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최인훈 희곡과 서구 희랍비극 비교
---최인훈의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 <봄이 오면 산에 들에>를 중심으로---
ⅰ.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
ⅱ.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최인훈의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 <봄이 오면 산에 들에>를 중심으로---
ⅰ.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
ⅱ. 봄이 오면 산에 들에
본문내용
도 비극을 희극으로 전이시킨다. 이 극의 주인공은 마음의 평정을 얻으면서 비극적 한계상황을 초월하여 십장생도의 한 모서리에서 십장생도의 모든 동물과 함께 있는 지상낙원으로 들어간다.
달내: (문둥이 탈 쓴 얼굴을 들고 판소리 가락으로)
토끼야 노루야
겁내지 말아
하늘님이 내린 탈을
울엄마가 받아 쓰고
울엄마가 받아 쓴 탈
이 달내가 받아 쓰고
이 달내가 받아 쓴 탈
울아배가 받아 쓰고
하늘님이 내린 탈을
식구 고루 나눠 썼네
하늘동티 입은 우리
사람동네 살 수 없어
이 산속에 찾아와서
너희들의 이웃됐네
이 때
등성이 너머에서
노랫소리
호쾌한
진달래 산천이
쩌렁쩌렁 울리는
어허
얼씨구 절씨구 나가신다
우리 장모가
받아 쓴 탈
우리 장인이
받아 쓴 탈
우리 마누라가
받아 쓴 탈
이 내 몸도
받아 쓰고
이 때 무대에는
十長生圖의
모든 인물이
나와 있다
이 작품의 이러한 결말부는 비록 그 배경이 되는 시대가 아주 오랜 옛날이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과연 무엇이 인간을 위한 진짜 유토피아인가를 생각해볼 수 있게 해주고 있는 것이다. 나와 조금만 달라도 이 사회에서 소외시키려하고, 남들과 조금 다르면 사회에서 소외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우리는 진정한 자유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또한 언제인가부터 서구적인 것에 너무 도취된 나머지 세계를 싸워서 이겨야 할 적으로만 여기며 화해와 조화를 추구하고 고달픈 현실을 웃음으로 극복하고자한 동양의 희극정신을 너무 오랫동안 묻어두고 잊고 지낸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하게 된다.
최인훈의 희곡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서구 비극의 주인공들처럼 자의식이나 자유의지를 갖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비극적 상황을 받아들이고 인고하는 인간형에 가깝다. 이런 주인공들의 태도는 우리에게 한계상황을 내면적으로 극복하고 돌아가는 길을 알려준다. 또한 그의 작품은 민속전통에서처럼 개인의 비극적 상황과 집단의 신명이 대립되어 나타난다. 여기에서 개인의 비극은 집단의 신명을 위해 희생당하는 희생양으로 나타나는 제의적 구조를 갖는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개인의 비극과 집단의 신명을 대립되는 개념이 아니라 동전의 앞뒷면과 같이 겉으로는 달리 나타나나 본질적으로는 같은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최인훈의 작품은 배경이 고대로 되어 있고, 설화를 적절하게 끌어들이기도 하고, 지극히 말을 아끼는 절제된 대사 처리, 말더듬이 인물과 보기 답답할 정도로 굼뜨게 진행되는 인물의 동작으로 마치 시간이 정지한 듯한 그러면서 역사 속에서 벗어난 상황을 창조함으로써 보편성을 획득하고 있다. 그리고 최인훈의 작품은 희곡이면 희곡, 비극이면 비극의 단일한 스타일이 아니라 비극과 골계가 혼합되어 있는 우리의 연극전통을 따르고 있다. 이는 해학이 없는 희랍비극에서 비롯된 서양의 고전적 비극개념과는 사뭇 다르다. 최인훈은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와 <봄이 오면 산에 들에>에서 서구의 비극에서 등장하는 것과 같은 한계상황을 설정해놓고 있다. 그러나 고통, 세계의 부조리와 악에 대항해서 목숨걸고 싸우려는 서구의 비극과는 달리 최인훈은 주인공의 좌절과 불행을 우리의 연극적 전통인 판소리나 가면극에서 나타나는 바와 같이 한을 해학으로 승화시키려는 시도를 보여주고 있다.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에서 부모에 의해 살해된 아기장수가 자살한 부모와 함께 용마를 타고 가는 장면에서 마을 사람들이 신명이 나서 굿판을 벌이는 장면과, <봄이 오면 산에 들에>에서 바우와 달내네 가족 모두가 문둥이가 되어 노래를 부르며 언덕을 넘어가면서 끝이나는 것은 최인훈이 비극적 상황을 환상이나 제의적 상황 또는 동화나 전설 속에 넣어 희극적인 결말을 보여주려 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준다. 비극적이고 고통스럽고 한스러운 상황을 노래와 춤으로 극복하고 해학으로 풀어보려는 최인훈의 희곡 작품들은 역설적이고 아이러니컬하게도 세계의 부조리에 용감하게 맞서 싸우다 패배하는 영웅의 모습을 보는 것보다 더욱 큰 비극성을 느끼게 하고 공감과 카타르시스를 자아내는 것 같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최인훈의 희곡 작품들은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그것을 서구의 비극과 같은 형식의 작품이라고 오해할 만 하다. 그러나 최인훈의 작품은 서구 희랍비극처럼 세계를 싸워서 이겨야할 대상으로 파악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내해야 하고 받아들이고 조화를 이루며 함께 살아야할 대상으로 파악한다. 서구의 희랍 비극은 주인공들이 고통받는 상황과 고통의 부당성을 인식하고 있으며 그런 주인공들을 그림으로써 세계와 주인공의 팽팽한 대결을 보여준다. 그러나 최인훈의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막강한 세계와 대결할 힘을 아예 가지고 있지 못한 힘없고 가난한 민중들이다. 따라서 최인훈 작품의 주인공은 자신들 스스로를 파멸시키면서 세계와 대결하고 세계를 바꾸려는 대신 자신들의 생각을 바꾼다. 고난과 역경을 가져온 상황은 부정적으로 볼 수도 있고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다. 그 생활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면 기회가 없는 절망적 상황으로 보이지만, 긍정적인 시각으로 그 상황을 바라보면 도전과 축복의 기회로 될 수도 있다.
서구의 비극과는 다른 최인훈 희곡의 또 다른 특징은 비극과 골계가 함께 나타난다는 것이다. 서구의 비극에는 골계나 해학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최인훈은 작품의 중간 중간에, 그리고 작품의 결말부에서 비극적 상황을 해학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이런 최인훈의 희곡은 우리의 가면극, 탈춤, 민속극의 전통을 잘 계승하였다고 볼 수 있겠다. 서구 희랍비극과 유사한 듯 하지만 최인훈의 희곡은 서구의 극형식 틀에 맞추어 비극 혹은 희극이라 단정지을 수 없다. 뭐라 명명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최인훈이 서구의 극형식과는 사뭇 다른 새로운 유형의 희곡을 창조했다는 것이다.
참고 문헌
김성희, 연극의 사회학, 희곡의 해석학, 1995, 문예마당.
김성희, 연극의 세계 -연극이란 무엇인가, 1996, 태학사.
최인훈,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 -최인훈 전집 10, 1979, 문학과 지성사.
http://www.uos.ac.kr/~ykryu/books/text/choi/myth1.htm
달내: (문둥이 탈 쓴 얼굴을 들고 판소리 가락으로)
토끼야 노루야
겁내지 말아
하늘님이 내린 탈을
울엄마가 받아 쓰고
울엄마가 받아 쓴 탈
이 달내가 받아 쓰고
이 달내가 받아 쓴 탈
울아배가 받아 쓰고
하늘님이 내린 탈을
식구 고루 나눠 썼네
하늘동티 입은 우리
사람동네 살 수 없어
이 산속에 찾아와서
너희들의 이웃됐네
이 때
등성이 너머에서
노랫소리
호쾌한
진달래 산천이
쩌렁쩌렁 울리는
어허
얼씨구 절씨구 나가신다
우리 장모가
받아 쓴 탈
우리 장인이
받아 쓴 탈
우리 마누라가
받아 쓴 탈
이 내 몸도
받아 쓰고
이 때 무대에는
十長生圖의
모든 인물이
나와 있다
이 작품의 이러한 결말부는 비록 그 배경이 되는 시대가 아주 오랜 옛날이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과연 무엇이 인간을 위한 진짜 유토피아인가를 생각해볼 수 있게 해주고 있는 것이다. 나와 조금만 달라도 이 사회에서 소외시키려하고, 남들과 조금 다르면 사회에서 소외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우리는 진정한 자유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또한 언제인가부터 서구적인 것에 너무 도취된 나머지 세계를 싸워서 이겨야 할 적으로만 여기며 화해와 조화를 추구하고 고달픈 현실을 웃음으로 극복하고자한 동양의 희극정신을 너무 오랫동안 묻어두고 잊고 지낸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하게 된다.
최인훈의 희곡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서구 비극의 주인공들처럼 자의식이나 자유의지를 갖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비극적 상황을 받아들이고 인고하는 인간형에 가깝다. 이런 주인공들의 태도는 우리에게 한계상황을 내면적으로 극복하고 돌아가는 길을 알려준다. 또한 그의 작품은 민속전통에서처럼 개인의 비극적 상황과 집단의 신명이 대립되어 나타난다. 여기에서 개인의 비극은 집단의 신명을 위해 희생당하는 희생양으로 나타나는 제의적 구조를 갖는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개인의 비극과 집단의 신명을 대립되는 개념이 아니라 동전의 앞뒷면과 같이 겉으로는 달리 나타나나 본질적으로는 같은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최인훈의 작품은 배경이 고대로 되어 있고, 설화를 적절하게 끌어들이기도 하고, 지극히 말을 아끼는 절제된 대사 처리, 말더듬이 인물과 보기 답답할 정도로 굼뜨게 진행되는 인물의 동작으로 마치 시간이 정지한 듯한 그러면서 역사 속에서 벗어난 상황을 창조함으로써 보편성을 획득하고 있다. 그리고 최인훈의 작품은 희곡이면 희곡, 비극이면 비극의 단일한 스타일이 아니라 비극과 골계가 혼합되어 있는 우리의 연극전통을 따르고 있다. 이는 해학이 없는 희랍비극에서 비롯된 서양의 고전적 비극개념과는 사뭇 다르다. 최인훈은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와 <봄이 오면 산에 들에>에서 서구의 비극에서 등장하는 것과 같은 한계상황을 설정해놓고 있다. 그러나 고통, 세계의 부조리와 악에 대항해서 목숨걸고 싸우려는 서구의 비극과는 달리 최인훈은 주인공의 좌절과 불행을 우리의 연극적 전통인 판소리나 가면극에서 나타나는 바와 같이 한을 해학으로 승화시키려는 시도를 보여주고 있다.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에서 부모에 의해 살해된 아기장수가 자살한 부모와 함께 용마를 타고 가는 장면에서 마을 사람들이 신명이 나서 굿판을 벌이는 장면과, <봄이 오면 산에 들에>에서 바우와 달내네 가족 모두가 문둥이가 되어 노래를 부르며 언덕을 넘어가면서 끝이나는 것은 최인훈이 비극적 상황을 환상이나 제의적 상황 또는 동화나 전설 속에 넣어 희극적인 결말을 보여주려 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준다. 비극적이고 고통스럽고 한스러운 상황을 노래와 춤으로 극복하고 해학으로 풀어보려는 최인훈의 희곡 작품들은 역설적이고 아이러니컬하게도 세계의 부조리에 용감하게 맞서 싸우다 패배하는 영웅의 모습을 보는 것보다 더욱 큰 비극성을 느끼게 하고 공감과 카타르시스를 자아내는 것 같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최인훈의 희곡 작품들은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그것을 서구의 비극과 같은 형식의 작품이라고 오해할 만 하다. 그러나 최인훈의 작품은 서구 희랍비극처럼 세계를 싸워서 이겨야할 대상으로 파악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내해야 하고 받아들이고 조화를 이루며 함께 살아야할 대상으로 파악한다. 서구의 희랍 비극은 주인공들이 고통받는 상황과 고통의 부당성을 인식하고 있으며 그런 주인공들을 그림으로써 세계와 주인공의 팽팽한 대결을 보여준다. 그러나 최인훈의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막강한 세계와 대결할 힘을 아예 가지고 있지 못한 힘없고 가난한 민중들이다. 따라서 최인훈 작품의 주인공은 자신들 스스로를 파멸시키면서 세계와 대결하고 세계를 바꾸려는 대신 자신들의 생각을 바꾼다. 고난과 역경을 가져온 상황은 부정적으로 볼 수도 있고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다. 그 생활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면 기회가 없는 절망적 상황으로 보이지만, 긍정적인 시각으로 그 상황을 바라보면 도전과 축복의 기회로 될 수도 있다.
서구의 비극과는 다른 최인훈 희곡의 또 다른 특징은 비극과 골계가 함께 나타난다는 것이다. 서구의 비극에는 골계나 해학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최인훈은 작품의 중간 중간에, 그리고 작품의 결말부에서 비극적 상황을 해학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이런 최인훈의 희곡은 우리의 가면극, 탈춤, 민속극의 전통을 잘 계승하였다고 볼 수 있겠다. 서구 희랍비극과 유사한 듯 하지만 최인훈의 희곡은 서구의 극형식 틀에 맞추어 비극 혹은 희극이라 단정지을 수 없다. 뭐라 명명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최인훈이 서구의 극형식과는 사뭇 다른 새로운 유형의 희곡을 창조했다는 것이다.
참고 문헌
김성희, 연극의 사회학, 희곡의 해석학, 1995, 문예마당.
김성희, 연극의 세계 -연극이란 무엇인가, 1996, 태학사.
최인훈,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 -최인훈 전집 10, 1979, 문학과 지성사.
http://www.uos.ac.kr/~ykryu/books/text/choi/myth1.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