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사마천(司馬遷)
Ⅱ. 사기(史記)
Ⅲ. 공자(孔子) 와 사기(史記)
Ⅱ. 사기(史記)
Ⅲ. 공자(孔子) 와 사기(史記)
본문내용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마천은 공자를 제후의 대열인 <세가>에 집어넣었다. 이것은 당대 이미 공자의 위치가. 한 고조 유방이 공자 묘소에 참배한 이래 제왕들이 자기들의 도덕정치의 정당성을 주장키 위한 이데올로기적 근거로서 존숭되었다는 사실, 그리고 한 무제가 동중서의 건의로 유교를 국교로 삼은 이후의 사태를 반영하기도 하는 것이지만. 무엇보다도 사마천 자신이 공자를 지성으로 존숭하고 공자가 전개한 역사가 결코 일개 제후가 전개한 역사에 조금도 뒤지는 것이 아니라고 판단한 확고한 역사인식에 기초한 것이다. 이처럼 공자를 <열전>에 집어넣지 않고 <세가>에 포함시킨 사마천의 과감한 역사인식은 귀천을 따지지 않는 그의 역사적 인물에 대한 존경과 흠모의 주관을 뚜렷하게 나타내고 있다.
사마천은 <공자세가>라고 하는 공자의 전기를 쓰기 위하여 곡부의 구석구석을 직접 답사하였다.
『사기』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태사공왈, 관중니요당차복예기, 제생이시습예기가, 여지형유지불능거원.”
(나는 노나라로 직접 가보았었다. 그래서 중니의 사당과 살던 집, 그리고 그가 탔던 수레, 입던 옷, 그리고 예에 썼던 그릇들을 다 보았다. 그리고 아직도 많은 유생들이 그 집에 모여 때에 맞추어 예를 배우고 있는 모습도 관람하였다. 나는 공자에게 존경하는 마음이 절로 우러나와 머뭇거리며 그 곳을 떠날 수가 없었다.)
이처럼 『사기』에 나오는 <공자세가>는 권력을 흠모하였으나 권력의 희생양으로 궁형까지 당해야 했던 사마천 그 자신의 마음속 깊은 내면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공자라는 인간에 대한 경외감으로 집필한 역작이라고 할 수 있다.
사마천은 <공자세가>라고 하는 공자의 전기를 쓰기 위하여 곡부의 구석구석을 직접 답사하였다.
『사기』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태사공왈, 관중니요당차복예기, 제생이시습예기가, 여지형유지불능거원.”
(나는 노나라로 직접 가보았었다. 그래서 중니의 사당과 살던 집, 그리고 그가 탔던 수레, 입던 옷, 그리고 예에 썼던 그릇들을 다 보았다. 그리고 아직도 많은 유생들이 그 집에 모여 때에 맞추어 예를 배우고 있는 모습도 관람하였다. 나는 공자에게 존경하는 마음이 절로 우러나와 머뭇거리며 그 곳을 떠날 수가 없었다.)
이처럼 『사기』에 나오는 <공자세가>는 권력을 흠모하였으나 권력의 희생양으로 궁형까지 당해야 했던 사마천 그 자신의 마음속 깊은 내면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공자라는 인간에 대한 경외감으로 집필한 역작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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