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들어가는 말
Ⅱ. 인천의 섬
1. 옹진군
가. 영흥면 - 영흥도, 선재도, 측도
나. 북도면 - 장봉도, 모도, 신도, 시도
다. 자월면 - 자월도, 대이작도, 소이작도, 승봉도
라. 덕적면 - 덕적도, 소야도, 굴업도, 백아도, 울도, 문갑도
마. 연평면 - 대연평도, 소연평도
바. 대청면 - 대청도, 소청도
사. 백령면 - 백령도
아. 그밖의 무인도
2. 강화군
가. 서도면 - 말도, 주문도, 볼음도, 아차도
나. 교동면 - 교동도
다. 삼산면 - 미법도, 서검도, 석모도, 섬돌모루
라. 그밖의 무인도
3. 중구의 섬
가. 영종동 - 영종도, 운염도
나. 용유동 - 용유도, 대무의도, 소무의도
다. 그밖의 무인도
4. 그밖의 섬
가. 서구의섬 - 세어도
나. 서구와 동구의 무인도
5. Turning Point
가. 주 5일제 근무와 여가선용
나. 영종도 국제공항과 영화 실미도
다. 핵폐기장 문제
라. 백령도 - 아버지근무(1968.3.1~1972.2.28)
Ⅲ. 마치면서
Ⅱ. 인천의 섬
1. 옹진군
가. 영흥면 - 영흥도, 선재도, 측도
나. 북도면 - 장봉도, 모도, 신도, 시도
다. 자월면 - 자월도, 대이작도, 소이작도, 승봉도
라. 덕적면 - 덕적도, 소야도, 굴업도, 백아도, 울도, 문갑도
마. 연평면 - 대연평도, 소연평도
바. 대청면 - 대청도, 소청도
사. 백령면 - 백령도
아. 그밖의 무인도
2. 강화군
가. 서도면 - 말도, 주문도, 볼음도, 아차도
나. 교동면 - 교동도
다. 삼산면 - 미법도, 서검도, 석모도, 섬돌모루
라. 그밖의 무인도
3. 중구의 섬
가. 영종동 - 영종도, 운염도
나. 용유동 - 용유도, 대무의도, 소무의도
다. 그밖의 무인도
4. 그밖의 섬
가. 서구의섬 - 세어도
나. 서구와 동구의 무인도
5. Turning Point
가. 주 5일제 근무와 여가선용
나. 영종도 국제공항과 영화 실미도
다. 핵폐기장 문제
라. 백령도 - 아버지근무(1968.3.1~1972.2.28)
Ⅲ. 마치면서
본문내용
개 법정리가 되어 북도면의 신설 면사무소를 처음으로 모도에 설치하였다.구 후 8년이 지난 1922년 11월 5일 면사무소를 신도로 이전하였으며 1993년 7월 1일 옹진군으로 편입된후 1995년 경기도에서 인천광역시로 편입되었다. 섬주위에는 낚시터가 형성되어 숭어, 망둥어, 우럭 등이 잡힌다.
②자연조건 : 위치는 동경 126°25′, 북위 37°33′ 이다. 면적은 0.81㎢ 이고, 해안선의 길이는 4.6㎞ 이다.
⑶신도(信島)
①연혁 : 옛신도는 출토된 토기와 유물을 조합해 볼 때 신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으로 보여지며 고려시대부터 강화도호부에 소속되어 있다가 1895년 갑오개혁 행정구역 대개편 때 강화군 제도면에 속하게 되었으며 1914년 4월 1일 부천군으로 편입 북도면이 설치되고 1922년 11월 5일 모도에 있던 면사무소를 신도 구로지로 이전하였으나 1942년 지역실정등을 감안 시도로 면사무소를 이전하게 되었으며 1971년 7월 1일 부천군에서 옹진군으로 편입된 후 1995년 3월 1일 경기도에서 인천광역시로 편입되어 오늘에 이른다.신도에는 조선전기부터 흑마와 색마 등 특수마를 사육하던 국용마 목장을 설치운영하였고 이곳은 주민들이 순박,정직,성실하고 거짓을 모르고 살아가는 순진한 곳이며 신의가 두텁다하여 신도라 불려지고 있으며 또한 진짜 소금을 생산하는 곳이라하여 진염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지리적으로 구봉산(해발178.4m)에서 영종도 등 서해 도서를 한눈에 볼 수 있으며 1992년 시도와 연도교를 설치 연결하였다
②자연조건 : 위치는 동경 126°27′, 북위 37°32′ 이다. 면적은 6.92㎢ 이고, 해안선의 길이는 16.1㎞ 이다.
⑷시도(矢島)
①연혁 : 시도는 폐총에서 출토된 토기 등을 종합해 볼 때 신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으로 보여지며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강화도호부에 소속되어 있다가 1895년 갑오개혁 행정구역 대개편 때 강화군 제도면에 속하게 되었으며 1914년 4월 1일 부천군으로 편입 북도면이 설치되고 1922년 11월 5일 모도에 있던 면사무소를 신도 구로지로 이전하였으나 1942년 지역실정등을 감안 시도로 면사무소를 이전하게 되었으며 1971년 7월 1일 부천군에서 옹진군으로 편입된 후 1995년 3월 1일 경기도에서 인천광역시로 편입되어 오늘에 이른다.시도는 살섬이라고 불렀는데 그음을 한자로 쓴 것이 居島(거도) 또는 居乙島(거을도)이고 그 뜻에 따라 한자로 쓴 것이 矢島(시도)인 것이다.시도와 신도는 연육되기 전에 나룻배아니면 갯벌로 건너던 갯골을 막아 연도도로를 개설하여 각종 차량의 통행이 되고 있으며 해안에서는 망둥어, 맛 등을 손쉽게 잡을 수 있다.
②자연조건 : 위치는 동경 126°26′, 북위 37°33′ 이다. 면적은 2.46㎢ 이고, 해안선의 길이는 10.9㎞ 이다.
다. 자월면
- 구성 : 자월도, 대이작도, 소이작도, 승봉도
- 면적 : 16.12㎢
- 인구 : 674명(2000년 기준) → 825명(2004년 기준)
⑴자월도(紫月島)
①연혁 : 고구려, 신라가 한강유역을 점령하는데 따라 소속이 비뀌었다. 고려 현종 9년(1018년) 수주(수원)에 속군되었으며 뒤에 인주(인천)에 속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남양부에 속하였고 자월도를 소물도로 표기하였으며 대부도면에 포함되어 있었다. 고종 32년(1895년)남양군 영흥면으로 편입되었으며 1914년 3월 1일 경기도 부천군 영흥면에 소속되었다가 1966년 7월 1일 영흥면 자월출장소가 설치되어 1973년 7월 1일 경기도 옹진군에 편입하여 오던중 1993년 승봉리와 자월리,이작리를 합하여 자월면으로 승격된후 1995년 3월 1일 경기도에서 인천광역시로 편입되었다. 자월(紫月)이란 지명이 조선시대에 조운선이 폭풍으로 폭풍우를 피하고자 이 곳에 머물 때 세운반을 담당하던 남양부의 어떤 아전이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초조한 마음으로 고향쪽의 밤하늘을 쳐다보니 검붉은 달만이 고고하더라는 이유에서 이때부터 소홀도(召忽島)를 자월도(紫月島)라고 불렀다고 전하는 데 이는 믿기 어렵고 자월이란 이름은 1910년 행정구역개편 때 처음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②자연조건 : 위치는 동경 126°26′, 북위 37°15′ 이다. 면적은 7.06㎢ 이고, 해안선의 길이는 20.4㎞ 이다.
⑵대이작도(大伊作島)
①연혁 : 고구려, 신라가 한강유역을 점령하는데 따라 소속이 비뀌었다. 삼국시대 백제에 속하였고 고려 현종 9년(1018년) 수주(수원)에 속군되었으며 뒤에 인주(인천)에 속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남양부에 속하였고 1914년 3월 1일 경기도 부천군 영흥면에 소속되었다가 1983년 옹진군 자월면으로 승격되면서 1개의 법정리로 정해져 오늘에 이른다. 임진왜란 때 피난 온 난민들이 돌아가지 못하고 이곳에 정착하였다고 한다. 이 섬은 옛날에 해적들이 은거하여 이적도라 불렀으며 이적이 이작으로 변해 이작도가 되었다고 한다. 이중 큰 섬을 대이작도, 작은 섬을 소이작도라 부른다. 해변주위에 갯바위 낚시터가 산재하고 있고 자연산 굴이 많이 나며 흑염소가 방목되고 있다.
②자연조건 : 위치는 동경 126°17′, 북위 37°01′ 이다. 면적은 2.57㎢ 이고, 해안선의 길이는 11.8㎞ 이다.
⑶소이작도(小伊作島)
①연혁 : 상동
②자연조건 : 위치는 동경 126°17′, 북위 37°01′ 이다. 면적은 1.36㎢ 이고, 해안선의 길이는 10㎞ 이다.
⑷승봉도(昇鳳島)
①연혁 : 승봉도에는 신석기시대 후기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 했던 것으로 보이며 주로 어로활동 생활을 영위한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시대에는 백제에 속하였으나 고구려, 신라가 한강유역을 점령하는데 따라 소속이 비뀌었다. 삼국시대 백제에 속하였고 고려 현종 9년(1018년) 수주(수원)에 속군되었으며 뒤에 인주(인천)에 속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남양부에 속하였고 1895년 인천부 덕적면에 편입되었다.1914년 경기도 부천군 덕적면면에 소속되었다가 1914년 부천군 덕적면에 편입되었으며 1966년 영흥면 자월출장소에 속하였다. 1973년 옹진군으로 편입되었다가 1983년 자월출장소와 합하여 자월면으로 승격되었다.
②자연조건 : 위치는 동경 126°25′, 북위 37°33′ 이다. 면적은 0.81㎢ 이고, 해안선의 길이는 4.6㎞ 이다.
⑶신도(信島)
①연혁 : 옛신도는 출토된 토기와 유물을 조합해 볼 때 신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으로 보여지며 고려시대부터 강화도호부에 소속되어 있다가 1895년 갑오개혁 행정구역 대개편 때 강화군 제도면에 속하게 되었으며 1914년 4월 1일 부천군으로 편입 북도면이 설치되고 1922년 11월 5일 모도에 있던 면사무소를 신도 구로지로 이전하였으나 1942년 지역실정등을 감안 시도로 면사무소를 이전하게 되었으며 1971년 7월 1일 부천군에서 옹진군으로 편입된 후 1995년 3월 1일 경기도에서 인천광역시로 편입되어 오늘에 이른다.신도에는 조선전기부터 흑마와 색마 등 특수마를 사육하던 국용마 목장을 설치운영하였고 이곳은 주민들이 순박,정직,성실하고 거짓을 모르고 살아가는 순진한 곳이며 신의가 두텁다하여 신도라 불려지고 있으며 또한 진짜 소금을 생산하는 곳이라하여 진염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지리적으로 구봉산(해발178.4m)에서 영종도 등 서해 도서를 한눈에 볼 수 있으며 1992년 시도와 연도교를 설치 연결하였다
②자연조건 : 위치는 동경 126°27′, 북위 37°32′ 이다. 면적은 6.92㎢ 이고, 해안선의 길이는 16.1㎞ 이다.
⑷시도(矢島)
①연혁 : 시도는 폐총에서 출토된 토기 등을 종합해 볼 때 신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으로 보여지며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강화도호부에 소속되어 있다가 1895년 갑오개혁 행정구역 대개편 때 강화군 제도면에 속하게 되었으며 1914년 4월 1일 부천군으로 편입 북도면이 설치되고 1922년 11월 5일 모도에 있던 면사무소를 신도 구로지로 이전하였으나 1942년 지역실정등을 감안 시도로 면사무소를 이전하게 되었으며 1971년 7월 1일 부천군에서 옹진군으로 편입된 후 1995년 3월 1일 경기도에서 인천광역시로 편입되어 오늘에 이른다.시도는 살섬이라고 불렀는데 그음을 한자로 쓴 것이 居島(거도) 또는 居乙島(거을도)이고 그 뜻에 따라 한자로 쓴 것이 矢島(시도)인 것이다.시도와 신도는 연육되기 전에 나룻배아니면 갯벌로 건너던 갯골을 막아 연도도로를 개설하여 각종 차량의 통행이 되고 있으며 해안에서는 망둥어, 맛 등을 손쉽게 잡을 수 있다.
②자연조건 : 위치는 동경 126°26′, 북위 37°33′ 이다. 면적은 2.46㎢ 이고, 해안선의 길이는 10.9㎞ 이다.
다. 자월면
- 구성 : 자월도, 대이작도, 소이작도, 승봉도
- 면적 : 16.12㎢
- 인구 : 674명(2000년 기준) → 825명(2004년 기준)
⑴자월도(紫月島)
①연혁 : 고구려, 신라가 한강유역을 점령하는데 따라 소속이 비뀌었다. 고려 현종 9년(1018년) 수주(수원)에 속군되었으며 뒤에 인주(인천)에 속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남양부에 속하였고 자월도를 소물도로 표기하였으며 대부도면에 포함되어 있었다. 고종 32년(1895년)남양군 영흥면으로 편입되었으며 1914년 3월 1일 경기도 부천군 영흥면에 소속되었다가 1966년 7월 1일 영흥면 자월출장소가 설치되어 1973년 7월 1일 경기도 옹진군에 편입하여 오던중 1993년 승봉리와 자월리,이작리를 합하여 자월면으로 승격된후 1995년 3월 1일 경기도에서 인천광역시로 편입되었다. 자월(紫月)이란 지명이 조선시대에 조운선이 폭풍으로 폭풍우를 피하고자 이 곳에 머물 때 세운반을 담당하던 남양부의 어떤 아전이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초조한 마음으로 고향쪽의 밤하늘을 쳐다보니 검붉은 달만이 고고하더라는 이유에서 이때부터 소홀도(召忽島)를 자월도(紫月島)라고 불렀다고 전하는 데 이는 믿기 어렵고 자월이란 이름은 1910년 행정구역개편 때 처음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②자연조건 : 위치는 동경 126°26′, 북위 37°15′ 이다. 면적은 7.06㎢ 이고, 해안선의 길이는 20.4㎞ 이다.
⑵대이작도(大伊作島)
①연혁 : 고구려, 신라가 한강유역을 점령하는데 따라 소속이 비뀌었다. 삼국시대 백제에 속하였고 고려 현종 9년(1018년) 수주(수원)에 속군되었으며 뒤에 인주(인천)에 속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남양부에 속하였고 1914년 3월 1일 경기도 부천군 영흥면에 소속되었다가 1983년 옹진군 자월면으로 승격되면서 1개의 법정리로 정해져 오늘에 이른다. 임진왜란 때 피난 온 난민들이 돌아가지 못하고 이곳에 정착하였다고 한다. 이 섬은 옛날에 해적들이 은거하여 이적도라 불렀으며 이적이 이작으로 변해 이작도가 되었다고 한다. 이중 큰 섬을 대이작도, 작은 섬을 소이작도라 부른다. 해변주위에 갯바위 낚시터가 산재하고 있고 자연산 굴이 많이 나며 흑염소가 방목되고 있다.
②자연조건 : 위치는 동경 126°17′, 북위 37°01′ 이다. 면적은 2.57㎢ 이고, 해안선의 길이는 11.8㎞ 이다.
⑶소이작도(小伊作島)
①연혁 : 상동
②자연조건 : 위치는 동경 126°17′, 북위 37°01′ 이다. 면적은 1.36㎢ 이고, 해안선의 길이는 10㎞ 이다.
⑷승봉도(昇鳳島)
①연혁 : 승봉도에는 신석기시대 후기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 했던 것으로 보이며 주로 어로활동 생활을 영위한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시대에는 백제에 속하였으나 고구려, 신라가 한강유역을 점령하는데 따라 소속이 비뀌었다. 삼국시대 백제에 속하였고 고려 현종 9년(1018년) 수주(수원)에 속군되었으며 뒤에 인주(인천)에 속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남양부에 속하였고 1895년 인천부 덕적면에 편입되었다.1914년 경기도 부천군 덕적면면에 소속되었다가 1914년 부천군 덕적면에 편입되었으며 1966년 영흥면 자월출장소에 속하였다. 1973년 옹진군으로 편입되었다가 1983년 자월출장소와 합하여 자월면으로 승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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