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공산주의이론
2. 공산주의 운동사적 배경
2. 공산주의 운동사적 배경
본문내용
것 보다는 사회민주당을 ‘부르주아 제3당, 파시즘 파시즘 [fascism]: 파시즘이란 이탈리아어인 파쇼(fascio)에서 나온 말이다. 원래 이 말은 묶음[束]이라는 뜻이었으나, 결속 ·단결의 뜻으로 전용(轉用)되었다. 파시즘이 대두하게 되는 일반적이고도 보다 광범위한 배경은 18세기 말부터 누적되어 온 사회적 불안과 제1차 세계대전 후의 만성적 공황 및 전승국 ·패전국을 막론한 정치적 ·사회적 불안에서 초래된 각종의 혁명적 기운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따라서 근대사회의 위기적 양상은 모두 파시즘의 배경이 된다. 즉, 파시즘이 발생하게 되는 배경은 ① 국제적 대립과 전쟁위기의 격화 ② 대량적 실업과 공황 ③ 국내정치의 불안정 ④ 기존 정당 ·의회 및 정부의 부패 ·무능 ·비능률 등 병리현상(病理現象)의 만연 ⑤ 각종 사회조직의 강화에서 오는 자율적인 균형 회복능력의 상실 ⑥ 정치적 ·사회적 집단 간의 충돌의 격화 등을 들 수 있다. 이와 같은 위기요인의 격화에 의해 정치체제의 안정과 균형이 파괴되고, 게다가 기존 정치세력이 사태를 효과적으로 수습할 능력을 상실할 경우, 무정부적 진공상태를 메우기 위하여 파시즘이 등장한다.
의 일익’이라 규정하여 배제시키는 좌편향과 협애화를 초래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편 경제공황에 따른 파시즘의 대두가 급류를 타게 되자 코민테른의 통일전선전술은 독일에서의 좌편향과 달리 프랑스, 스페인 등지에서는 ‘반파시즘 인민전선’의 형태로 사회당과 제휴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는 소련이외의 세계는 아직 ‘비非혁명적’ 조건에 처해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그 결과 1937년 제7차대회 이후 코민테른 집행위원회는 ‘각국의 구체적 조건과 특수사정에 기초’한다는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이후 독소 불가침 협정 독소 불가침조약(獨蘇不可侵條約): 1939년에 나치 독일과 소련이 상호불가침을 목적으로 조인한 조약이다. 그러나 이 조약은 2년 뒤인 1941년 나치 독일의 사실상의 불가침조약 파기로 독소 전쟁이 벌어져 휴지조각으로 전락했다. 이 조약이 조인되었을 때 전 세계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공산주의를 증오한 독일의 히틀러는 마르크스주의 서적을 공개적으로 불태우는 등 자국의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무참히 탄압했고, 이로 인해 양국 간의 관계가 매우 나빠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2년 뒤인 1941년 6월에 독소 전쟁이 벌어졌다. 결국 이 조약은 히틀러가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서부 유럽 전투에 집중하기 위해 활용한 카드에 불과했던 것이다.
으로 반파시즘 전선이 약화되기도 하나 독일이 소련을 침공한 후에는 다시 ‘반파쇼전선’으로 복귀하게 되는데, 이는 코민테른의 해산과 직결되는 중요한 변화를 가져왔다. 제국주의 전쟁에 대한 국제적 대응에서 공산주의 운동의 헤게모니 헤게모니 [hegemony]: 사전적인 의미는 한 나라의 연맹제국에 대한 지배권, 맹주권, 패권(覇權)을 말한다. 오늘날 이 용어는 일반적으로 한 집단·국가·문화가 다른 집단·국가·문화를 지배하는 것을 가리킨다. 20세기가 시작된 이래 특히 미국과 같은 초강대국의 활동과 관련하여 이 용어는 정치적 지배라는 함의(含意)를 지니게 되었다. 헤게모니라는 개념은 한편으로는 국가기구나 정치사회가 그들의 법률적 제도, 군대, 경찰, 감옥 등을 통하여 다양한 사회계층을 어떻게 지배하는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 다른 한편으로는 지배집단이 현 상황을 유지하기 위하여 국가기구들을 강제적으로 사용하는 방식과 함께 정치사회와 시민사회가 현 상황에 대한 다양한 사회계층들의 자발적인 동의(同意)를 어떻게 창출해내는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대부분의 이론가와 비평가들은 헤게모니라는 말을 무심코 또는 정확한 의미 규명 없이 혼란스럽게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적·포스트 구조주의적 비평에서 볼 때 이 용어는 상당히 복합적이고 전문화된 의미를 지닌다.
를 확고히 한다는 노선으로 출발한 코민테른은 또 다른 제국주의 전쟁의 발발을 앞두고 비공산주의 세력과의 통일전선의 필요성을 계기로 재차 인터내셔널을 해산하는 결과를 낳았다. 파시즘 세력에 대한 범凡동맹을 추구하면서 1943년 집행위원회는 해산을 결정한 것이다.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의 완성과 파시즘에 대한 대응이라는 국제적 명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코민테른이 국제주의적 이념을 포기하고 특히 스탈린 시대에 와서는 소련의 국가이익을 옹호하는 외교적 도구로 전락하였다는 비판의 소지가 되고 있다. 이러한 비판은 다른 한편으로 각국의 사회당, 사민당, 노동당들이 전시에 소멸한 제2인터내셔널을 사회주의 인터내셔널로 부활시키는 동기를 제공하기도 했다.
5) 유러코뮤니즘
유러코뮤니즘이라는 용어는 1975년 7월 이탈리아 공산당 서기장 베를링게르와 에스파냐 공산당 서기장 카리요의 회담을 보도한 이탈리아의 유력지 《스탬퍼》 편집장 레비가 사용한 데서 비롯되었다. 이 용어는 소련 공산당에 대한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공산당들의 독자적인 노선을 칭하는 말이다. 이후 서유럽 공산주의를 관통하는 통일적인 노선과 이념을 통해 학술적 용어로 정립하려는 시도들이 있었으나, 유러코뮤니즘 자체가 1970년대 생성기의 붐 이후에는 지속적인 조류를 형성하지 못함으로써 하나의 뚜렷한 개념으로 발전하지 못했다. 따라서 유러코뮤니즘은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의 공산당들이 당시에 추구했던 국내외 정책들을 통칭하는 말로 이해되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주요 내용은 소련식의 무장봉기가 아니라 선거 등의 합법적인 방법으로 사회주의 정권을 수립하고, 프롤레타리아의 일당독재가 아니라 다당제를 허용하며, 프로테스탄트나 로마가톨릭 등의 종교단체와 협력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이탈리아공산당의 로마가톨릭 세력과의 역사적 타협, 프랑스 공산당과 사회당의 좌익연합, 에스파냐 공산당의 몽클로아협정 참가, 일본 공산당의 연합정부 구상 등이 이루어졌고 이를 계기로 1970년대 후반 각국 선거에서 공산당 지지율이 높아졌다.
그 밖에 영국·오스트레일리아·스웨덴·벨기에·덴마크 공산당도 이 노선을 따르게 되었다. 그러나 1980년대 들어와서 유럽공산주의는 이탈리아를 제외하고는 거의 쇠퇴하였다.
의 일익’이라 규정하여 배제시키는 좌편향과 협애화를 초래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편 경제공황에 따른 파시즘의 대두가 급류를 타게 되자 코민테른의 통일전선전술은 독일에서의 좌편향과 달리 프랑스, 스페인 등지에서는 ‘반파시즘 인민전선’의 형태로 사회당과 제휴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는 소련이외의 세계는 아직 ‘비非혁명적’ 조건에 처해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그 결과 1937년 제7차대회 이후 코민테른 집행위원회는 ‘각국의 구체적 조건과 특수사정에 기초’한다는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이후 독소 불가침 협정 독소 불가침조약(獨蘇不可侵條約): 1939년에 나치 독일과 소련이 상호불가침을 목적으로 조인한 조약이다. 그러나 이 조약은 2년 뒤인 1941년 나치 독일의 사실상의 불가침조약 파기로 독소 전쟁이 벌어져 휴지조각으로 전락했다. 이 조약이 조인되었을 때 전 세계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공산주의를 증오한 독일의 히틀러는 마르크스주의 서적을 공개적으로 불태우는 등 자국의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무참히 탄압했고, 이로 인해 양국 간의 관계가 매우 나빠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2년 뒤인 1941년 6월에 독소 전쟁이 벌어졌다. 결국 이 조약은 히틀러가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서부 유럽 전투에 집중하기 위해 활용한 카드에 불과했던 것이다.
으로 반파시즘 전선이 약화되기도 하나 독일이 소련을 침공한 후에는 다시 ‘반파쇼전선’으로 복귀하게 되는데, 이는 코민테른의 해산과 직결되는 중요한 변화를 가져왔다. 제국주의 전쟁에 대한 국제적 대응에서 공산주의 운동의 헤게모니 헤게모니 [hegemony]: 사전적인 의미는 한 나라의 연맹제국에 대한 지배권, 맹주권, 패권(覇權)을 말한다. 오늘날 이 용어는 일반적으로 한 집단·국가·문화가 다른 집단·국가·문화를 지배하는 것을 가리킨다. 20세기가 시작된 이래 특히 미국과 같은 초강대국의 활동과 관련하여 이 용어는 정치적 지배라는 함의(含意)를 지니게 되었다. 헤게모니라는 개념은 한편으로는 국가기구나 정치사회가 그들의 법률적 제도, 군대, 경찰, 감옥 등을 통하여 다양한 사회계층을 어떻게 지배하는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 다른 한편으로는 지배집단이 현 상황을 유지하기 위하여 국가기구들을 강제적으로 사용하는 방식과 함께 정치사회와 시민사회가 현 상황에 대한 다양한 사회계층들의 자발적인 동의(同意)를 어떻게 창출해내는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대부분의 이론가와 비평가들은 헤게모니라는 말을 무심코 또는 정확한 의미 규명 없이 혼란스럽게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적·포스트 구조주의적 비평에서 볼 때 이 용어는 상당히 복합적이고 전문화된 의미를 지닌다.
를 확고히 한다는 노선으로 출발한 코민테른은 또 다른 제국주의 전쟁의 발발을 앞두고 비공산주의 세력과의 통일전선의 필요성을 계기로 재차 인터내셔널을 해산하는 결과를 낳았다. 파시즘 세력에 대한 범凡동맹을 추구하면서 1943년 집행위원회는 해산을 결정한 것이다.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의 완성과 파시즘에 대한 대응이라는 국제적 명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코민테른이 국제주의적 이념을 포기하고 특히 스탈린 시대에 와서는 소련의 국가이익을 옹호하는 외교적 도구로 전락하였다는 비판의 소지가 되고 있다. 이러한 비판은 다른 한편으로 각국의 사회당, 사민당, 노동당들이 전시에 소멸한 제2인터내셔널을 사회주의 인터내셔널로 부활시키는 동기를 제공하기도 했다.
5) 유러코뮤니즘
유러코뮤니즘이라는 용어는 1975년 7월 이탈리아 공산당 서기장 베를링게르와 에스파냐 공산당 서기장 카리요의 회담을 보도한 이탈리아의 유력지 《스탬퍼》 편집장 레비가 사용한 데서 비롯되었다. 이 용어는 소련 공산당에 대한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공산당들의 독자적인 노선을 칭하는 말이다. 이후 서유럽 공산주의를 관통하는 통일적인 노선과 이념을 통해 학술적 용어로 정립하려는 시도들이 있었으나, 유러코뮤니즘 자체가 1970년대 생성기의 붐 이후에는 지속적인 조류를 형성하지 못함으로써 하나의 뚜렷한 개념으로 발전하지 못했다. 따라서 유러코뮤니즘은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의 공산당들이 당시에 추구했던 국내외 정책들을 통칭하는 말로 이해되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주요 내용은 소련식의 무장봉기가 아니라 선거 등의 합법적인 방법으로 사회주의 정권을 수립하고, 프롤레타리아의 일당독재가 아니라 다당제를 허용하며, 프로테스탄트나 로마가톨릭 등의 종교단체와 협력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이탈리아공산당의 로마가톨릭 세력과의 역사적 타협, 프랑스 공산당과 사회당의 좌익연합, 에스파냐 공산당의 몽클로아협정 참가, 일본 공산당의 연합정부 구상 등이 이루어졌고 이를 계기로 1970년대 후반 각국 선거에서 공산당 지지율이 높아졌다.
그 밖에 영국·오스트레일리아·스웨덴·벨기에·덴마크 공산당도 이 노선을 따르게 되었다. 그러나 1980년대 들어와서 유럽공산주의는 이탈리아를 제외하고는 거의 쇠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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