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연구 주요 저작] - 북조선 사회주의체제 성립사 서평 (1-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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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북한연구 주요 저작] - 북조선 사회주의체제 성립사 서평 (1-2장)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내용 요약

2.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내용 및 이유

3. 새롭게 알게 된 사실 및 의문점

본문내용

설명은 북한 군대의 특징을 설명해 주는 부분이므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특히 군 창설 작업이 남북분립 뿐 아니라 만주지역의 군사정세와 깊은 관련 하에 추진된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1947년 초 조중국경지대의 북조선 지역은 국공내전에서 중공군을 위한 ‘배후지’ 역할을 하였으며 김일성은 물자 및 의료 지원을 적극 제공하였다. 만주 지역 군사정세가 악화됨에 따라 1946년 말 북조선의 군대는 급속히 증강되었다. 빨치산파나 국공내전에 참가 중인 연안계 군인들이 1946년부터 일부가 북조선에 귀국하여 군과 보안기관의 창설, 정비, 강화에 기여한 것이다. 군대 창설은 만주파가 주도했으며 정치 사업은 당중앙위원회의 직접 통제를 받지 않고 민족보위성 문화부상과 문화훈련국에 위임하였다. 여기에 당 조직을 두지 않은 명분은 ‘전 인민의 군대’였기 때문이었는데 실제로는 엄격한 규율을 요구하는 인민군을 당의 통제에 맡기기에는 당내에 이질적 요소가 혼재하고 있었기 때문에 김일성 중심의 만주파가 직접 군을 지도했다는 것이다. 이 설명에 따르면 당내 의견의 다양성, 이질적 요소의 존재 때문에 토지개혁과 같은 중요한 혁명 과정에서 김일성을 중심으로 한 만주파는 당내 의사결집 과정을 생략하고 직접 인민위원회와 군을 장악하고 지도했다는 의미가 된다. 이는 곧 당이 군을 통제할만큼 강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빨치산파를 중심으로 군이 창설되면서 당에서뿐만 아니라 군에서도김일성은 독보적인 지위를 가지게 되었다. 특히 그가 ‘민족의 지도자’로 추대된 항일무장투쟁은 중요한 정통성의 기반이 되었고 이는 김일성이 권력을 공고화 하는데 일조하게 된다.
3. 새롭게 알게 된 사실 및 의문점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 놀랐던 것은 그 두께 때문이었다. 박사학위 논문을 책으로 출간한 저작이 1,000페이지가 넘는다는 방대한 양에 놀랐고 엄청난 양의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여 실증적인 연구를 통해 북한 체제의 성립 과정을 풍부하게 복원해낸 과정에서 또 한 번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방대한 양의 자료를 바탕으로 한 본 저작을 읽으면서 북한에서 발생한 여러 조직에 대해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 성과 중 하나였다.
특히 새롭게 알게 된 부분 중 하나는 인민위원회를 위시로 하여 지방 자치의 성격이 강했던 해방 직후의 상황에서 어떻게 김일성이 지도자로 등장하면서 중앙집권적인 정치 체제를 구축해나갔는지 그 과정에 관한 것이었다. 소련 민정 설립 직후인 1945년 10월 초 각 지방 인민위원회가 중앙조직화를 시작하였고 1946년 2월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가 창설되는 것은 아래로부터의 정치가 평양의 중앙 당국에 의한 위로부터의 정치로 발전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창설은 북한만을 단위로 한 독자적인 노선을 간다는 것을 의미한 것이었고 본격적으로 남과 북이 분단국가가 되기 시작하는 결정적인 출발점이 되었다. 이는 1947년 2월 북조선인민위원회와 1948년 9월 창건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기초가 된 것이다. 토지개혁을 계기로 분국은 북조선공산당으로 자칭하게 되었다. 토지개혁을 시발점으로 이후 일련의 ‘민주개혁’이 김일성의 이름으로 실시되면서 김일성은 조선공산주의 운동의 지도자일 뿐 아니라 전 조선의 지도자로 옹립되는 작업이 추진되어갔다.
당국가체제인 북한의 현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북조선노동당 창립 배경과 과정을 아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북조선노동당 창립 과정에 대해서는 대략적인 내용만 알고 있었지만 본 저작을 통해 북조선노동당 내부의 상황에 대해서 더욱 상세히 이해할 수 있었다. 북조선노동당 창립으로 복수 정당 간의 경쟁체제가 끝나고 본격적인 일당제 체제가 성립하였다. 그러나 정파가 연합하여 결성된 북로당은 정치적 경쟁이나 다원성이 북로당 내부에서 소멸하지 않고 더욱 복잡한 형태로 전개되어 당내에는 이견과 갈등이 상존하고 있었다. 남북로동당의 합당으로 당의 정파연합적 성격은 더욱 강화되었다.
또한 인민군 창설과 당과 군의 관계 부분도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많았다. 김일성의 항일빨치산투쟁은 김일성의 정통성 외에 군 창설 과정에도 압도적인 영향력을 발휘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군 창설 과정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고 있는데 김일성이 속한 만주파는 항일무장투쟁이라는 군사적 경력과 소련 영토로 일시 피신하면서 소련 극동군의 비호 하에 놓여졌다는 조건이 결합하여 군 창설을 주도할 수 있었다. 소련군 점령을 배경으로 소수의 소련계를 매개로 김일성 등 만주항일빨치산 출신자와 연안의 조선의용군 출신자의 두 그룹이 인민군의 모체가 된 것이다. 특히 저자는 북조선 인민군 형성 과정에서 남북 분립이라는 정세가 작용하였고 인민군을 중심으로 북조선 ‘무력’에 대해 정규군형 군대, 인민전쟁형 군대, 유격전형 군대로 나뉘어지고 이 세 가지가 공존하는 형태였다고 설명한다. 유격전형 군대는 인민군의 정규군 편제에 포함되어 있지는 않았지만 무장투쟁 전통과 관련하여 창군이념을 비롯한 인민군의 이데올로기 형성과정에서 세 가지 요소간의 상호관계가 결정적이었다는 해석은 새롭게 다가왔다. 재미있는 것은 인민군이 당과 인민위원회나 정부 밖에서 자율적인 존재로 만들어졌지만 군은 당과 정부 기구에 의해 공식적인 제도적 통제는 아니어도 당, 정부의 지도부와 군 수뇌부와의 인적 결합에 의해 확보된 군대 내부의 자율적 통제가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이는 비공식적 결합이었지만 항일빨치산투쟁이라는 민족해방투쟁의 전통에서 공식성을 확보함으로써 제도적 통제에 못지않은 군내 헤게모니를 유지할 수 있었다.
지엽적인 것이지만 의문점이 있다면 2장의 제목이 ‘인민민주주의국가’ 수립과 ‘당=국가’(1046~1950)인데 여기서 민주주의의 의미는 무엇인가 라는 점이다. 북조선로동당 창립대회 당시 김일성의 보고에서 북조선의 민주개혁과 관련하여 ‘북조선이 조선의 민주주의개혁의 책원지가 될 뿐만 아니라 전 동방에 있어 민주주의 발원지의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현재 우리가 이야기하는 서구의 민주주의와는 분명히 다른 개념일 것으로 생각되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국호에서의 민주주의와도 관련이 있을텐데 과연 여기에서의 ‘민주주의’는 무엇인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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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9.02.09
  • 저작시기2019.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10836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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