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연구주요저작강독 - 북조선사회주의체제성립사 1945~1961 - 1~2장
본 자료는 2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해당 자료는 2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2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개글

북한연구주요저작강독 - 북조선사회주의체제성립사 1945~1961 - 1~2장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강독한 저작의 주요 내용 및 논지 요약
1) 서장 - 과제와 방법
2) 제1장 해방과 인민위원회(1945~1946)
3) 제2장 ‘인민민주주의국가’ 수립과 ‘당=국가’(1946~1950)

2. 본인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내용 및 그 이유

3. 강독내용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 이해되지 않는 내용, 의문점

본문내용

에 따라 남북간 식량을 통한 경제적인 연계는 단절되어 갔다.
(3) 제2장 ‘인민민주주의국가’ 수립과 ‘당=국가’(1946~1950)
1945년 12월 28일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의 발표에 의해 우파는 신탁통치안, 좌파는 후견제하의 임시정부안이라는 해석을 가지고 격렬한 대립을 만들어 간다. 소련은 김일성을 중심으로 한 평양 중심파가 중심이 되어 북조선 지역을 단위로 하는 정권기관창설과 토지개혁을 구체화하는 구상을 하고 있었다. 물론 소련이 분단정부수립으로 방향을 정한 것은 아니며, 어디까지나 미소 협조를 통해 통일정부 수립에 임한다는 기조를 유지했다. 38도선 이북 지역에 자기 이익을 보장해 줄 정권기관 설립을 원하면서도 미국과의 협조 기조를 깨는 것에 부담을 느꼈던 것이다. 북조선은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즉 행정조직과 정권기관 창설이라는 모습을 통해 일거에 통일전선체로서의 성격을 가진 정권기관을 만들어 나갔다. 토지개혁은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에 대한 대중적 지지를 굳히게 하였고 조선임시정부 수립에 주도권을 확보한다는 취지로 추진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남조선의 서울중앙으로부터 독립, 북조선공산당으로 자칭하게 되었다. 1946년 토지개혁 직후부터 김일성을 조선공산주의 운동의 령도자로 추대하기 위한 다양한 찬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북조선공산당과 조선신민당과의 합당 직전 ‘북조선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이 결성되었다. 그리고 북조선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위원회가 결성된 후 “조선인민의 위대한 령도자 김일성 위원장”이라고 명기하여, 김일성을 북조선만이 아닌 전 조선의 지도자로 삼는 데 북조선의 여러 정치·사회 세력이 합의했음을 표명하였다. 북로당은 정파 간의 연합형 정당이기 때문에 정치적 경쟁이나 다원성은 북로당 내부에서 소멸하지 않고 더욱 복잡한 형태로 전개되고 있었다. 1946년 8월 북로당 창립대회, 1948년 3월 제2차 대회에서 선출된 중앙위원 명단을 분석해보면, 다수의 연안계, 소련계와 소수의 연안계가 주류를 구성하고 국내계를 억누르고 있으나 정파 간의 일정한 균형은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할 점이다. 그러나 건국사상총동원운동을 연안계가 추진한 것이나 소련계가 연안계의 민족주의를 비판한 것을 보면 계파간의 갈등이 커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남북로동당으로 합당하면서 당의 정파연합적 성격이 강화되었다. 박헌영은 정부와 당의 2인자 자리를 굳혔고 조선로동당 내 남로당계는 상당한 지위를 차지할 수 있게 되었다. 헙덩
  • 가격1,400
  • 페이지수6페이지
  • 등록일2019.02.08
  • 저작시기2019.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1083515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