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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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문학파〉 연구의 의이
2. 순수의 의미
3. 김영랑- 거울로의 자연
4. 정지용- 대상으로서 자연
5. 신석정, 허보, 박용철- 근원으로서 자연
6. 순수시의 문학사적 의의
1. 〈시문학파〉 연구의 의이
2. 순수의 의미
3. 김영랑- 거울로의 자연
4. 정지용- 대상으로서 자연
5. 신석정, 허보, 박용철- 근원으로서 자연
6. 순수시의 문학사적 의의
본문내용
총체적인 부인이며 모든 현실적 관념 체계와 시간, 공간의 폐기이며, 그것은 세계 상실이기 때문에 순수 역시 세계상실을 의미한다.
김준오는 추상 시는 근본적으로 파괴의 모티프가 내제되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추상의 태도에 근거한다고 한다. 이 경우시란 현실을 박살내는 것이라고 정의하면서, 김춘수가 자신이 실험한 무의미 시를대상을 잃은 시로 정의 할 때 바로 위와 같은 문맥에 놓인다고 한다. 즉 현실적 인간의 폐기를 추상예술의 근본적인 특징이라고 보고 있다. 추상은 어디까지나 정신의 범주로서 세계 상실, 곧 추상은 일체의 현실적인 연관으로부터 해방된 순수한 관념의 정신세계와 일치한다고 하고 바로 이 지점에서 60년대 순수시의 내면탐구가 전통적 범주의 내면성과 변별되는 한 근거가 마련된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일상 언어로는 추상적 세계를 표현 할 수가 없고, 언어란 순수정신에서 빚어지는 창조활동이라고 할 때, 시 쓰기란 언어를 조작하는 정신의 모험이라는 것이다. 이 언어는 일상 언어는 물론이고 전통적 시어와도 구별된다고 한다. 따라서 추상시의 언어는 현실적 체험으로부터 해방된 언어이기 때문에 그것은 자신 이외 다른 아무것도 지시하지 않는 자율적 기호에 속하는 것이다. 이 자율적 기호 속에서만 세계상실이 가능한 완전 자유가 가능해지며, 순수시의 언어실험이란 이와 같은 언어의 자율적 기호화에 다름 아니다. 여기서 현대성이 확보되는 것으로써, 60년대 순수시의 특성이 있다고 김준오는 지적한다. 이처럼 추상이 세계로부터 해방이듯이 시도 내용에서 해방된 것. 내옹이 중단되는 곳에서 시작된다는 명제라는 순수시의 필연적인 시학으로 보인다.
내용이 중단된 곳에서 시작된 순수시학으로써〈시문학파〉의 순수시와 60년대 순수시의 특성과 차이를 보면, 60년대 순수시의 언어실험에서 주로 채용되는 시적 장치는 은유다. 그러나 여기서의 은유는 전통적 은유와는 달리 사물들의 비동일성에 근거한 추상화의 수단으로 작용한다. 이는 곧 60년대 순수시가 수수께끼와 같은 모호한 발화로서 시적 자유를 누렸다는 명제인데, 반면〈시문학파〉의 순수시는 모호하거나 추상적이지 않다. 그리고 내용에서 해방된 것, 내용이 중단되는 곳에서 시작된다.는 순수의 명제는 30년대의 순수시에서 나 60년대의 순수시에서나 공통적으로 나타난 현상이다. 그러나 〈시문학파〉의 순수시는 사물들의 비동일성에 근거한 모호한 발화의 시가 아니라. 사물들의 동일성에 근거한 전통적 은유의 구조다. 특히60년대의 순수시는 현대시사에서 내면 탐구와 언어 실험이 가장 본격적으로 전개된 시로 자리매김 된다면, 30년대〈시문학파〉는 세상에 대한판단중지의 상태에서 현실로부터 고립된 절대자아가 우주적 순수의 세계에서 자율적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결국 순수의 의미는 언어의 대립적 구조처럼 절대적 의미가 아니라, 상대적 상태에서 그 의미가 부여됨을 알 수 있다. 〈시문학파〉의 순수시 역시 20년대의 목적론적 문학론에 대한 상대적 의의로써 출발했던 것이다. 세상에 대한 판단중지로서 순수이며, 자율적 미의 추구라는 순수이고, 세상과 차단된 절대적 자아의 세계로서 순수이다. 그러나 세상에 대한 판단중지의 상황에서 비롯된 순수일지라도 순수를 향한 절대적 자아의 의도성조차 없을 수 없다. 그러므로 자연을 중심모티프로 한 〈시문학파〉의 순수지향은 현실과의 연관이 차단된 자아가 꿈꾸는 이상화에 있다. 외부 세계와의 분리에서 형성된 자아 일 뿐만 아니라. 신의 현현이다. 신의 현현으로서 자연은 낭만주의의 이상세계이다. 〈시문학파〉의 자연모티프 ur시 순수 자아가 지향하는 현실부정의 이상세계에 속한다.
자연모티프를 통한 순수 자아의 이상화 지향이라는〈시문학파〉시인들의 공통항 속에서도 물론 그 차이는 있다. 김영랑 시는하늘을 중심매개로 하여 시적 자아가 하늘과의 동일시를 꿈꾸는나르시시즘이 지배적이다. 김영랑 시의 자아는 고독한 개체적 자아에서 멈추지 않고 우주적 나르시시즘 까지 확대된 절대 자아인 것이다. 반면 정지용은 자연과 시적 자아가 분리된 상태, 즉 자연을 객관적으로 대상화 하여 이미지 묘사 중심의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이미지 묘사를 위하여 감각적인 언어유희가 지배적인 수사 장치로 활용된다. 수사 장치로서 언어유희일 뿐만 아니라, 시적 자아 역시 유희를 즐기는호모루덴스적 자아이다. 이와는 달리 신석정, 허보, 박용철 시의 자연은 인간과 일체였던카오스적 근원으로서의 자연에 대한 지향을 보이는회귀적 자아이다 질서의 체계를 초월하며 수용하는 근원으로서의 우주인 것이다. 김현구, 이하윤의 시는 위의 시인들과는 달리과거에 대한 회상의 태도를 취한다. 때문에 동경보다는 그리움의 정서가 지배적이며, 회상의 자아가 주도한다. 물론 동경과 그리움의 양자는 시대에 대한 불만에서 기인하는 공통성을 지닌다. 현실에 대한 불만 및 그 부정으로써 출발한 동경과 그리움의 시적 자아가 이상의 세계로서 자연을 선택한 것이다. 그러나 과거회상의 자아는 미래를 향한 자아이기보다는 그리움의 자아에 가깝다.
이와 같은나르시시스적 자아, 유희의 자아, 회귀적 자아, 회상의 자아는 공통적으로 낭만주의의 순수자아에 속한다. 순수자아는 활동성으로써 스스로를 정립하며, 이와 같은 창조적인 자아의 자유로운 활동이 곧 세계의 근거가 된다. 현실의 문제로부터 고립된 순수 자아는 세상의 소음 결별한, 그리고 자아와 일체감을 이룰 수 있는 이상적 영혼의 세계인 자연에서 근원적인 통일성 및 순수성을 견지하는 것이다. 이처럼 순수성은 이성의 우위로서 상상력과 환상의 길을 따라가는 낭만주의와 관계한다.
3. 김영랑 ― 거울로서 자연
김영랑의 시는 우주적 모티프인 하늘을 중심매개로 하고 있다. 분리의 자아가 거울을 통해 신체적 동일시에 이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늘은 마음의 거울로서 하늘과의 동일시를 욕망하는 우주적 나르시시즘의 순수이미지를 상징하는 은유다. 김영랑은 신체의 동일시라는 개체적 나르시시즘에 멈추지 않고, 순수와의 동일시를 동경하여 형이상학적 환상이 세계를 지향한다. 따라서 김영랑 시의 자아는 고립되고 고독한 절대 자아 중에서도, 하늘의 순수성으로 향하여 열려있는 자아이기도 하다.
내 마음의 어
김준오는 추상 시는 근본적으로 파괴의 모티프가 내제되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추상의 태도에 근거한다고 한다. 이 경우시란 현실을 박살내는 것이라고 정의하면서, 김춘수가 자신이 실험한 무의미 시를대상을 잃은 시로 정의 할 때 바로 위와 같은 문맥에 놓인다고 한다. 즉 현실적 인간의 폐기를 추상예술의 근본적인 특징이라고 보고 있다. 추상은 어디까지나 정신의 범주로서 세계 상실, 곧 추상은 일체의 현실적인 연관으로부터 해방된 순수한 관념의 정신세계와 일치한다고 하고 바로 이 지점에서 60년대 순수시의 내면탐구가 전통적 범주의 내면성과 변별되는 한 근거가 마련된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일상 언어로는 추상적 세계를 표현 할 수가 없고, 언어란 순수정신에서 빚어지는 창조활동이라고 할 때, 시 쓰기란 언어를 조작하는 정신의 모험이라는 것이다. 이 언어는 일상 언어는 물론이고 전통적 시어와도 구별된다고 한다. 따라서 추상시의 언어는 현실적 체험으로부터 해방된 언어이기 때문에 그것은 자신 이외 다른 아무것도 지시하지 않는 자율적 기호에 속하는 것이다. 이 자율적 기호 속에서만 세계상실이 가능한 완전 자유가 가능해지며, 순수시의 언어실험이란 이와 같은 언어의 자율적 기호화에 다름 아니다. 여기서 현대성이 확보되는 것으로써, 60년대 순수시의 특성이 있다고 김준오는 지적한다. 이처럼 추상이 세계로부터 해방이듯이 시도 내용에서 해방된 것. 내옹이 중단되는 곳에서 시작된다는 명제라는 순수시의 필연적인 시학으로 보인다.
내용이 중단된 곳에서 시작된 순수시학으로써〈시문학파〉의 순수시와 60년대 순수시의 특성과 차이를 보면, 60년대 순수시의 언어실험에서 주로 채용되는 시적 장치는 은유다. 그러나 여기서의 은유는 전통적 은유와는 달리 사물들의 비동일성에 근거한 추상화의 수단으로 작용한다. 이는 곧 60년대 순수시가 수수께끼와 같은 모호한 발화로서 시적 자유를 누렸다는 명제인데, 반면〈시문학파〉의 순수시는 모호하거나 추상적이지 않다. 그리고 내용에서 해방된 것, 내용이 중단되는 곳에서 시작된다.는 순수의 명제는 30년대의 순수시에서 나 60년대의 순수시에서나 공통적으로 나타난 현상이다. 그러나 〈시문학파〉의 순수시는 사물들의 비동일성에 근거한 모호한 발화의 시가 아니라. 사물들의 동일성에 근거한 전통적 은유의 구조다. 특히60년대의 순수시는 현대시사에서 내면 탐구와 언어 실험이 가장 본격적으로 전개된 시로 자리매김 된다면, 30년대〈시문학파〉는 세상에 대한판단중지의 상태에서 현실로부터 고립된 절대자아가 우주적 순수의 세계에서 자율적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결국 순수의 의미는 언어의 대립적 구조처럼 절대적 의미가 아니라, 상대적 상태에서 그 의미가 부여됨을 알 수 있다. 〈시문학파〉의 순수시 역시 20년대의 목적론적 문학론에 대한 상대적 의의로써 출발했던 것이다. 세상에 대한 판단중지로서 순수이며, 자율적 미의 추구라는 순수이고, 세상과 차단된 절대적 자아의 세계로서 순수이다. 그러나 세상에 대한 판단중지의 상황에서 비롯된 순수일지라도 순수를 향한 절대적 자아의 의도성조차 없을 수 없다. 그러므로 자연을 중심모티프로 한 〈시문학파〉의 순수지향은 현실과의 연관이 차단된 자아가 꿈꾸는 이상화에 있다. 외부 세계와의 분리에서 형성된 자아 일 뿐만 아니라. 신의 현현이다. 신의 현현으로서 자연은 낭만주의의 이상세계이다. 〈시문학파〉의 자연모티프 ur시 순수 자아가 지향하는 현실부정의 이상세계에 속한다.
자연모티프를 통한 순수 자아의 이상화 지향이라는〈시문학파〉시인들의 공통항 속에서도 물론 그 차이는 있다. 김영랑 시는하늘을 중심매개로 하여 시적 자아가 하늘과의 동일시를 꿈꾸는나르시시즘이 지배적이다. 김영랑 시의 자아는 고독한 개체적 자아에서 멈추지 않고 우주적 나르시시즘 까지 확대된 절대 자아인 것이다. 반면 정지용은 자연과 시적 자아가 분리된 상태, 즉 자연을 객관적으로 대상화 하여 이미지 묘사 중심의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이미지 묘사를 위하여 감각적인 언어유희가 지배적인 수사 장치로 활용된다. 수사 장치로서 언어유희일 뿐만 아니라, 시적 자아 역시 유희를 즐기는호모루덴스적 자아이다. 이와는 달리 신석정, 허보, 박용철 시의 자연은 인간과 일체였던카오스적 근원으로서의 자연에 대한 지향을 보이는회귀적 자아이다 질서의 체계를 초월하며 수용하는 근원으로서의 우주인 것이다. 김현구, 이하윤의 시는 위의 시인들과는 달리과거에 대한 회상의 태도를 취한다. 때문에 동경보다는 그리움의 정서가 지배적이며, 회상의 자아가 주도한다. 물론 동경과 그리움의 양자는 시대에 대한 불만에서 기인하는 공통성을 지닌다. 현실에 대한 불만 및 그 부정으로써 출발한 동경과 그리움의 시적 자아가 이상의 세계로서 자연을 선택한 것이다. 그러나 과거회상의 자아는 미래를 향한 자아이기보다는 그리움의 자아에 가깝다.
이와 같은나르시시스적 자아, 유희의 자아, 회귀적 자아, 회상의 자아는 공통적으로 낭만주의의 순수자아에 속한다. 순수자아는 활동성으로써 스스로를 정립하며, 이와 같은 창조적인 자아의 자유로운 활동이 곧 세계의 근거가 된다. 현실의 문제로부터 고립된 순수 자아는 세상의 소음 결별한, 그리고 자아와 일체감을 이룰 수 있는 이상적 영혼의 세계인 자연에서 근원적인 통일성 및 순수성을 견지하는 것이다. 이처럼 순수성은 이성의 우위로서 상상력과 환상의 길을 따라가는 낭만주의와 관계한다.
3. 김영랑 ― 거울로서 자연
김영랑의 시는 우주적 모티프인 하늘을 중심매개로 하고 있다. 분리의 자아가 거울을 통해 신체적 동일시에 이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늘은 마음의 거울로서 하늘과의 동일시를 욕망하는 우주적 나르시시즘의 순수이미지를 상징하는 은유다. 김영랑은 신체의 동일시라는 개체적 나르시시즘에 멈추지 않고, 순수와의 동일시를 동경하여 형이상학적 환상이 세계를 지향한다. 따라서 김영랑 시의 자아는 고립되고 고독한 절대 자아 중에서도, 하늘의 순수성으로 향하여 열려있는 자아이기도 하다.
내 마음의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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