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두각시놀음, 북청사자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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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꼭두각시놀음, 북청사자놀음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들어가며-꼭두각시놀음
2. 여러 기원과 역사
2.1. 놀이의 유래와 역사
2.2. 어원에 대한 학설
3. 연극무대
4. 전체 막
5.인물의 역할 성격비교 -복색, 행동을 보고
6. 음악과 춤사위
7. 꼭두각시놀음 외 인형극
8.특징분석과 해학, 풍자, 풍요, 벽사
9. 북청사자놀음
10. 여러 기원과 역사
11. 연희시기와 장소
12. 전체과장
13. 탈과 춤사위 비교
14.음악에 대해서
15. 외국 사자춤과의 비교
16.특징분석과 해학, 풍자, 풍요, 벽사
17. 나오며
※참고문헌

본문내용

을 거쳐 들어와 그것이 기존의 인형 내지는 인형놀음과 혼습(混習)되어 오늘날의 꼭두각시놀음의 연희형식상 초기적 구성을 보는 계기가 되어준 것 같다. 그 후 이것은 민중의 모임이나 축제 등에서 놀아지다가, 점차 봉건적 지배체제의 중앙집권화에 따라 고려 이후로는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간의 대립관계의 심화에 의하여 저항적 민중연희로 발전하게 되고 그 연희자 역시 더욱 철저한 유랑생활을 면할 수 없이 되는 것으로 본다.
꼭두각시놀음 연희를 대개가 유랑예인집단(流浪藝人集團) 남사당패(男寺黨牌)가 담당해 왔음은 이 인형극의 성격을 아는데 하나의 단서가 된다. 민중에 의한 민중을 대상으로 한, 민중놀이집단의 놀이로서 이 인형놀음은 맥락을 이어오는 것이다. 이러한 민중놀이집단은 조선왕조에 들어와 지배계층으로부터의 더욱 심한 박해를 받기에 이르러 거의 조선왕조의 운명과 함께 쇠퇴하여 가고 만다. 간혹 일제치하(日帝治下) 이후에도 잔존한 남사당패거리가 있었지만 그들 역시 침탈자(侵奪者)에 의하여 왜곡변질되며 민중놀이로서의 성격을 끝내 지키지 못하고 만다. 그 후 명맥마저 끊어지는 듯하다가 1960년대에 들어와 문화공보부 문화관리국에 의하여 꼭두각시놀음이 중요문화재 제3호로 지정됨을 계기로 지금은 <사단법인 민속극회 남사당>이 그의 전수사업을 벌여오고 있다.
2.2. 어원에 대한 학설
그 어원에는 중국에서는 6세기 중엽에 인형을 곽독(郭禿)아라고 하여 막대기에 머리를 붙여 만든 인형이 일본을 거쳐 쿠구츠(くぐつ)로 우리나라에 왔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 외에 몽고어 ‘qodor\'와 상통한다는 학설도 있다. 또한 실제 연희자들 사이에선 그보다는 \'덜미\'로 통하고 있다. 간혹 고로(古老)들 중에서도 \'꼭두각시놀음 잘 한다\'는 것을 \'덜미 잘 팬다\'로 표현하고 있음을 자주 공연장소에서 듣게 된다. 남사당패 출신 연희자들에 의하면 \'덜미\'란 \'목덜미를 잡고 논다\'는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혹자는 \'덜미\'란 남사당패의 변(은어)으로서 머리(頭)의 표현이 아니냐 하지만 그들의 변으로 머리는 \'석글통\'이고, 머리(髮)는 \'석글\'이며, 모가지는 \'석글대\'이고 보면 변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앞의 서연호, 김연철, 2006과 어린이, 청소년 문화재청- 꼭두각시놀음
3. 연극 무대
인형의 무대는 보통의 연극과 달리 기형적인 공중무대이다. 넓은 마당(대개는 시장의 한 모퉁이)에 붕(棚)을 설(設)하고 커다란 백포장을 둘러 임시 흥행 극장을 만들고 그 극장 내부는 삼등분을 하였으니 중앙에는 넓은 지면대로 남겨놓고 가면극곡예 등을 연출하며 그 좌우에는 관객석이 벌여있다. 이 인형극의 무대는 백포장에 접근하여 중앙의 넓은 지면 한구석에 만들어 놓으니 즉 기다란 기둥 네 개를 네 귀에 세우고 공중에 가(架)를 만들어 그 기둥을 다시 백포장으로 가린다. 다시 말하면 극장 전체를 대(大)포장으로 가리고 무대는 작은 백포장을 둘렀다. 그 작은 백포장 가운데 인형 조종자가 앉아서 인형을 백포위에 올리고 조종하면 무대 좌우에 분재한 관객은 그것을 보게 된다. 즉 공중무대에서 인형극을 연출되면 관객들은 머리를 들어 구경한다.
무대는 2층으로 되어 있고, 상층과 하층 사이에는 계단이 있다. 연극은 상층에서만 연출되고 하층은 절대로 사용하지 아니하며 단순히 승강하는 인형조종자를 관객에게 보이지 않기 위해서 백포장을 친 것이다. 물론 극을 연출할때에도 백포위로 인형만 보일 뿐이요, 결코 조종자가 관중 앞에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막 속에 숨어서 끄나풀을 잡아당기며 인형을 조종하고 대화하고 노래를 부를 뿐이다. 공중무대 앞에는 악대가 있으니 악기 종류는 일정치 아니하나 대체로 가면극의 악기와 같다. 악사는 음악을 연주하는 외에 무대를 쳐다보고 인형과 말을 주고받는 때도 있다. 김재철, 조선연극사, 동문선, 2003.
4. 전체 막
꼭두각시놀음의 내용은 채록본에 따라 다소 다른데, 이는 민속극의 구전성이라는 점에서는 어쩔 수 없는 것이지만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그 내용은 보통 7∼10막으로 나뉘는데, 최고(最古)의 채록본인 김재철본(金在喆本)에 의하면 8막으로 이루어져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꼭두각시놀음>
①제1막은 곡예장으로 파산을 당한 박첨지는 늙은 다리를 끌로 팔도 유람의 길을 떠나 방방곡곡으로 돌아다니다가, 어느날 날이 저물어 주막에 머무르게 되었다. 때마침 남녀사당의 곡예장에서 음악소리가 요란하자, 풍류노인인 그가 피곤함을 무릎쓰고 곡예장에 나와서 한참 동안 재담한 후에 일장 가무를 한다. ②제2장은 후사로 후사에 중 둘이 애기무당 둘을 데리고 풍악소리에 맞추어 춤을 춘다. 백첨지가 나와서 중을 꾸짖은 뒤에 자기도 한바탕 춤을 추다보니 두 소무당 모두 자기 질녀였다. 그래서 기운 세기로 유명한 홍동지를 부르러 들어가며, 조금 있다가 홍동지가 나와서 중을 꾸짖고 소무당을 때려서 쫓아보낸 뒤에 그도 퇴장한다. ③제3막 최영로의 집은 박첨지는 의지할 곳이 없어 사돈 최영로의 집에 우거하게 되었다. 때마침 바쁜 가을이라 마당에 벼를 널고 새를 쫓느라고 야단이다. 어느날 영로는 박첨지더러 오조밭에 가서 새를 쫓으라고 한다. 그때 용강 이무기(이시미)가 배가 고파서 새를 쫓으러 오는 사람을 모조리 잡아먹는 판이었으니 누구나 벌벌 떨었다. 그러나 그런 위험한 곳에 밤첨지는 아니 갈수가 없었으며, 그의 머리도 이무기 입에 들어가 버렸다. 박첨지가 사람 살려라고 큰소리를 지르니 홍동지가 소(小)박첨지와 협력하여 이무기를 죽이고 박첨지를 구하였다. ④제4막 동막삭은 공예장이 나와서 잠시 가무를 한 뒤에 예언을 하고 퇴장을 한다 즉 해남 지방에 사는 표생원이 첩을 데리고 나서서 거처 불명한 본처를 찾으려고 강원도 금강산까지 갔다가 오는 길에 이곳에 온다고 하였다. ⑤제5막은 본처를 찾으려다가 뜻을 이루지 못한 표생원은 첩을 데리고 등장한다. 우연히 거기서 본처를 만나게 되어 표생원의 기쁨은 말할수 없었으나 본처는 재산을 분배해달라고 한다. 그때 구장의 박첨지가 나와 표생원의 재산을 분배해 주는데, 좋은 것은 모두 첩에게 주고 나쁜 것만 골라서 본처에게 준다. 그래서 본처인 ‘꼭두각시’는 남편과 이별해 또 멀리 가버린다. ⑥제6막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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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7.10.13
  • 저작시기20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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