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익작가 연맹과 문예 대중화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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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좌익작가연맹의 성립

2. 문예대중화론

3.‘국방문학’과 ‘민족혁명전쟁의 대중문예’의 구호논쟁

본문내용

방문학’에 관하여〉(關于國防文學)라는 글이 발표되면서 抗日을 위한 문단의 좌우의 통일을 제기했다. 1936년에 접어들면서 ‘국방문학’의 구호는 더욱 확대되더니, 1936년 3월 잡지《생활지식》(生活知識) 제 1권 11기에는 〈국방문학론〉(國防文學論)특집을 냈다. 〈문학계의 통일국방전선〉(文藝界的統一國防戰線)이라는 제목의 글모음으로 鄭振鐸 邵洵美麗尼王任叔謝六逸邱音勻鐸등의 글을 게재했으며, 또 周揚의 〈국방문학을 건립하는 몇 가지 전제조건〉(建立國防文學的幾個前提條件), 王夢野의 〈중국의 반제문학과 국방문학〉(中國的反帝文學與國防文學), 梅雨의 〈국방문학과 약소민족문학〉(國防文學與弱小民族文學), 宋珏의 〈국방문학의 특질〉(國防文學的特質) 등의 글이 발표되었다.
周揚은 〈국방문학을 건립하는 몇 가지 전제조건〉에서 세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첫째, 지금의 민족적 위기 앞에서는 개인의 의견을 제거해야 한다.
둘째, 우경 기회주의를 극복해야 한다.
셋째, 좌경 종파주의 관념을 청산하고 반제반일을 위해 문단이 대동 단결해야 한다. 그리고 같은 해 6월 7일에 周揚파는 ‘中國文藝家協會’를 결성하고 118명의 가입서명을 받았다고 발표했다. 이 명단에는 茅盾郭沫若鄭振鐸洪深鄭伯奇葉聖陶朱自淸 등 정치에 전혀 관계하지 않던 작가들도 포함된 당시 유명작가의 이름은 거의가 망라되어 있었다. 이들 선언문에, “ 전민족이 일치하는 救國의 대목표 하에서는 문예의 주장이 같지 않은 작가들일지라도 하나의 목표를 향하는 전선의 전우가 될 수 있다”.고 하였다.
民族革命戰爭의 大衆文藝는 1936년 5월에 魯迅측에서는 ‘民族革命戰爭의 大衆文藝’이라는 구호를 내어 ‘국방문학’ 구호와 맞섰다. 胡風은 〈인민대중은 문학에 무엇을 요구하는가〉(人民大衆向文學要求什:1936년 5월 9일에 쓰고 발표는 6월 1일자《文學叢報》 제 3기)에서 ‘민족혁명전쟁의 대중문학’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모든 救國運動이나 解放運動 안에서 抗敵鬪爭이 수행되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민족혁명전쟁’이라 하고, 이러한 민족전쟁에 漢奸이 포함될 수 없으며,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민대중의 전쟁이며, 이러한 시기의 문학은 당연히 전쟁을 수행하는 勞苦大衆을 위한 문학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같은 해 6월 10일에 馮雪峰에게 筆錄을 시켜〈현재 우리들의 문학운동을 논함〉(論現在我們的文學)을 선언문으로 발표하여, ‘민족혁명전쟁의 대중문학’이야말로 左聯의 전통인 ‘문산계급혁명문학’의 계승이며 ‘抗日 反漢奸鬪爭’의 총체라고 했다. 이어 7월 1일에는 魯迅巴金曺張天翼胡風 등 67명의 이름으로 ‘中國文藝工作者宣言’을 발표하여 ‘민족혁명전쟁의 대중문학’을 재확인했다.
左聯은 1930년 3월에 좌익작가들의 모임으로 결성된 후 1936년 3월에 해체되기까지 ‘문예대중화’라는 문제로 논쟁만 벌이고 아무런 성과도 없이 끝났다. 그러나 이후 중국공산당의 문예정책은 이 시기의 ‘문예대중화론’이 根底가 되었다.
(참고자료)
―中國現代文學史 권철김제봉 編著 한겨레
―중국근현대 문학운동사 임춘성 편역 한길사
―김시준 지음,《중국현대문학사》,
  • 가격1,300
  • 페이지수7페이지
  • 등록일2005.03.25
  • 저작시기2005.0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89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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