이 활발히 이루어 졌지만 사료의 해석에 따라 의견이 분분하였다. 소도는 삼한 사회의 별읍이 형성되는 것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별읍은 소연맹국에 편제되어 있지만 정치적으로나 종교적으로 독자성을 띠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별읍에서 행해진 소도신앙 역시 소연맹국의 그것과 구분된다고 하겠다.
소도신앙은 음주가무 등의 부락제의 성격을 강하게 갖고 있다. 이러한 부락제의 성격은 삼한과 국가발전 단계가 유사한 동예를 비롯하여 이미 연맹왕국으로 발전한 고구려나 부여의 제의 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고구려와 부여의 제천의례는 삼한사회의 제의 보다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삼한의 제의도 국읍을 중심으로 주제천신 하였기 때문에 제천의례로 발전할 수 있는 소지를 충분히 갖고 있었다. 이러한 성격의 소도신앙은 국읍에서 천신에게 지내는 제의와 별읍에서 제정일치적 성격을 가진 지배자들이 귀신을 섬기는 이중구조의 형태였다. 그러다가 점차 삼한 사회가 연맹왕국으로 발전함에 따라 소도신앙도 국읍의 주제자인 천군이 주제하는 국중대회 차원의 제천의례로 변화하였을 것이다.
<<참고문헌>>
『後漢書』東夷列傳
『三國志』魏書東夷傳
孫晋泰 『蘇塗考』 「民俗學」 4-4, 1932, 「孫晋泰先生全集」, 태학사, 1981
金貞培 『蘇塗의 政治史的 意味』, 「歷史學報」69, 1976
李賢惠, 『小國聯盟體의 대두와 三韓의 分立』, 「三韓社會形成過程硏究」, 일조각, 1984
金杜珍 『三韓 別邑社會의 蘇塗信仰』『韓國古代의 國家와 社會』, 1985 ; 『韓國 古代의 建國神話와 祭儀』, 일조각, 1999
文昌魯 『三韓時代 邑落社會의 信仰儀禮와 그 變遷』, 「北岳史論」5, 1998; 『三 韓時代의 邑落과 社會』, 신서원, 2000
  • 가격2,000
  • 페이지수9페이지
  • 등록일2010.07.17
  • 저작시기2010.7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624290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