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돌이 예인집단의 형성과 예술사적 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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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떠돌이 예인집단의 형성과 예술사적 의의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떠돌이 예인집단의 형성

2. 떠돌이 예인집단의 종류

3. 남사당패의 연희 종류

4. 화상에서 보이는 떠돌이 예인집단

5. 떠돌이 예인집단의 예술사적 의의

본문내용

와 의상을 입힌 인형을 손으로 조종하는 것과, 인형의 머리에 둘째손가락을 넣어서 조종하는 것들이 그것이며 이와 같은 연출은 조선 일본과 똑같다 …
이어저 그는 대만의 朴子 장수조의 <대만인형극>조를 들어,
… 태양이 서산에 넘어갈 때 저녁밥을 먹고 관중들은 촌묘 넓은 마당에 모인다. 조금 높은 고대를 만들어 누각형의 屋臺를 짓고 男形女形의 인형을 흑막 뒤에 숨은 役子가 교묘하게 조종하며 대고적, 동라, 子 등의 악대반주와 아울러 인형극을 연출한다. 인형은 목편으로 머리를 만들어 옷을 입히고 머릿속은 텅 비어서 손가락을 넣게 되었다. …
한 것을 보아 대만의 인형극 역시 중국의 둘째손가락으로 조종하는 인형극과 연출 방식이 같음을 알 수 있다고 하였다. 나아가서 그는 중국 인형극이 무대도 고대를 만들어 놓고 사위에 투명한 유리를 두르고 그 속에서 예인이 인형을 조종하는 것과 인본의 인형 무대가 난간을 만들어 포장을 치고 그 속에서 조종하고 있는 것을 보면 모두가 동일한 계통일 것임을 주장하였다.
이밖에도 어의나 발음상의 동일성을 들어 중국 한국 일본의 인형을 <郭>, <꼭두>, <クグツ>로 부르고 있음은 중국의 郭禿 Kok Thok에서 한국의 <꼭두>가 되고 이것이 일본으로 건너가 クグツ(傀儡)가 되었다는 전이까지를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전해진 중국의 인형극은 그대로 중국 고유의 것이 직접 전래한 것인가, 혹은 중국 이외의 다른 나라 것이 중국을 거쳐서 유입된 것이냐가 문제이다.
중국 문헌 <五雜祖> 권5에,
南方好傀儡 北方好韆 然皆胡戱也 列子所載偃師爲木人能舞 此傀儡之如也.
秋千云 自齊桓公山戎 傳其戱人中國 今燕齊之間 淸明前後 此戱盛行 所謂北方戎狄 愛習輕之能者 其說信矣
라 있는데 괴뢰를 호희(胡戱)라 하였다. 그들은 자기 나라 이외는 모두 동이, 서융, 남만, 북적 일라 불렀음에 비추어 호희(胡戱)라 하였음은 중국 고유의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齊桓公이 山戎으로부터>라 운운하였으니 戎이라 하는 것은 西戎을 뜻하며 서방에서 괴뢰가 전래한 것임을 말하고 있다.
곡두각시놀음의 내용은 채록본에 따라 다소 다른데, 이는 민속극의 구전성이라는 점에서는 어쩔 수 없는 것이지만 내용에 있어서는 대동소이하다. 그 내용은 보통 7~8막으로 나위는데, 최고의 채록본인 김채철본에 의하면 8막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1막은 ‘곡예장’으로 박첨지가 팔도강산을 유람하다가 남사당패 놀이판에 까어든 이야기를 산받이(인형과의 대화자)와 나누면서 자기 소개를 한다.
제2막은 ‘뒷절’로서, 뒷절의 상좌들이 박첨지의 질녀와 놀아나는 것을 보고 박첨지가 노해서 자기 조카 홍동지를 불러 중을 내쫓는 것으로, 파계승에 대한 풍자를 담고 있다.
제3막은 ‘최영로의 집’으로서, 박첨지가 사돈 최영로의 집에 가서 새를 쫓으러 가는데 사람이 나오는 족족 잡아먹는 용강 이심이에게 막 잡아먹힐 뻔했을때 홍동지가 와서 구해준다.
제4막은 ‘동방노인’으로서, 눈을 감고 등장한 이유가 세상이 부정하기 대문이라고 하여, 어지러운 세상에 대한 풍자를 볼 수 있다.
제5막은 ‘표생원’으로서, 표생원이 오랫동안 헤어져 있던 본처 꼭두각시를 만나는데, 첩인 돌머리집을 상면시키자 싸움이 벌어지고, 박첨지는 살림을 나누어준다면서 첩에게만 후하게 나누어주자 꼭두각시는 금강산으로 중이 되러 가겠다고 퇴장하는 것으로, 일부처첩제로 인한 가부장적 가족제도의 모순과 서민층의 생활상을 보여준다.
제6막은 ‘매사냥’으로서, 평안감사가 새로 부임해오자마자 매사냥을 하겠다며 포수와 사냥하는 매를 대령하도록 하는데, 지배계급의 횡포와 그에 대한 풍자를 보여준다.
제7막은 ‘평안감사 상여’로서, 평안감사가 모친상을 당해 상여가 나가는데 상제는 오히려 좋아하며, 향두꾼으로 벌거벗은 홍동지가 불려와서 상여를 메는 내용으로, 지배계급에 대한 신랄한 풍자와 조롱을 보여준다.
제8막은 ‘건사(建寺)’로서, 박첨지가 나와 장례 후 명당에 절을 짓겠다고 알리면 중 2명이 나와 조립식 법당을 짓고는 다시 헐어버린다. 절을 짓는 것은 주인공의 종교에의 귀의로 해석할 수 있으며, 마지막에 다시 절을 허는 것은 토속사상과 외래종교인 불교와의 상극이라는 해석으로, 또는 종교마저 뛰어넘는 주인공의 초월사상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4. 화상에서 보이는 떠돌이 예인집단
사계풍속도병(四季風俗圖屛)
김홍도, 18세기, 비본채색, 각 80.5×44.6cm, 프랑스 기메박물관
<사계풍속도병>은 김홍도가 30대 화원시절에 제작한 풍속화로 추정된다. 그는 채색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병풍의 크기로 제작된 것으로, 김홍도 풍속화 가운데 명품에 속한다. 특히 종래의 사대부적이고 관념적인 성격에서 탈피하여 서민적이고 현실적인 취향이 두드러진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봄의 풍속으로 <술취한 판결>과 <기생집풍경>, 여름 풍속으로 <사당패놀음>과 <후원놀이>, 가을 풍속으로는 <관리행차>와 <목화따는 시골아낙>, 겨울 풍속으로 <길에서 만난 기생들>과 <눈 속의 난로회>이 있다.
기산풍속도첩(箕山風俗圖帖)
김준근, 19세기 말, 지본채색, 대략 17×13cm, 프랑스 기메박물관
19세기 말 김준근이 그린 풍속화첩이다. 김준근은 언제 태어나 언제 죽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고, 원산 제물포 초량의 세 개항장에서 외국인을 고객으로 한 주문 그림을 그렸다. 개항장에서 외국인에게 팔기 위해 제작한 풍속화를 작자는 ‘개항장풍속화’라 부르는데, 이 화첩도 그러한 성격의 풍속화첩이다. 또한 존 버니안(John Bunyan)이 지은 Pilgrim\'s Progress를 1895년 한글로 번역한 『텬료력뎡』의 삽화를 그린 바 있다.
이 풍속화첩은 프랑스의 지리학자이자 민속학자인 샤를 루이 바라(Charles Louis Varta, 1842~1893)가 1888년에서 1889년에 걸쳐 프랑스 문교부에서 파견되어 조선을 여행했을 때 수집했던 풍속화다. 그가 이 당시 조선을 여행한 여행기인 『조선종단기』에 삽화로 이 풍속화를 사용하기도 했다. 1890년에 프랑스 정부에 기증하여 처음에는 트로카데로 박물관에 전시되다가 1889년 에밀 기메라는 실업가에 의해 설립된 기메박물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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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5.09.09
  • 저작시기2005.09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120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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