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서론
Ⅱ. 본론
<< 1. 19c 중엽의 고전주의 ideology >>
(1)진보-낙천주의적 세계
(2)빅토리아 시대 (1837~1901)
(3)존 스튜어트 밀
(4)허버트 스펜서
<<2. 실증주의>>
(1)실증주의 정의
(2)콩트의 생애
(3)콩트의 실증주의
<<3. 다윈주의 혁명>>
Ⅲ.결론
Ⅱ. 본론
<< 1. 19c 중엽의 고전주의 ideology >>
(1)진보-낙천주의적 세계
(2)빅토리아 시대 (1837~1901)
(3)존 스튜어트 밀
(4)허버트 스펜서
<<2. 실증주의>>
(1)실증주의 정의
(2)콩트의 생애
(3)콩트의 실증주의
<<3. 다윈주의 혁명>>
Ⅲ.결론
본문내용
을 끼쳤다. 이 밖에도 다윈의 이론은 종교적, 사상적, 정치적으로 엄청난 영향을 전 세계에 미쳤으며, 그 영향은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다. 이를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진화론은 이전의 철학에서 바라본 인간관을 무너뜨렸다. 다윈은 인간이라는 동물은 환경에 반응하고 또 부분적으로는 이 반응을 통하여 환경을 형성한다는 점에서 어떠한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유기체로 보았다. 이제 인간은 생물학적 자연질서의 일부분이 되었다. 또한 다윈주의는 철학적으로 관념론이나 주지주의의 평판을 떨어뜨리는 데에도 공헌하였다. 이는 사물을 "영원한 것"으로부터 "변화의 과정"을 포함한 것으로 인식하였다.
또한 종교에서의 다윈의 진화론은 생물이 진화한다는 사실, 특히 인간이 원숭이로부터 진화했다는 견해는 그리스도교의 교의를 부정하는 것이어서 《종의 기원》이 출간된 직후 S.윌버포스 옥스퍼드주교가 격렬한 비난을 한 사실은 유명하다. 또한 미국에서는 근래까지도 공립학교에서 진화론을 가르치지 못하도록 한 주(州)가 있었던 사실, 진화론과 《구약성서》의 창조설 양자를 같이 가르쳐야 한다는 법정논쟁이 있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진화론과 종교와의 논쟁은 1세기 이상 계속된 셈이다. 이처럼 진화론만큼 사람들의 종교심을 뒤흔든 것은 없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사회적인 면에서 바라본 다윈의 영향력은 실로 대단하였다. 다윈이 생존하던 시대의 영국은 이미 산업혁명으로부터 100년이 경과하여 산업자본주의의 발전기에 있었으며, 해외시장의 획득과 식민지 쟁탈이라는 자유경쟁이 강화된 시기였다. 게다가 다윈 자신도 부유한 계급 출신으로서 당시 산업자본가들이 갖고 있던 자유롭고 문화적인 환경에서 자라났다. 이 같은 사회적 조건이 그의 진화론을 탄생시킨 배경이 되고 있으며, 진화론에서 볼 수 있는 변화·경쟁·발전의 이념도 당시의 선진자본주의국가인 영국의 사회를 반영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진화론이 발표된 당초에는 일단 충격을 받았던 사상계가 결국 진화론을 수용하게 된 것은 당시에 이미 이를 받아들일 바탕이 마련돼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자본주의의 상승시기부터 진화론은 사회도 생물과 마찬가지로 발전한다고 하는 진보적 사상으로 받아들여졌다. 다윈 자신은 진화론을 인간사회에까지 연역(演繹)하여 적용할 것을 고려치 않았는데 다윈 이후 자연도태와 생존경쟁을 사회에도 그대로 적용하려는 사상이 나타나 이를 사회다윈주의(Social Darwinism)라고 불렀다. 인간사회의 개인간에 발생하는 우열성이나 약육강식의 측면을 사회의 보편적인 원리라고 주장하는 반동적 사상이 그것이다. 이 사상은 생존경쟁을 개인간뿐 아니라 계급이나 국가, 민족과 인종간에까지 적용하여 적자생존보다도 오히려 열자도태(劣者淘汰)를 강조, 빈곤과 전쟁의 필연성을 주장하는 형태도 나타났다.
한편 다윈의 사촌 동생 F.골턴은 우생학(優生學)을 창시하였다. 이에 의하면 문명사회의 경우는 열악한 소질을 타고난 자도 인도주의에 의해 생존해갈 수 있지만 이는 자연도태원리에 위배되는 것이며, 따라서 사회의 진보를 위해서는 유전적으로 결정된 우수한 소질을 타고난 자만이 생존·변성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단종(斷種) 등을 통해서 인간을 유전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우생학은 과거 미국에서 일어난 흑인배척운동의 일환인 이민제한법과 단종법,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스 독일이 행한 유대인 배척, 대량학살과 같은 인종차별의 이론적 배경이 되었다. 1972년부터 우생학이 사회생물학으로 부활하여 현재 그 존재양식을 둘러싸고 갖가지 논쟁이 계속되고 있는데, 미국에서 노벨상 수상자도 참가한 정자은행(精子銀行)문제는 이 사상의 한 예로 나타난 것이다.
다윈의 이론은 단순한 하나의 이론적 지식으로서 끝나지 않고, 여러 방면에 영향을 끼치며 이어져 왔다. 그리고, 그 바래지 않는 생명력은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그로 인해, 우리는 우리보다 몇 백 년이나 앞선 다윈이란 인물을 생생하게 느끼는데 별 무리가 없을 것이다. 다윈 이론의 생명력이 어떤 모습으로 언제까지 이어질지 우리는 관심 있게 지켜봐야 할 것이다.
Ⅲ. 결 론
꽁트가 예견하였건 그러지 않았건 간에 어쨌든 현대는 과학이 그 중심을 이루고 있는 시대이다, 그러나 현대가 진보된 사회인지 그 반대인지에 대한 평가는 미지수이다.
본론에서 살펴봤듯이, 꽁트가 사회 역사의 진보를 말하고 있는, 반면, 다윈은 인간 역사의 진보를 말하고 있다. 꽁트는 실증주의를 바탕으로 진보의 삼단계설을 제시했고, 다윈은 진화설을 제시했다. 이는 19세기가 실제로 진보의 시대이건 그렇지 안건간에, 진보를 향한 욕구가 다 방면에서 끊임없이 발현되고 있음을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진보는 안정된 속에서 이루어 질 수도 있고, 혼란과 위기의 상황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다. 단지, 그것의 평가가 미뤄질 뿐이다. 다시 말해, 전혀 그럴 수 없어 보이는 위기적 상황 속에서도 진보의 요소는 내재해 있을 수 있다. . 혼란은 안정을 향해 나아가고 안정은 진보를 향해 나아간다. . 이렇듯 혼란과 진보 사이에는 안정이라는 적극적 요소가 필요하기 때문에, 우린 혼란 속에서 진보를 찾는 일보다, 안정 속에서 진보를 찾는 작업이 훨씬 수월함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우린 19세기 중엽의 유럽에서 쉽게 진보의 개념을 찾아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혼란과 안정 진보라는 것의 각각의 경계는 뚜렷치 않다. 즉, 혼란한 사회 속에 진보적 요소가 섞여있고, 안정된 사회 속에 혼란이 내재해 있으며, 진보하는 사회에서도 역시 위기의 요소를 찾을 수 있다. 이러한 모호성 때문에, 사회는 한가지 눈금의 자로 재어지지 않는다. 결국사회를 과학적인 방법만을 가지고 정확하게 설명하는데는 한계를 갖게 된다, 그럼에도 19세기의 꽁트는 사회를 물리학적 방법으로만 규명하려 했고, 다윈도 과학에 입각해 인간과 나아가 환경을 이야기하려 했다, 그리고 어쩌면, 우린 꽁트와 다윈의 또 다른 모습으로 모든 지금 현대에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절대적으로 믿었던 이성과 과학이라는 것이 하나 둘 그 맹점을 들어내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그 해결책의 제시가 필요 할 때이다.
우선 진화론은 이전의 철학에서 바라본 인간관을 무너뜨렸다. 다윈은 인간이라는 동물은 환경에 반응하고 또 부분적으로는 이 반응을 통하여 환경을 형성한다는 점에서 어떠한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유기체로 보았다. 이제 인간은 생물학적 자연질서의 일부분이 되었다. 또한 다윈주의는 철학적으로 관념론이나 주지주의의 평판을 떨어뜨리는 데에도 공헌하였다. 이는 사물을 "영원한 것"으로부터 "변화의 과정"을 포함한 것으로 인식하였다.
또한 종교에서의 다윈의 진화론은 생물이 진화한다는 사실, 특히 인간이 원숭이로부터 진화했다는 견해는 그리스도교의 교의를 부정하는 것이어서 《종의 기원》이 출간된 직후 S.윌버포스 옥스퍼드주교가 격렬한 비난을 한 사실은 유명하다. 또한 미국에서는 근래까지도 공립학교에서 진화론을 가르치지 못하도록 한 주(州)가 있었던 사실, 진화론과 《구약성서》의 창조설 양자를 같이 가르쳐야 한다는 법정논쟁이 있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진화론과 종교와의 논쟁은 1세기 이상 계속된 셈이다. 이처럼 진화론만큼 사람들의 종교심을 뒤흔든 것은 없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사회적인 면에서 바라본 다윈의 영향력은 실로 대단하였다. 다윈이 생존하던 시대의 영국은 이미 산업혁명으로부터 100년이 경과하여 산업자본주의의 발전기에 있었으며, 해외시장의 획득과 식민지 쟁탈이라는 자유경쟁이 강화된 시기였다. 게다가 다윈 자신도 부유한 계급 출신으로서 당시 산업자본가들이 갖고 있던 자유롭고 문화적인 환경에서 자라났다. 이 같은 사회적 조건이 그의 진화론을 탄생시킨 배경이 되고 있으며, 진화론에서 볼 수 있는 변화·경쟁·발전의 이념도 당시의 선진자본주의국가인 영국의 사회를 반영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진화론이 발표된 당초에는 일단 충격을 받았던 사상계가 결국 진화론을 수용하게 된 것은 당시에 이미 이를 받아들일 바탕이 마련돼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자본주의의 상승시기부터 진화론은 사회도 생물과 마찬가지로 발전한다고 하는 진보적 사상으로 받아들여졌다. 다윈 자신은 진화론을 인간사회에까지 연역(演繹)하여 적용할 것을 고려치 않았는데 다윈 이후 자연도태와 생존경쟁을 사회에도 그대로 적용하려는 사상이 나타나 이를 사회다윈주의(Social Darwinism)라고 불렀다. 인간사회의 개인간에 발생하는 우열성이나 약육강식의 측면을 사회의 보편적인 원리라고 주장하는 반동적 사상이 그것이다. 이 사상은 생존경쟁을 개인간뿐 아니라 계급이나 국가, 민족과 인종간에까지 적용하여 적자생존보다도 오히려 열자도태(劣者淘汰)를 강조, 빈곤과 전쟁의 필연성을 주장하는 형태도 나타났다.
한편 다윈의 사촌 동생 F.골턴은 우생학(優生學)을 창시하였다. 이에 의하면 문명사회의 경우는 열악한 소질을 타고난 자도 인도주의에 의해 생존해갈 수 있지만 이는 자연도태원리에 위배되는 것이며, 따라서 사회의 진보를 위해서는 유전적으로 결정된 우수한 소질을 타고난 자만이 생존·변성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단종(斷種) 등을 통해서 인간을 유전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우생학은 과거 미국에서 일어난 흑인배척운동의 일환인 이민제한법과 단종법,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스 독일이 행한 유대인 배척, 대량학살과 같은 인종차별의 이론적 배경이 되었다. 1972년부터 우생학이 사회생물학으로 부활하여 현재 그 존재양식을 둘러싸고 갖가지 논쟁이 계속되고 있는데, 미국에서 노벨상 수상자도 참가한 정자은행(精子銀行)문제는 이 사상의 한 예로 나타난 것이다.
다윈의 이론은 단순한 하나의 이론적 지식으로서 끝나지 않고, 여러 방면에 영향을 끼치며 이어져 왔다. 그리고, 그 바래지 않는 생명력은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그로 인해, 우리는 우리보다 몇 백 년이나 앞선 다윈이란 인물을 생생하게 느끼는데 별 무리가 없을 것이다. 다윈 이론의 생명력이 어떤 모습으로 언제까지 이어질지 우리는 관심 있게 지켜봐야 할 것이다.
Ⅲ. 결 론
꽁트가 예견하였건 그러지 않았건 간에 어쨌든 현대는 과학이 그 중심을 이루고 있는 시대이다, 그러나 현대가 진보된 사회인지 그 반대인지에 대한 평가는 미지수이다.
본론에서 살펴봤듯이, 꽁트가 사회 역사의 진보를 말하고 있는, 반면, 다윈은 인간 역사의 진보를 말하고 있다. 꽁트는 실증주의를 바탕으로 진보의 삼단계설을 제시했고, 다윈은 진화설을 제시했다. 이는 19세기가 실제로 진보의 시대이건 그렇지 안건간에, 진보를 향한 욕구가 다 방면에서 끊임없이 발현되고 있음을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진보는 안정된 속에서 이루어 질 수도 있고, 혼란과 위기의 상황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다. 단지, 그것의 평가가 미뤄질 뿐이다. 다시 말해, 전혀 그럴 수 없어 보이는 위기적 상황 속에서도 진보의 요소는 내재해 있을 수 있다. . 혼란은 안정을 향해 나아가고 안정은 진보를 향해 나아간다. . 이렇듯 혼란과 진보 사이에는 안정이라는 적극적 요소가 필요하기 때문에, 우린 혼란 속에서 진보를 찾는 일보다, 안정 속에서 진보를 찾는 작업이 훨씬 수월함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우린 19세기 중엽의 유럽에서 쉽게 진보의 개념을 찾아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혼란과 안정 진보라는 것의 각각의 경계는 뚜렷치 않다. 즉, 혼란한 사회 속에 진보적 요소가 섞여있고, 안정된 사회 속에 혼란이 내재해 있으며, 진보하는 사회에서도 역시 위기의 요소를 찾을 수 있다. 이러한 모호성 때문에, 사회는 한가지 눈금의 자로 재어지지 않는다. 결국사회를 과학적인 방법만을 가지고 정확하게 설명하는데는 한계를 갖게 된다, 그럼에도 19세기의 꽁트는 사회를 물리학적 방법으로만 규명하려 했고, 다윈도 과학에 입각해 인간과 나아가 환경을 이야기하려 했다, 그리고 어쩌면, 우린 꽁트와 다윈의 또 다른 모습으로 모든 지금 현대에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절대적으로 믿었던 이성과 과학이라는 것이 하나 둘 그 맹점을 들어내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그 해결책의 제시가 필요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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