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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나르시스트의 한 유희이면서, 또한 시인의 존재 인식의 기본 자세로 보여진다. 소설 '날개'에서 드러나듯 '골방 속의 거울 놀이'는 결국 시인 이상의 원천적인 '존재론적 유희'인 것이다.
<참고> '거울'에서의 시간관
이상에게 있어 거울은 자기 내부로 폐쇄된 실존에 대한 심리적 은유, 즉 절대 자아의 세계에서 자기를 들여다볼 수 있는 장소이다.
이상의 거울은 반사와 분산의 장소가 아니라 오히려 집합과 창조와 재창조의 장소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자아의 단편적인 자화상은 그때 그때의 시간을 지나고서 통일된 자아의 영역에로 도달하게 된다. 이런 통일된 자아는 거울을 통해서 보여지는 법이다. 이 거울은 시간의 사이 사이의 공간이 된다. 현실적 시간 측정법이 거부되어지는 시간 지대인 것이다. 말하자면, 모든 객관적 시간 순열이 동시성을 갖고서 자아의 통일된 상황을 나타내 보여 주는 순간적인 모든 경험들의 통일성인 것이다. 거울의 투명성에 의해 모든 시간에서의 내적 자아의 집합을 볼 수 있다.(무시간적 공존) 그러나 이런 시간의 사이 공간에 발을 들여 놓기 위해서는 매개자가 필요한 법인데, 이상에게는 없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박인기 '이상의 자아 인식'에서)
<참고> '거울'에서의 시간관
이상에게 있어 거울은 자기 내부로 폐쇄된 실존에 대한 심리적 은유, 즉 절대 자아의 세계에서 자기를 들여다볼 수 있는 장소이다.
이상의 거울은 반사와 분산의 장소가 아니라 오히려 집합과 창조와 재창조의 장소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자아의 단편적인 자화상은 그때 그때의 시간을 지나고서 통일된 자아의 영역에로 도달하게 된다. 이런 통일된 자아는 거울을 통해서 보여지는 법이다. 이 거울은 시간의 사이 사이의 공간이 된다. 현실적 시간 측정법이 거부되어지는 시간 지대인 것이다. 말하자면, 모든 객관적 시간 순열이 동시성을 갖고서 자아의 통일된 상황을 나타내 보여 주는 순간적인 모든 경험들의 통일성인 것이다. 거울의 투명성에 의해 모든 시간에서의 내적 자아의 집합을 볼 수 있다.(무시간적 공존) 그러나 이런 시간의 사이 공간에 발을 들여 놓기 위해서는 매개자가 필요한 법인데, 이상에게는 없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박인기 '이상의 자아 인식'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