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이태준이란 누구인가?
2) 상허 이태준과 성북동 수연산방
3) 수연산방
4) 정원 모습
5) 이태준에 대한 부연 설명
6) 이태준 생가를 다녀온 후기
2) 상허 이태준과 성북동 수연산방
3) 수연산방
4) 정원 모습
5) 이태준에 대한 부연 설명
6) 이태준 생가를 다녀온 후기
본문내용
날까지도 이태준이 분단과 완강한 이데올로기의 벽에 갇혀 있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바로잡아야 할 역사의 대상과 폭이 의외로 광범위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통일이 절실한 이유는 이런 데서도 찾을 수 있다. 그렇지만 그를 문학적으로 조명하려는 작업이 지금도 중단되지 않고 있으니, 멀리 이북땅에서 쓸쓸히 노년을 마쳤다는 상허가 지하에서나마 이 사실을 안다면 조금이나마 위로를 삼을 수 있을지.
6) 이태준 생가를 다녀온 후기
이태준의 생가를 갔다와서..
시인 이태준의 생가를 가기위해 혜화역에 모였다. 그나마 가장 가까운 곳에 있어 찾아간 곳이지만 그곳도 그리 가까운 곳은 아니었다. 그리고 정확한 주소를 알지 못하여 해매기도 했었다. 겨우겨우 찾아 이태준의 생가를 도착했을때 그리 크지 않은 기와집이었다.
그런데 그곳은 단순히 생가로써 있는게 아니라 cafe로 활용되고 있었다. 어느 곳을 보면 오래된 집이어서 아무것도 못하고 골치를 썩이거나 부셔버리는 곳이 있는데 cafe로 활용하고있는 것을 보고 참 좋다고 생각 되었다.
이태준 생가의 문을 들어서면서 받은 느낌은 자연에 온 듯한 기분이었다.
2004년 11월 6일 글쓰기 원리와 실제라는 과목의 문화제 탐방이란 과제로 서울 성북동에서 1930년부터 살았다고 하는 시인 이태중의 생가를 찾아 가게 되었다. 우리는 한 선배와 친구 2명 총 4명이서 이태중의 생가를 찾아가게 되었는데, 이태준의 생가를 찾기에는 생각보단 쉽지 않았다. 우선 혜화역에서 1시에 만났고, 다 모인 후 혜화역에서 택시를 차고 성북2동으로 향하였다. 결국엔 목적지에 도착하기 이르러 성북동에 서울성곽이 우릴 반겼고, 몇 분 더 걸어간 뒤 이태준 생가에 이르렀다. 하지만 약간의 안타까움이 있었다. 이태준 생가를 보전하고 있기는 하나 찻집으로 변형되어 있었던 것이다. 더 들어가 더 아쉬움이 남는 것은 생가 찻집의 운영 방식이었다. 우리는 사진도 찍고 그러기엔 음식을 주문해야 양심상 꺼림칙하지 않겠다 싶어 주문을 하기에 앞서 메뉴판을 보자 입이 딱 벌어졌다. 무척이나 비싼건 좋다. 보통 음료수가 5천언에서 6천원 솔직히 이런 곳은 비쌀거라는 기본 상식은 있었지만, 비싼건 좋다. 우린 음료수 한 개를 시켰고, 종업원이 왔다. “ 저희 찻집은 인원 전부가 주문을 하셔야 합니다.” 라는 말을 남기자 고민에 들어갔다. 가격은 전부 비싸고 돈 없이 문화재만 보러 온것이었는데, 결국 절약하는 차원에서 음료수 한 개와 차 한잔 인절미들을 시켰다. 음식이 나왔고 초라하기 그지 없었다. 이돈이면 다른 식당에선 푸짐 할것인데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고, 그래도 생가의 분위기 만큼은 다른 가게에 뒤치지 않는다고 생각도 들어 음식을 맛있게 먹었다. 음식을 먹으며 선배와 혜림이는 디카를 들고 생가의 곳곳을 사진에 담았고, 생가에 얼마 안있어 나왔고 증거로 4명이서 생가 대문에서 사진촬영을 하며 문화제 답사를 마쳤다. 오늘 성북동에 이태준 생가를 답사 한것은 무척이나 좋은경험이라고 생각한다. 이런것이 대학의 맛인가, 친구들과 같이 여행 비슷하게 하는 것들이... 그렇지만 무조건 좋은것은 아니다. 역시 학생은 돈이 별로 없기 때문에 돈이 너무 많이 들어 간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보람찬 경험이었다.
< 비싼 음식들 ;;
글쓰기 수업의 답사 기행문 이것을 하기 위하여 나와 후배들은 어디를 갈까 고민을 하던 중 서울에서 가까운 곳에 이태준생가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그곳에 가자고 정하였다. 그리하여 우리는 2004년 11월 6일 혜화역에서 만나 택시를 타고 성북2동을 향했지만 그곳을 가본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택시에서 내려 파출소에 가서 아저씨께 그곳의 위치를 물으니 경찰아저씨께선 아주 자세히 친절하게알려주어 우리는 생각보다 쉽게 찾아 갈수 있었다. 처음 이태준생가의 앞에 선우리는 생각했던거완 다른 외롭게 현대 가옥들 사이에 있는 한 기와집을 발견하였다. 왠지 현대가옥들 사이에 있는 모습이 매우 외로워 보였다.
가옥 앞에는 가옥의 설명이 붙어있었다. 우리는 그것을 보면서 아 이태준이란 분이 이런 사람이며 이 가옥이 생긴 시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수가 있었다.
우리는 대문을 들어서자마자 밖에서 본 것과는 다른 느낌을 받았다.
밖에서 본 자택은 매우 외로워보였으나 우리를 맞이하는 것은 이쁜 정원과 별채 두 채 안채 가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우리는 자리를 잡기에 앞서 일단 별채에 들어가 이곳저곳을 보고 정원의 원두막에도 앉아서 아 이 태준씨가 이렇게 여름에 나오셔서 글을 쓰셨구나 .. 하는 생각을 하였다.. 남자 3명이 앉기에는 비좁았다 하하 .. 그렇게 우리는 이곳을 둘러 보고 있는데 이 태준씨의 증손녀분이란 분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이분에 말씀에 의하면 이집을 개조하여 찻집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이집의 구석구석을 잘 설명해 주셨다. 가격은 조금 비쌌지만 우리가 이런데 아니면 언제 이런 것을 먹어 보나 하고 차를 시켜 마시고 정원에서 우리는 여러 이야기를 나누며 이곳의 분위기에 빠져들었다.
집 이곳저곳을 다 둘러보고 집안에 이 태준씨에 대한 기사가 있는 신문을 접할 수 있었다 그것을 보고 우리는 아 이태준이란 사람이 이런 분이셨구나 하고 많은 지식을 접할수 있었다..
답사를 마치고 우리는 처음에 힘들게 찾아왔지만 나갈때는 아주 뿌듯하게 대문을 나 설수가 있었다.. ^^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있다. 그것은 시인 것같다.
그 짧은 몇마디의 글이 우리의 머릿속과 마음을 사로 잡는 것이 참 신기하다. 이번에 내가 간 시인 생가는 고 이태준님의 생가이다. 이 생가를 관광차원으로 살아온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면서 카페로 변화를 주어 운영하고 있다. 처음 우린 혜화역에 내려 시끌벅적한 대학로에 도착하였다. 활기가 넘친 이곳을 뒤로 한 채 생가를 찾기 위해 택시를 타고 한 10분 쯤 안으로 들어가니 아까의 모습과 다른 한적한 마을이 나왔다. 이태준생가는 찾기가 애매했다. 표지판은 여러개 있었으나 가르키는 방향은 제각각 달랐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본 후, 우린 생가를 찾을 수 있었다.
생가의 주변엔 온통 주택만 있었고, 생가 뒤에도 집을 짓고 있었다. 생가 정문 앞에는 이태준씨에 대한
6) 이태준 생가를 다녀온 후기
이태준의 생가를 갔다와서..
시인 이태준의 생가를 가기위해 혜화역에 모였다. 그나마 가장 가까운 곳에 있어 찾아간 곳이지만 그곳도 그리 가까운 곳은 아니었다. 그리고 정확한 주소를 알지 못하여 해매기도 했었다. 겨우겨우 찾아 이태준의 생가를 도착했을때 그리 크지 않은 기와집이었다.
그런데 그곳은 단순히 생가로써 있는게 아니라 cafe로 활용되고 있었다. 어느 곳을 보면 오래된 집이어서 아무것도 못하고 골치를 썩이거나 부셔버리는 곳이 있는데 cafe로 활용하고있는 것을 보고 참 좋다고 생각 되었다.
이태준 생가의 문을 들어서면서 받은 느낌은 자연에 온 듯한 기분이었다.
2004년 11월 6일 글쓰기 원리와 실제라는 과목의 문화제 탐방이란 과제로 서울 성북동에서 1930년부터 살았다고 하는 시인 이태중의 생가를 찾아 가게 되었다. 우리는 한 선배와 친구 2명 총 4명이서 이태중의 생가를 찾아가게 되었는데, 이태준의 생가를 찾기에는 생각보단 쉽지 않았다. 우선 혜화역에서 1시에 만났고, 다 모인 후 혜화역에서 택시를 차고 성북2동으로 향하였다. 결국엔 목적지에 도착하기 이르러 성북동에 서울성곽이 우릴 반겼고, 몇 분 더 걸어간 뒤 이태준 생가에 이르렀다. 하지만 약간의 안타까움이 있었다. 이태준 생가를 보전하고 있기는 하나 찻집으로 변형되어 있었던 것이다. 더 들어가 더 아쉬움이 남는 것은 생가 찻집의 운영 방식이었다. 우리는 사진도 찍고 그러기엔 음식을 주문해야 양심상 꺼림칙하지 않겠다 싶어 주문을 하기에 앞서 메뉴판을 보자 입이 딱 벌어졌다. 무척이나 비싼건 좋다. 보통 음료수가 5천언에서 6천원 솔직히 이런 곳은 비쌀거라는 기본 상식은 있었지만, 비싼건 좋다. 우린 음료수 한 개를 시켰고, 종업원이 왔다. “ 저희 찻집은 인원 전부가 주문을 하셔야 합니다.” 라는 말을 남기자 고민에 들어갔다. 가격은 전부 비싸고 돈 없이 문화재만 보러 온것이었는데, 결국 절약하는 차원에서 음료수 한 개와 차 한잔 인절미들을 시켰다. 음식이 나왔고 초라하기 그지 없었다. 이돈이면 다른 식당에선 푸짐 할것인데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고, 그래도 생가의 분위기 만큼은 다른 가게에 뒤치지 않는다고 생각도 들어 음식을 맛있게 먹었다. 음식을 먹으며 선배와 혜림이는 디카를 들고 생가의 곳곳을 사진에 담았고, 생가에 얼마 안있어 나왔고 증거로 4명이서 생가 대문에서 사진촬영을 하며 문화제 답사를 마쳤다. 오늘 성북동에 이태준 생가를 답사 한것은 무척이나 좋은경험이라고 생각한다. 이런것이 대학의 맛인가, 친구들과 같이 여행 비슷하게 하는 것들이... 그렇지만 무조건 좋은것은 아니다. 역시 학생은 돈이 별로 없기 때문에 돈이 너무 많이 들어 간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보람찬 경험이었다.
< 비싼 음식들 ;;
글쓰기 수업의 답사 기행문 이것을 하기 위하여 나와 후배들은 어디를 갈까 고민을 하던 중 서울에서 가까운 곳에 이태준생가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그곳에 가자고 정하였다. 그리하여 우리는 2004년 11월 6일 혜화역에서 만나 택시를 타고 성북2동을 향했지만 그곳을 가본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택시에서 내려 파출소에 가서 아저씨께 그곳의 위치를 물으니 경찰아저씨께선 아주 자세히 친절하게알려주어 우리는 생각보다 쉽게 찾아 갈수 있었다. 처음 이태준생가의 앞에 선우리는 생각했던거완 다른 외롭게 현대 가옥들 사이에 있는 한 기와집을 발견하였다. 왠지 현대가옥들 사이에 있는 모습이 매우 외로워 보였다.
가옥 앞에는 가옥의 설명이 붙어있었다. 우리는 그것을 보면서 아 이태준이란 분이 이런 사람이며 이 가옥이 생긴 시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수가 있었다.
우리는 대문을 들어서자마자 밖에서 본 것과는 다른 느낌을 받았다.
밖에서 본 자택은 매우 외로워보였으나 우리를 맞이하는 것은 이쁜 정원과 별채 두 채 안채 가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우리는 자리를 잡기에 앞서 일단 별채에 들어가 이곳저곳을 보고 정원의 원두막에도 앉아서 아 이 태준씨가 이렇게 여름에 나오셔서 글을 쓰셨구나 .. 하는 생각을 하였다.. 남자 3명이 앉기에는 비좁았다 하하 .. 그렇게 우리는 이곳을 둘러 보고 있는데 이 태준씨의 증손녀분이란 분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이분에 말씀에 의하면 이집을 개조하여 찻집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이집의 구석구석을 잘 설명해 주셨다. 가격은 조금 비쌌지만 우리가 이런데 아니면 언제 이런 것을 먹어 보나 하고 차를 시켜 마시고 정원에서 우리는 여러 이야기를 나누며 이곳의 분위기에 빠져들었다.
집 이곳저곳을 다 둘러보고 집안에 이 태준씨에 대한 기사가 있는 신문을 접할 수 있었다 그것을 보고 우리는 아 이태준이란 사람이 이런 분이셨구나 하고 많은 지식을 접할수 있었다..
답사를 마치고 우리는 처음에 힘들게 찾아왔지만 나갈때는 아주 뿌듯하게 대문을 나 설수가 있었다.. ^^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있다. 그것은 시인 것같다.
그 짧은 몇마디의 글이 우리의 머릿속과 마음을 사로 잡는 것이 참 신기하다. 이번에 내가 간 시인 생가는 고 이태준님의 생가이다. 이 생가를 관광차원으로 살아온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면서 카페로 변화를 주어 운영하고 있다. 처음 우린 혜화역에 내려 시끌벅적한 대학로에 도착하였다. 활기가 넘친 이곳을 뒤로 한 채 생가를 찾기 위해 택시를 타고 한 10분 쯤 안으로 들어가니 아까의 모습과 다른 한적한 마을이 나왔다. 이태준생가는 찾기가 애매했다. 표지판은 여러개 있었으나 가르키는 방향은 제각각 달랐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본 후, 우린 생가를 찾을 수 있었다.
생가의 주변엔 온통 주택만 있었고, 생가 뒤에도 집을 짓고 있었다. 생가 정문 앞에는 이태준씨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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