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야위고 쓸쓸해 보이는 한 노인만이 침대에 누워있을 뿐이었다.
내가 멍하니 서서 아버님을 바라보고 있는데, 그때 진석이 나를 발견했다.
“아니, 형수님! 형이랑 은희는요? 설마 혼자 오신 건 아니겠죠?”
진석은 정신이 있는 거냐는 말투로 나를 향해 물었다.
하지만 이미 나에겐 아버님 외엔 어떤 것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버님...”
“아무래도 늦은 것 같아요.. 제가 도착했을 때 이미 눈을 감고 계셨어요..
아무리 불러도 전혀 반응이 없어요..”
진석은 이미 포기한 듯한 말투였다.
“아니예요.. 그럴 리 없어요.. 분명 살아계세요.. 그죠? 아버님, 대답 좀 해보세요, 네?”
내가 목이 메여 울부짖는 소리를 들었는지, 죽은 듯이 계속 눈을 감고 있던 아버님은 힘겹게 눈을 뜨며 나를 바라보셨다.
진석은 그 모습을 보고 놀랐으며, 나는 아버님께 미소를 보이며 말을 이었다.
“잘하셨어요.. 아버님.. 잘하신 거예요.. 저도 안보고 가시면 안 되시는 거였잖아요..
정말 다행이예요.. 아버님은 꼭 다시 일어나실 꺼예요.. 꼭.. 다시..“
울먹이며 말을 하고 있는데, 아버님은 힘겹게 내 손을 잡으려 하셨다.
그리고 뭔가 말을 하려 하셨다.
나는 아버님의 손을 꼭 쥐며, 귀를 아버님의 얼굴에 가까이 가져갔다.
“아가...”
“네, 아버님.. 말씀하세요. 저 왔어요.. 저 많이 보고 싶으셨을 텐데 와보지도 않아서 화 많이 나셨죠? 그래서 이렇게 저 놀래켜 주시는 거죠? 이제 저 왔으니깐 그만 화푸시고 얼른 일어나세요.. 그래서 집으로 같이 가요, 아버님.. 흑..”
나는 지난 일이 너무나 후회되었고, 아버님을 외면하고 보내려 했던 내 자신이 너무나 미워서,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아가.. 고맙다.. ”
아버님은 마지막 순간 정신이 돌아오셨는지, 힘겹지만 또박또박 말씀 하셨다.
“아버님.. 고맙다니요.. 전 불효자식이잖아요.. 아버님은 절 딸처럼 사랑해 주셨는데, 전 못된 일을 저지른 불효자식이잖아요.. 정말 죄송해요..”
“니가..많이.. 보고..싶었다...”
그 말을 힘겹게 마치고, 그는 고개를 떨구었다.
“아버님.. 아버님? 아버님!!!!”
그렇게 차갑던 진석이의 눈에도 눈물이 흘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난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아버님은 나의 마음에 평생의 한을 남겨놓은 채 눈을 감으셨다.
뒤늦게 연락을 받고 달려온 남편은 아버지의 시신 앞에서 절규했다.
남편은 임종을 지키지 못한 자신을 한없이 원망하고, 또 일찍 연락을 해주지 않은 나를 원망했다. 그러나 나는 그저 묵묵히 장례 준비를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며칠 뒤, 장례식이 치뤄졌다. 세상인심이 야박한 것은 이미 겪어봐서 알고는 있었지만, 장례식장에서 나는 더욱 뼈져리게 그것을 느끼고 있었다.
결혼식에는 그렇게 많이 왔던 시아버님의 친구들이, 장례식에는 거의 모습을 비추지 않았던 것이었다. 떠들석했던 결혼식장과는 너무도 대조되게 장례식장은 너무나 쓸쓸했고 썰렁했다.
진석과 그의 아내는 의외로 담담한 나의 모습에 의아해하는 눈치였다.
그리고 남편은 나에게 계속해서 모진 말을 퍼부으며,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독한 계집이라고 욕을 해댔다. 은희만이 나의 마음을 이해했는지, 엄마를 두둔하며 자신의 아버지에게 엄마의 입장을 변호하고 있었다.
그렇게 장례를 마치자, 사람들은 하나둘씩 장례식장을 떠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얼마 후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비를 맞으면서 결국 난 정신을 잃었던 것이었다.
Ⅲ
“엄마, 다 왔어.”
길례는 딸의 목소리에 정신을 가다듬었다.
“은희야, 여기서부터는 엄마 혼자 갈테니까 너는 이제 서울로 올라가..”
“안돼.. 엄마 아직 회복이 덜 되었잖아. 또 쓰러지면 어쩔려구 그래?”
은희는 안된다며 우겼지만, 길례는 막무가내였다.
“엄마혼자 할아버지 계셨던 곳 둘러보면서.. 마음을 추스리려고 그러는거야..
안 그러면 엄마 할아버지한테서 절대 못 벗어날 것 같거든.. 엄마 맘 이해하지?“
그제서야 은희는 포기한 듯 말했다.
“그래.. 대신 일찍 집에 와야 해. 너무 늦으면 걱정되니까. 알겠지?
길례는 고개를 끄떡였다.
딸을 보내고 길례는 아버님 생전에 그렇게 오고 싶었건만 오지 못했던 그곳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요양소 여기저기에 아버님의 채취가 느껴지는 듯 했다.
그렇게 한참을 거닌 후 노을이 질 무렵, 겨우 마음을 추스린 길례는 마지막으로 아버님이 계셨던 병실로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병실 건물로 들어서자 한 간호사가 길례를 알아보며 말을 걸어왔다.
“602호 할아버지 며느리 분이시죠?”
“아..네..”
길례는 자신의 못된 짓을 들킨 것 같아 얼른 그 자리를 피하려 했다.
“저기, 잠깐만요!”
“네?”
“저기.. 이거...”
그 간호사 아가씨는 길례에게 편지 하나를 건네주었다.
“이게 무슨...”
“602호 할아버지께서 본인이 죽게 되면 며느리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하신 편지예요.”
길례는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아버님이 제게 남기신 편지..라구요?”
길례는 분명히 들었음에도 재차 확인했다. 간호사는 친절히 대답해주었다.
“네. 분명히 602호 할아버님이 남기신 거예요. 치매에 걸린 분이 쓰신거면 별다른 내용은 아 마 없겠지만, 그분이 보통 치매 노인분들과는 뭔가 다르셨거든요.. 그래서 꼭 이 편지를 전 해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그게 무슨.. 말이죠?”
“여기에 오신 뒤 얼마간은 분명히 치매 걸린 분이 맞는 것 같았어요. 근데 계속 제가 옆에서 지켜보면서 느낀 건데요.. 그 할아버지는 마치 일부러 이곳에 있는 것 같다는 그런 느낌.. 그러니깐, 치매에 걸린 게 아니라 걸린 척 하시는 게 아닌가하는.. 뭐 그런 느낌을 받았거 든요. 아,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제 생각이지만요..“
그렇게 그녀는 충격적인 말과 편지 한 통을 남기고 떠나갔다.
길례는 아무 말도,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자신을 버리면서까지 그녀를 생각해준 아버님의 사랑을 느끼고 또 느끼며 서 있을 뿐이었다.
그분은 길례에게 어떤 친아버지보다도 더한 큰 사랑을 베풀고 떠나신 것이다.
“아버지..”
길례의 눈에는 또다시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내가 멍하니 서서 아버님을 바라보고 있는데, 그때 진석이 나를 발견했다.
“아니, 형수님! 형이랑 은희는요? 설마 혼자 오신 건 아니겠죠?”
진석은 정신이 있는 거냐는 말투로 나를 향해 물었다.
하지만 이미 나에겐 아버님 외엔 어떤 것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버님...”
“아무래도 늦은 것 같아요.. 제가 도착했을 때 이미 눈을 감고 계셨어요..
아무리 불러도 전혀 반응이 없어요..”
진석은 이미 포기한 듯한 말투였다.
“아니예요.. 그럴 리 없어요.. 분명 살아계세요.. 그죠? 아버님, 대답 좀 해보세요, 네?”
내가 목이 메여 울부짖는 소리를 들었는지, 죽은 듯이 계속 눈을 감고 있던 아버님은 힘겹게 눈을 뜨며 나를 바라보셨다.
진석은 그 모습을 보고 놀랐으며, 나는 아버님께 미소를 보이며 말을 이었다.
“잘하셨어요.. 아버님.. 잘하신 거예요.. 저도 안보고 가시면 안 되시는 거였잖아요..
정말 다행이예요.. 아버님은 꼭 다시 일어나실 꺼예요.. 꼭.. 다시..“
울먹이며 말을 하고 있는데, 아버님은 힘겹게 내 손을 잡으려 하셨다.
그리고 뭔가 말을 하려 하셨다.
나는 아버님의 손을 꼭 쥐며, 귀를 아버님의 얼굴에 가까이 가져갔다.
“아가...”
“네, 아버님.. 말씀하세요. 저 왔어요.. 저 많이 보고 싶으셨을 텐데 와보지도 않아서 화 많이 나셨죠? 그래서 이렇게 저 놀래켜 주시는 거죠? 이제 저 왔으니깐 그만 화푸시고 얼른 일어나세요.. 그래서 집으로 같이 가요, 아버님.. 흑..”
나는 지난 일이 너무나 후회되었고, 아버님을 외면하고 보내려 했던 내 자신이 너무나 미워서,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아가.. 고맙다.. ”
아버님은 마지막 순간 정신이 돌아오셨는지, 힘겹지만 또박또박 말씀 하셨다.
“아버님.. 고맙다니요.. 전 불효자식이잖아요.. 아버님은 절 딸처럼 사랑해 주셨는데, 전 못된 일을 저지른 불효자식이잖아요.. 정말 죄송해요..”
“니가..많이.. 보고..싶었다...”
그 말을 힘겹게 마치고, 그는 고개를 떨구었다.
“아버님.. 아버님? 아버님!!!!”
그렇게 차갑던 진석이의 눈에도 눈물이 흘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난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아버님은 나의 마음에 평생의 한을 남겨놓은 채 눈을 감으셨다.
뒤늦게 연락을 받고 달려온 남편은 아버지의 시신 앞에서 절규했다.
남편은 임종을 지키지 못한 자신을 한없이 원망하고, 또 일찍 연락을 해주지 않은 나를 원망했다. 그러나 나는 그저 묵묵히 장례 준비를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며칠 뒤, 장례식이 치뤄졌다. 세상인심이 야박한 것은 이미 겪어봐서 알고는 있었지만, 장례식장에서 나는 더욱 뼈져리게 그것을 느끼고 있었다.
결혼식에는 그렇게 많이 왔던 시아버님의 친구들이, 장례식에는 거의 모습을 비추지 않았던 것이었다. 떠들석했던 결혼식장과는 너무도 대조되게 장례식장은 너무나 쓸쓸했고 썰렁했다.
진석과 그의 아내는 의외로 담담한 나의 모습에 의아해하는 눈치였다.
그리고 남편은 나에게 계속해서 모진 말을 퍼부으며,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독한 계집이라고 욕을 해댔다. 은희만이 나의 마음을 이해했는지, 엄마를 두둔하며 자신의 아버지에게 엄마의 입장을 변호하고 있었다.
그렇게 장례를 마치자, 사람들은 하나둘씩 장례식장을 떠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얼마 후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비를 맞으면서 결국 난 정신을 잃었던 것이었다.
Ⅲ
“엄마, 다 왔어.”
길례는 딸의 목소리에 정신을 가다듬었다.
“은희야, 여기서부터는 엄마 혼자 갈테니까 너는 이제 서울로 올라가..”
“안돼.. 엄마 아직 회복이 덜 되었잖아. 또 쓰러지면 어쩔려구 그래?”
은희는 안된다며 우겼지만, 길례는 막무가내였다.
“엄마혼자 할아버지 계셨던 곳 둘러보면서.. 마음을 추스리려고 그러는거야..
안 그러면 엄마 할아버지한테서 절대 못 벗어날 것 같거든.. 엄마 맘 이해하지?“
그제서야 은희는 포기한 듯 말했다.
“그래.. 대신 일찍 집에 와야 해. 너무 늦으면 걱정되니까. 알겠지?
길례는 고개를 끄떡였다.
딸을 보내고 길례는 아버님 생전에 그렇게 오고 싶었건만 오지 못했던 그곳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요양소 여기저기에 아버님의 채취가 느껴지는 듯 했다.
그렇게 한참을 거닌 후 노을이 질 무렵, 겨우 마음을 추스린 길례는 마지막으로 아버님이 계셨던 병실로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병실 건물로 들어서자 한 간호사가 길례를 알아보며 말을 걸어왔다.
“602호 할아버지 며느리 분이시죠?”
“아..네..”
길례는 자신의 못된 짓을 들킨 것 같아 얼른 그 자리를 피하려 했다.
“저기, 잠깐만요!”
“네?”
“저기.. 이거...”
그 간호사 아가씨는 길례에게 편지 하나를 건네주었다.
“이게 무슨...”
“602호 할아버지께서 본인이 죽게 되면 며느리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하신 편지예요.”
길례는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아버님이 제게 남기신 편지..라구요?”
길례는 분명히 들었음에도 재차 확인했다. 간호사는 친절히 대답해주었다.
“네. 분명히 602호 할아버님이 남기신 거예요. 치매에 걸린 분이 쓰신거면 별다른 내용은 아 마 없겠지만, 그분이 보통 치매 노인분들과는 뭔가 다르셨거든요.. 그래서 꼭 이 편지를 전 해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그게 무슨.. 말이죠?”
“여기에 오신 뒤 얼마간은 분명히 치매 걸린 분이 맞는 것 같았어요. 근데 계속 제가 옆에서 지켜보면서 느낀 건데요.. 그 할아버지는 마치 일부러 이곳에 있는 것 같다는 그런 느낌.. 그러니깐, 치매에 걸린 게 아니라 걸린 척 하시는 게 아닌가하는.. 뭐 그런 느낌을 받았거 든요. 아,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제 생각이지만요..“
그렇게 그녀는 충격적인 말과 편지 한 통을 남기고 떠나갔다.
길례는 아무 말도,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자신을 버리면서까지 그녀를 생각해준 아버님의 사랑을 느끼고 또 느끼며 서 있을 뿐이었다.
그분은 길례에게 어떤 친아버지보다도 더한 큰 사랑을 베풀고 떠나신 것이다.
“아버지..”
길례의 눈에는 또다시 비가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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