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고난 속에서 신앙을 가짐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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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역사적 고난 속에서 신앙을 가짐의 의미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역사적 고난 속에서 신앙을 가짐의 의미
< 서론 >
◉ 발표의 의미와 목적
◉ 발표 대상 및 범위
◉ 발표 제한점
<유태인 학살의 역사적 배경>
<시청각 자료를 통한 박해와 고난의 실상>
-문서자료를 통해서 본-
<역사의 고난속에서의 신앙의 의미>
<고난의 신앙에 대한 개인적 고찰 >
<이번 발표를 마치면서.....>

본문내용

겪게 되는 고통은 점점 늘어난다
사람들이 가축처럼 운반되고
어린아이들이 용광로에 던져지고
인간으로서 상상하기 힘든 고통들이 그들을 덮쳐왔다
그러나 신은 아무 말이 없고, 고통은 계속된다
이 때쯤 되서는 사람들이 두 부류로 나뉘는 것 같다
한쪽 부류는 고통받을 수밖에 없는 자신의 나약함을 뼈저리게 느끼면서
그 안에서 오히려, 이 정도 고통에도 침묵하는 신의 절대성을 실감하는 사람들이다
신은 얼마나 위대하며, 우리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고통에도
꿈쩍하지 않는 거대한 존재인가.
그러나 다른 한쪽 부류는 신에게 등을 돌리고 원망하기 시작한다.
유대인들은 특히, 자신들이 선택받은 민족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민족 전체의 이런 고통에 어떻게 신이 가만히 있을 수 있냐며
신은 교수대에 목이 매달렸다고 말한다
(여기서 확실히 해 두어야 할 것은, 그들이 신의 '존재'를 부정한 것은 아닐
거라는 사실이다. 그들은 신을 욕하고 화를 내고 원망하기는 하지만,
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 것 같다.)
그러나 누가 이들을 비난할 수 있을까
지금 이렇게 편안히 종교생활을 할 수 있는 우리들이,
어떻게 감히 이들에게 믿음이 약한 자들이라고 할 수 있겠냐 말이다
게다가 종교의 차이 때문에 전쟁이 끊이지 않는 지역에 사는 사람도 아닌,
많은 종교가 비교적 평화롭게 공존하는 이 땅에 사는 우리가.
그렇다면,
끝까지 믿음을 지키려고 애썼던 사람들은 비난할 수 있을까?
어떻게 그런 상황에서도 태연하게 신이 내린 시련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미친 거 아니냐고 생각할 사람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때로 무신론자들은 유신론자들을 이렇게 비난한다
모든 것을 신에게 의지하고 책임도 신에게 전가하려 들다니,
너무 약해빠진 거 아니냐고.
그 때 그 때의 상황 속에서 헤쳐나가고 책임을 져야 할 것은 바로 나 자신인데,
'잘못된 상황'을 신이 주신 시련이라고 말하면서,
책임을 모두 신에게 떠넘기는 거 아니냐고.
하지만 그들의 고통은 솔직히 그들의 잘못도 아니었다
살아남기 위해 악착같이 돈을 모은 것이 밉보였을 수는 있겠지만,
그 대가라고 하기에 그들의 고통은 너무나 큰 것이었다
이 경우에 그들의 고통을 그들의 책임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 것은 분명 어디선가 틀어진 역사 때문이었고,
그들의 고통에 당위성을 부여할 수는 도저히 없다
게다가 인간이 견딜 수 있는 고통의 한계선을 설정한다고 한다면,
그들의 고통은 이미 그 한계선에 다다랐거나,
혹은 넘어선 수준의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흑야에서 많은 사람들이 신을 붙잡고 오랫동안 살아남았지만,
신은 없다고 인정한 그 순간
그들은 삶의 의지와 정신력을 상실하고 죽어버렸다
신이 있고 없고의 문제를 떠나서,
신을 붙잡고 의지하는 것은
그들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였던 것이다
신이 있다고 믿는 것 - 그 믿는 방식이 신의 절대성을 찬미하는 것이든,
고통은 준 신을 원망하는 것이든 간에, 그들에게 살아남아야 할 이유를 던져준
것이었고, 실질적으로 그들이 살아남는 데에 커다란 도움을 주었다.
‘신앙’이라는 것이 그런 것 같다
살아있기 힘든 상황에서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힘이 바로 ‘신앙’인 것이다.
참고문헌
1. <고난과 신앙>-펫테르무엔,
2. <흑야>, <나치스와 유대인>, <새벽>- 엘리위젤
3. 영화 : <인생은 아름다워>, <피아니스트>, <쉰들러 리스트>
4. 시사저널
<이번 발표를 마치면서.....>
◆ 이번 주제는 참으로 어려웠던 것 같다. 개인마다 고난속에서 신앙에 대한 입장이 다르므로 그것을 일반적인 말로 결론을 내리기는 어려웠던 것이다. 이번 발표에 중점을 두었던 유태인 문제에서도 엘리위젤은 신을 원망하지만, 나 자신도 그의 글을 읽으면서 너무나도 그 상황이 와 닿았으므로 뭐라 비판할 수는 없었다. 내가 그 상황이었다면 그렇게 하지 않았으리라는 확신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신앙을 가짐으로서 우리에게 가져다 주는 의미는 신앙이 좌절 속에서도 희망을 찾을 수 있는 힘을 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발표를 통하여 몰랐던 여러가지 역사적 사실들과 가치관을 배울 수 있었다. 이런 문제를 생각할 기회를 주신 교수님께 감사를 드린다.
◆ 유대민족의 고통을 중심으로 발표준비를 하게 되었지만, 따지고 보면 그러한 고통들이 단지 그들만의 고통은 아닐 것이다. 지금 이 순간도 많은 소수민족들이 유대민족이 겪었던 것보다 어쩌면 더 많이 고통을 받고 있을 것이고, 종교나 신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하고 있을 것이다. 고통을 겪는다는 것은 이렇게나 흔해빠진 일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종교의 힘인 것 같다. 신이 없다면 고통스러운 삶은 죽음보다도 못한 것이 되어버리지만, 신이 있다면 그 자체로 삶은 의미를 되찾을 수 있게 된다. 역설적으로, 사람들이 고통을 이기고 살아나가기 위한 수단으로 신을 만들어 내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유대인들이 어떤 고통 속에서 어떤 식으로 삶의 끈을 놓지 않을 수 있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들의 끈질긴 생명력은 좋든 싫든 그들의 신으로부터 나온 것이고, 설사 그들의 신이 단지 상상력의 산물일 뿐일지라도 그 것이 그들에게는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그래도 삶을 선택하게 해주는 힘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이 발표를 하게되어 우리 삶 속에 생기는 고난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고난의 동기가 자신으로 부터 생기는 것인지, 사회 환경적인 복잡함 때문인지, 개인을 단련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연단 때문인지 이 모두 다 때문인지에 대한 물음에서 세번째로 기울었다... 고난을 당할 때 우리 인간은 힘들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우리 힘으로 할 수 없다라는 주님께 의지함이며 부활의 신앙을 붙잡는 것일 것이다. 나 또한 나치시대의 유대인이었다면 '신은 없다'라고 부정했을지 모를 일이다.. 조그마한 일에도 하나님을 쉽게 원망하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어려운 상황, 고난 속에서 신앙이 가지는 중요성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역사적 고난 속에서
신앙을 가짐의 의미
  • 가격2,000
  • 페이지수15페이지
  • 등록일2005.01.29
  • 저작시기2005.0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83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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